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젤리나 졸리는 남들과 다른 행보를 이어온 여배우다. 그녀는 연기도 뛰어나지만, 세상을 바라보고 올바른 행동을 실천하는 것에도 뛰어나다. 이제 그녀는 헐리우드의 인기 배우, 영화감독, 시나리오작가를 뛰어넘어 글로벌 지도자의 한 명으로 뽑힌다.
졸리는 미국 경제잡지 포춘지가 지난 3월 선정한 ‘전 세계 50대 지도자’에 21위에 뽑혔다. 포브스가 선정하는 ‘100명의 유명 연예인’에는 물론 ‘100명의 영향력 있는 여성’에도 매년 단골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타임지가 선정하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대 인물’에도 2008년부터 수시로 오르고 있다.
졸리는 자신의 명성을 개인적으로 누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를 국제사회의 공익을 위해 적극적으로 헌신하고 있다. 유엔난민기구(UNHCR)의 특별사절에 이어 친선대사로 임명돼 활동해왔다. 실제로 전 세계 난민촌을 찾아다니며 활발한 활동을 펴기로도 유명하다.
최근 그녀는 전쟁 지역의 여성 인권을 위한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분쟁 지역 성폭력 방지 이니셔티브(PSVI)’라는 프로젝트다. 졸리는 지난 6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분쟁 지역에서 성폭력 종식을 위한 국제회의’를 윌리엄 헤이그 영국 외교장관과 공동 주최했다. 여성 노벨평화상 수상자 5명도 졸리와 자리를 함께했다. 이 회의는 전쟁 중 성폭력을 주제로 한 첫 국제회의로 기록된다. 국재사회가 나서 분쟁 중 성폭력을 처벌하지 않은 관행을 타파하고 실질적인 효과가 있는 대응책을 마련하지는 취지다.
피해자들에 대한 국제적 지원 확대 방안도 함께 논의한다.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 100여국이 참가했다. 이 자리에서 졸리는 감동적인 개막연설을 했다.
“분쟁 지역의 성폭행은 침묵과 부인 속에서 자행된 범죄로 우리는 이를 너무도 오랫동안 터부로 여겼다. 엘리노어(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으로 인권 운동을 펼침)가 말했듯이 인권은 결국 시민사회의 손에 달렸다. 이번 회의에서 변화의 계기를 일구지 못하면 그런 악행은 앞으로도 수백 만명의 삶을 파괴할 것이다…(중략)…아프가니스탄에서 소말리아까지 많은 피해자를 만났다. 우리와 똑같았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우린 뭔가 잘못되면 경찰이 나타난다. 이들에겐 그런 게 전혀 없다. 진짜 부끄러운 것은 성폭력 생존자가 아니라 가해자라는 메시지를 전 세계에 보내야 한다.”
안젤리나 졸리는 특히 지난해 가을 유엔총회 기간 중에 나온 유엔의 ‘분쟁 중 성폭력 근절 선언’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성폭력 특별대표와 중동·유럽·아프리카·아시아 12개국 지도자가 뜻을 모아 만든 선언이다. 분쟁 중의 성폭력을 제네바협정과 ‘국제 무력충돌의 희생자 보호에 대한 제네바 협정의 제1추가의정서’의 위반으로 간주해 전 세계 어디서든 관련자를 체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이 선언은 분쟁 중 성범죄자를 평화협정으로 사면하는 것도 금지해 이들이 설 땅이 없도록 했다. 종군위안부를 포함해 태평양 전쟁 중 일본군의 성범죄도 묻고 있어 우리와도 관계가 적지 않다.
졸리는 분쟁 지역의 강간 및 다른 성범죄 조사 과정에서 피해자들의 안전과 존엄을 지킬 수 있도록 하는 국제 의정서를 마련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런 인도주의적인 활동에 대한 공로를 인정 받아 지난 6월 영국 왕실로부터 ‘데임(Dame·DCMG)’ 작위를 받았다. 남성의 ‘경(卿·Sir)’에 해당하는 작위다.
할리우드 스타였던 안젤리나 졸리가 세계적인 인도주의 활동가로 변신한 것은 2001년이다. 당시 자신의 출세작인 액션영화 <툼 레이더스> 촬영 차 캄보디아로 갔다가 참상을 목격했다. 지뢰로 발목이 잘려나간 어린이들이 목발을 짚고 축구를 하는 모습 등을 보면서 전쟁의 참화가 지나갔음에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인도주의적인 위기를 실감했다. 이런 경험을 한 안젤리나 졸리는 스스로 유엔 난민기구(UNHCR)를 찾아가 도움을 줄 방법을 상의했다.
그런 다음 전 세계 인도주의 위기를 직접 확인하고 지원 방법을 찾지 위해 전 세계의 난민캠프를 찾아 다니기 시작했다. 바로 그 해 처음으로 방문한 현장이 아프리카의 시에라리온과 탄자니아였다. 잠시 찾아 사진만 찍고 돌아온 게 아니었다. 그는 유명 인사로서 대접을 사양하고 유엔기구의 직원들과 함께 생활하며 현장을 누볐다.
졸리는 18일 동안 비극의 난민캠프를 돌아본 뒤 인도주의적인 활동이야말로 자신이 일생을 바칠 일임을 자각하게 됐다고 한다. 그래서 다시 캄보디아를 방문해 2주간 현장을 찾아 다녔으며 발길은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으로 이어졌다.
그는 자신이 느낀 것을 즉각 실천에 옮겼다. 유니세프(유엔아동기금)에 100만 달러를 기부한 것이다. 개인이 유니세프에 기부한 최다 금액이다. 그 해 8월 유니세프로부터 친선대사에 임명됐다. 인도주의 활동과 관련한 첫 공식 직함이다. 유엔난민기구의 난민특사로도 임명됐다. 그 뒤 지금까지 전 세계30개국 이상의 난민캠프 등을 다니며 인도주의적 관심을 촉구하고 있다.
졸리는 2002년 한 인터뷰에서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실상을 전 세계에 알리고 싶다”며 “어려운 상황 속에서 그들이 살아남은 것을 높게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활동에 따라 졸리는 노벨평화상 후보로도 거론된다.
2003년 나온 영화 <머나먼 사랑>에서 졸리는 아프리카와 아시아 각국의 구호현장을 다니는 사교계 유명 인사 역을 맡았다. 이 영화는 비록 흥행에는 그리 성공하지 못했지만 구호대사로서 졸리의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한편 그가 앞으로 갈 길을 예견하게 해주는 작품으로 평가 받는다. 졸리는 영화 <피와 꿀의 땅에서>를 통해 2011년 감독으로 데뷔했는데 1992년부터 3년 간 벌어졌던 보스니아 내전 중의 학살과 성폭력문제를 다룬 작품이었다.
이 작품을 본 헤이그 장관이 분쟁 중 성폭력 문제를 국제적인 이슈로 제안했다고 한다. 졸리가 국제 문제에 영감을 준 셈이다. 두 사람은 함께 언론 기고문을 작성하는 등 공동작업을 해왔다.
졸리는 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이나 ‘가장 섹시한 여성’으로 평가 받고 있다. 그는 <툼 레이더스>가 흥행에 대성공한 이듬해인 2002년 ‘보그’지를 시작으로 2004년에는 ‘에스콰이어’, 2005년 ‘하프 바자’, 2006년 ‘피플’, 2007년 ‘엠파이어’, 2009년 ‘베네티 페어’ 등의 조사에서 이런 평가를 받았다. 아름다움은 명성으로, 명성은 영향력으로 연결되게 마련이다. 이 같은 명성에 경제력은 당연히 따라오 는 것이다.
이미 2006년 AC닐슨의 글로벌 산업 조사에서 졸리와 피트 부부는 글로벌 브랜드들이 광고모델로 가장 선호하는 연예인으로 뽑혔다. 2006년부터 2년 간 시세이도 모델을 한 데 이어 2011년부터 매년 1000만 달러를 받고 세계적인 럭셔리 브랜드인 루이비통 광고 모델을 맡고 있다.
올해 졸리는 최고의 해를 맞고 있다. 지난 8월 23일 프랑스에서 가족·친지 20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비공개로 배우자인 브래드 피트와 결혼식을 올렸다. 2005년 영화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를 찍으며 연인으로 발전, 최근까지 사실혼 관계를 이어왔다. 미국의 연예매체 ‘피플’과 영국의 잡지 ‘헬로’ 등에 게재된 결혼식 사진에서 졸리는 순백색 드레스를 입고 꽃무늬 면사포를 쓴 채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졸리가 출산한 3명의 아이와 입양한 3명의 아이와 함께 부부가 찍은 사진도 함께 공개됐다. 졸리는 최근 배우 생활을 몇 년 안에 정리하고 유엔 활동에 매진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미국 연예매체 US위클리는 지난 6월 “졸리가 영화 <클레오파트라> 촬영 뒤 은퇴할 계획을 밝혔다”고 보도했다. 졸리가 연기보다는 글을 쓰고 영화를 연출하는 것에 더 관심이 많으며 정치나 사회적 문제, 인권 문제 등에 더욱 신경을 쓰면서 유엔과의 일에 집중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배우 안젤리나 졸리를 볼 날은 그리 많이 남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전 세계에 인권문제를 제기하고 온몸으로 뛰는 인도주의 활동가로서 졸리는 오랫동안 우리 곁을 지킬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