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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웹소설 분야의 넷플릭스’라고 불리는 여기는?

소설뿐만 아니라 창작 문학은 오로지 작가 1인이 책임져야 탄생할 수 있다고 여겨졌지요. 그러다 2000년대 중반부터 국내에 변화가 생겼어요. 드라마와 영화 분야에서 공동창작(집단창작) 시스템이 도입되기 시작했지요. 미국 드라마 창작 시스템이 한국에도 도입된 것이에요. 그렇다면 1인 창작의 산물이라 평가받는 소설에도 도입할 수 있을까요? 한 한국인 창업가가 소설에 공동창작 방식을 도입해 큰 성공을 거두고 있어요.

 

사진:지미연 객원기자

 

“웬일인지 나는 원고를 쓸 때면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1980년 4월부터 1996년 12월까지 17년 동안 원고지 1만2000여 장(총 10권) 분량의 소설 [혼불]을 쓴 고 최명희 작가의 말이다. 소설뿐만 아니라 창작 문학은 오로지 작가 1인이 책임져야 탄생할 수 있다고 여겨졌다.

2000년대 중반부터 국내에 변화가 생겼다. 드라마와 영화 분야에서 공동창작(집단창작) 시스템이 도입되기 시작했다. 미국 드라마 창작 시스템이 한국에도 도입된 것이다. 그렇다면 1인 창작의 산물이라 평가받는 소설에도 도입할 수 있을까? 국내에도 시도가 됐지만 큰 반향은 불러오지 못했다. 그런데 한국인 창업가가 소설에 공동창작 방식을 도입해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미국 뉴욕에 있는 스타트업 래디쉬픽션이 서비스하는 영문 웹 소설플랫폼 ‘래디쉬(Radish)’다. 래디쉬는 한국의 카카오페이지나 네이버 시리즈라고 생각하면 된다. 지난해 7월 카카오페이지와 소프트뱅크벤처스 등이 760억원을 투자하면서 국내에서도 인지도가 높아졌다.

 

지난해 760억원 투자 유치로 주목받아

 

사진:래디쉬 모바일 화면

 

래디쉬픽션 창업가는 대원외고를 졸업하고 2010년 9월 영국 옥스퍼드대 정치·철학·경제 전공에 입학한 한국인 이승윤 씨다. 이 대표는 2012년 동아시아인으로는 처음으로 2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 토론 클럽 ‘옥스퍼드 유니언’ 회장에 올라 화제가 됐다. 대학 졸업 후 취업 대신 2015년 ‘바이라인’이라는 저널리즘 스타트업을 창업했다. 미디어 분야에 관심이 많았지만, 그러나 성과를 내지 못했다.

코로나19 때문에 당분간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이승윤 대표를 지난 3월 4일 만났다. 텍스트의 시대가 저물어가는 상황에서 래디쉬의 성장비결을 듣고 싶었다.

그는 바이라인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와 함께 2016년 2월 중국과 한국 시장에서 성장하고 있는 웹소설 분야에 도전했다. 고작 5개월 정도 버틸 수 있는 돈이 남아 있었다. “소설이 스토리의 원천이라는 믿음이 있었다”고 이유를 밝혔다.

래디쉬는 웹소설 연재 시스템과 함께 일정 시간을 기다리면 무료로 보지만 소액 결제를 하면 다음 회를 바로 볼 수 있는 부분 유료화를 도입했다. 여기에 인지도가 있는 아마추어 웹소설 작가를 섭외해 래디쉬에 작품을 올리도록 했다. 이런 준비를 한 덕분에 초창기 월 1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출발은 괜찮았다. 그러나 플랫폼을 이용하는 작가도 늘었지만, 성장은 더디기만 했다.

이에 반해 한국의 웹소설 분야는 성장세가 빨랐다. 카카오페이지가 수십억원의 수익을 올렸다는 ‘달빛조각사’ 등의 작품을 분석했다. 매일 연재 시스템이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알았다. 이 때부터 “어떻게 하면 매일 웹소설을 연재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했다.


30~40대 여성 독자 구매율이 가장 높아


2018년 운명처럼 수 존슨 전 ABC 부사장을 만나게 됐다. 조언을 듣기 위해서다. 수 존슨 전 부사장과 이야기하면서 ‘공동창작’ 방식을 도입하면 1일 연재가 가능할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3~4개월 동안 노력해 수 존슨을 최고콘텐트책임자(CCO)로 영입했다. 존슨 덕분에 방송국에서 일하던 프로 작가도 영입했다.

 

또한 신종훈 카카오페이지 공동창업자를 최고기술책임자(CTO)로, 이두행 카카오페이지 서비스 총괄을 최고상품책임자(CPO)로 영입했다. 이 대표는 “2018년은 팀 멤버 세팅에 성과를 낸 중요한 시기였다”고 회고했다. 2021년 2월 현재 미국 뉴욕과 한국에서 60여 명의 임직원이 일하고 있다.

2018년 이후 래디쉬는 오리지널 콘텐트를 직접 만드는 플랫폼으로 확장했다. 웹소설을 공동창작 시스템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PD의 책임 아래 줄거리만 쓰는 작가, 캐릭터와 배경을 담당하는 작가 등으로 세분화해서 공동작업을 했다. 여기에 계약직 프리랜서까지 합하면 100명이 넘는 작가들이 매일 혹은 하루에도 여러 번 업데이트하는 오리지널 콘텐트를 내놓기 시작했다. ‘웹소설 분야의 넷플릭스’라고 평가받는 이유다.

에피소드가 올라가면 독자의 평가를 분석해 스토리를 바꿀 정도로 빠르게 대응했다.

웹소설 장르는 로맨스에 집중했다. 유료결제를 가장 많이 하는 독자가 30~40대 여성이 결제자 중 30%로 가장 높기 때문이다. 당분간 로맨스 장르에 집중할 계획이다. ‘톤 비트윈 알파(Torn Between Alpahs)’, ‘억만장자의 대리모(The Billionaire’s Surrogate)’ 같은 작품은 한 해에 각각 5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 히트 콘텐트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유료 결제수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2019년 매출은 22억원 정도였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220억원으로 10배 정도 상승했다. 래디쉬가 직접 제작한 오리지널 웹소설은 어느덧 70여 작품을 넘어섰다. 래디쉬 앱 누적 다운로드 건수는 400만을 넘어섰고, 월간 활성 이용자수(MAU)는 100만명이나 된다.

이 대표가 집중하고 있는 다음 단계는 웹소설을 웹툰이나 드라마, 영화 등으로 확장하는 것이다. 또한 웹소설뿐만 아니라 오디오북도 론칭할 계획이다. 그는 “자세히 밝히지는 못하지만 올해 다양한 대형 프로젝트를 선보일 것”이라며 “래디쉬에서 한국의 콘텐트도 볼 수 있을 것”이라며 웃었다.

이승윤 대표는 레드오션이라고 평가받는 틈새 시장에 도전해 혁신을 했다. 그게 래디쉬의 성공 이유다. “래디쉬는 데이터를 분석해서 세상에서 가장 빠르게 히트 IP를 만드는 플랫폼으로 성장할 것이다. 스토리를 근간으로 하는 소설 콘텐트가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고 자신했다.


최영진 기자 choi.yo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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