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지방도시에서나 터줏대감 노릇을 하던 시골 빵집의 맛에 도시인들이 푹 빠졌다. 유명 프렌차이즈 제과점들과 오랜 전쟁에서 살아남아 거꾸로 서울의 유명 백화점에 체인점을 내는 토박이 빵 브랜드도 속속 생겨난다. 이름난 시골 빵의 고소한 맛과 향기에 이끌려 빵집 앞에 여행자들이 장사진을 친 모습도 낯선 풍경이 아니다. 켜켜이 쌓이고 녹아든 전통과 추억은 도시인의 향수를 자극한다. 작은 동네빵집으로 시작해 지역의 대표 브랜드가 된 팔도의 빵집을 찾아가봤다.
성심당은 1956년 대전역 앞에 개업한 이 지역의 가장 오래된 제과점이다. 지금은 중구 은행동 본점을 비롯해 대전역과 롯데백화점에 분점을 두고 있다. 대표 상품은 튀김소보로다. 겉으로 보기엔 울퉁불퉁한 여느 곰보빵과 다르지 않다. 시중의 빵집과 다른 점은 팥소가 듬뿍 들어있고, 기름에 한 번 튀겨낸다는 점이다. 한입 베어 물면 고운 팥 앙금의 단맛과 기름에 튀겨진 빵의 고소함이 입 안을 가득 채운다.
튀김소보로의 역사는 198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아버지로부터 가업으로 물려받은 임영진(61) 대표는 성심당을 대표할 신제품 개발을 고민하다가 ‘소보로빵을 튀겨보자’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튀김 빵이 생소하던 시절 성심당의 튀김소보로는 소비자들의 호기심을 모으기에 충분했다. 기름솥에서 꺼내 식히려고 둔 빵을 손님들이 재촉해 바로 판매하기 시작한 게 어느덧 대전의 명물로 자리 잡은 것이다. “대전 사람들은 시장 이름은 몰라도 ‘튀·소’는 안다”는 우스갯소리가 허언이 아니다.
성심당의 전통은 비단 빵에만 있지 않다. ‘나눔의 철학’을 경영의 첫째 원칙으로 삼고 있다. 아르바이트생을 포함한 모든 직원에게 3개월에 한 번씩 이익의 15%를 배분한다. 또 아동·노인복지시설에 빵을 꾸준히 기부하는 것은 물론 그날그날 팔고 남은 빵은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에게 공짜로 나눠준다. 58년 전 처음 문을 열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성심당의 전통이다. 임 대표는 “여러 기업과 백화점들로부터 프랜차이즈 제안을 받기도 했지만 대전 이외 지역으로 확장할 생각은 없다”고 했다. “향토기업으로 발전해 더 많은 이가 대전을 찾아오도록 기여할 것”이기 때문이란다.
성심당의 빵맛을 보려면 반드시 대전을 찾아가야 한다. 튀김소보로는 물량이 적어 택배주문을 받지 않는다. 판타롱 부추빵도 상할 것을 염려해 대전 지역 안에서만 택배주문이 가능하다.
위치: 대전광역시 중구 은행동 145번지 문의: 1588-8069
대표상품: 튀김소보로(1500원), 판타롱 부추빵(1800원)
전체 인구의 절반이 일본인이었을 정도로 ‘신식화’ 된 도시였던 1920년대 전북 군산에는 우리나라에서 문을 연 첫 빵집 ‘이즈모야’가 있었다. 해방과 동시에 군산에 살던 일본인들이 고국으로 돌아가면서 주인 잃은 이즈모야를 고(故) 이석호 씨가 인수했다. 대번에 일본어 간판을 떼고 ‘이성당(李成堂)’이란 간판을 내걸었다.
이성당의 맛은 ‘기본에 충실한 맛’이다. 대표 제품은 평범한 앙금빵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일반 앙금빵에 비해 앙금이 두 배 가량 들어있다는 것이다. 빵의 겉반죽이 만두피처럼 얇으면서 꽉 찬 앙금 때문에 단단하고 두툼한 게 특징이다. 반죽은 100% 호남평야에서 추수한 우리 쌀로 만든 쌀가루를 이용한다.
이미정 홍보실장은 “무엇보다 가격이 저렴하고 좋은 재료를 아끼지 않으니 소비자의 만족도가 높다”고 했다. 앙금빵 외에도 다양한 과자와 전병류도 옛 맛을 잊지 못하는 어르신들에게 인기가 높다.
이성당이 만드는 빵은 하루에 2만 개에 달한다. 택배로 전국에 배달하는 물량만 4천 개에 이른다. 택배로 앙금빵을 받으려면 전화로 주문한 뒤 한 달쯤 기다려야 한다. 앙금빵과 함께 이성당의 베스트셀러인 야채빵은 주문 후 두 달을 기다려야 맛을 볼 수 있다고 한다. 4대째 사업주인 김현주(52) 대표는 “무엇보다 가격이 1만~2만원 선으로 저렴해서 어른들께 선물하기에 부담이 없다”고 말했다.
이성당은 주식회사로 어엿한 기업의 면모를 갖췄다. 김 대표의 남편은 이성당에 빵의 원재료를 공급하는 ㈜대두식품을 경영하고 있다. 올해 5월 5일에는 서울 잠실 롯데백화점에 첫 분점을 내고 ‘ 서울사람’들의 입맛 공략에 나섰다. 한때 군산의 제 1 번화가였던 중앙동은 구 조선은행과 군산세관, 월명공원 등 근대의 정취가 물씬 풍긴다. 이성당은 그 중심에 있다. 해방 직후 거리를 가득 메웠을 이성당의 앙금빵 굽는 냄새도 옛 것 그대로다.
위치: 전라북도 군산시 중앙로 177 문의: 063-445-2772
대표상품: 앙금빵(1200원), 야채빵(1400원)
수제 초코파이 하나로 전국 미식가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PNB풍년제과는 2013년 8월 처음으로 서울에 분점을 냈다. 서울 입성 2년 만에 현대백화점 압구정·목동·삼성동 무역센터점 등 서울의 대표 부촌에 있는 백화점 3곳에 입점해 제과업계의 샛별로 떠올랐다. 백화점 3곳에서만 하루 2천~3천 개의 초코파이가 팔려나간다. 이런 성공에 힘입어 지난 4월에는 전주역에도 분점을 냈다.
동네빵집이었던 풍년제과가 전국에서 명성을 날린 건 10년 전 개발한 수제 초코파이 덕분이다. 풍년제과의 초코파이는 오리온제과의 히트상품인 동명의 제품과 모양부터 다르다. 반으로 자른 빵 사이에 딸기잼과 모카크림, 호두를 넣고 겉에 초콜릿을 얹었다. 크기도 어른 손바닥 정도로 크고 두툼하다. 카카오 함량이 높은 고급 초콜릿을 사용해 맛이 깊고 진하다.
풍년제과의 초코파이는 처음에는 주목받지 못했다. 곰보빵이나 단팥빵 한 개에 500원 하던 시절에 풍년제과 초코파이 가격은 700원이었다. 개당 200원 정도였던 오리온 초코파이와 비교돼 소비자의 외면을 받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프랜차이즈 제과점의 잇단 등장으로 폐업 위기로 내몰렸다.
이런 풍년제과를 살린 건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였다. 전주를 방문했던 여행객들이 풍년제과의 초코파이 맛을 보고 이를 트위터와 페이스북, 개인블로그 등에 올리면서 온라인 입소문이 급속히 퍼졌다.
풍년제과의 초코파이는 평일 5천 개, 주말에는 1만 개 이상 팔려 나간다. 전주 여행객들로부터 비빔밥과 함께 ‘전주에서 꼭 먹어봐야 할 음식’으로 꼽힌다. 본점은 한옥마을과 가까운 경원동에 있다. 한옥마을 안에도 판매대가 두 곳 있다. 초코파이와 센베이는 전화 주문을 통해 택배로 전국에서 맛볼 수 있지만 새로운 상품인 ‘붓세, 화이트파이’는 유통기한이 하루에 불과해 직접 방문해야 먹을 수 있다.
위치: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경원1가 40-5 문의: 063-285-6666
대표상품: 수제 초코파이(1600원), 붓세 화이트 파이(1600원)
어른 주먹만 한 속을 비운 바게트 안에 넘칠 듯 샐러드가 가득 채워져 있다. 웬만한 성인의 한끼 식사로도 손색 없을 것 같은 이 빵의 이름은‘공룡알빵’이다. 원래 이름은 ‘프렌치 샌드위치’. 프랑스 사람들이 가벼운 점심식사로 즐겨 먹는 빵이다. 도톰하고 둥근 모양에 바게트의 갈라진 표면이 공룡알 화석과 비슷하다 해서 공룡알빵이란 이름이 붙었다. 광주광역시 동구 충장로에서 40년째 빵을 굽는 궁전제과를 전국에서 손꼽히는 제과점 반열에 오르게 해준 일등공신이다.
1973년 남편을 여의고 홀로 식료품 가게를 운영하던 장려자(91) 여사가 지금의 본점 자리에 과자점을 연 게 궁전제과의 시초다. 제빵 기술자 2명과 판매 점원 2명을 두고 시작한 가게는 날이 갈수록 손님이 늘었다. 힘에 부친 장 여사는 큰아들에게 가업을 승계하라고 권유했다. 당시 큰아들은 집을 떠나 포항제철에 다니고 있었다.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장사에 나서라는 어머니의 요구를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아버지를 대신해 어머니와 동생 4명을 챙겨야 하는 그에게 한편으론 기회일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는 안정보다 도전을 선택했다. 그가 바로 2대 사장 윤재선(70) 대표다.
궁전제과는 두 차례 위기를 겪었다. 1985년 크리스마스를 일주일 앞두고 전기 합선으로 큰불이 났다. 옆에 있는 점포 12개까지 모두 태웠다. 이 화재로 직원 1명의 목숨도 잃었다. 그는 재기를 위해 온 힘을 쏟았다. 우리나라보다 제과기술이 앞선 일본에서 만든 제빵기계를 도입해 인건비를 아꼈다. 매장을 리모델링하고 고객이 원하는 빵을 직접 담는 셀프서비스를 시작했다. 당시에는 쇼케이스에 빵과 케이크를 전시하고 고객에게 꺼내주던 게 동네빵집의 흔한 풍경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 프렌차이즈 제과점의 등장으로 다시 위기가 찾아왔다. 매출이 절반으로 떨어졌고, 손님들의 걸음이 뚝 끊겼다. 그래도 신선한 재료를 고집했고, 매일 빵을 구워 내놓는 시간을 어김없이 지켰다. “신선한 재료로 정직하게 만들고, 고객과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철칙 때문이었다.
그렇게 20년이 지난 뒤 궁전제과는 프렌차이즈 제과점도 넘보지 못하는 장인의 반열에 올랐다. 이 가게의 대표상품인 공룡알빵은 가까이에 있는 전남대 학생들과 여고생들에게 특히 인기가 높다. 성인 남자의 손바닥만한 나비넥타이 모양의 나비파이는 아메리카노 커피와 환상의 궁합을 자랑한다. 모두 택배를 이용해 전국으로 배송한다. 홈페이지를 통해서도 주문을 접수한다.
지금은 충장로 본점을 비롯해 두암동·화정동·진월동·운암동·흑석동 등 광주시내 5곳에 직영점을 둔 향토 프랜차이즈 기업으로 성장했다. 어지간한 광주시민이라면 궁전제과를 모르는 이가 없다. 광주에서 학교를 다녔거나 살았던 이들이 때때로 광주를 찾아와 궁전제과를 들르는 경우도 많다. 고향이 광주인 임신 중인 며느리를 위해 제주도에서 공룡알빵을 사러 온 시아버지의 사연 등 궁전제과의 빵에 깃든 추억은 소소하지만 사람의 향기를 풍긴다.
위치: 광주광역시 동구 충장로 93-6 문의: 062-222-3477
대표상품: 공룡알빵(2500원), 나비파이(2000원)
서울에도 전통의 명맥을 잇는 동네빵집이 있다. 족발로 유명한 장충동의 태극당이다. 1963년에 개관한 장충체육관과 1969년에 문을 연 타워호텔 등 1960~70년대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장충동 한가운데 태극당이 있다. 태극당 건물은 1973년에 지어졌다. 1946년부터 그 자리에 있던 태극당은 건물을 지은 뒤에도 떠나지 않고 장충동을 지키는 터줏대감이 됐다.
당시 서울에서 학교와 직장을 다녔던 젊은이들에게 태극당은 ‘만남의 장소’였다. 단팥빵 한 접시를 놓고 대학생 남녀들이 미팅하는 옛 영화 속 모습이 태극당의 모습이다. 고 신창근 창업주가 1970년대에 개발한 모나카 아이스크림은 태극당을 우리나라 최고 제과점의 반열에 올렸다. 휴대전화기만 한 납작하고 부드러운 과자 사이에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꽉꽉 채워 넣었다. 한입 배어 물면 아이스크림이 녹으면서 바닐라향과 진한 우유의 고소함이 입안에 퍼진다.
어른 남자의 주먹 두 개를 합친 것보다 큰 ‘야채사라다’도 모나카와 더불어 태극당의 명성을 지탱하는 장수 상품이다. 각종 채소와 감자를 으깨 만든 샐러드가 가득 들어있다.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해 한 끼 식사로도 손색이 없다. 신경철 태극당 대표는 “아버지가 사다 주시던 빵의 맛을 못 잊어 찾아오시는 2세대 고객들이 많다”고 전했다.
태극당의 전통을 지키려는 고집은 포장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초창기에 사용했던 주황색 포장지를 아직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그 포장지를 유지하는 게 더 많은 비용이 들지만 옛것 어느 하나도 소홀히 생각하지 않고 이어가겠다는 태극당의 의지가 포장지에 담겨 있다. 철저히 방문객들을 상대로 장사를 한다. 전화나 인터넷 주문은 물론 어지간한 유명 제과점들은 다 하는 택배 발송도 하지 않는다.
태극당은 그동안 유명세에 비해 매스컴에 오르내리지 않았다고 한다. 창업주와 2대 경영자인 신 대표의 부친이 매스컴에 노출되는 걸 지극히 꺼려해서다. 오직 ‘빵’에만 집중한 장인정신의 상징적 대목이기도 하다. 그러나 태극당의 깊은 역사가 제대로 조명되지 못한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태극당의 단골들도 이런 점을 느끼고 있다. 최근에는 고객들이 의기투합해서 태극당의 역사를 정리하는 프로젝트 팀을 만들기로 했다.
위치: 서울 중구 동호로 24길 7 문의: 02-2279-3152
대표상품: 모나카 아이스크림(1500원), 야채사라다(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