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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처칠 vs 히틀러, 그림 경매에서 다시 맞붙는다?

지난 11월 런던 크리스티 경매소에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총리를 지낸 윈스턴 처칠의 그림 두 점이 팔렸다. 같은 달, 영국 수롭셔의 멀록 경매소에서는 2차대전을 일으킨 아돌프 히틀러 전 독일 총통의 미술 작품 3점이 경매에 부쳐졌다.


미술품의 가격 결정에서 작품의 진정한 가치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작가의 평판(명성 또는 악명)이다. 처칠과 히틀러, 이 두 사람 작품의 판매는 그 극단적인 예를 보여준다. 


▒ "그림만 그려도 넉넉하게 살았을" 윈스턴 처칠


12월 17일에는 처칠의 다른 유화 작품 15점이 소더비에서 경매 무대에 올랐다. 처칠의 생가인 블렌하임 팰리스의 전경을 담은 그림, 유명한 블렌하임 태피스트리를 그린 그림, 정물화, 차트웰(처칠이 좋아했던 시골 별장)의 화실을 묘사한 그림, 프랑스의 풍광이 담김 풍경화, 카르카손 성벽을 그린 그림 등이 여기에 포함됐다.


소더비의 프랜시스 크리스티는 "1920년대 초부터 1950년대 말까지 처칠의 화가 경력 40년에 걸친 작품"이라며 "처칠에겐 매우 개인적인 의미를 지닌 작품이지만 객관적으로도 매우 훌륭한 작품"이라고 말했다. 뉴욕에서 조각가와 화가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처칠의 손녀 에드위나 샌디스는 "피카소는 처칠이 다른 일을 안 하고 그림만 그렸어도 꽤 넉넉하게 살았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윈스턴 처칠


처칠은 1915년 내각에서 사임 당한 뒤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처칠이 2차대전 기간 동안 완성한 그림은 단 한 점뿐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는 1915년부터 1950년대 말까지 500점이 넘는 그림을 그렸다. 1947년엔 처칠이 필명으로 영국왕립미술원에 출품한 그림 한 점이 전시회에 채택되기도 했다.


처칠의 재능에 비판적인 견해를 지닌 사람들도 있다. 런던의 미술상 크리스 비틀스는 "난 미술만 제외하고 모든 면에서 윈스턴 처칠의 대단한 숭배자"라며 "그는 화가보다는 벽돌공으로 더 뛰어난 재능을 지녔었다. 그의 그림은 색깔이 탁하고 우중충하다"고 말했다.



▒ 평범하지 않은 아돌프 히틀러의 평범한 그림


이와 달리 히틀러 작품의 평범성에 대해서는 이론이 별로 없는 듯 하다. 멀록의 경매를 주선한 역사 문서 거래상 리처드 웨스트우드-브룩스조차 그의 작품들을 하찮게 여길 정도다. 그는 여자의 누드를 스케치한 히틀러의 작품을 "인체를 제대로 묘사하지 못했다"며 "그는 비엔나 미술학교에 지원했다가 낙방한 일을 평생 한으로 여겼지만 이 그림을 보면 얼굴이 없고 신체비율도 엉망이다"라고 말했다.


아돌프 히틀러 뮌헨의 고택


거리 풍경을 담은 히틀러의 수채화 역시 관광지에서 파는 무미건조한 복제화 같다는 의견에 웨스트우드-브룩스는 동의한다. 실제로 히틀러는 1차대전 후 비엔나에서 생계유지를 위해 풍경화들 다수를 우편엽서에서 보고 그려 관광객들에게 팔았다고 한다. 히틀러가 당시 가옥에 페인트 칠을 하는 도장공으로 일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나돌았다.



▒ 처칠, 경매시장에서 히틀러를 이기다


요동치는 요즘의 경제 상황에서도 처칠의 그림들은 꾸준히 괜찮은 가격에 팔려나간다. 최근 런던 크리스티 경매소에서 팔린 두 작품 중 하나는 추정가보다 조금 낮은 22만9551달러에, 다른 하나는 추정가 중 제일 낮은 축에 속하는 26만7157달러에 팔렸다. 


지난 10년 동안 아트넷(Artnet.com)에 올랐던 처칠의 그림 48점 중 경매사들의 추정가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팔린 작품은 9점에 불과했다. 16점은 추정가 범위 안에서, 23점은 예상보다 더 높은 가격에 팔렸다. 사실 2005년 말부터 2007년 여름까지는 처칠 작품의 붐이 일어 '차트웰: 양이 있는 풍경'은 100만 파운드에 팔리기도 했다.


지난 10년 중 6년 동안 경매에서 낙찰된 처칠의 그림은 2~3점에 불과했지만 2014년 한 해 동안은 18점이나 팔렸다. 2007~2010년에는 작품가가 경매사의 추정가 범위 안에 머물렀지만 그 후로는 급등해, 최근 그의 그림은 작품당 보통 10만~50만 파운드를 호가한다.



처칠 히틀러



▒ 히틀러, 경매시장에서 처칠을 역전할 그 날이 올까?


한편, 크리스티와 소더비 측에 따르면 두 회사 중 어느 쪽도 히틀러의 작품을 주요 매물로 여기지 않는다. 웨스트우드-브룩스는 나치 당수였던 히틀러의 작품을 거래한다는 이유로 비난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안다. 역사적으로 히틀러의 그림은 처칠의 작품에 비해 가격이 10분의1도 미치지 못했다. 


5년 전 웨스트우드-브룩스가 히틀러의 작품 13점이 포함된 경매를 주선했는데, 모두 추정가보다 높은 가격에 팔리긴 했지만 가장 비싼 작품이 2만 달러도 채 안됐다. 아트넷에 오른 히틀러 작품 판매 소식은 단 두 건으로, 하나는 2만2434달러에, 다른 하나는 4만 달러가 채 안 되는 가격에 팔렸다.


그러나 웨스트우드-브룩스에 따르면 최근 유럽에서는 제3제국의 미술에 대한 관심이 차츰 고조되고 있다. 독일인들 사이에서 나치 시대에 대한 인식에 변화가 생겼다는 것. 그의 견해를 확인해주기라도 하듯 11월 22일에는 독일 뉘른베르크의 한 경매소에서 히틀러의 수채화 '뮌헨의 옛 등기소'가 추정가의 6배가 넘는 16만 달러에 팔렸다.


사실 처칠이 미술에 진정한 재능을 지녔었는지의 여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기 때문에 붓을 들었다. 음울하고 가난에 찌들었던 젊은 시절의 히틀러와는 아주 대조적이다. 히틀러는 화가가 되려던 꿈이 좌절되자 분노에 찼고 자신의 평범함을 끝내 인정하지 못했다. 이런 대조는 세계사에 참담한 결과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