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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bes Korea

한국의 시인, 고은 선생 : 포브스코리아가 만나고 싶은 명인 (1)

지난 9월 15일 유네스코한국위원회에서 평화친선대사로 위촉된 고은 시인은 적극적인 평화란 충분히 싸울 수 있는 사람이 지킬 수 있다고 말했다. 전쟁을 선택할 수 있고 그 전쟁을 중지시킬 수 있는, 전쟁을 극복할 수 있는 의지가 평화의 의지라고 말했다. 이날 시인은 원고지에 쓴 유네스코 헌정시를 직접 낭독했다.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에서는 시인과 함께 국내외 갈등지역을 방문해 시로 응어리진 마음을 풀고 평화의 마음을 심어줄 예정이다. 시인은 격랑의 세월을 거친 것 같지 않게 순박하다. 


고은 시인


CEO들은 그에게서 삶의 지표를 얻고자 했다. 묻어나는 세월의 내공을 느끼고 싶어했고 마음의 위안을 찾으려 했다. 언젠가 읽은 한 편의 시, 그 시가 가슴에 남아 시인을 만나고 싶어했다.그가 생각하는 기업과 기업인의 자세를 들었다.  

기업인의 자세


“삶은 정답으로부터 출발하지 않고 도저히 정답을 찾을 수 없는 문제로부터 시작하는 것 아닌가요? 삶의 본질에는 대답이 없어요. 기업을 경영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강조차 어딘가에서 벼락을 만나 폭포로 변하고 또 어딘가에서는 고여 있다 가까스로 흘러가기도 하거든요. 


철새는 긴 여로에서 생명을 거의 다 소진하고 죽음 직전에 내려와요. 삶의 과정은 이런 피, 눈물, 땀을 바치지 않고는 없는 거니까. 이 지상에서 많은 사람이 하다 실패한 기업을 아직 유지하고 있는 그 자체가 감동스러운 큰 결실이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그에게 주어진 고뇌는 아주 여러 의무 중 하나일 뿐이죠. 그런 걸로 걱정하는 기업가를 난 기업가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일에 열중하면 개인의 삶을 잃어버릴 수 있어요. 내 앞에 태양이 비치면 내 등짝에는 어둠이 있잖아요. 행복이 끝나면 불행한 것이 아니라 행복은 늘 그 요소로 불행을 갖고, 불행은 반드시 행복이라는 보상을 전제로 해요. 고뇌도 삶의 내용물이지요. 그걸 고민, 방황, 허망함 이런 상태로 어느 한 지점에만 관심이 꽂혀서 인생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거지요.”


“기업인은 어둠 속을 헤쳐 가는 자입니다. 등불도 누가 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밝혀야 해요. 바람을 방어해가면서 나가야 해요.”


“기업가가 추구하는 이익이란? 내가 추울 때 두꺼운 옷을 입는 게 이익을 추구하는 거예요. 순수한 겁니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이다 나누는 것은 바보야. 내가 생존하기 위해서 밥이 있어야 하잖아요. 이게 이기주의예요. 이것을 확대해서 수많은 사람을 먹이고 싶어하는 게 회사라는 거예요. 다만 회사가 이익을 창출해서 독점하려고 하면 탐욕이죠. 하지만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 자체는 순수하고 진지합니다.”


고은 시인


기업가가 기억해야할 것이 있다고 시인은 말한다. “기업가는 혼자 사는 게 아니라 회사 공동체와 함께 살잖아요. 이익이 나면 더 많은 공동체와 연대해 그들도 살 수 있게 하고요. 반드시 모든 이익은 공리주의를 지향하게 돼 있어요. 그렇지 않고 시장의 맹목성에 빠지려고 하면 끊임없이 화살로 쏴서 그런 요소를 없애야 하죠.”


고은 시인


기업가가 탐욕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끊임없이 근원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어요. 개미, 아기, 들짐승처럼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엄마의 몸 속에서 태어났다는 것과 삶을 거닐다 죽을 때는 다 놓고 간다는 것을 기억해야죠. 이걸 자식을 주면 싸워서 서로 원수가 돼요. 이러면 물질이 악의 원소가 되는 거 아니오. 고대부터 변함없이 벌어진 일이에요. 선이 마지막까지 선이어야지요. 출발할 때는 모든 사람이 같아요. 내 부모 굶기지 않으려고 좀더 호화롭게 살기 위해서 여기까지는 좋지만 개인 안에 갇히는 것, 말하자면 ‘해방 없는 이익’ 이건 바보지요. 이익을 해방해서 또 다른 곳에서 이익을 창출하게 만들어야죠. 내 이익이 씨를 뿌려 다른 이익으로 전파하면 얼마나 세상에 기여하는 바가 커요. 그렇지 않아요?”


우리 사회는 가진 자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있다. 한 CEO는 이런 분위기에 약간의 억울함을 표하며 ‘유전유죄(有錢有罪)’라는 표현을 하기도 했다.


“본래 우리 전통사회에서 선비가 최우선이고 다음이 농민, 상업을 최하위에 뒀어요. 아직 상업을 천하게 여기는 정신이 남아있어 그럴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기업이 모든 삶의 우위 에 있잖아요.” 시인은 다시 ‘이익의 해방’을 얘기했다. “정당하게 돈을 벌면서 얼마나 분배하느냐가 부호의 도덕성을 결정하는 건데 그런 것 없이 그저 쌓아뒀어요. 그러니 부자를 보는 눈길이 사나워지기 시작한 거죠. 가진 자라서 그렇다 이렇게 얘기하면 안 되고 이제까지 원인을 제공해 왔어요. 이걸 지양하면 돈 버는 것처럼 세상을 이롭게 할 일이 어디 있겠어요.”


60년 넘게 시를 써온 그에게 물었다. ‘시인이 되지 않았으면 무엇을 했겠느냐’고. 시인은 한참을 생각하더니 입을 뗐다. “허, 정말 나는 시인이 안됐으면 정말, 정말, 정말 뭐가 됐을지 상상도 못하겠어요. 지금쯤은 그냥 흙이 됐을 거야.” 시인은 잠시 두 손을 어루만지더니 “슬프게도 다른 천직이 허용되지 않고 이 천직만을 지켜온 게 참 기이해”라고 했다.


고은 시인


침묵이 흘렀다. ‘너무 시만 쓰며 사신 것 아니냐’고 하자 시인의 표정이 다시 밝아졌다. “아니요. 이 일로 술도 충분히 마셨고 공부도, 놀기도 많이 했고 우리 엄마 몸 속에서 나올 때는 상상도 못하던 온 세계를 다 돌아다녔잖아요.”


고은 시인은 매년 세계 곳곳에 초청 받아 강연과 시 낭송을 한다. 시인이 아닌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고은은 어떤 모습일까? “나는 아빤데 우리 딸은 내 영향 밖에 있어요. 아버지에 속한 자식을 나도 원치 않아요. 딸에게 나는 ‘최선의 타자’라고 생각해요.” 딸 차령 씨는 프랑스에서 미술을 한다. 아내 이상화 중앙대 명예교수와는 1974년에 만나 9년 뒤 결혼했다. “아내는 뭐 물어볼 것도 없이 나의 종교적 대상이죠. 헛헛.”


하루 종일 시를 쓰고 늦게까지 책을 읽고, 1년에 몇 차례나 지구 반대편을 여행하면서 틈틈이 술을 마시는 여든이 넘은 시인 고은. 그가 이루고 싶은 것은 뭘까. “내가 구상하는 커다란 작품들을 완성하고 싶어요. 목표가 나를 이끌지 않아요. 현재가 늘 나를 이끌어 가니까. 내 손은 일하기 위해 있는 손이니까. 그리고 지금도 공부를 많이 해요. 나는 학생이에요. 학생.”


최은경 포브스코리아 기자 

[포브스코리아, 2014년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