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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세월호 참사를 통해 본 한국의 압축성장의 부작용

세월호 참사


세월호 대참사가 일어나자 여러 곳에서 한국을 고도의 ‘위험사회’로 보는 논의들이 제기됐다. 위험사회(Risk Society)는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이 1986년에 같은 제목의 책을 출간하면서 널리 알려진 현대 사회를 파악하는 핵심적 개념이다. 현대의 선진 사회가 누리는 놀라운 풍요가 극히 심각한 위험을 대가로 이뤄지는 것이라고 파악한 위험사회론이 등장하면서 서구의 사회학에서는 현대 사회를 풍요와 위험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보는 관점의 전환이 이뤄졌다. 


위험사회


울리히 벡


서구 사회학에서 위험사회(Risk Society) 개념은 현대 사회의 위험에 관한 중요한 연구로 평가받고 있지만 각각 미국과 독일이라는 선진국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서 이것을 바로 한국 사회에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한국은 미국이나 독일 같은 위험사회라기보다는 일어나기 어려운 사고가 빈번히 발생하는 ‘사고사회(Accident Society)’이기 때문이다.


원래 울리히 벡이 말하는 위험사회는 풍요의 원천인 과학기술에 의해 풍요와 함께 위험도 계속 생산되는 사회를 일컫는 개념이다. 즉 사회가 투명하게 작동하면서도 과학기술이 가진 특성 때문에 사고의 위험이 계속 생산되는 ‘선진 사회’를 위험사회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던 것이다. 이와 달리 한국은 구조적인 사회비리와 부정부패 때문에 일어나기 어려운 사고가 계속 일어나는 사고사회로 개념지을 수 있다. 


여기에 과학기술의 특성에 따른 위험사회의 문제도 극히 심각한 상황이므로 후진적이면서도 악성 위험사회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우리는 사고사회와 비리사회라는 관점에서 이번 세월호 참사를 살펴보고 성찰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독일과 한국은 같은 고위험 기술을 사용하고 있지만 그것을 사용하는 사회의 상태가 투명사회와 비리사회로 크게 다르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한국과 같은 악성 위험사회는 탐욕에 의한 비리가 너무나 만연해서 사고를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고를 적극 추구하는 비정상적인 사회다. 


특히 이번 세월호 참사는 비리 세력이 이 나라를 지배하면서 무고한 시민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다는 사실을 참혹하게 입증했다. 때문에 한국 사회의 진정한 선진화는 오직 비리의 개혁을 통한 사회 질의 향상을 통해서만 이뤄질 수 있다.



세월호


세월호 참사는 세계 10위권의 무역대국이라는 화려한 겉모습 뒤에 가려진 한국 사회의 일그러진 민낯을 드러냈다. 한국의 삶의 질은 세계 40위권이며, 삶의 질을 지탱하는 사회의 질도 세계 40위권으로 척박하다. 경제력과 사회 질의 괴리는 한국 사회의 심각한 문제적 특징이다. 


그러나 사실 이런 사회적 문제는 오랜 내력을 갖고 있다. 세월호 대참사는 단순히 일부의 잘못에서 비롯된 사고가 아니라 훨씬 깊은 역사-구조적 내력을 갖고 있다. 우리는 이 역사-구조적 내력을 성찰하고 그것을 개혁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무엇보다 깊이 주목하고 성찰해야 하는 것은 바로 현대 한국 사회의 형성과정이었던 압축성장이라는 문제다.

압축성장은 1961년의 5·16 쿠데타 이후 1980년대까지 빠르게 추진된 경제성장을 뜻한다. 박정희 정권은 원천적으로 결여된 정치적 정당성을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보완하려 했고, 이를 위해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당시 한국 사회는 한국전쟁의 폐허를 딛고 경제성장의 도약 단계에 접어들고 있었으며, 제3세계 근대화론을 통한 미국의원조는 실제적인 경제성장의 도약을 위한 자원을 제공했다. 박정희 정권은 이런 상황을 최대한 활용해서 경제성장을 주도해 성과를 냈으나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커다란 사회적 문제들을 낳을 수 밖에 없었다.

첫째, 압축성장은 결과주의를 낳았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공하는 게 최고’라는 사고를 조장했다. 그 과정에서 비리가 만연했고 불법이 방조됐다. 결과주의는 윤리의 타락을 야기하기 쉽다. 결과는 중요하지만 결과로 모든 것을 정당화하는 결과주의는 인간의 파멸을 낳을 수 있다. 편파적인 결과를 무력으로 강요하는 경우에 결과주의의 문제는 더욱더 커질 수 있다. 사실 박정희 정권 자체가 결과주의의 표본이기도 했다.

둘째, 압축성장의 결과주의는 경제성장을 절대선으로 여기는 경제지상주의로 정당화됐다. 박정희 정권의 경제성장은 ‘조국 근대화’를 내걸고 GNP(국민총생산)의 성장을 절대시하는 방식으로 강행됐다. 이에 대해 경제학자 유인호는 일찍이 1973년에 박정희 정권이 ‘GNP교’를 퍼트리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이처럼 GNP의 성장을 절대시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자연·역사·공동체 등의 소중한 가치를 파괴해버렸다. 정부와 기업이 모두 ‘GNP교’에 포획되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경제성장만 추구하게 됐고, 돈을 숭배하는 배금주의가 만연했다.

셋째, 압축성장은 비리사회를 만들어낸 산파였다. 압축성장의 결과주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공하는 것을 뜻했기 때문에 사회 전체에서 작은 연줄이라도 챙기고 확대하면서 비리가 만연하게 됐다. 압축성장에 따라 거대한 이권들이 형성됐고, 덩달아 연줄과 비리 역시 더욱 커졌다. 그 결과 압축성장은 단순히 빠른 경제성장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자원으로 해서 강력한 비리사회를 형성하는 결과를 불러왔다. 이런 점에서 경제적으로 놀라운 성과를 낸 압축성장은 사실은 사회적으로 극심한 부실성장이었다.


안전 훈련


하나의 사회가 실제적으로 유지되고 작동하는 것은 구조나 제도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오래전에 사회학자 고 김진균이 지적했듯이 ‘연줄 결속체’, 즉 인적 연결망에 주의해야 한다. 비리사회에서는 다양한 인적 연결망이 사회 전반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혈연·지연·학연은 대표적인 기반이지만 한국에서는 ‘고시’라는 폐쇄적인 제도를 통해 국가에 의해 형성된 관연(官緣, 관피아)과 법연(法緣, 법피아)이 가장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관피아와 법피아는 각각 국가가 공인한 행정 전문가와 법률 전문가로서 비리사회를 떠받치는 핵심적인 주체이므로 관피아와 법피아의 작동을 차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불행히도 개발독재의 유산인 압축성장의 문제는 민주화 시기에도 제대로 해결되지 않았다. 


자본주의의 지구화에 따른 무한경쟁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그리고 무엇보다 1997년 11월에 한국 경제를 덮친 외환위기 사태에 따라, 압축성장의 문제는 신자유주의와 결합되어 낡고도 기괴한 모습을 갖추게 됐다. 신자유주의는 소유의 자유를 절대화하고 효율의 향상을 내세워서 불평등을 크게 악화시켰다. 그리고 신자유주의는 규제 완화의 이름으로 어렵게 지켜지고 있던 안전(安全)까지 더욱더 취약하게 만들었다. 


세월호 참사는 안전 요원들이 비용 절감이라는 명목으로 해고되고, 선원들이 대거 비정규직으로 바뀌고, 이익 증대의 명목으로 무모한 선령(船齡) 규제 완화가 강행되면서 발생했다. 신자유주의는 압축성장의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다. 세월호 참사는 규제 완화라는 이름으로 비리를 제도화하고 과학의 얼굴을 빌려 비리를 합법화한 우리 사회의 모순적이고 기형적인 구조의 산물이다.

세월호 참사와 같은 비극의 재발을 막으려면 이제 압축성장과 신자유주의의 문제를 직시하고 철저히 개혁해야 한다. 규제가 암이 아니며 무분별한 규제 완화가 암이다. 적절한 정부의 규제가 없다면, 시장의 효율은 19세기 미국의 ‘강도자본주의’가 잘 보여줬듯이, 악마의 효율이 되고 만다. 비리구조에 힘입어 경제성장을 이룰 수는 없으며, 설령 이룬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다수를 노예화하는 양극화의 경제성장일 뿐이다. 사회 구성원들이 안전하고 안정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경제성장도 지속될 수 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서 우리는 정치와 경제에 대해 근원적인 성찰을 추구해야 한다. 사회의 운영을 규정하고 있는 것은 정치와 경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람들이 사람답게 살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일찍이 루소가 <사회계약론>에서 갈파했듯이 제 아무리 강력해도 사람들의 자유를 억압하는 나라는 잘못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제아무리 크게 성장해도 사람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경제는 잘못된 것이다. 압축성장과 신자유주의가 만든 배금주의 사회는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 하루빨리 뒤집어진 수단과 목적의 관계를 바로세워야 한다.

세월호 참사는 한국 사회의 형성과 실상을 깊이 살펴볼 수 있게 하는 확대경과도 같다. 비리와 무능이 빚은 무참한 사고로 목숨을 읽은 304명의 희생자와 그 가족들을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이런 놀라운 참사의 재발을 막기 위해, 세월호 대참사가 보여주는 한국 사회의 형성과 실상을 잘 살펴봐야 한다. 외국의 연구결과를 그대로 수입하고 적용하는 것은 문제를 오도하기 쉽다. 한 세대에 걸친 개발독재와 압축성장, 그리고 그것을 통해 형성된 한국 사회의 특징을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세월호


세월호 참사는 정부에 대한 불신을 크게 키웠다. 정부의 가장 기본적인 존재 이유는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다. 1776년 7월 4일의 미국 ‘독립선언문’은 2장에서 다음과 같이 천명했다. 


“다음과 같은 사실을 자명한 진리로 받아들인다. 즉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고, 창조주는 몇 개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했으며, 그 권리 중에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가 있다. 이 권리를 확보하기 위하여 인류는 정부를 조직했으며, 이 정부의 정당한 권력은 인민의 동의로부터 유래하고 있는 것이다. 또 어떤 형태의 정부이든 이러한 목적을 파괴할 때에는 언제든지 정부를 개혁하거나 폐지하여 인민의 안전과 행복을 가장 효과적으로 가져올 수 있는, 그러한 원칙에 기초를 두고 그러한 형태로 기구를 갖춘 새로운 정부를 조직하는 것은 인민의 권리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비리를 막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비리를 조장하고 사람을 구조하지 않고 죽음을 방치했다. 세월호 참사는 304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나 그 참혹한 죽음에 소름 끼치는 공포와 고통을 느꼈다. 세월호 참사를 보며 많은 사람은 공황에 가까운 충격에 빠졌다. 


해경이 바로 출동해서 열심히 구조활동을 벌였고, 침몰하는 세월호 주위에 배가 많았기 때문이다. TV에서는 학생들을 모두 구조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해경도 방송도 모두 엉터리였다. 해경은 살려달라고 절규하는 사람들을 외면하고 엉터리로 구조했고, 방송국은 해경의 거짓말을 그대로 보도했을 뿐이었다.

박근혜 정부는 해경의 해체와 국가안전처 신설로 국민의 불신을 해소하고자 하지만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대책이다. 해경은 아직도 바닷속에 있는 실종자들을 찾고 있는데 해경을 해체하겠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발상이다. 게다가 국가안전처의 신설과 같은 접근은 비리와 무능 때문에 재난관련 제도가 작동하지 않아서 사고가 일어난 것을 제도가 없어서 사고가 일어난 것처럼 국민들에게 문제를 잘못 인식하게 할 수 있다. 


이번 참사의 본질적 문제인 관피아·법피아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관피아·법피아의 이익을 키우게 하는 커다란 문제를 안고 있다. 정부가 조급한 전시성 정책을 남발한다면 정부에 대한 불신만 더욱더 키울 것이다. 그보다는 실종자를 찾는 노력과 비리를 발본색원할 대책이 무엇보다 먼저 시행돼야 한다.

우리는 무엇보다 그 무고한 희생자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세월호 참사가 너무나 아프게 드러내 보여준 여러 문제도 잊지 말아야 한다. 치유는 추모로 시작된다. 그러나 실질적인 치유는 기억하고 개혁하는 것이다. 희생자들의 공포와 고통고통을 계속 기억하고, ‘살인’을 저지른 자들을 꼭 엄벌하고, 그 위에서 비리사회와 사고사회의 문제를 철저히 개혁해야 한다. 


세월호 대참사는 결코 모두의 잘못이 아니다. 이 나라를 사고 지옥으로 만드는 기업·정부·연줄(관피아·법피아 등)을 모두 발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이를 위해 비리 세력이 권력을 농단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시민의 각성과 실천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선진화


세월호 참사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된다. 어떤 고통과 고난이 있더라도 삶은 계속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래 저기 멀리에 있는 것이 아니고, 희망도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온 세상을 다니며 찾았던 희망의 파랑새가 바로 집 곁에 있었다는 이야기는 희망은 우리가 삶 속에서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아무리 어려워도 살아야 하니, 어려울수록 더 나은 미래를 향한 희망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수많은 사람이 피와 땀을 흘리며 애써서 한국은 식민·분단·전쟁·독재의 고통을 이기고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의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그 이면에 도사린 군사주의는 안전문화를 억압했고, 국가주의와 집단주의는 순응성만 키웠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시민들은 적극적, 주체적 태도로 순응성을 깨고 안전문화를 강화해야 한다. 시민들이 안전과 원칙을 무시하고 순응성의 벽 안에 갇혀 있으면 비리사회의 개혁은 꿈에 그칠 뿐이다.

시민들이 자신을 지키고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비리 세력에 맞서 싸우면서 민주주의의 확대와 심화를 이뤄야 한다.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해 시민의 힘으로 정부 개혁과 정치 개혁을 이뤄야 한다. 취약한 민주화로 말미암아 여전히 비리사회와 사고사회의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지만 우리는 그럴수록 민주화의 심화를 통해 진정한 선진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더 나은 미래를 향한 희망을 품을 이유는 충분하다. 


더 나은 미래는 현실에 대한 구체적인 인식과 실질적인 대책을 추구하는 것으로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가 보여준 것은 삶과 죽음, 생생한 현실의 문제였다. 그러니 우리의 인식과 실천도 생생한 것이지 않으면 안 된다.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발본적인 제도개혁을 꼭 이루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