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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양산에는 한 번 피어나면 시들지 않는 꽃이 있다?

코로나19 대유행은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모두 병들게 했어요. 특히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발을 꽁꽁 묶어놔 우울하게 만들었죠. 게다가 점차 싸늘해지는 가을 날씨도 우울함을 더하는데 한몫하고 있어요. 우울함을 이기기 위해선 꽃보다 좋은 것이 없다고 하지요. 경남 양산에는 한 번 피면 시들지 않는 꽃이 있다고 해요.

 

전통 한옥과 현대식 정원의 배치가 인상적인 경남 양산시 매곡동의 궁중 꽃 박물관. 황수로(84) 채화장의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가을에 피는 대표 꽃은 코스모스다. 너른 들판에 군락을 이룬 연분홍 빛깔 코스모스들이 하늘하늘 손 흔드는 풍경을 보면 절로 마음이 들썩인다. 기약 없이 창궐하는 바이러스 탓에 그 모습 봐줄 사람은 드물지만. 그래도 꽃은 피고 진다.

경남 양산시의 한 팔작지붕 한옥 안에는 조금 색다른 꽃이 펴 있다. 코스모스 빛깔만큼 색은 고운데, 한번 피어나고선 시들 기미가 안 보인다. 사실 비단·모시 등에 밀랍을 입혀 만든 가짜 꽃이다. 국가무형문화재 제124호 궁중채화장(宮中綵花匠) 보유자인 황수로(84) 동국대 석좌교수가 손으로 일일이 다듬어 만든 작품이다.

지난해 9월 경남 양산시 매곡동에 조선왕실의 궁중 꽃을 감상할 수 있는 박물관이 들어섰다. 대지면적 5041㎡(약 1525평)의 너른 땅에 세워진 한국 궁중 꽃 박물관이다. 황 교수가 직접 사재를 내서 10년에 걸쳐 이곳에 지었다. 궁중 꽃의 다른 말인 채화(綵花)란, 궁중 연회나 의례 때 장식용으로 쓰려고 만든 꽃을 말한다. 박물관에는 황 교수의 작품들과 작품 제작에 참고한 고문헌 등 채화 관련 예술품들이 전시돼 있다.

황 교수는 명맥이 끊긴 채화를 복원해 50여 년 동안 만들어왔다. 그는 지난해 개장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채화는 천연 재료로 만들기 때문에 온·습도 등 환경에 민감하고 보존이 쉽지 않다”며 “후손에게 채화의 아름다움을 계속 전하고 싶어 박물관까지 짓게 됐다”고 말했다. 유명 해외 전시회에 소개돼온 황 교수의 채화는 2017년 11월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당시 청와대 국빈 만찬장을 수놓은 작품이기도 하다.

박물관을 찾고 싶다면 개관 여부부터 확인해야 한다. 코로나19 전파를 막기 위해 박물관에서 입장을 일부 제한하고 있어서다. 현재 평일 관람 시간은 매주 수·목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12시 30분, 오후 1시 30분부터 오후 4시까지다. 주말과 공휴일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12시 30분, 오후 1시 30분부터 오후 5시까지다. 평일보다 1시간 더 길게 문을 연다. 이밖에 월요일과 화요일, 그리고 금요일은 휴관일이다.

또 박물관 홈페이지에서 사전 예약을 해야 관람이 가능하다.

궁중 꽃 박물관이 양산의 새로운 볼거리라면, 통도사는 무려 646년부터 양산 일대를 지켜온 터줏대감이다. 신라 선덕여왕 15년에 자장율사(생몰년도 590~658년)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통도사는 경남 합천 해인사, 전남 순천 송광사와 함께 한국의 3보(寶) 사찰로 꼽힌다. 통도사에 부처님의 진신사리(眞身舍利)가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자장율사가 643년 당나라에서 돌아올 때 가지고 와 통도사를 세웠다고 한다.


산사 계곡의 물소리에 고뇌도 씻겨 나가

 

궁중 꽃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황수로 채화장의 작품. 비단이나 모시를 재료로 만든 뒤 밀랍을 덧입혀 완성한다. / 사진:양산시

 

진신사리를 봉안한 금강계단(戒壇)은 국보 제290호로 지정돼 있다. 이 금강계단 때문에 통도사 대웅전에는 다른 절과 달리 불상이 없다. 부처님의 진짜 몸이 이미 있으니 대체품을 쓸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밖에 통도사는 보물 21건과 지방유형문화재 46건을 포함해 약 3만여 점의 문화재를 관리하고 있다. 이 중에서 600점에 달하는 불화(佛畵)만을 따로 소장·전시하는 성보박물관도 통도사를 찾은 사람이라면 꼭 들려야 할 명소다.

사찰을 충분히 둘러봤다면 통도사 인근 13개 암자를 찾아 떠나는 ‘통도사 암자순례길’에도 도전해볼 만하다. 영축산자락 곳곳에서 들리는 시원한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걷다 보면, 양어깨에 짊어지고 있던 속세의 번뇌를 말끔히 씻어낼 수 있을 법하다.

13개 암자를 모두 둘러보는 코스는 약 11㎞에 달한다. 한꺼번에 둘러보기 어려울 수 있어 2개의 코스로 다시 나뉘어 있다. 1코스는 통도사 매표소에서 시작해 통도사를 거쳐 보타암-취운암-수도암-서운암-사명암-옥련암-백련암까지 7개 암자를 둘러보는 5.5㎞ 구간으로 이뤄져 있다.

 

완주하는 데 보통 2시간 30분가량 걸린다. 2코스는 1코스보다 좀 더 많은 체력을 필요로 한다. 4시간 정도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통도사를 지나 안양암-자장암-서축암-반야암-극락암-비로암까지 6개 암자를 둘러보는 6.5㎞ 구간이다.

 

승려와 관광객들이 통도사 암자순례길 초입을 지나고 있다. 암자순례길은 통도사 인근 13개 암자를 둘러보는 코스로 이뤄져 있다. / 사진:양산시

 

통도사가 가진 고유의 불교 문화와 아름다운 풍광 덕분에 유네스코는 2018년 6월 통도사를 비롯한 한국의 산사(山寺) 7곳을 세계유산으로 올렸다.

이밖에 본격적으로 등산을 즐기고 싶다면, 양산의 3대 명산 중 하나를 골라보는 것이 좋다. 통도사를 끼고 있는 영축산과 함께 낙동강을 내려다보는 낙조(落照)가 일품으로 꼽히는 천태산, 그리고 가지산도립공원 내 있는 천성산이 그 주인공들이다. 특히 천성산은 가을이면 능선을 따라 억새들이 은빛 물결을 이루며 장관을 연출한다. 예로부터 깊은 계곡과 폭포가 많고 경치가 빼어나다고 해서 ‘소(小)금강산’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2월 말부터 이어져온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사회 구석구석 우울감이 깊게 뱄다.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까지 나오기도 했다. 떨어지는 낙엽과 살갗 아래로 파고들기 시작하는 찬바람은 이런 우울감을 한층 자극할 태세다. 코로나19의 기세가 잠시 주춤한 지금, 양산의 특별한 가을과 함께 ‘마음 방역’을 해보는 건 어떨까.


문상덕 월간중앙 기자 mun.sangd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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