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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한국, 문화대국 미식강국으로 거듭나고 싶다면?

여행할 때 당신은 무엇을 주로 경험하는가.  그 지역의 경치와 멋진 건축물들을 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즐거움은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다. 미식은 그 지역, 그 나라의 문화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한국이 외국 관광객들에게 문화대국 미식가욱으로 거듭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관광 투어리즘


유럽의 투어리즘은 종교순례와 연관된다.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Compostela de Santiago) 같은 곳으로 장기간 떠나는 성지순례가 그 시작이었다. 뒤이어 나타난 여행 패턴은 16세기에 시작된 이탈리아로 향한 여행, 그랑투어(Grand Tour)다. 유럽 지식인들은 로마의 어제를 살피며 예술, 음악 등 문화의 전반을 공부했다. 문화체험을 통한 교양증진이 그랑투어의 근본 목적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찾아다니면서 공부하고 비교하면서 세계관을 확대 심화하자는 것이 관광의 진짜 의미다. 놀고 사진 찍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에 대한 지식과 지혜를 머리와 가슴으로 느끼기 위한, 공부로서의 관광이다.그러나 21세기에 쓰이는 관광의 의미는 150여 년 전 탄생 초기와 사뭇 다르다.


이는 '레저·유람·오락·셀카' 정도로 정리되는 오늘날 한국인의 관광행태만 봐도 알 수 있다.무리로 몰려가 여행기간 동안 얼마나 많은 곳을 보고 왔느냐에 초점을 맞추는 '양적인 경쟁'이 주류다.작은 사실 하나라도 제대로 파악하고 생각해보는 질적 차원의 공부는 극히 드문 것이다.



공부로서의 관광, '미식'


미식


공부를 위한 관광의 영역으로 '음식'을 빼놓을 수 없다. 역사·문화·풍토·인간과 같은 모든 것이 포함되는 '총체적·총괄척'차원의 테마가 바로 음식이다. 올리브와 아몬드의 차이만 알아도 기독교와 이슬람의 의미를 되새길 구 있듯, 음식을 보면 그 나라, 그 지방, 그 지역 사람들을 '간단히' 이해할 수 있다.


미식(美食)은 문화로서의 음식에 해당되는 개념이다. 'Eating'과 'Tasting'의 차이, 양과 질의 차이다. 미식문화는 1789년 프랑스 혁명을 거치면서 왕실에서 쫓겨난 요리사들이 성밖에서 생활하면서 시작됐고, 이후 1792년에는 휴식을 취하고 대화를 나누고 영양을 생각하면서 차분히 앉아서 먹을 수 있는 곳인 레스토랑이 등장했다.프랑스가 미식 대국으로 등장한 것도 이 때문이다.>



자타공인 미식 교과서, 미슐랭


"신세기와 함께 등장한 이 책은 앞으로 적어도 100년은 갈 것이다. 프랑스를 여행하는 모든 사람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자는 것이 이 책이 만들어진 이유다. 여행객이 자동차를 타고, 자동차를 고치고, 호텔에 머물며 식사를 하고, 편지를 보내고, 전보와 전화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가 이 책에 들어 있다."


미슐랭


19세기 말 등장한 '레드 가이드' 미슐랭의 서문이다. 미슐랭은 유럽 대부분의 나라와 미국·일본 등을 대상으로 한 레스토랑 랭킹 가이드북으로, 현재 자타가 공인하는 미식 교과서다. 여행객 주머니에 간단히 들어갈 수 있는 미슐랭 레드 가이드의 창간호는 프랑스 일간 신문사의 1일 발행수부를 넘는 3만5천 부가 인쇄되기도 했다.


미슐랭은 자동차를 통한 관광 액세서리로 출발했다. 자동차 여행이라는 새 문명과 미식을 통한 관광을 하나로 엮는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다. 처음에는 음식을 파는 호텔에 관한 정보가 주를 이뤘지만, 곧 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레스토랑으로까지 영역을 확대했다. 오늘날에는 호텔보다는 레스토랑을 찾기 위한 교과서로 자리 잡고 있다.



▦ 한국, 미식 강국을 향하여


미식은 21세기 한국인 모두의 관심일 듯하다. 소프트파워로서 음식만큼 효과적인 것도 없기 때문이다. 미슐랭 레드 가이드북의 한국 입성이야말로 정부가 추진하는 최대 현안 중 하나라고 한다. 한국음식을 미슐랭 랭킹에 올려 매년 책을 발간해내는 식이다. 현재 아시아를 대상으로 한 미슐랭 레드 가이드의 주요 무대는 일본, 홍콩, 마카오다. 여기에 가세해 한국과 중국도 미슐랭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


하지만 문제가 있으니, 바로 한국에서 관광을 머리(Watch)가 아닌, 눈(See)으로 해석하는 것이 음식을 대하는 자세로까지 이어진다는 것이다. 문화로서의 음식, 가치로서의 미식, 품격으로서의 식사와 무관한 발상이 소위 '한류 음식'으로 파고들고 있다.


비빔밥


3차원 음식과 스토리를 갖춰라


프랑스 요리를 세계 최고로 만드는 것은 맛 때문만이 아니다. 프랑스 요리는 혀와 입에 맞는 맛으로서가 아닌, 보고 맡고 만지고 듣는 3차원 음식으로서의 요리다. 레스토랑 테이블 위의 꽃과 냅킨, 다양한 그릇과 은제 스푼, 벽에 걸린 명화와 바닥의 카펫, 천장의 샹들리에와 벽의 조명, 그리고 셰프의 스토리와 열정, 이 모든 것들이 종합적으로 엮어져 이뤄낸 결과다. 맛은 그 일부에 불과하다.


일본의 스시가 세계 미식계에 강자가 된 것도 맛 때문이 아니다. 2011년 개봉 즉시 전 세계에서 히트를 친, <지로의 꿈>이란 다큐멘터리가 있다. 도쿄 긴자의 스시집 '스키야바시지로(すきやばし次郎)'의 주인의 삶을 다룬 영상물이다. 손님들이 맛있다고 말하는 것은 스시 맛이 아닌, 스시를 만들기 전후에 나타난 수많은 스토리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자리매김한 비빔밥은 어떠한가? 한국이란 나라를 압축한 음식으로서의 비빔밥은 좋다. 그러나 재료는 어떻게 선택하고, 어떤 그릇과 도구가 필요하며, 그 도구들은 어떤 배경을 갖고 있는지, 먹을 때의 예법은 무엇이고, 역사적으로 비빔밥은 어떤 음식과 연관이 있는지, 계절별로 비빔밥과 그에 어울리는 반찬을 어떤 식으로 만드는지... 이와 같은 스토리가 없다.



▦ 머리로 느끼는 관광, 멋으로 보는 미식


머리가 아닌 눈으로 대하는 관광, 종합적 관점이 아닌 혀와 입 나아가 애국심에 기초한 미식이 가지는 공통분모는, 전체가 아닌 부분으로 해석하는 세계관이란 점에 있다. 외형적인 면, 단편적인 부분을 통해 전체를 이해하는 식이다. 3차원으로 이뤄진 입체적 스토리가 아니라, 점으로 이어진 에피소드를 통한 접근방법이다.


하지만 문화는 총체적, 전방위적, 다원적으로 이해할 때 한층 더 깊어지고 넓어진다. 문화대국 미식강국으로의 길은 글로벌 차원의 기준과 가치를 필요로 한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될 수 있다기 보다는, 가장 한국적인 것을 글로벌 차원의 기준과 가치에 맞출 경우 세계적인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