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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bes Korea

이 남자의 손에 들어가면 페트병도 첨단 고기능 섬유가 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재활용 쓰레기 중 하나는 바로 페트병이에요. 하지만 가정에서 분리 배출한 폐페트병의 실제 재활용률은 20~30%에 불과해요. 페트병을 활용해 고기능 폴리에스터 단섬유를 만드는 건백은 100% 국내산 페트병만 고집해요.

 

 

페트병 너머로 바라본 박경택 건백 대표. 건백은 국내 리사이클 폴리에스터 단섬유 업계를 대표하는 강소기업이다.

 

특정 산업 자체가 ‘사양화’됐다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산업별 발전 사이클에 따라 업종의 흥망성쇠는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사양화라는 낙인을 피하는 기업도 있다.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삼아 승승장구하는 기업이 등장하곤 한다. 중국의 물량 공세로 고전하던 국내 LCD 디스플레이 산업이 OLED로 방향을 틀어 탄탄히 자리를 굳히는가 하면, LNG선 같은 고부가가치 선박으로 세계 1등 타이틀을 탈환한 조선업 등이 대표적이다.

대표적인 사양 업종으로 평가받는 섬유산업은 어떨까? 중국과 동남아시아의 저가 공세에 밀려 한국 섬유산업이 내리막길에 들어선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노동집약적 산업의 대표 격이었던 섬유산업을 기술집약적 고부가가치 소재산업으로 바꿔놓은 강소기업들도 있다.

 

박경택 대표가 이끄는 건백이 대표적이다. 경북 경산에 자리한 건백은 창업 이후 40년이 넘도록 리사이클 섬유라는 한 우물을 파온 기업이다. 리사이클 섬유 소재는 친환경과 ESG 경영이 화두로 떠오른 최근 트렌드와도 맞아떨어진다.

지난 1975년 창업한 건백은 설립 이래 폐페트(PET)병을 활용한 라사이클 섬유 소재라는 한 우물을 파왔다. 현재 건백은 국내 리사이클 섬유 업계에서 최고의 기술력을 확보한 기업으로 꼽힌다. 박 대표의 부친인 고(故) 박종계 회장은 일찍이 창업 때부터 리사이클 섬유의 가능성에 주목했다.

“대기업이 폴리에스터 원사를 생산하면 부산물이 나오는데, 1970년대만 하더라도 국내에선 모두 매립 처리했습니다. 재활용 기술이 없었기 때문이죠. 당시 아버님은 일본에서 폴리에스터 원사 부산물을 활용해 리사이클 섬유를 만든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연구·개발(R&D)에 나섰어요. 결국 폴리에스터 장섬유를 개발하는 데 성공하셨죠. 현재 건백은 국내에서 가장 가늘고 품질이 우수한 리사이클 섬유 소재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고효율 여과로 100% 국내산 재활용


건백이 생산하는 리사이클 섬유의 정식 명칭은 ‘리사이클 폴리에스터 단섬유’다. 화학섬유는 크게 장섬유와 단섬유로 나뉘는데, 길게 뽑아놓은 장섬유를 최종 용도에 알맞게 잘라놓은 것이 단섬유다. 박 대표는 “기술적으로 장섬유가 더 완성도 있는 제품이지만, 시장 규모나 용도 면에선 단섬유가 훨씬 크고 다양하다”며 “목화솜으로 이해하면 쉽다”고 설명했다. 건백도 초기엔 장섬유를 생산하다가 1980년대 들어 단섬유로 업종 변경에 나섰다.

건백은 특히 100% 국내산 폐페트병을 활용하면서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장섬유 위주의 대기업들은 원료인 폐페트병을 거의 대부분 수입에 의존한다. 실을 가늘고 길게 뽑아야 하는 만큼 순도가 낮은 제품, 즉 오염이 덜한 원료가 필수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용기 라벨에 접착제를 쓰지 않고, 분리배출 시에도 청결을 중시하는 일본산 폐페트병이 인기다.

반면 건백은 100% 국내산 재료를 활용하기 때문에 생산공정에서 강점을 가질 수밖에 없다. 국내산 폐페트병은 순도가 낮은 원료지만 자체 R&D 끝에 개발한 고효율 여과 과정을 거쳐 무리 없이 원사를 뽑아낼 수 있게 됐다. 박 대표는 “지난해 12월 25일부터 투명 페트병 사용과 분리배출이 의무화돼서 그나마 나아졌다”며 “아파트가 많은 한국의 특성 덕에 폐페트병 확보에 도움을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올 초 선보인 리사이클 폴리에스터 섬유 소재 ‘에코스타’와 ‘에코럭스’는 건백의 경쟁력을 한 단계 끌어올린 제품으로 평가받는다. 두 제품 모두 100% 국내산 폐페트병을 활용한 친환경 섬유 소재로, 페트병을 세척한 뒤 칩(Chip) 형태로 만들지 않고, 자체 기술인 고효율 여과 과정을 거쳐 바로 섬유로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에코스타와 에코럭스는 모두 머리카락 50분의 1 굵기로 의류·침구용은 물론, 산업용, 건축용, 자동차용, 특수 항균 기능성 제품까지 다양한 상품에 적용할 수 있는 첨단 신소재다. 특히 오리털과 거위털을 대체하는 친환경 비건 충전재로 업계의 관심이 높다.

“친환경이 대세로 떠오르면서 동물학대와 동물윤리 논란에서 자유로운 비건 충전재를 찾는 기업이 갈수록 늘고 있습니다. 당장 2025년부터 리사이클 소재만 쓰겠다는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들이 나오고 있고, 이케아 같은 업체들도 리사이클 소재 비중을 크게 늘린다고 선언했어요. 에코스타도 100년이 넘은 영국 침구회사인 존코튼그룹에 이미 지난해부터 납품하기 시작했죠. 오리털이불 충전재 대용이죠.”

비건 충전재는 그 자체로 이미 업계에서 신소재로 각광받고 있다. 겨울철 패딩에 들어가는 충전재는 오리털·거위털 같은 천연 소재와 비교해도 보온 능력(단열성)을 90% 넘게 따라잡았다. 기능적으로는 오히려 훨씬 뛰어난 소재다. 위생 면에서 비교가 어렵고 오리털 의류의 고질병인 털 빠짐 현상도 없다. 무게는 훨씬 가벼우면서도 더 탄탄한 볼륨감을 유지할 수 있다. 무엇보다 가격경쟁력에선 비교 자체가 불가하다. 리사이클 섬유의 가격은 천연소재의 30~50분의 1에 불과하다.


국제 인증으로 검증받은 신소재


올해 5월에 선보인 에코럭스는 활용성을 더욱 높인 고부가가치 기능성 섬유다. 건백에서 개발한 삼엽·사엽 이형사와 중공사를 혼합해 만든 독창적인 제품이다. 삼엽·사엽 이형사는 방파제에 설치된 테트라포드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다리 3~4개가 서로 얽힌 이형사와 가운데 구멍이 뚫린 형태의 중공사를 혼합해 흡음성, 경량성, 단열성을 모두 높인 고부가가치 제품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박 대표는 특히 에코럭스의 뛰어난 흡음 기능에 기대가 크다고 밝혔다.

“최근 자동차 산업이 급변기를 맞고 있어요. 유럽에선 2035년부터 내연기관 차량 판매가 아예 금지됩니다. 전기차 등 친환경 자동차만 팔 수 있는 거죠. 에코럭스는 이러한 친환경 차량을 타깃팅한 소재입니다. 섬유 사이사이에 공극률을 최대한 높여 공기층 함유량을 극대화했는데. 그만큼 소재 자체가 가볍고 흡음 능력이 뛰어납니다. 차량의 언더커버, 휠가드, 대시보드, 각종 바닥재 등에 두루 쓰일 수 있죠. 최근 출시되는 친환경 자동차를 보면 리사이클 소재를 많이 쓰고 있어요. 명분과 기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는 소재가 바로 에코럭스입니다.”

친환경 리사이클 섬유 소재 분야에서 건백이 쌓아온 경쟁력은 오롯이 R&D의 힘이다. 박 대표는 지난 2018년 설비 투자에만 80억원을 들여 공장을 신축 이전하는 결단을 내렸다. 토지와 건축물을 합해 200억원 넘는 돈을 과감히 투자했다. 품질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중국 등 경쟁자의 도전을 더는 뿌리치기 어렵고, 생존 자체가 어려워졌음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노력은 세계적인 기관과 기업의 인증과 납품 실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에코스타와 에코럭스는 지난 8월 대구경북 디자인센터를 통해 세계적 소재기업인 머티리얼 커넥션(MCX)의 디자인 소재 은행에 친환경 리사이클 PET 소재로 공식 등재되는 성과를 올렸다. MCX는 미국 뉴욕에 본사를 둔 세계 최대 소재 은행이다. 신소재를 찾으려는 글로벌 패션 기업들이 유료 가입해 활용하는 곳으로, 리사이클 폴리에스터 단섬유가 MCX에 등재된 건 건백이 국내 최초다.

GRS(Global Recycled Standard, 국제 재활용 섬유 표준) 인증도 건백이 내세우는 경쟁력이다. 네덜란드의 민간 인증 기관인 컨트롤 유니온(CONTROL UNION)이 주관하는 GRS 인증은 단순히 리사이클 생산물 차원을 넘어 섬유 및 의류산업의 생산 체계를 통한 리사이클 원료의 추적성을 평가한다.

 

재료 수급부터 생산공정 전반을 추적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이에 맞는 과정을 검증받아야 GRS 인증을 받을 수 있다. 2018년 처음 인증을 받은 건백은 매년 이뤄지는 철저한 심사를 통과하고 있다. 현재 건백은 매출의 80% 이상을 미국과 유럽 수출로 올리고 있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와 의류 기업들이 GRS 인증을 필수조건으로 내걸고 있습니다. ‘포스트 컨슈머’, 즉 최종 소비자가 사용한 후 발생한 페트 원료인지부터 까다롭게 검수하는 거죠. 유럽에선 GRS 인증 원료 의무 사용 비중이 이미 30%인 업종이 많습니다. 이케아는 2025년까지 100% 리사이클 원료만 쓰겠다고 공표했고요. 그만큼 관련 시장 규모가 커질 수밖에 없고 우리에게도 큰 기회가 될 겁니다.”

박 대표는 지난 7월 페트병 업사이클 사회적기업인 우시산, 고분자 소재 기업 클래비스, 페트 재활용업체인 유일산업, 한국환경산업협회 등과 함께 국내 페트병 자원순환사업 강화를 위한 업무협약도 맺었다. 이를 통해 폐페트병 수거부터 가공, 원료화, 원사 생산, 제품 제작 및 판매 등 국내 페트병 자원순환 전 과정에서 협업하기로 했다.

 

박 대표는 인터뷰 말미, 경영 목표와 비전을 묻는 질문에 선친의 유지로 답을 대신했다. ‘심청사달(心淸事達)’, 마음이 맑고 욕심이 없어야 모든 일이 잘 이뤄진다는 뜻이다.

“친환경과 ESG에 맞는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 기업가로서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장진원 기자 jang.jinwon@joongang.co.kr

사진 정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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