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광주시는 수도권에서 가장 규제가 많은 곳으로 꼽혀요. 상수원보호구역, 수도권규제 등 개발이 이중삼중으로 막혀 있어요. 지난해 경기도의 ‘규제연계형 지원정책 시행계획’에 따라 경기연구원이 평가한 ‘시·군별 규제등급’에서 광주시는 100점 만점에 유일하게 100점을 받아 가장 규제가 많은 곳으로 꼽혔어요.
경기도 광주시는 수도권에서 가장 규제가 많은 곳으로 꼽힌다. 상수원보호구역, 수도권규제 등 개발이 이중삼중으로 막혀 있다. 지난해 경기도의 ‘규제연계형 지원정책 시행계획’에 따라 경기연구원이 평가한 ‘시·군별 규제등급’에서 광주시는 100점 만점에 유일하게 100점을 받아 가장 규제가 많은 곳으로 꼽혔다.
이런 탓에 ‘중첩 규제 철폐’는 선거 때마다 단골 공약으로 등장했다가 수도권 식수원 보호와 과밀 억제 논리를 극복하지 못하고 슬그머니 사라지곤 했다. 그런데 ‘규제도 자산’이란 구호로 발상의 전환이 시도되고 있다. 신동헌 광주시장이 취임한 뒤부터다.
2018년 취임 이후 신 시장은 요원하기만한 규제 해제로 에너지를 낭비하기보다 규제가 만든 천혜의 환경·문화 자산을 활용해 지역 발전을 도모한다는 복안에 방점을 찍었다. ‘포지티브 맨(Positive man)’을 자처하는 신 시장이 그리는 고향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8월 19일 시청 집무실에서 만난 신 시장은 “긍정적인 마인드로 보면 눈에 보이는 게 있다”고 말했다.
광주는 ‘규제 천국’이라 할 만큼 여러 규제가 얽히고설켜 있다. 어느 정도인가.
“광주는 도시 전체가 규제에 묶여 있다. 수질보전특별대책지역 1권역, 자연보전권역, 개발제한구역, 상수원보호구역, 수변구역, 군사시설보호구역 등 규제란 규제는 모두 있다. 당연히 대규모 개발도 못하고 큰 공장이나 대학도 못 들어온다. 주택을 새로 짓거나 고치는 것도 금지된 곳이 허다하다. 그래서 ‘규제의 도시’라는 패배 의식과 체념 의식이 깊게 뿌리박혀 있다. 이걸 좀 바꿔보려고 취임하고부터 줄곧 ‘규제도 자산’이란 슬로건을 강조해왔다.”
구호가 이색적이다. 과거 시장들 중에는 그런 구호를 내건 이가 없지 않았나.
“안 풀리는 거 붙들고 있느니 마음이라도 편해야 할 것 아닌가. 억울하지만, 받아들이는 마음가짐도 중요하다. 규제가 심하다 보니 오히려 자연 생태나 역사·문화 흔적들이 잘 보존돼 있다. 먹거리가 많으니 가마우지를 비롯한 철새들도 몰려온다. 이렇게 보이는 걸 이익이 되게끔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게 바로 관광 자원화다. 잘 지켜진 자연과 문화를 자산으로 육성해 새로운 경쟁력으로 만들고 지역경제 활성화까지 도모하는 거다.”
구체적으로 어떤 작업을 하고 있나?
“대표적인 사업이 ‘길 프로젝트’다. 내년 6월까지 남한산성에서 천주교 성지인 천진암을 잇는 총 120여㎞ 7개 코스를 만들고 있다. 천진암은 우리나라 천주교가 자생적으로 발생한, 세계적으로도 중요한 곳이다. 남한산성은 지금의 도지사 격인 광주유수가 있었던 곳이고 천주교 신자들이 이곳에서 순교했다. 발생지와 순교지를 잇는 길을 만들어 외국인들도 찾는 세계적인 순례길로 만들려 한다.”
수도권의 젖줄인 팔당호의 풍광도 유명하지 않나?
“팔당호의 수려한 경치를 즐길 수 있는 둘레길도 준비하고 있다. 내년 10월쯤 22.5㎞ 길이의 ‘팔당호반 둘레길’ 3개 코스를 선보일 예정이다. 또 퇴촌면 경안천 주변에 둘레길과 생태공원을 만드는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이 외에 유정저수지 탐방로와 태화산 등산로를 연결하는 명품둘레길 등 팔당호 규제 자산을 활용한 명소가 올해와 내년에 구체적인 성과를 보일 거다.”
규제로 보존된 자연환경 활용해 관광명소화
고향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남다른 것 같다.
“광주(廣州)는 이름 그대로 서울 동쪽의 가장 큰 행정구역이었다. 서울 강남·송파·강동과 성남·하남을 모두 아우르는 지역이었다. 그만큼 풍요롭고 중요한 곳이다. 왕실 도자기를 만드는 조선백자의 산실이기도 하다. 우리 지역에서만 국보급 도자기가 18개나 나왔다. 이 정도면 자랑스러워할 만하지 않나? 우리만의 자산인 조선백자의 산실인 가마터(관요, 官窯)가 500개 가까이 된다. 이것도 언젠가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려고 생각 중이다.”
관광산업이 활성화하려면 접근성이 중요한데, 교통 환경이 개선되고 있나?
“교통 문제는 우리 시의 최대 현안 중 하나다. 서울 송파에서 광주 퇴촌을 통과해 양평을 잇는 ‘서울-광주-양평 고속도로’ 사업이 기획재정부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해 교통 혼잡 개선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근에는 제4차 국가철도망구축계획에 위례~삼동선이 반영됐고, 경강선 삼동~안성 연장사업이 추가 검토사업으로 선정됐다. 다만 우리와 이천, 여주, 원주시가 함께 요구한 GTX 노선이 무산된 것은 안타깝다. 인구가 40만 명에 이르는데 이곳을 지나는 철도는 고작 경강선 하나뿐이다. 반세기 넘도록 중복 규제로 많은 희생을 감내해온 것을 고려하면 GTX를 비롯한 교통망 확충이 꼭 필요하다. 우리 시도 GTX 유치를 위한 사전 타당성 용역을 추진하고 국토부에 건의하는 등 다각도로 노력을 기울이는 중이다.”
시민 생활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정책은 뭐가 있나?
“시민이 피부로 느낄 정책 중 대표적인 게 ‘천원 택시’다. 땅은 넓은데 대중교통이 충분치 않아 불편이 컸다. 주민이 전담 택시를 1000원에 이용할 수 있다. 작년에 시범사업을 해보니 반응이 좋아서 올해는 23개 마을로 넓혔다. 또 지난 5월부터 마을버스 완전공영제를 도입했다. 예전엔 수요가 부족하니 운수업체들이 이윤이 남는 노선 위주로 사업을 해왔다. 하지만 공영제를 도입한 뒤에는 시민 편의를 중심으로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됐다.”
시정 슬로건인 ‘오직 광주’도 꽤 임팩트가 있다.
“모든 시정의 중심을 우리 지역과 시민에게 도움이 되느냐로 판단한다. 강남구 땅이 우리 땅이던 어린 시절, 광주시민의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런데 그걸 아무 대가 없이 넘겨줬다. 선거 나올 때부터 마냥 당하기만 해서는 안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기 위해 그때나 지금이나 먹고사는 문제를 중심으로 시민과 함께 풀어나가려고 노력한다.”
건강한 밥상으로 가족 행복 일깨우는 ‘먹거리 전도사’
신 시장은 KBS 프로듀서 출신이다. 농촌과 농업에 관심이 많아 농촌 경쟁력을 조명하는 프로그램을 주로 제작했다. IMF 위기 이후 농업벤처 붐이 일던 때 [신PD도 언젠가는 농촌 간다](1999), [이제는 농사도 따따블 벤처다](2002) 등의 책을 내 히트도 쳤다. PD 활동을 마친 뒤에는 도시농업에 관심을 갖고 가족 단위 생태체험프로그램인 ‘꿈틀 어린이 텃밭학교’를 전국적으로 확산하기도 했다.
오래전부터 농업 경쟁력을 강조해왔던데.
“PD 시절 현장에 가보니 돈 되는 농업이 보이더라. IMF 전까지 우리 농업이 주먹구구식이었다. ‘농업경영인’이란 말도 내가 처음 썼다. 이후에는 농업고등학교 같은 데 강의할 때에는 ‘서른 살 안에 벤츠 탈 수 있다’고 하면서 학생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어줬다. 나중에 광주에 내려와 보니 젊은 농업경영인들이 자율적으로 조직을 만들어서 정보를 공유하고 경쟁력을 만들어내는 걸 보면서 희망이 있다고 느꼈다. 특히 광주는 서울과 가까워서 채소나 체험형 농업이 경쟁력 있다.”
먹거리에 대한 관심도 남다르다고 들었다.
“취임하고서 중요하게 펼친 것 중 하나가 먹거리 정책이다. 농가를 위해서도 중요하지만, 소비자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로컬푸드를 중심으로 가족의 행복을 되찾는 계기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래서 ‘자연채행복밥상 축제’를 만들었다. 예전에 서울에서 텃밭학교 프로그램을 하면서 익힌 노하우를 접목했다. 처음엔 아는 사람 농산물 팔아주려는 거냐는 오해도 많이 받았다.”
어떤 프로그램인가?
“요즘 시대에 가족이 밥상 앞에 둘러앉아 오순도순 밥 먹을 기회가 거의 없지 않나. 행복한 가족의 비밀은 바로 행복한 밥상에 있다. 가족 간에도 서로 얼굴 보기 힘든 세태에 신선한 경험을 제공하려는 취지로 시작했다. 테이블 500개를 놓고 고기와 쌀, 채소를 주고 가족끼리 밥상을 차려 먹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줬더니 참여한 시민들이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른다. 단돈 만원으로 행복한 경험을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안타깝게 코로나19 때문에 작년부터 못하고 있지만.”
(광주시는 2018년 9월 자연채행복밥상 문화축제를 치렀다. 다문화와 소외계층, 3~4대가 함께 사는 대가족 등 500세대가 참여해 가족 피크닉을 즐기도록 했다. 시민의 만족도가 높았지만, 아프리카돼지열병과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연이어 창궐해 행사 재개를 기약할 수 없게 됐다.)
코로나19 때문에 시정을 꾸려나가는 데 어려움이 꽤 크겠다.
“지금까지 임기 3년 중 1년 반은 거의 아무것도 못했다. 그래도 관광 자원 측면에서 코로나19는 위기이자 곧 기회이기도 하다. 해외로 가던 여행객들이 국내로 눈을 돌리고 있고, 여행문화도 한적한 자연 속에서 휴식을 취하는 방식으로 변하고 있어서다. 광주에는 남한산성, 천진암 성지, 팔당호, 경안천 등 개인과 가족 중심의 관광 자원이 많다. 수도권 도시민이 쉽게 접근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관광 자원을 개발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짜고 있다.”
그래도 임기 중 꼭 하고 싶은 건 없나?
“물론 시민과 약속한 공약 사업을 꼭 마무리하고 싶다. 현재 공약을 70% 정도 이행하고 있다. 3년 동안 추진한 여러 정책이 행정절차를 마무리하고 차례로 궤도에 오르는 중이다. 올해도 역사문화 관광벨트 조성과 읍면동 행정조직 개편, 공업용지 확대, 도로(국지도 57호선·국도 43호선) 확충 등 중요한 일정들이 있다.”
시장님 스스로 내세울 만한 정책을 하나만 소개해달라.
“교육에 관해서는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몇 달 전에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고등학교 졸업한 청년들을 해외여행 보내준다고 했었는데, 난 그보다 앞서서 정책을 만들었다. 광주지역 고등학교 졸업한 아이들 100명 정도를 선발해 가고 싶은 나라를 보름 정도 다녀오도록 지원해주는 사업이다. 청년들이 세계 각국을 경험해보도록 함으로써 지역 울타리를 넘어서는 인재가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대학 진학 여부는 상관하지 않으려 한다. 지금 조례를 준비하고 있다.”
“첫 4년은 밭을 만든 시기, 꽃 피우는 것 보고 싶어”
외부 장애물과 변수가 많아서 눈에 보이는 성과를 만들어내기엔 시간이 부족하지 않았나?
“우리 시는 규제가 심해서 행정이 다른 곳보다 상대적으로 느리다. 무슨 사업 하나 하려 해도 환경부, 국토부 등 이곳저곳 협의하다 보면 1년이 훌쩍 간다. 그래서 내 생각에 첫 임기 4년은 밭을 만들어 씨를 뿌리는 시간이다. 시민들에게 변화할 수 있는 비전과 가능성을 보여주는 게 중요한 시기다. 그다음에 꽃을 피운 뒤 열매를 수확하는 건 누가 하든 상관없는 거니까, 굳이 내가 열매까지 따려고 조급해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열매를 직접 딸 생각은 없나?
“첫 4년간 밭을 만들고 줄기를 냈으니까 꽃을 피울 때까지는 돌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야 열매가 제대로 맺히는지 안 맺히는지 알 수 있으니까. 별로 한 게 없는 것 같은데 벌여놓은 일이 생각보다 많다. 어찌 됐든 일단 지금은 그저 남은 임기에 맡은 일을 잘 마무리하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앞으로 10년 뒤 광주의 모습을 어떻게 그리고 있나?
“나는 ‘광주’란 이름을 세계 관광지도에 올려놓고 싶다. 외국인들이 배낭을 메고 천진암 순례길을 찾아오는 곳,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대표하는 도시가 되길 꿈꾼다. 땅이 넓고 자연환경이 좋긴 하지만, 규제가 많아서 공장, 물류단지, 주택 등이 뒤죽박죽돼 있다. 이런 게 좀 계획적으로 정리됐으면 좋겠다. 내가 한 20년쯤 시장을 해야 하는데 너무 늦게 한 것 같다. (웃음)”
※ 신동헌 경기 광주시장
■ 1952년 경기도 광주시 쌍령동 출생
■ 한양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 석사
■ KBS 제작부장 PD
■ 사단법인 도시농업포럼 상임대표
■ 더불어민주당 도시농업발전특위 수석부위원장
■ 민선 7기 광주시장
글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사진 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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