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의 학예사는 그야말로 만능꾼이에요. 유물 하나로 전시, 보존, 관리, 연구조사까지 다양한 일을 하기 때문이에요. 민속유물로는 국내 최대 규모를 가진 파주의 국립민속박물관에는 15개의 수장고에 민속유물 14만 3381점, 민속 아카이브 자료 99만 7049점이 나뉘어 보관돼 있어요.
"크고 작은 못이 너무 많은데요. 갈라진 곳도 군데군데 있고요.”
9월 7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헤이리에 위치한 ‘국립민속박물관 파주’의 보존 과학실. X-Ray 촬영을 마친 김윤희 학예 연구사가 모니터를 보며 유물을 판독하고 있다. 박물관에 들어온 모든 유물은 소독을 마치고 이곳을 거친다. 맨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균열이나 수리 흔적 등도 X-Ray 사진을 통해서는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가 발견되면 담당 부서로 보내 보존 작업에 들어간다. 가로, 세로, 높이가 각 3.3m에 이르는 이 X-Ray 촬영 장비는 국내에서 가장 크다. 목가구나 병풍 등 대형 유물 촬영도 문제없다. 촬영을 담당하는 김 학예사는 “시간이 지나며 지워졌지만, 금속 성분이 접착제와 함께 표면에 남아 있는 게 확인돼 옛 문양을 복원한 경우도 있다”며 “눈에 잘 띄지 않는 사소하고 작은 것도 남겨야 할 우리의 전통”이라고 말했다.
박물관을 찾은 한 가족이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수장고’에서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학예 연구사들을 신기한 듯 바라본다. 길게 늘어선 작업대에서 학예사들은 각종 도구를 활용해 어른 키보다 큰 고지도, 목재로 만든 작은 식탁 등의 유물을 살펴보며 상태를 기록한다. 작업대 너머 이동식 철제선반에는 작업을 마친 유물들이 가지런히 보관돼 있다.
기록을 담당하는 김승유 학예 연구사는 “우리 박물관은 민속유물을 주로 다루고 있어 실생활에서 사용했던 아기자기한 물품들이 많다.”며 “이곳에서는 오래된 껌 한 통, 성냥 한 갑도 귀한 몸”이라고 말했다. 소장품 등록팀은 ‘문화유산 표준 관리 시스템’을 활용해 크기와 모양, 시대적 특징 등을 전산 등록한다. 이 자료는 대여, 전시 등의 근거자료로 이용된다.
이 박물관에는 15개의 수장고에 민속유물 14만 3381점, 민속 아카이브 자료 99만 7049점이 나뉘어 보관돼 있다. 민속유물로는 국내 최대 규모다.
“그동안 일하면서 제 손으로 잡은 벌레가 몇만 마리는 될 겁니다.” 박성희 학예연구사가 별일 아니라는 듯 웃으며 말했다. 2006년부터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일하고 있는 박 연구사는 목재로 된 유물의 보존처리를 담당하는 이 분야 베테랑이다. “애벌레가 유물 깊숙한 곳에 넓게 퍼지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있다”며 “영구 보존을 위해서는 유물에 해가 되는 벌레 연구도 필수”라고 강조했다. 연구실에서는 권연벌레, 쌀바구미 등을 연구용으로 채집해 직접 기르고 있다.
목재유물 보존 연구 위해 벌레도 키워
유물은 공개구입과 경매, 기증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박물관으로 들어온다. 학예사는 박물관에 필요한 유물 등을 선정하고 필요에 따라 현장을 직접 방문해 조사와 연구를 하기도 한다. 입고된 유물의 기록과 보존처리는 물론 전시 기획 등 관람객에게 공개하는 일까지 모두 학예사의 임무다.
유물이 입고되면 맨 먼저 ‘저산소 살충 챔버’를 통해 소독부터 한다. 소독은 챔버 내부의 산소 농도를 21일 동안 0.05%까지 떨어뜨려 유물 내부에 있을지 모르는 유해생물을 없애는 방식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숨 쉬는 공기 중 산소 농도는 약 21%로 사람도 산소 농도가 14% 이하로 떨어지면 기절하거나 목숨을 잃을 수 있다. 소독을 마친 유물은 촬영과 보존처리 및 기록의 과정을 거쳐 수장고에 보관되거나 일반에 공개된다.
글·사진 전민규 기자 jeonmk@joongang.c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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