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밭이 점점 북상하고 있어요. 벌써 올해 강원 양구군에서만 183개 농가가 사과 3000여 톤을 생산하였다고 해요. 그에 반해 남쪽인 경북의 사과 생산량은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고 해요. 기상학계에 따르면 이대로 온난화가 계속 진행될 경우 2060년대엔 강원도 일부에서만 사과의 재배가 가능할 것이라고 해요.
"홍로도 달고 맛있네요. 사과는 부사가 최고인 줄 알았는데….”
9월 12일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 현리 사과밭에 마련된 수확 체험행사장. 경기 김포시에서 온 이희수(35)씨가 나무에서 막 딴 사과를 한 입 베어 물며 말했다. 농업회사법인 ㈜애플카인드가 2016년부터 운영해온 이 사과밭은 휴전선이 내려다보이는 을지전망대에서 직선거리로 불과 1.5㎞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침식분지인 해안(亥安) 분지(일명 펀치볼) 서쪽 산자락 중턱, 해발 520~610m의 넓은 구릉지 19만8347㎡(6만 평)에 사과나무 1만5000여 그루가 자라고 있다. 양구군청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양구군내 사과밭은 193ha 이며 183 농가가 3000여t을 생산했다. 이중 펀치볼 지역인 해안(亥安)면의 재배면적이 70%이상인 138ha에서 108농가가 종사하고 있다.
애플카인드 사과밭이 이곳에 자리 잡은 이유는 지구온난화 때문이다. 1970년대 사과 주산지는 대구를 비롯해 경산·영천·경주 등 경북 남부에 집중돼 있었다. 전국 생산량의 80% 이상이 이 지역들에서 나왔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인해 2015년엔 청송·영주·문경·봉화 등 경북 북부의 소백산맥 줄기와 충주·제천·괴산·예산 등 충청도까지 사과의 ‘북방 한계선’이 올라왔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경북의 사과 생산량은 꾸준히 줄고 있다. 지난 1992년 47만8205t(재배면적 3만6355㏊)을 생산해 정점을 찍은 뒤, 지난해엔 33만8085t(재배면적 1만9462ha)까지 감소했다. 올해 재배면적은 1만8705ha로 지난해보다 더 오그라들었다. 반면 강원도에선 2007년 사과 1176t(재배면적 114㏊)을 생산했지만, 지난해엔 1만486t(재배면적 1092㏊)을 수확, 10배 이상의 증가폭을 자랑한다. 올해 재배면적도 1124㏊로 늘었다.
아울러 통계청이 지난 6월 26일 발표한 농업면적조사에 따르면, 전국의 사과 재배면적은 2020년 3만1601㏊로 2017년 3만3601㏊를 기록한 이후 3년 연속 내리막길에 있다. 이대로 온난화가 이어진다면 2060년대엔 해발고도가 높은 강원도 일부 지역만 사과를 재배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올해 구순 맞은 최고령 사과나무
부사·홍옥 등 우리에게 익숙한 사과 품종은 일본·미국 등 해외에서 들어온 개량종이다. 개량종이 국내에 처음 들어온 것은 1884년쯤이다. 선교사들이 묘목을 들여오면서 국내에 알려졌다. 일제강점기 때는 일본인들이 일조량이 많은 분지 대구 주변에 과수원을 많이 만들었다. 해방 뒤에도 정부에서 사과를 소득작물로 권장하면서, 대구를 중심으로 한 사과 재배면적과 생산량은 크게 늘었다. 1970년대엔 ‘대구 사과’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지역 특산품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러나 도시 확대로 과수원이 줄어든 데다 기후 변화로 품질까지 떨어지면서 ‘대구 사과’의 명성은 갈수록 빛이 바랬다.
그럼에도 대구 사과의 자존심은 살아있다. 대구 동구의 재바우농원에 있는 국내 최고령 홍옥 사과나무가 그 주인공이다. 밑둥치 둘레만 140㎝에 이른다. 1935년 일본에서 들여온 5년생 묘목을 심은 것이 이제 한 세기를 바라본다. 이 나무가 살아있는 한, 경북 사과의 명성만큼은 앞으로도 건재하지 않을까.
사진·글= 신인섭 선임기자 shin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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