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형제들의 배달의민족(이하 배민)은 디자인·문화 기업으로 잘 알려졌지만, 그에 못지 않게 탄탄한 기술력을 갖춘 기업으로도 유명해요. 이곳 송재하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우아한형제들이 국내 유니콘에 머물지 않고, 글로벌 테크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한 ‘큰 그림’을 그리며 개발 역량 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어요.
“기술적으로 난도가 매우 높은 시장입니다. 배달 시장을 보면 메뉴는 사실상 무한히 많아지고 있지만, 메뉴·매장별로 조리시간이 다 다르죠. 라이더들의 출발지와 도착지 모두 다릅니다. 일반 상품은 퀵서비스나 택배로 받으면 그만이지만, 음식은 늦게 도착할수록 가치가 0에 가까워져요. 제가 종종 이 업을 조금 과장해서 공중에서 날아오는 미사일을 요격하는 스타워즈프로젝트에 비유하는 이유입니다.”
지난 7월 13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우아한형제들 본사에서 만난 송재하(48) 우아한형제들 CTO는 음식 배달 서비스의 어려움을 강조했다. 그는 “배달 시장은 무척 경쟁이 치열한 곳”이라며 “혹여 배달 불가 메세지가 뜨거나 라이더 수급이 어려워 배달 시간이 조금이라도 지체되면 곧바로 경쟁 애플리케이션을 켜고 만다”고 덧붙였다.
이 업계의 교통정리는 끝난 게임이라고 생각했는데, 그의 얘기를 들어보니 아닌듯하다. 송 CTO는 엔씨소프트와 SK플래닛, 야놀자 CTO를 거친 대표적 빅데이터 전문가로, 지난해 4월 우아한형제들에 합류했다. 야놀자에서 보안과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등 IT 기술 전반을 책임졌고, 연구개발(R&D)과 품질보증(QA) 등 업무를 주도하는 등 플랫폼 사업에 일가견이 있다. 이런 그가 은연중 위기감을 내비친 까닭이 있다.
스타트업은 무한한 상상력으로 철옹성 같은 기존 시장의 틀을 깨곤 한다. 특히 요즘 배달 시장이 그렇다. 실제 국내 한 퀵커머스 업체가 ‘단건 배달을 통한 빠른 배달’을 내걸고 승부수를 던진 후 2019년 2%대에 머물렀던 시장점유율은 올해 13%를 넘어섰다. 그뿐만 아니라 지난 5월 퀵커머스 (소량 생필품을 1시간 내 배송) 서비스 시범 운영을 앞두고 자본금을 3배 넘게 확충하며 공격에 나서고 있다.
물론 이미 공고한 1위 자리를 꿰찬 우아한형제들의 앱 배달의민족(이하 배민)의 입지는 굳건하다. 그렇다고 경계를 늦출 수는 없다. 끊임없이 경쟁자가 등장하는 하드코어(?)한 시장이라서다. 그럼에도 배달 시장은 규모가 크고, 식료품부터 이커머스까지 확장할 수 있는 매력적인 분야다. 물론 참신한 방법, 특히 기술의 힘이 뒷받침돼야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일까. 우아한형제들도 수년 전부터 ‘사람’과 ‘시스템’ 두 축을 토대로 대비해왔다. 배민의 급격한 성장세와 대규모 채용이 맞물려 2016년 말 400명에 못 미치던 직원 수는 올해 1300명대로 불어났다. 이중 개발(기획 포함) 직군의 인력 비중은 50%가 넘는다.
10개월짜리 개발 실무 교육과정인 ‘우아한테크코스’를 통해서도 개발자를 대거 영입하고 있다. 2016년 일찌감치 시스템을 아마존웹서비스(AWS) 클라우드로 마이그레이션(이전)을 시작해 지난해 말 마무리했다. 클라우드 도입 결정 5년 만에 국내에서 결제 시스템까지 클라우드화한 국내 첫 ‘클라우드 네이티브’ 전환 사례다.
단순히 1위를 지키려고 벌인 일 같지는 않다. 몸값 비싼 인력을 대거 늘리고, 시스템 체계를 완전히 바꾸는 것은 막대한 투자와 녹록지 않은 성장통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 기술적 체력을 기르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더 큰 그림을 그려야 시도할 수 있는 일이다. 배민의 안정적 운영부터 인공지능(AI)·로봇기술·신규 프로덕트 등 미래 사업 개발에서도 중추적인 역할을 맡은 송 CTO를 통해 그 ‘큰 그림’을 엿봤다.
‘스타워즈 프로젝트’라는 말이 흥미롭다.
미사일 얘기를 꺼냈지만, 사실 날아가는 총알을 총알로 잡는 수준이다.(웃음) 실제 상황도 그렇다. 사람들은 허기가 지면 배달 앱을 켠다. 허기진 상태이기 때문에 소비자는 1~2분 차이를 상당히 민감하게 받아들인다. 주문받은 식당은 모두 메뉴와 조리 숙련도가 다르다. 조리가 끝나면 곳곳에 흩어진 라이더를 수배해야 한다.
어떤 라이더가 최대한 빨리 배달할 수 있을까. 자… 탄도미사일의 경우 요격 주체와 상대 딱 두 개지만, 배달 시장은 주문자, 매장, 라이더 등 주체가 셋이나 된다. 우리가 배달 정확도와 속도를 높이기 위해 AI, 빅데이터, 클라우드, 로봇 등 활용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기술을 총동원하는 이유다.
최근 음식 배달에 로봇까지 동원됐다.
그렇다. 이달부터 서울 영등포구 한 아파트에서 배민으로 주문한 음식을 자율주행 로봇 ‘딜리타워’가 집 앞까지 배달한다. 배민 라이더가 아파트 1층에 도착해 음식을 배달 로봇에 담고, 주문자의 전화번호(안심번호)를 입력하면 딜리가 각 세대 현관 앞까지 배송한다. 단순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결코 간단하지 않은 일이다.
배민은 딜리를 통제되지 않은 환경인 거리로 끌어낼 계획이다. 일반도로를 염두에 두고 있다. 로봇을 도로에서 운행하면 현행법 위반이다. 이에 정보통신기술(ICT) 규제샌드박스실증특례 승인을 받아 경기 수원시 광교 앨리웨이에서 테스트 중이다. 라이더 일자리를 뺏으려는 게 아니라 장기적으로 배송 시스템을 자동화해 플랫폼 노동자를 돕겠다는 것이다.
플랫폼 노동자를 어떻게 돕나.
시간이 조금 더 걸리겠지만, 라이더들이 딜리를 여러 대 소유해 배달 수익의 일부를 가져가는 구조를 생각할 수 있다. 지금도 실내 배송은 로봇에 맡겨 노동 효율을 향상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다른 플랫폼과도 연계해 물류센터에서의 효율을 높일 수 있다. 플랫폼 노동자들이 생태계에서 소외되지 않고, 노동 집약 대신 기술·자본 집약적인 수익을 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기술적으로 풀어가야 할 이슈는 뭔가.
‘무인’이라는 키워드만 생각해보자. 일반적으로 딜리의 경우 무인자동차보다 쉬울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인도와 실내를 오가는 무인로봇 개발이 훨씬 힘들다. 자동차 도로의 경우 꽤 잘 짜인 규칙성이 존재하고, 자동차 운전자들이 이를 따르는 식이다. 인도에는 노인, 아이들, 반려동물, 각종 장애물 등이 있어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수시로 발생한다. 센서가 이를 순간적으로 인식해 능동적으로 판단하고 움직여야 한다. 중앙에서는 이런 로봇 수백, 수천 대를 동시에 통제해야 한다.
클라우드로 완전히 이동
그래서 클라우드 네이티브를 택한 건가.
급증하는 ‘트래픽 성장통’에 따른 필연적 선택이다. ‘클라우드 마이그레이션’은 내가 배민에 합류하기 훨씬 전부터 추진된 프로젝트다. 하루 주문 수 5만 건 이하였던 2015년만 해도 배민 서비스는 거대한 모놀리틱 아키텍처였다. 서비스와 배포가 별도로 진행돼도 ‘루비’라 불리는 데이터베이스(DB) 하나로 묶여 있었다. 리뷰에만 문제가 생겨도 전체 서비스에 장애가 발생했다.
이듬해 클라우드 기반의 마이크로서비스아키텍처(MSA)를 도입했다. 이른바 ‘탈루비 프로젝트’다. MSA는 시스템을 레고블록처럼 쪼개 조합한다. 예를 들어 앱에서 장애가 생겨도 이용자들이 최소한 음식점을 검색해 전화 주문이라도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MSA 도입 후 장애가 완전히 사라졌나.
몇 번의 대수술이 더 필요했다. MSA를 도입했지만, 클라우드로 완전한 이전을 결정하기까지는 스토리가 더 있다. 2016년 치킨을 7000원 할인해주는 선착순 이벤트를 진행했더니 트래픽이 평소보다 수백 배 늘었다. 이벤트가 며칠 계속되자 기술 부서 입장에서 악몽같은 상황을 맞이했다. 난리를 치른 경영진은 인터넷데이터센터(IDC)에서 AWS로 넘어가는 데 더욱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원래 한 달을 잡았는데, 하루 만에 이전을 완료했고 가게목록과 상세화면을 제공하는 서버를 한 번에 수십대나 증설해 트래픽을 소화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주문을 처리하는 서버가 죽어 이것도 클라우드로 끌어왔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지금은 거대한 ‘명령·조회 책임 분리(CQRS)’ 구조를 완성했다. 쉽게 말해 시스템의 상태를 변경하는 작업(명령)과 조회하는 사용자 서비스를 분리해버렸다. 자, 이제 대망의 결제 파트가 남았다.
결제도 클라우드로 옮겼다.
돈과 관련된 부분은 모든 사업자가 건드리기 어렵다고 여긴다. 또 전자금융거래법(이하 전금법) 통제 방식에 따라야 한다. 전금법이 클라우드화를 허용하긴 했어도 첫 번째 실험자가 되기 위해서는 ‘입증 책임’의 몫이 남는다. 클라우드상에서 금융결제 데이터의 접근 방식, 관리통제, 보안 등에 문제가 없는지를 설득해야 한다.
클라우드로 옮기는 이점은 분명하다. 전금법 아래에서는 IDC 환경에서 결제 시뮬레이션 환경을 꾸리는 건 거의 불가능하나 클라우드라면 자유롭게 테스트 할 수 있다. 어쨌거나 우리 기술진이 금융당국, AWS와 함께 신뢰를 쌓고, 검증한 덕분에 지난해 클라우드로 완전히 옮길 수 있었다. 핀테크 업계에서 기념비적 사건이라고 본다.
MSA를 아무나 할 수 있나.
그렇지 않다. 2019년 배민은 완전히 MSA로 전환하면서 치킨을 주문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일이 없어졌다. 하지만 다른 기업이 무턱대고 MSA와 클라우드 네이티브를 추진하면 비용이 10배 넘게 들 수 있다. 주문이 폭주하고, 그만큼 매출이 나는 ‘규모의 경제’를 실현했을 때 넘어가는 걸 추천한다.
CTO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나 말고도 회사에 비전공자 출신이 많다.(웃음) 성적에 맞춰 가다 보니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다. 재수도 고려했는데, 코드 개발이나 프로그래밍을 하더라도 인문학적 소양은 겸비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일단 학부 공부를 하면서 프로그래밍 동아리에 가입해 활동했다. 특히 개발 영역은 전공보다 실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대학 졸업 후 작은 회사에서 개발자로 일할 기 회를 얻었으나 독학의 한계를 느꼈다.
때마침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카네기멜런대학교와 함께 경력자 대상으로 공동 학위 코스를 열었다. 이곳에 지원해 소프트웨어를 제대로 배울 수 있었다. 많은 과제와 프로젝트로 힘겨웠지만, 소프트웨어 아키텍트들에게 선망의 대상인 카네기멜런대 데이비드 갈란·앤서니 라탄지 교수의 소프트웨어 아키텍처 과목에 밤을 새며 매진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도 맞닥뜨린 기술적 과제가 많지 않나.
그렇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 단연 플랫폼화다. 배민은 일체화된 구조에서 벗어나 MSA를 구축해 클라우드에 올리며 성장해왔다. 그런데 우아한형제들은 배민만 하는 게 아니다. 단건 배달 서비스인 ‘배민1’, 1시간 내 생필품을 배달하는 ‘B마트’, 맛집 음식을 택배로 배달하는 ‘전국 별미’, B2B 사업인 ‘배민상회’, 배달 대행 서비스 ‘배민 라이더스’, ‘만화경’이라는 콘텐트 비즈니스까지. 비즈니스는 계속 늘고 있다.
이 서비스들은 서로 다른 리소스와 시스템으로 이뤄져 있어 몇 년 후 안정되면 재구성해 같은 플랫폼 토대에 안착하게 해야 한다. 예를 들어 고층 빌딩을 5~6개 지을 때 기반구조와 저층부는 공유하고 나머지 층은 건물 특성에 맞춰 올리면 나중에 몇 개 동을 더 지어도 빠르고 정확하게 지을 수 있지 않겠나.
다른 과제는 무엇인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딜러버리히어로(DH)와의 시스템 연계다. 올해 3월 DH의 합병이 최종적으로 타결되면서 글로벌 지역 배달 시스템과의 연계를 염두에 두고 있다. 더불어 한 달에 일억 번이 아니라 십억 번의 주문을 견뎌내는 체력을 기르고, 대단위 이커머스 사업자로 발돋움할 때 필요한 기술적 토대를 지금부터 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흔히 우리를 배달 플랫폼 회사로만 보는 경향이 있다. 우아한형제들은 단언컨대 기술 중심의 글로벌 테크 기업이다. 플랫폼 회사가 첫 번째로 겪는 문제를 타파할 방법을 찾고, 현실에 적용해 장벽을 넘는 선례를 만들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개발자가 우리와 함께해 더 큰 교류와 융합이 이뤄져야 한다. 더불어 CTO로서 이용자, 사업주, 배달 라이더 모두 만족할 방법을 찾아내겠다.
김영문 기자 ymk080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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