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청소기와 물류 로봇 등 로봇 완제품 생산에 힘 쏟던 기업이 자율주행 솔루션 기업으로 변신했어요. 사람의 도움 없이 스스로 움직이는 모든 이동장비가 그 대상이에요. 지난 1월 19일 자체 개발한 자율주행 물류 로봇이 국제표준 인증을 받은 유진로봇의 이야기예요.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로 ‘언택트’가 주목받으면서 자율주행이 모바일의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비단 자동차뿐만 아니라 제조, 물류, 배달, 서비스 등 다양한 환경에서 안정적이고 지능적인 주행기술이 요구되고 있죠. 특히 안전 관련 문제는 자율주행 기술이 보편화되기까지 핵심 쟁점이 될 겁니다.”
지난 1월 19일 유진로봇은 자체 개발한 자율주행 물류 로봇 ‘고카트(GoCart)’가 모바일 로봇에 대한 국제표준 ‘ISO 13482’ 인증을 받았다고 밝혔다. ISO 13482는 지난 2014년 국제표준화기구(ISO)에서 제정한 개인용 서비스로봇에 대한 국제표준이다. 이동형 도우미 로봇, 신체 보조 로봇, 탑승용 로봇을 인증하는 내용으로, 국내에서 이 인증을 받은 곳은 지금까지 유진로봇이 유일하다.
고카트는 유진로봇이 개발해 생산하는 모바일 플랫폼, 즉 물류 로봇이다. 유진로봇은 일찍이 지난 2005년 국내 최초 로봇청소기로 유명한 ‘아이클레보’를 선보인 로봇 전문기업이다. 로봇청소기가 스스로 지도를 그리며(mapping) 움직이는 것처럼, 고카트 역시 자율주행 능력이 핵심 기능이다.
고카트는 유진로봇이 자체 개발한 3D 라이다(LiDAR) 센서와 스테레오 카메라, 초음파 센서가 탑재돼 공간을 분석하고, 사람과 장애물을 인식해 충돌을 피하고 우회한다. 사물인터넷(IoT) 기술과 접목해 스마트빌딩의 내부 시스템과도 연동이 가능하다.
고카트의 ISO 인증은 단순히 모바일 플랫폼의 기능성만 인정받은 게 아니다. 아무리 뛰어난 자율주행 로봇이라도 무게가 수십에서 수백 킬로그램에 달하기 때문에 사고의 위험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복잡하고 좁은 공간에서 사람과 함께 작업하는 경우에는 센서 고장, 소프트웨어 오류, 모터 고장 같은 사고가 발생하기 쉽고, 이는 자칫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모바일 로봇에 대한 ISO 인증은 로봇의 기능뿐 아니라 안정성에 더 큰 초점을 맞춘 국제표준이다. 여러 오류와 고장 등 어떤 상황에서도 사고가 발생하지 않고 안전이 보장된다는 뜻이다.
물류 로봇, ISO 인증으로 기술력 검증
고카트와 비슷한 형태와 기능을 가진 물류 로봇은 이미 국내에도 많지만 ISO 인증을 받은 곳은 유진로봇이 유일하다. 이 같은 성과를 이끌어낸 이는 박성주 대표이사다. 박 대표는 지난 2000년 유진로봇에 합류한 이후 연구소장과 CTO 등을 거쳐 올해 대표이사에 취임했다.
박 대표는 대표이사 취임 전부터 유진로봇의 비즈니스 체질을 완전히 바꾸는 데 주력해왔다. 로봇청소기를 비롯한 완제품 사업 모델에서 벗어나 자율주행 솔루션 사업으로 전환을 선포했고, 지난 2년간 기술개발과 고객 발굴에 힘썼다. 박 대표는 “새롭게 시작한 자율주행솔루션 사업을 성공적인 모델로 만들어 회사를 지속성장 궤도에 올리는 데 올인하겠다”고 말했다.
“유진로봇은 창립 이래 최근까지 청소로봇·물류 로봇 같은 완제품을 만드는 데 집중해왔습니다. 문제는 청소와 물류가 전혀 다른 산업 기반이라는 거예요. 회사 내부에 완전히 다른 두 개 조직이 필요했다는 뜻이죠. 마케팅과 영업은 물론 연구소 조직까지 분리돼 있었습니다. 대기업부터 중소·중견기업들까지 너무 완제품에 치중하고 있어요. 중소·중견기업의 경우 보유한 핵심기술을 중심으로 솔루션 사업을 하는 것이 더 경쟁력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박 대표는 이를 자동차 산업에 비유했다. 자율주행 기술을 가졌다고 해서 자동차 제조업에 뛰어드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설명이다. 핵심기술 하나만 믿고 완제품 시장에 뛰어든다면 무모한 도전이 되기 쉽다는 지적이다.
고카트의 ISO 인증은 유진로봇의 자율주행 기술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했다는 말과 같다. 주변 환경을 인식하는 센서, 로봇이 스스로 자기 위치를 인식하는 슬램(SLAM) 기술, 이동을 위한 구동기와 제어기, 안전을 담당하는 안전제어기 등이 집약된 제품이 바로 고카트다. 고카트를 기반으로 식음료 매장, 병원, 공장, 배달 등 고객이 원하는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다. 박 대표가 고카트를 ‘반제품’이라 부르는 이유다.
“전 세계적으로 바퀴 달린 제품은 대부분 자율주행 머신으로 진화하고 있어요. 유진로봇은 고카트 같은 자체 제품도 생산하지만, 자율주행을 가능하게 만드는 솔루션 개발 및 판매 업체로 변신하고 있습니다.”
기존 제품에 솔루션 장착해 자율주행 변신
유진로봇의 자율주행 솔루션은 AMS(Autonomous Mobility Solution)라는 개념으로 구체화됐다. 센서와 구동, 제어 등 자율주행에 필요한 맞춤형 기술을 통합해 고객이 원하는 솔루션으로 제공하는 방식이다. 박 대표는 이를 로보타이제이션(robotization)이라 정의했다. 고객이 보유한 기존 모바일 기기에 유진로봇의 자율주행 솔루션을 맞춤형으로 제공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빌딩청소용 로봇, 작업 현장에서 쓰이는 지게차, 물류용 카트, 대형마트 카트 등에 유진로봇의 AMS를 장착하면 자율주행 모바일 장비로 변신하게 된다. 박 대표는 올해 상반기 중 컨트롤러, 센서, 로봇 플랫폼 등 자율주행 솔루션과 관련한 새 제품을 10종 이상 선보일 계획이다. 자율주행 기기들과 소프트웨어가 하나로 묶인 패키지 상품인 컨트롤박스도 양산 준비를 마쳤다.
“유진의 자율주행 솔루션을 필요로 하는 전 세계 기업들을 찾아 제품 공급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이미 미국과 유럽의 현지 마케터들과 협력체제를 구축했고, 상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영업에 나설 계획입니다.”
고카트의 ISO 인증은 선진 시장 공략에 날개를 달아준 격이다. 한국과 중국 등에서는 아직까지 ISO 인증 없이도 물류 로봇을 판매할 수 있다. 하지만 유럽,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해당 인증 없이는 판매가 불가능하다. 박 대표는 “ISO 인증이 사용자의 안전을 담보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선진국의 수입 장벽으로 작용하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이번에 획득한 인증을 통해 선진 시장 공략의 문을 열었다는 의미가 더욱 크다는 속내다.
자율주행 솔루션 개발을 위한 핵심기술 확보에도 힘을 쏟고 있다. 지난해 7월 획득한 3차원(3D) 라이다(LiDar) 센서 특허가 대표적이다. 라이다는 레이저 펄스를 발사해, 그 빛이 물체에 반사돼 돌아오는 시간을 측정해 거리와 주변 모습을 정밀하게 그려내는 장치다.
특히 라이다 센서는 거리뿐 아니라 속도와 방향, 온도, 주변 대기물질 분석과 농도까치 측정할 수 있어 차세대 자율주행 기술의 핵심으로 꼽힌다. 최근에는 2D에 이어 3D 라이다 센서가 개발되면서 활용도가 더욱 높아졌다.
라이다 센서의 유일한 단점으로는 높은 가격이 꼽힌다. 시중에 판매되는 3D 라이다는 로봇 자체 가격보다 비싼 경우도 많다. 이에 비해 유진로봇이 자체 개발한 3D 라이다 센서는 기존 2D 센서보다 가격은 더 싸면서도 3D 기능을 완벽하게 수행하면서 업계의 주목을 끌고 있다.
3D 센서를 장착한 자율주행 솔루션을 원하는 업체의 선택지가 유진로봇의 기술력 덕에 한층 넓어진 셈이다. 박 대표는 “2차원 환경 인식과 3차원 인식의 차이는 매우 크다”며 “마치 한쪽 눈을 뜬 것과 두 눈을 모두 뜬 것의 차이”라고 설명했다.
“3D 라이다 센서 분야에서 전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확보했다고 자부합니다. 더욱이 유진의 라이다는 오직 자율주행에 특화된 센서입니다. 자율주행에 최적이면서도 가격은 일반 2D 센서보다 저렴하죠. 지난해 말부터 양산을 시작했는데, 센서 자체 판매뿐 아니라 자율주행 솔루션 사업의 경쟁력을 확보했다는 데 큰 의의가 있습니다.”
자율주행 솔루션이 산업 혁신의 플랫폼
한양대에서 전기공학을, 미국 오클라호마주립대학교에서 제어통신 석사를 마친 박 대표는 당시 대우중공업 모터제어기 개발팀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미국 모토로라와 이택(ETEC) 등에서 일하던 박 대표를 찾아온 이가 유진로봇 창업주인 신경철 현 명예회장이다.
“한국에서 함께 로봇 사업을 하자면서 두 번이나 집에 찾아오셨어요. 그때만 해도 로봇은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해 전혀 관심이 없었죠. 회장님의 설득으로 한국으로 가 직접 일주일 정도 유진로봇에 머물렀어요. 그때 맺은 로봇과의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졌습니다.”
박 대표는 당시를 돌아보며 “로봇에 제대로 꽂혔다”고 회상했다. 2004년 최초의 완제품인 가정용 로봇 ‘아이로비’를 내놨다. 음성인식 기능을 갖추고 스케줄과 날씨 등을 알려주는 로봇이었다. 하지만 그 즈음 아이폰이 나왔다. 아이로비가 졸지에 바퀴 달린 아이폰이 된 꼴이었다.
박 대표는 로봇 사업에 도전하기 위해선 적어도 두 가지가 필요하다는 걸 아이로비 개발을 통해 깨달았다. 제품 자체의 완성도와 다른 산업과의 융합이다. 당시 유진로봇은 아이로비를 개발하며 콘텐트, 플레이어, 교육업체와의 협업 등을 모두 직접 해냈다. 실제로 전국 유치원 2500여 곳에서 아이로비를 도입하는 성과도 냈다.
하지만 정부와의 협력이나 현장 교사 교육까지 중소기업 혼자 감당하기에는 벅찼다. 2005년 국내에 처음 출시된 로봇청소기 아이클레보도 요즘처럼 필수 가전제품으로 자리 잡기까지 1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 작은 기업의 힘만으로 사회 분위기 쇄신에 나서는 게 역부족이라는 걸 실감한 박 대표는 이때부터 “우리가 정말 잘하는 걸 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오랜 기간 정부와 업계가 로봇산업에 많은 투자를 했습니다. 하지만 가시적인 성과가 많지 않다는 평가를 받는 게 사실이죠. 로봇의 완성도 자체가 떨어지고, 다른 산업과 융합도 잘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달라지고 있어요. 로봇을 개발해 양산하기까지 완성도 높은 제품들이 나오고 있고, 다른 산업군에서도 로봇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모든 산업 분야에서 로봇 제품이 출현하게 될 겁니다.”
제조공장에서 많이 활용되는 AGV(Automated Guided Vehicles, 무인운반차)는 유진로봇이 역점을 두고 있는 로보타이제이션의 좋은 예다. AGV는 이름 그대로 정해진 레일 위에서만 움직이는 무인운반차량이다. 최근 한 AGV 제조업체는 유진로봇의 자율주행 컨트롤러를 탑재해 자율주행이 가능한 로봇으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 레일, 즉 정해진 경로에서 벗어나 로봇과 장비가 직접 통신하면서 필요한 원료를 채우는 완전 자율주행 로봇이다.
솔루션 하나만으로 기존 산업 자체에 커다란 혁신을 불러온 사례다. 박 대표는 “바퀴달린 장비를 사람의 힘이나 도움 없이 스스로 이동하게 만드는 게 유진의 비즈니스 목표”라며 “유진의 자율주행 솔루션이 이를 가능하게 만들 최적의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
사진 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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