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을 쓰는 또다른 민족 인도네시아의 찌아찌아족을 아는지? 한글을 수출해 한글을 정착 시키겠다고 정부가 발표한 것이 6년 전의 일이다. 현재는 한국인 교사 1명과 현지인 교사 2명이 500여 명의 학생을 지도하며 '고군분투'하고 있다는데, 어찌된 일인지 살펴보자.
▤열악한 상황의 찌아찌아족 교육 현실
“교실에 의자가 모자라 학생들이 바닥에 주저앉아서 공부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인도네시아 바우바우시(市) 찌아찌아족 주민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정덕영(55) 씨는 한글을 배우려는 아이들의 열정이 대단하다고 말한다. 그는 “수업 때는 다른 학년, 다른반 학생들까지도 함께 참여해 교실이 꽉 찬다”고 말했다. 왜 교실이 콩나물 시루처럼 학생들이 빼곡히 들어찰까? 수업을 받으려는 학생도 많지만 한글교사가 턱없이 부족한 탓이다. 정씨에 따르면 이 도시의 학생들 가운데 한글을 배우겠다고 나서는 학생은 500명을 헤아린다. 그런데 한글 교사는 달랑 세 명뿐. 그나마 한국인은 정씨가 유일하다. 정씨는 한글과 한국어를 배워 현지에서 한글 강사가 되고 싶어하는 젊은이가 많다”고 말했다. 이곳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한글을 익혀서 한국 기업에 취업하기를 꿈꾸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곳 젊은이들에게 한글은 단순히 기록이나 의사소통의 수단을 뛰어넘어 한국으로 연결하는 통로가 되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찌아찌아족이 주로 거주하는 바우바우시 소라올리오 지역에는 초등학교 5곳, 중학교와 고등학교 각 1곳 등 7곳의 교육기관이 있다. 이 가운데 한글 교육을 정규 과정으로 운영하는 학교는 두 곳. 찌아찌아족은 지난 2009년 자신의 말을 글로 표기하는 수단으로 한글을 받아들여 국내외에서 큰 화제를 불러왔다.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한글을 문자로 사용한다는 사실은 우리 국민들에게도 자긍심을 심어줄 만한 뉴스였다.
|현지에 있는 유일한 한국인 교사인 정덕영 씨와 찌아찌아족 학생들. 정씨는 국내의 민간단체에서 지원하는 후원금으로 체류비와 사업비 등을 충당하고 있다.
▤글 없는 소수민족에게 한글을 가르치다
|2009년 한글날 축사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찌아찌아족을 언급하며 “세종학당을 확대 설치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현재 바우바우시에 세종학당은 지난해부터 운영이 중단됐다.
2009년 한글날 행사에 참석한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축사에서 한글을 문자로 채택한 찌아찌아족을 언급하며 “한글이 문자가 없는 언어의 새로운 문자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전 대통령은 “세계 각국에서 한글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한글을 쉽게 배우고 한글을 세계에 널리 알릴 수 있도록 세종학당을 확대 설치해나갈 것”이란 약속까지 했다. 대통령의 발언이 있은 뒤로 중앙정부와 지자체, 대학들이 앞다퉈 찌아찌아족 마을을 찾아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현지 주민들은 한글 교육에 대한 기대감이 부풀어 오를 수밖에 없었다. 한글을 배우려는 이들도 그 해 50명에서 2012년에는 700명까지 늘어났다.
찌아찌아족의 한글 배우기는 국제 뉴스로도 타전된다. 미국 <뉴욕타임스>, 일본 <요미우리> 등 주요 외신이 비중 있게 이 소식을 다뤘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은 “사라질 위기에 처한 언어, 인도네시아의 한 섬에서 한글을 도입하다”라는 제목으로 이를 상세히 보도했다.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한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던 순간이다.
그러나 그로부터 6년이 흐른 지금은 이 지역에서 시끌벅적하던 한국의 공공기관이나 대학의 도움은 흔적조차 찾아 보기 어렵다. 세 명의 한글 강사에게 지급되는 급여와 편의 시설 비용도 모두 한국의 민간단체에서 후원하고 있다. 7만명을 헤아리는 찌아찌아족의 한글교육 수요를 감당하기엔 교육 시설이나 인력이 턱없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한때 한글 수출 1호로 불리며 화제를 불러모았던 이 지역의 한글 교육이 어쩌다 용두사미로 전락한 걸까? 한글교육 지원을 약속한 대통령의 발언은 허공에 연기로 사라진 걸까? 시계를 되돌려 6년 전의 상황으로 다시 돌아가보자.
찌아찌아족이 거주하는 바우바우시는 인도네시아에 통합되기 전까지는 600년 역사를 가진 부톤 왕국의 수도였다. 한때 30여 개에 달했던 부족언어는 대부분 사멸됐고, 현재 인구 약 7만여 명의 부족민 중에는 찌아찌아어(語)를 가장 많이 사용한다. 그들의 공식 표기문자는 로마자지만, 정작 말을 글로 표기한 적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15~16세기에 이슬람의 영향으로 아랍문자를 잠깐 사용한 적이 있는 정도다.
로마자는 고유명사를 쓸 때 일부 활용되지만 이 역시 찌아찌아어 원음을 그대로 옮기지 못한다고 한다. 찌아찌아 말은 경음과 마찰음, 파열음이 많아 로마자로는 표기하기가 어렵다. 예컨대 ‘바우바우’는 ‘BAU-BAU’로 표기되지만 찌아찌아어 특유의 발음 중에 ‘ㅍ’의 파열음은 한글이 실제 발음에 더 가깝게 옮겨줄 수 있다.
사단법인 훈민정음학회가 인도네시아 찌아찌아족에 주목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전태현 한국외국어대학교 말레이·인도네시아어통번역학과 교수는 2005년 국제학술대회 참석차 바우바우시를 방문했다가 문자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는 찌아짜아족을 처음 알게 됐다. 이 소식을 전 교수로부터 전해들은 훈민정음학회가 바우바우시와 함께 찌아찌아족에게 “한글을 사용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게 됐다. 찌아찌아족은 부족장 회의를 열어 한글을 자신들의 문자로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한글이 로마자와 함께 찌아찌아족의 ‘부족 문자’로 채택되는 순간이었다. 훈민정음학회 이문호 이사장은 “소수 언어를 보호하고, 마땅한 문자가 없어 문자 활동을 제약받는 소수부족에게 글을 나눠주는 사업의 일환으로 찌아찌아 한글 교육이 시작됐다”고 그 취지를 설명했다.
한국인 이외에 현지인도 한글 교육에 참여했다. 영어교사로 활동하던 인도네시아인 아비딘 씨는 2008년 서울대 어학 연구소에서 전문적인 한글 교육을 받은 인재다. 그는 2009년 7월 고국으로 돌아가 바우바우시의 까르야바루 초등학교에서 학생 50명을 상대로 한글 문자교육을 시작했다. 하지만 여기저기서 강의 요청이 늘어나면서 아비딘 씨만으로는 학업 수요를 채우지 못하게 되자 훈민정음학회는 2010년 3월, 한국인 교사를 별도로 채용해 현지에 파견하기에 이른다.
▤현지에 추진하겠다던 세종학당 설립은 ‘감감무소식’
|1. 찌아찌아족 학생들에게 가장 먼저 한글 교육을 시작한 아비딘 씨. 그는 2010년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한글 교육 시작 후 1년간 대부분의 학생이 수업을 완벽하게 소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 2. 한국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로서는 한글 수업시간이 늘 즐겁다. 까르야바루 초등학교에서 한글을 가르치고 있는 정덕영 씨. / 3. 훈민정음학회에서 발간한 <바하사 찌아찌아> 1권. 원암문화재단 이기남 이사장은 ‘찌아찌아족 한글 보급사업’ 초기부터 2 훈민정음학회를 지속적으로 후원해왔다.
그러면 이와는 별개로 2009년 한글날 축사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이 밝힌 “찌아찌아족처럼 세계 각국의 한글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한글을 쉽게 배우도록 세종학당을 설치하겠다”는 계획은 어떻게 됐을까? 세종학당은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와 문체부 산하기관 세종학당재단이 공동으로 세계 각지에 설립하는 한국어 교육기관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약속이 있은 지 몇 해가 지나도록 바우바우시의 세종학당 설립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이를 보다 못한 원암문화재단의 이기남 이사장이 2011년 5월 정부측에 세종학당 설립을 요청했다고 한다. 원암문화재단은 훈민정음학회에 재정 지원을 하는 관계로 찌아찌아족 한글 보급 사업에 초기부터 참여해왔다.
이에 비해 정부 산하기관인 세종학당재단은 규정상 외국 소재 세종학당은 국내 교육기관과 해외 교육기관이 공동으로 신청해야 설립이 가능하다는 규정이 있다. 결국 한국의 경북대와 인도네시아 무함마디아 부톤대가 손잡고 신규 지정을 신청했고, 그해 8월 ‘바우바우 세종학당’ 설립이 추진됐다.
하지만 그마저도 예산문제로 설립은 난기류에 휩싸였다. 세종학당재단의 지원금 5천만원이 3400만원으로 줄었고, 학당 신청자인 경북대마저 자금지원에 난색을 표했다. 나중에 결국 경북대가 자체 재원으로 예산을 확보해 이듬해인 2012년 1월에는, 마침내 바우바우 세종학당의 문이 열렸다.
그런데 대통령의 공언이 있었음에도 1년 8개월이 지나도록 정부부처에서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는 점은 뭔가 석연치 않을뿐더러 이례적인 일이다. 이와 관련해 세종학당 재단 학당지원부 박충식 부장은 “재단이 개편되면서 당시 재단에 근무했던 사람이 아무도 없어 정확한 사유를 확인할 수 없다”며 “준비기간이 필요했던 것이라고 추정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영화는 길지 않았다. 떠들썩했던 분위기와는 달리 개원 7개월 만에 세종학당 간판을 내린 것이다. 문체부는 보도자료를 내고 “경북대가 재정 여건 악화 등을 이유로 운영 철회의사를 통보했다”고 밝혔다. 이에 경북대는 “사업 ‘철수’가 아닌 ‘계약기간 만료’였다”고 반박했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이기남 원암문화재단 이사장은 3개월마다 출국과 입국을 반복해야 하는 까다로운 비자 문제와 현지의 영수증 발급 인프라 부재 등이 맞물려 경북대가 1년의 사업기간이 지나면서 재신청을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바우바우 세종학당 사업이 표류할 조짐을 보이자 정부의 주먹구구식 일처리에 비난이 쏟아졌다. 이에 문체부는 부톤대와 파트너를 이룰 국내 다른 대학 물색하면서 2013년부터 세종학당의 한글 교육은 다시 재개됐다. 하지만 이 대학 역시 1년의 기간을 채우곤 조용히 철수했다. 2015년 현재 세종학당재단의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바우바우 세종학당의 기록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이와 관련해 세종학당재단 학당 지원부 최장호 선임은 “1년 계약이 만료된 후 부톤대학과 국내 대학이 차후 운영의사를 밝히지 않아 2014년 최종 철수됐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관심을 표명한 사업이라면 세종학당재단 측에서 운영 주체를 적극적으로 발굴하는 게 상식적이다. 이와 관련해 세종학당재단은 “세종학당재단이 먼저 국내 기관과 현지 기관에 의사를 묻는 일은 없다”면서 “세종학당 사업에 참여하고 싶은 기관들이 신규 지정 신청을 해야 개원이 가능하다”는 설명만 되풀이한다. 비판 여론이 거셌던 과거에는 “지속적 운영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하던 태도와는 사뭇 다른 대응이다. 정권이 바뀌면서 전임 대통령의 관심사업도 우선순위에서 밀려난다는 인상을 풍기는 이유다. 한글 수출 1호 사업인 찌아찌아족 한글 보급은 결국엔 이렇게 표류하게 된 것이다.
▤서울시와 민간단체에서 한글교육 지원 중
중앙정부와 세종학당재단이 어정쩡한 입장을 보이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서울시는 이곳 바우바우시와 비교적 일관된 한글보급 사업을 진행한다. 서울시는 2009년 12월 훈민정음 학회와 함께 바우바우시 관계자들을 초청해 두 도시 간 ‘문화예술 교류와 협력에 관한 의향서’를 체결했다. 양측은 이 자리에서 한글 보급사업, 문화예술, 행정 등 세 분야에서 협력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특히 서울시는 바우바우시 교사를 초청해 한국어 연수 기회를 주고, 국내 예술단체를 바우바우시 문화 행사에 파견하기도 했다.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은 “찌아찌아족의 한글 사용이 성공적으로 정착되도록 정부와 협조해 한글 나눔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실제로 서울시는 2011~2014년까지 인도네시아인 현지 교사를 초청해 한글 연수를 실시 중이며, 올해도 6주간의 연수 계획을 하고 있다. 언어 교육을 하기에는 연수 기간이 짧다는 지적과는 별개로 시장이 바뀌고서도 일관되게 사업을 추진하려는 의지는 평가받을 만하다.
2009년부터 시끌벅적하게 추진된 찌아찌아족 한글 보급은 정부와 산하기관, 대학이 뒤로 빠지면서 지자체와 민간단체, 개인의 몫으로 남게 됐다.
민간단체로는 훈민정음학회를 후원하는 원암문화재단을 들 수 있다. 원암문화재단은 일명 ‘찌아찌아 프로젝트’라 해서, 찌아찌아어 한글 교과서 <바하사 찌아찌아> 1권, 2권을 펴냈으며, 한글을 교육할 수 있는 ‘뿌삿 원암 찌아찌아’ 건물을 현지에 세우고 있다. 이기남 원암문화재단 이사장은 “부톤대학에 ‘뿌삿 원암 찌아찌아’가 건립되면 한국어과를 개설할 계획”라며 “현재 인도네시아 중앙정부의 허가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현지에서 한글을 가르치는 정덕영 씨는 2009년부터 본격화된 한글 수출 1호 사업의 현장을 지키는 유일한 한국인이다. 그는 현지인 한글 강사 두 명과 함께 500명이 넘는 찌아찌아족 한글 교육을 책임진다. 국내에서는 이를 후원하는 ‘한국찌아찌아문화교류협회’도 설립돼 있다. 200명 정도의 회원이 매달 5천원에서 많게는 10만원까지 후원하고 있지만 정씨의 체류비와 사업비, 현지인 강사 두 명의 급여를 충당하기도 빠듯하다. 정씨는 “문자를 나누는 일은 개인이 하기 벅찬 일”이라며 “뜻이 있는 지자체, 단체, 개인들이 한글 교육에 함께했으면 좋겠다”고 소망을 밝혔다.
국가적 사업으로까지 커졌던 한글 보급사업은 이처럼 특정단체나 개인이 떠받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현지 찌아찌아족의 한글 사랑과 수요는 식을 줄을 모른다. 부족장 회의까지 열며 한글을 문자를 받아들인 찌아찌아족은 가볍게 달아오르고 쉽게 식는 한국 정부의 변덕에서 어떤 희망을 찾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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