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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지킬앤 하이드? 인간은 악마인가, 천사인가?

인간의 본성은 악한가, 선한가? 사람들은 희대의 유대인 학살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에게서 '짐승'의 모습을 기대했다. 그러나 그를 감정한 정신과 의사들은 그가 우리들과 다를 게 없는 지극히 평범한 인간이라는 판정을 내렸다.


유대인의 이주 및 이송, 400만~500만 명의 아우슈비츠 사망자들에 대한 책임을 묻는 자리에서 아돌프 아이히만은 "당신이 한 일에 대해 아무런 가책도 느끼지 않느냐"라는 법관들의 질문에 "그렇다면 내가 맡은 일을 불성실하게 처리했어야 한다는 말입니까"라고 되물었다.


아돌프 아이히만


제2차 세계대전으로 '순수한 악에 대한 믿음'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독일인들의 입장에선 내 아버지가 유대인을 가둔 간수였고, 총을 겨눈 군인이었고, 대량 학살을 기획한 장본인이었던 것이다. 아이히만의 전범 재판을 참관한 한나 아렌트는 이에 대해 '악의 평범성'이란 개념을 내세웠다. 악이란 평범한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으며 대부분의 악행은 '선해지거나 악해지기로 결심한 적이 결코 없는 사람들에 의해 저질러진다'는 것이다.



▩ 사회심리학자, '악의 평범성'을 증명하다


심리학 실험


'악의 평범성'에 생생한 증거물을 내 놓은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70년대 이후 일단의 사회심리학자들이었다. 이들은 악을 조장하는 사회 시스템의 조건 같은 것에 관심을 가졌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호기심으로 출발한 심리학이 전체주의적 시스템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 스탠리 밀그램은 자기 가치가 시험 받는 극단적인 상황에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보고 싶어 '복종 실험'을 했다. 피실험자들은 체벌이 학습에 미치는 효과를 측정하는 거라는 설명을 듣고 학습자가 틀린 답을 제시할 때마다 전기충격장치를 작동해 체벌을 가했다. 자문을 맡은 심리학자나 정신과 의사들은 "1% 정도의 피실험자가 450V까지 체벌 수위를 높일 것"이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450V까지 처벌 수위를 높인 사람의 비율은 60%에 달했다.


▶ 필립 짐바르도는 역할에 따라 인간의 행동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궁금해 모의 교도소 실험을 했다. '동전 던지기'로 나는 두 구릅에 각각 간수와 죄수 역할을 맡겼다. 실험 일주일도 못 가 간수들은 인격모독, 잠 안 재우기, 성적학대 등의 방법으죄수들을 괴롭혔다. 결국 중도에 실험을 중단한 짐바르도는 이 실험을 통해 인간이 시스템과 상황의 뒷면으로 숨어버릴 수 있다는 것과, 전체주의적 사회일수록 인간의 책임감과 이성의 기능이 마비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악이 평범하다면 선도 평범하다


짐바르도는 악이 평범하다면 선도 평범하다고 역설하면서 악의 상태가 아닌 악으로의 변화가 더 중요한 것이며 악이란 바로 힘의 행사라는 점, 그 핵심에 권력의 문제가 있음을 잊지 말라고 충고한다. 우리가 연약한 인간임을 인식하고 상황에 따라 지킬 혹은 하이드가 될 수 있다는 것에 성찰하는 순간 악마의 자리에서 한 발 물러설 수 있는 것이다. 



심리학자


다큐멘터리 영화 <액트 오브 킬링>에서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은 농장 노동자들을 공산당으로 몰아 학살한 가해자들에게 영화를 찍자고 제안하여 그들의 행동을 재연했다. 영화는 가해자 안와르 콩고가 가해자 역할 뿐만 아니라 피해자 역할도 해보면서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참혹한 것이었는지 깨닫고 구토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이 다큐는 한나 아렌트가 지적한 악마의 조건인 '말의 무능력, 사고의 무능력, 타인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의 무능력'을 어떻게 뒤엎을 수 있을지를 증거한다. 안와르 콩고는 타인의 처지에 자신을 대입하면서 전체주의가 입혀준 합리화라는 보호막을 뚫고 자아성찰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난 것이다.



▩ 선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선한 사람이 된다



선한 목적이 선한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선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선한 사람이 된다. 여기서 보는 행위란 공감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선에 관한 원칙과 규범들을 기술하는 것은 소용이 없다. 전체주의적 압력을 넘어서 다른 이들의 삶을 자신의 세계 안에 들여놓을 때 비로소 내가 알고 있는 선함에 관한 원칙과 규범들이 얼굴을 갖게 되는 것이다.  


사회심리학자들은 우리 누구도 악마가 될 수 있으며 우리 안에 어떤 악마성과 영웅주의도 있을 수 있음을 증명했다. <타인의 삶> 속 대사처럼 "우리의 양심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진정한 걸작"일 뿐 생각을 생각하는 힘, 성찰은 어쩌면 인간의 권리가 아닌 의무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