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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삼성·현대차·SK·LG ‘전기차’라는 한 배에 타다

대한민국 굴지의 기업 총수들이 뭉쳤어요. 정의선 현대자동차 수석부회장이 삼성의 이재용 부회장, SK의 최태원 회장, LG의 구광모 회장을 만났어요. 정 부회장이 다리품을 팔아가며 4대 기업의 총수들을 만난 이유는 미래차의 ‘배터리’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였어요.

 

문재인 대통령이 7월 1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한국판 뉴딜 국민보고대회에서 정의선 현대자동차 수석부회장으로부터 화상 보고를 받고 있다. /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1. ‘삼성 탑건’ 이재용(52) 삼성전자 부회장과 ‘현대기아자동차 조타수’ 정의선(50) 현대자동차 수석부회장이 다시 만난 건 지난 7월 21일. 이 부회장이 현대자동차그룹 남양주연구소를 전격 방문하면서 두 사람의 만남이 성사됐다.

전기차와 관련해 두 그룹 리더의 만남은 이날이 처음이 아니었다. 지난 5월에는 정 수석부회장이 삼성SDI 천안사업장을 찾아 이 부회장과 의견을 교환했다. 두 달여 뒤 이 부회장이 남양주로 발걸음을 한 것은 정 수석부회장의 천안 방문에 대한 답방으로 해석됐다.

두 그룹의 리더는 두 차례 회동에서 전기차·자율주행차 등 차세대 모빌리티(mobility)에 관한 의견을 두루 나눈 것으로 전해진다. 1차 회동 장소가 삼성SDI 천안사업장, 2차 회동 장소가 현대자동차 남양주연구소라는 점이 이 같은 관측을 뒷받침한다. 삼성그룹 계열사인 삼성SDI는 2차전지 및 전자재료 제조업체이고, 남양주연구소는 현대자동차그룹의 ‘기술 메카’다.

두 달 새 두 차례나 회동했음에도 양사는 사진을 공개하지 않아 궁금증을 자아냈다. 현대자동차는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구광모 LG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회동했을 때는 기념사진을 공개했지만, 이 부회장과의 회동 사진은 지난 5월에 이어 7월에도 내놓지 않았다.

현대자동차는 “별도의 사진 촬영은 없었다”고 했지만, 양사가 ‘기록’ 자체를 남겨두지 않았을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일각에서는 괜한 억측을 불러일으키지 않기 위해 사진을 공개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국내 1, 2위 그룹 총수의 악수 사진이 공개되면 그를 곧 양사의 거래 시작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 재계 관계자는 “양사가 전기차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읽을 수 있는 단면”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자동차 관계자는 “현재는 두 그룹 간 거래가 거의 없는 상태지만, 두 리더의 회동 등을 통해 향후 협력 가능성을 모색하게 되지 않겠냐”고 말했다.

# 2. 정의선 수석부회장은 7월 7일 충남 서산 SK이노베이션 배터리 공장을 방문해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만났다. 회동 후 양측은 전기차 배터리 관련 협력 방안을 모색한 자리였다고 밝혔다. 정 수석부회장은 5월 13일 이재용 부회장, 6월 22일 구광모 LG그룹 회장에 이어 최 회장을 만남으로써 국내 배터리 3사 총수와 모두 접촉하게 됐다.

7월 7일 회동에 현대자동차에서는 알버트 비어만 연구개발본부 사장, 김걸 기획조정실 사장, 서보신 상품 담당 사장, 박정국 현대모비스 사장 등이 참석했다. SK에서는 최재원 수석부회장,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 장동현 SK㈜ 사장, 지동섭 SK이노베이션 배터리사업 대표(사장)가 자리를 함께했다.


한·중·일 배터리 삼국지의 승자는

 

삼성SDI 천안사업장 전경. 5월 13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자동차 수석부회장이 이곳에서 회동했으나 사진은 공개되지 않았다. / 사진:삼성 SDI

 

양사 경영진은 SK이노베이션 등이 개발 중인 차세대 배터리 기술과 미래 신기술 개발 방향에 관해 의견을 주고받았다. 또 전력반도체와 경량 신소재, 배터리 대여·교환 등 서비스 플랫폼(BaaS, Battery as a Service)의 미래 신기술 개발 방향성과 협력 방안에 관해서도 머리를 맞댔다.

SK이노베이션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와 기아차의 니로·쏘울 전기차에 배터리를 공급하고 있다. 또 SK이노베이션은 2021년 양산 예정인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의 1차 배터리 공급사이기도 하다. 현대자동차와는 불가분의 관계다.

회동 후 정 수석부회장은 “미래 배터리, 신기술 개발 방향성을 공유하는 의미 있는 자리였다”며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인간 중심의 미래 모빌리티 시대를 열고 인류를 위한 혁신과 진보를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겠다. 세계 최고 기술력을 보유한 기업들과 협업을 확대해 나갈 것이다.”

 

최 회장은 “현대기아자동차가 전기차 등 미래 모빌리티 분야에서 선도적 입지를 구축하고 있는 만큼 이번 협력이 양 그룹은 물론 한국 경제에도 새로운 힘이 될 것”이라고 화답했다.

이처럼 국내 4대 그룹 총수가 전기차에 ‘동승’하는 이유는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패권을 놓고 한·중·일 3국 간에 경쟁을 넘어 전쟁이 벌어지는 현실과 관계가 깊어 보인다. 7월 14일 정 수석부회장은 청와대에서 열린 ‘한국판 뉴딜 국민보고대회’에서 전기차-수소전기차 등 미래 차 전략을 설명했다.

 

이 자리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배터리 3사(삼성SDI·LG화학·SK이노베이션)가 한국 기업이라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서로 잘 협력해서 세계 시장 경쟁에서 앞서나가겠다”고 말했다.

시장조사 업체 ‘SNE리서치’가 집계한 올해 1~4월 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점유율을 보면 1~10위 업체 모두 한·중·일 3국 기업이다. 그중에서도 LG화학의 분발이 단연 돋보인다. LG화학은 올해 처음으로 일본 파나소닉을 제치고 1위로 올라섰다. 중국 CATL과 BYD는 각각 3·4위를 차지하며 선두권을 위협했다. LG화학은 “유럽 시장에서는 자동차 배터리 공급의 70%를 담당하는 한편, 중국에서는 테슬라 모델3 판매 증가 등으로 인해 LG화학 배터리 공급이 크게 늘었다”고 밝혔다.

따라서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직접 다리품을 팔아가며 삼성·SK·LG 그룹 총수들을 잇달아 만난 건 ‘배터리 전쟁’에서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배터리는 전기차 경쟁력의 핵심인 만큼 자칫하면 차량 제조사들이 배터리 회사들에 끌려다닐 수 있다.

전기차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배터리 물량 공급이 최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전기차 원가의 절반이 배터리가 차지하는 만큼 배터리의 안정적 공급 여부는 전기차의 성패와 직결된다. 시장조사 기관 ‘SNE리서치’는 배터리 대란이 이르면 2021년, 늦어도 2022년 일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배터리 대란을 대비해 독일 폴크스바겐은 2019년 9월 스웨덴 배터리 회사 노스볼트와 리튬이온 배터리 대량생산을 위한 합작사를 설립했다. 합작사는 독일 잘츠기터에 16GWh 규모 배터리 공장을 건설했으며, 이르면 2023년부터 생산에 들어간다.

노스볼트는 BMW와 20억 유로 규모 배터리 공급 계약을 맺었다. 프랑스 PSA의 자회사인 오펠은 올해 2월 독일 남서부에 24GWh 규모 배터리 공장 건설에 착수했다. 이 공장은 2023년부터 가동에 들어가며 연 50만 대 정도의 전기차에 배터리를 공급할 수 있다.

2017년부터 파나소닉과 손잡은 도요타는 올해 들어 배터리 합작사 프라임 플래닛 에너지 앤드 솔루션스를 세웠다. 양측은 2022년부터 전고체 배터리를 양산할 계획이다. 도요타는 BYD와도 합작법인을 설립하는 등 중국 공략에도 나섰다.


정부 “2025년까지 113만 대 보급할 터”

 

7월 7일 SK이노베이션 서산공장에서 악수하고 있는 정의선 현대자동차 수석부회장(오른쪽)과 최태원 SK그룹 회장. / 사진:SK그룹

 

이에 질세라 현대자동차는 LG화학과 HL그린파워라는 전기차 전용 배터리 생산 합작법인을 세웠다. 또 현대자동차는 SK이노베이션을 2021년에 생산하는 전기차 전용 플랫폼 기반 차량 ‘아이오닉5’ 등의 배터리 공급사로 정하기도 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이재용 부회장과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상호 방문을 통해 시너지효과 가능성을 보여줬다”면서 “양측이 신뢰도를 높이고, 지금까지 없었던 모델을 새로 구상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이어 “코로나19로 자국 우선주의가 강조되면서 부품을 해외에서 들여오는 것보다 자국 내에서 시너지효과를 내는 게 중요해졌다”면서 “국내 기업 간 공조가 이뤄지면 정부가 투자하는 데도 부담이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BMW와 PSA는 EU(유럽연합)와 독일·프랑스 정부에 배터리 생산 컨소시엄 보조금을 요청했다. 정부도 팔을 걷어붙이고 투자에 나서 달라는 것이다. 대표적인 차세대 먹거리로 꼽히는 전기차를 기업들만의 힘으로 키우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정부여당이 8월 12일 현대자동차를 방문해 미래 차 산업의 현황을 살펴보고 미래 차 혁신성장과 조기 전환을 위한 전폭 지원을 약속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정부 여당은 총 20조3000억원을 투자해서 2025년까지 전기차 113만 대와 수소차 20만 대를 보급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택시·버스·화물차 등을 전기차로 전환하고, 주요 고속도로에 충전 인프라를 확대할 계획이다. 공공기관 신규 차량 구매의 전기·수소차 구매비율도 100%로 늘릴 방침이다.

이날 간담회에서 홍정기 환경부 차관이 ‘미래 차 시대 개막을 위한 이행 전략’을 주제로 미래 차 전환 사업에 대한 정부 계획을 발표했다. 홍 차관은 주제 발표에서 ▷2022년부터 공공부문의 모든 신규 차량을 전기차로 하는 등의 미래차 보급 의무제도 ▷전국 고속도로 휴게소에 초급속 충전기 설치 ▷고가차량 지원 위한 보조금 산정 체계 개편 등의 구상을 밝혔다.

행사에 참석한 업계 관계자들은 인프라 투자 등 적극적인 정책 지원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필수 한국전기차협회 회장은 전기차 등 미래 차 전문기술 인력 양성 예산 확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나아가 충전기 지붕 설치 및 수리 등을 위한 별도 관리예산, 전기차 충전기 기본요금 정책 재고 등을 요청했다.


그들이 손잡는 진짜 이유

 

 

돌아보면 현대기아자동차가 전기차 시장에 처음 뛰어든 시점은 2011년. 그리고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 누적 판매 대수는 지난 6월 기준, 약 28만 대에 이른다. 현대기아자동차는 글로벌 시장에서 서서히 상위권으로 올라가고 있다.

 

글로벌 전기차 전문 매체인 [ev세일즈]에 따르면 현대기아자동차는 올해 1분기 동안 순수 전기차를 2만4116대 판매했다. 이는 테슬라(8만8400대), 르노-닛산 얼라이언스(3만9355대), 폴크스바겐 그룹(3만3846대)에 이어 전기차 생산 순위 4위에 해당한다.

현대기아자동차는 2025년까지 총 44종의 친환경차를 선보일 계획이다. 이 가운데 절반이 넘는 23종이 순수 전기차로 개발될 예정이다. 현대자동차는 2025년에는 전기차 56만 대를 판매함으로써 수소전기차 포함, 세계 시장 3위로 등극한다는 목표를 수립했다. 기아차는 이와 별개로 2026년 전기차 50만 대 판매를 목표로 잡고 있다.

이처럼 전기차 시장이 커짐에 따라 현대자동차그룹은 반도체와 연계되는 로보틱스(로봇+테크닉스)·인공지능(AI)·빅데이터 등 차세대 혁신기술 개발을 가속화함으로써 추가 성장동력을 확보해나간다는 구상이다. 아울러 현대자동차그룹은 이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삼성전자·LG전자·SK그룹과 협업을 원하고 있다. 삼성전자·LG전자·SK그룹은 전기차 시장의 선두권으로 떠오른 현대자동차그룹과의 시너지효과를 그리고 있다.

현대자동차 관계자는 SK 경영진과의 회동과 관련해 “현대기아자동차는 세계 최고 성능의 전기차에 필요한 최적화된 배터리 성능 구현을 위해 연관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면서 “최근 총수들의 회동은 향후 전기차 전용 모델에 탑재될 차세대 고성능 배터리 개발 현황을 살펴보고 미래 배터리 및 신기술에 대한 개발 방향성을 공유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SK는 “전기차 배터리 사업 분야에서 긴밀히 협력하고 있고, 양사는 차세대 배터리 신기술 영역에서 협력 방안을 집중 논의하는 중”이라고 화답했다.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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