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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여행의 인문학! 旅(려), 본래의 뜻은 군대?

여행. 매우 일상화된 단어이긴 하지만 본래의 뜻이 출발한 인문적인 지형은 조금 낯설다. 앞 글자인 旅(려)는 지금의 '여행'과는 전혀 다른 뜻이다. 출발점에 섰던 이 글자의 원래 뜻은 적과 맞서 싸울 준비에 나선 사람들, 즉 군대의 깃발과 그 밑에 선 장병 등을 일컬었다.


그래서 旅(려)의 옛 문장에서 일반적인 쓰임은 군대와 관련된 경우가 많다. 군려(軍旅), 병려(兵旅), 사려(師旅), 융려(戎旅) 등으로 적으면서 직접적으로 군대 또는 그곳에 있는 병력을 지칭하는 경우가 많았다. 軍(군),兵(병), 師(사), 戎(융) 등은 모두 군대를 지칭하는 글자다.



旅(려), 군대가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떠난다'


이로부터 발전한 뜻이 '떠나다'이다. 군대는 한 곳에 머물수도 있지만 이동할 때가 많다. 공격과 수비를 비롯한 여러 작전을 위해 부지런히 이동한다는 얘기다. 아주 긴 시간을 요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이 군대를 뜻하는 旅(려)라는 글자가 종내는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떠난다'는 새김을 얻었다는 게 정설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일반적인 용례로 자리 잡은 말이 여행(旅行)이다. '손님'이라는 뜻을 강조할 때는 여객(旅客)이라는 말을 쓴다. 단순히 길을 떠나 이동하는 사람에게는 여인(旅人)이라는 말을, 함께 길을 나서서 이동하는 사람은 여행의 동반자라는 맥락에서 여반(旅伴)이라는 단어를 쓴다.


그런 여행자가 머무는 곳이 여관(旅館) 또는 역려(逆旅)다. 여사(旅舍), 여점(旅店)이라는 단어도 같은 뜻이다. 기려(羈旅)라는 말이 있는데, 앞의 羈(기)는 여기서 '한동안 머물다'는 뜻이다. 따라서 기려라고 하면 비교적 오랜 시간을 외지에서 머무는 경우를 지칭한다. 여정(旅程), 여로(旅路)는 각각 여행의 일정과 여행의 길을 지칭한다.



征(정), '멀리 떠나' 정복(征服)하다


남을 무력으로 '정복(征服)하다'고 할 때의 征(정)이라는 글자는 원래 '멀리 떠난다'는 의미로 시작했다. 그로부터 다시 이동하는 군대, 또는 그런 군대의 출정(出征)이라는 의미를 얻었다. 멀리 나아가는 일이 원정(遠征)이고, 무력을 동원해 상대를 치러 가는 일도 같은 단어로 적는다.


이 글자의 쓰임도 매우 풍부하다. 먼길을 떠나는 사람을 정인(征人) 또는 정부(征夫)라고 적는데, 이 경우는 군대가 정복에 나설 때 따라 나서는 병력을 일컫기도 한다. 정의(征衣)와 정삼(征衫) 등은 먼 길을 떠나는 여행자의 옷을 가리킬 때 쓰는 단어다.


정객(征客)이라는 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옛 중국에서 흔히 쓰던 용어다. '먼 길을 떠난 사람'이라는 풀이가 우선이다. 그러나 전란(戰亂)이 빗발처럼 닥쳤던 중국의 역사를 감안할 때 병역(兵役)에 따라 군대를 좇아 먼 곳으로 나아간 사람, 또는 친족을 가리킬 때 자주 썼다.


정객


중국 고대 민간에서 채집한 노래 ‘악부시(樂府詩)’에는 '征客關山路幾重(정객관산로기중)'이라는 말이 있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아낙네들이 먼 길 떠나 언제 올지 모르는 남편의 안부를 묻는 대목으로,"먼 길 나그네 앞에 가로놓인 산, 그 길은 얼마나 이어졌을까요?"라는 뜻이다. 생사를 점치기조차 어려운 여행길의 남편 안부를 묻는 애달픔이 담겼다.



▒ 대한민국, 풍진(風塵)과 풍상(風霜)을 겪으며 걸어온 길


낯선 땅을 오가는 길에는 바람과 먼지가 가득하다. 이를 풍진(風塵)이라고 적어 먼 길 오가는 이의 객수(客愁)를 달래는 경우가 많다. 바람에 그치지 않고 차가운 이슬로 오가는 길의 어려움을 표현하면 풍상(風霜)이다. 집 밖으로 나서면 고생이 숱하다. 나선 길의 숱한 고생을 바람과 먼지, 차가운 이슬로 적었다. 정진(征塵)·객진(客塵)이라고도 한다.


지난해 연말부터 올해 초까지도 맹렬한 기세를 뽐내고 있는 영화 <국제시장>이 화제다. 일제의 강점, 6·25전쟁의 참화를 겪고서도 뜨거운 가족애와 삶의 활력으로 오늘의 대한민국 초석을 놓은 앞 세대의 분투가 마음을 울린다.


대한민국이 걸어온 길


그렇게 대한민국이 걸어온 먼 길, 그 고난의 여정(旅程)에 담긴 풍진(風塵)과 풍상(風霜)이 우리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그들의 노력으로 대한민국은 어엿한 세계적 국가로 자리 잡았다. 앞으로의 방향이 문제다. 국부를 더욱 키우면서 전반적인 사회수준도 높여야 한다. 그런 방향을 잡는 일, 조향의 문제를 모두 진지하게 돌아봐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