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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대한민국 관료 마피아, 관피아 집중 진단

관료 마피아의 준말이 '관피아'다. 현재 대대적인 개혁을 추진 중인 정부에게 관피아 조직은 국가 발전을 막아서는 암적인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세월호 참사는 관료 사회의 복지부동과 탐욕을 여실히 드러냈다. 도대체 관피아는 왜 생긴 것일까?

정권은 유한하고, 관권(官權)은 영원하다. 대한민국의 공무원 조직은 스스로 몸집을 불리고 힘을 키워왔다. 조직의 힘은 기수문화, 연공서열식 인사제도에서 비롯된다. 승진 적체가 심할 때 선배들의 용퇴는 후배들의 귀감이 된다. 후배들은 조직의 숨통을 터준 선배들의 취업을 도와 예의를 갖춘다. 이게 정권이 바뀌어도 공무원 조직이 살아남는 방식이다.

관피아


이렇게 틀어쥔 권력은 국가의 발전과 국민의 복리증진을 위해 사용해야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공무원들이 독점한 권력은 그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보호하는 데 쓰인다. 이익을 위해서라면 민간의 영역을 통제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관피아(관료 마피아)’란 말은 그래서 나왔다.

새누리당 이정우 의원이 5월 11일 발표한 17개 정부 부처 산하 공공기관 및 관련 협회 재취업 공무원 현황에 따르면 17개 부처의 4급 이상 고위공무원 출신 384명이 업무와 관련성 있는 기관·단체의 임원·간부로 취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재취업자가 가장 많은 건 산업통상자원부 출신이다. 

모두 64명 중 34명이 민간협회의 임원(회장·부회장·이사)으로 취업했다. 국토교통부와 농림축산식품부가 각각 42명으로 뒤를 이었고, 해수부 35명, 문화체육관광부 32명, 보건복지부 31명의 순으로 많았다. 이번 집계는 현재 재직 중인 인사들에 한해 이뤄졌다. 감사원과 경찰청, 해양경찰청, 소방방재청 등 독립기관과 지방자치단체 간부, 금융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등 정부 위원회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다.


퇴직공무원들이 자리를 마련하지 않은 곳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낙하산 병폐는 모든 분야에 걸쳐져 있다.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안전관리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자기 조직의 퇴직자를 위해 새로운 자리를 만드는가 하면 감독 기관의 지위를 이용해 민간단체 내부 직원이나 외부 전문경영인에게 돌아가야 할 자리를 차지하는 경우도 있다. 조직폭력배의 ‘구역 관리’ 방식을 쏙 빼닮았다. ‘마피아’라는 말 그대로다.


부처별 관피아 현황


대부분의 협회와 단체들이 별 문제가 없는 한 퇴직관료 출신들의 임기를 보장해준다. 대체로 2~3년마다 후임자로 교체된다. 정년보다 앞당겨 퇴직한 것에 대한 보상차원이다. 이렇게 관직을 벗고 얻은 첫 사회 경력을 발판삼아 유관기관이나 단체의 한 단계 높은 임원으로 가거나 정치권에 입문하는게 공식처럼 굳어져있다. 정치에 입문한 뒤에는 정권의 배려를 받아 새로운 낙하산으로 공공기관을 침투한다.

미래부와 관련된 한 협회 관계자는 “고위공무원들은 대부분 퇴직 후에 일할 자리와 임기가 보장돼있기 때문에 일반국민보다 적어도 2년 이상 정년이 늘어나 있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정치권과 관피아는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게 관례다. 정치권은 정부 산하 공공기관과 공기업을 차지하고, 관피아는 민간단체와 협회를 주로 제물로 삼는다. 양대 권력이 충돌하지 않는 이유다. 오히려 서로 자리를 주고받으며 공생을 택한다.

퇴직관료를 받지 않는 협회는 감독 기관으로부터 보복을 당하기도 한다. 해양업계에서는 한국선급을 대표적 사례로 꼽는다. 지난해 3월 한국선급 회장 선거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내부 인사인 전영기 기술지원본부장이 주성호 전 국토부 제2차관을 누르고 당선된 것이다. 창립 53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선급의 회장직은 정부 관료가 관행적으로 맡아왔다. 3개월 뒤 해수부는 한국선급에 대해 특별 지도감독을 벌였다. 업계에선 이를 두고 관행을 깬 것에 대한 보복성으로 받아들였다.


2007년 경기도는 한 차례 인사파동을 겪은 적이 있다. 이른바 ‘49년생 명퇴 거부 파동’이다. 1949년생 2~4급 공직자 21명이 관행적인 명예퇴직을 거부하면서 논란이 벌어졌다. 경기도청의 한 4급 공무원은 “명예퇴직을 선배의 미덕으로 여기는 분위기 때문에 정년을 채우려다간 자기 욕심만 채우는 사람으로 여겨져 조직에서 따돌림을 당한다”며 “자리가 보장되면 문제될 게 없지만 50대 중반에 실업자 신세가 될 것을 뻔히 알면서 퇴직을 결심하는 건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자 후배 공무원들의 용퇴 압박이 거세졌다. ‘강제 명퇴’라는 말이 돌 정도로 조직 차원에서 압박을 가했다. 실제로도 강제 명퇴가 공공연히 이뤄져왔다. 명예퇴직을 거부하면 직위를 해제해 업무에서 배제하는 방식으로 퇴직을 유도했다. 일종의 ‘왕따’인 셈이다. 한 퇴직자는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윗사람의 압력에 따라 명예퇴직을 한다’는 사직서를 제출한 사실이 공론화해 행정자치부와 감사원의 감사로 이어지기도 했다. 결국 1년가량 버티던 명퇴 대상자들이 줄줄이 명예퇴직을 신청하는 것으로 파동이 일단락됐다.


국무총리실에 근무하는 A사무관은 “민간협회나 단체 등 특수법인을 만들 때부터 퇴직공무원용 자리를 만들어둔다. 자리가 모자라면 협회를 쪼개거나 새로운 단체를 만들어 적체를 해소한다”고 전했다. 한마디로 민간단체는 공직사회가 소화할 수 없는 정년을 채워주는 대체재로 인식하는 것이다. 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1차 베이비붐 세대인 1955~1963년생의 평균 퇴직연령은 53세다. 이들이 국민연금을 받으려면 8~10년을 기다려야 한다. 소득공백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공무원은 예외다. 이 공백을 민간단체가 채워주기 때문이다.

기수에 따른 서열과 선후배 관계가 돈독한 고시 출신들만의 문화가 그들의 카르텔을 더 견고하게 만든다. 고시와 비고시의 학력과 능력 차이가 거의 없는데도 상위직급으로 갈수록 고시 출신을 선호하는 문화가 뚜렷하다. 인사와 예산, 정책을 기획하는 힘있는 부서의 장은 예외 없이 고시 출신이 독식해 대물림을 한다. 7·9급 출신은 일반행정·민원처리 등의 ‘허드렛일’을 도맡아 한다. 정책을 기획하고 조직을 관리할 수 있는 고위 공직자의 역량을 익히고 발휘할 기회가 처음부터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현재 고시 출신에 편중돼 있는 고위공무원 진출 기회도 다양화해야 한다. 지금도 제도는 있다. 2000년에 도입된 개방형직위제가 그것이다. 중앙부처의 실·국장급인 고위공무원은 정원의 20%, 과장급은 10% 범위에서 민간의 전문가를 임용할 수 있도록 했다. 

2006년에 도입한 고위공무원단 제도와 2011년 민간경력자 5급 일괄채용시험 등도 민간 인재를 등용해 공직자들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도입한 제도들이다. 그러나 기대했던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안전행정부 자료에 따르면 2012년 한 해 동안 고위공무원단과 과장급 공개채용을 통해 신규 임용된 외부인은 한 명도 없었다.

외부 전문가를 흡수하겠다며 도입한 개방형직위도 162곳 중 순수 민간 출신은 11명(6.6%)에 불과했다. 나머진 해당 부처에서 이동했거나 다른 부처에서 퇴직한 뒤 재취업한 경우였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 이후 더이상 관피아는 그냥 두고 넘길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번에는 적당한 선에서 흐지부지 넘어가지 않을 분위기다. 공직사회에서도 “사회가 용인할 수 있는 수준을 넘었다”는 분위기다. 안전행정부의 한 고위공무원은 “관피아란 이름으로 공무원의 전관예우 관행이 모두 까발려져 이대로 넘어갈 수 없게 됐다”며 “공무원제도를 어떤 식으로든 손대려 했던 정치권에서 이번 기회를 놓치겠느냐”고 했다.

그러나 현재의 명예퇴직 관행과 고시 카르텔을 그대로 두면 어떤 처방도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정년을 채우지 못하고 50대 초중반에 공직을 나가야 하는데 이들의 경력 단절을 막고 경력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또 고시 출신의 수를 줄이는 게 지금의 분위기에선 당장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조직 핵심부서를 장악한 상황에서 카르텔까지 근절할 수는 없을 것이다. 박경원 서울여대 행정학과 교수는 “관료들은 개혁에 내성이 강하고 웬만한 개혁을 쉽게 무력화한다”며 “관피아 구조를 깨려면 대통령이 직접 인사시스템 전반을 손봐야 한다”고 말했다.

공은 정부와 정치권으로 넘어갔다. 정권도 감히 손대지 못했던 관권(官權)을 개혁의 수술대 위에 올릴 수 있었던 건 ‘민권(民權)’의 힘이다. 세월호가 남긴 해묵은 과제를 어떻게 풀어내느냐에 따라 현 정권에 대한 민심이 판가름 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