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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뜨거운 LH, 해체가 정답일까?

3기 신도시 투기 정황이 의심되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이 20명으로 밝혀졌어요. 이에 LH는 합병 10여년 만에 다시 ‘해체’ 수준에 개혁 요구에 직면했어요. 하지만 전문가들은 LH 개혁은 국민 공공주택 공급 기능을 고려해 차분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입을 모아요. 3기 신도시 진행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기 때문이에요.

 

대전 서구 한국토지주택공사 대전충남지역본부 건물 앞에 ‘공직자 부동산투기 의혹, 성역 없이 전면 수사하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우리 LH 전 임직원은 어떠한 부패행위라도 단호히 배격하고 청렴한 조직문화 정착에 앞장선다.” LH의 ‘부패 추방 및 청렴실천을 위한 우리의 결의’ 가운데 한 대목이다. LH의 결의가 무색해진 정부 합동조사단의 1차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3기 신도시 투기 정황이 의심되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이 20명으로 밝혀졌다.

 

이에 LH는 합병 10여년 만에 다시 ‘해체’ 수준에 개혁 요구에 직면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LH 개혁은 국민 공공주택 공급 기능을 고려해 차분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3기 신도시 진행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해체도, 주공·토공으로 회귀도 정답 아냐”


공무원들의 투기 의혹은 어제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2002년 한국토지공사(토공) 직원 18명이 용인 죽전지구 토지 90건을 70억원에 사들여 매도해 거액의 이익을 챙겼다.

 

2003년 참여정부 때는 2기 신도시 조성 당시 공무원들의 투기와 비리가 끊이지 않자 검찰은 2005년 합동수사본부를 가동해 공무원 27명이 포함된 투기사범을 적발했지만 제대로 된 처벌은 없었다. 2006년에는 토공 직원 9명이 파주 교하신도시 내 아파트 분양권 47개를 무더기로 사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해당 직원들은 감봉·견책 등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

2009년 한국토지공사와 대한주택공사가 합병된 후에도 크고 작은 비리 의혹이 있었지만, LH가 여태껏 자발적으로 직원 비리에 대해 검경 수사를 의뢰한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가깝게 2018년 LH 직원이 고양 삼송·원흥지구 개발 도면을 유출했지만, LH는 고작 경고 및 주의 처분만 줬다.

이런 방만 경영은 통합 당시 첫 단추를 잘못 끼웠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다. 박진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구조조정 없는 통합으로 조직이 비대해졌고, 감시·감독 등 통제가 어려워진 측면이 있다”고 말한다. 박 교수는 1998년 주공·토공 통합 논의가 처음 나왔을 당시 정부 기획예산처에서 통합 추진 업무를 맡았던 담당자였다.

주공·토공의 기능을 줄이는 방안이 담긴 통합 법안은 2001년 김대중 정부에서 국무회의까지 통과했다. 그러나 2002 월드컵, 선거 등 굵직한 이슈에 묻혔고 국회도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다.

노무현 정부에서도 추진됐으나 국회에서 이견이 계속되자 2003년 법안을 철회하기에 이른다. 그러다 2009년 이명박 정부 들어 공기업 선진화 일환으로 구조조정 없는 통합이 이루면서 오늘날 직원 약 9500명, 자산 184조원, 부채 131조원에 이르는 비대한 공룡이 됐다.

LH가 국민적 공분을 사면서 당초 조직이 공중분해 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3월 11일 “LH의 신뢰회복이 더 이상 불가능하다. 해체적 수준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날을 세웠다. 하지만 18일 국회에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하는 일이 LH 혁신에 절대 중요한 부분이다. 그런 차원에서 ‘해체 수준의 환골탈태를 가하겠다’는 표현을 한 것”이라고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전문가들도 감정적인 대응은 불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여론을 의식해 섣불리 조직을 마구잡이로 쪼개면 결국에는 국민이 피해 보는 상황이 닥칠 것”이라고 말한다. 신도시 건설 이외에 해외 개발, 경제자유구역 사업 등 LH가 진행하고 있는 사업을 총괄적으로 분석해 기능을 축소하거나 분리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일각에서는 주공·토공으로 분리하는 등 통합 이전 수준으로 되돌리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에 박진 KDI 교수는 “LH 해체가 답도 아니고 과거의 주공·토공처럼 분리해서도 안 된다”라고 잘라 말한다. 구조조정을 통해 기능을 줄여야 한다는 의미다. 박 교수는 “90년대, 2000년대 주공·토공이 그랬던 것처럼 분리된 기관은 생존을 위해 각자의 몸집을 불리려 할 것이다. 결국 기관의 비대화만 부추길 뿐이다”라고 재분리 방안을 경계했다.

LH의 권한과 조직을 축소한다 해도 이번 사태와 같은 일이 되풀이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때문에 강력한 시스템 정비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얘기한다. 최원철 한양대 부동산융합대학원 교수는 “입직하기 전 법적인 효력이 있는 투기 방지 각서를 받아야 한다. 이를 어길 시 재산 몰수 조항도 넣어야 한다”고 말한다. 공무원이 되는 순간, 투기하려는 생각 자체를 버려야 한다는 의미다.

김헌동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부동산건설개혁본부장은 상시 모니터링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김 본부장은 “토지, 주택뿐 아니라 금융·증권 등 내부 정보를 통해 특권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에 있는 공직자들은 재산 보유 현황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재산 변동 사항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감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에 더해 그간의 비리에도 솜방망이 처벌을 해왔던 LH의 내부 사정에 비춰 “국세청·금융위·검찰·경찰·감사원 등에서 상시 공직자 모니터링이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실수요 대기자 생각한다면 3기 신도시 추진”


한편 공공주도 주택 공급 사업에 대한 회의감이 커지면서 3기 신도시 개발 여부를 두고 다양한 의견이 표출되고 있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대표 직무대행이 “3기 신도시 취소는 없다. 주택 공급은 차질 없이 진행하겠다”고 밝혔지만 몇몇 단체들은 사업 중단과 계획 철회까지 주장하고 나서는 상황이다.

 

김헌동 본부장도 이에 동의한다. 그는 “투기로 집값이 폭등한 상황에서 3기 신도시를 계속 추진하겠다는 것은 투기 세력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이며 도둑질을 덮어주겠다는 얘기나 다름없다”고 비판한다.

예정대로 진행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최 교수는 “3기 신도시는 서울 접근성이 좋은 위치에 있어 많은 실수요자가 기다리고 있다. 예정대로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 낫다”고 말한다. 다만 잡음을 줄이기 위해 투기자들을 최대한 배제한 채 원주민 위주로 토지 보상을 진행하고, 7월에 예정된 사전청약에도 철저하게 실수요자만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 교수 역시 “LH가 밉다고 정책을 철회하거나 추진 주체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은 올바른 대응이 아니다”라며 “민간과 지방정부에 이관할 수 있는 영역은 과감히 넘기는 방법으로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인회 기자 heo.inho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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