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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충격과 고통, 분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대구 지하철 참사, 삼풍백화점 붕괴, 세월호 침몰 등을 겪은 사람들 뿐만이 아니라 일반 인구의 8%가 한 번 이상 경험하게 된다고 한다. 만약 제대로 대응하지 못 할 경우 일상생활은 거의 불가능해진다. 더 심각한 것은 사회적으로 공격성이 표출 된다는 점이다. 정신적 외상을 경험하였다고 해서 모든 사람에게 같은 증상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고, 스트레스와 취약성 간의 상관관계가 발병에 영향을 준다고 한다. 이제는 사회문제로 떠오른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대해 알아보자.

 

문명의 이점이 ‘속도의 발명’이라면 문명의 그림자는 ‘재난의 발명’이다. 더 빨리 달리고, 날고, 움직이고, 보낼 수 있게 될수록, 우리는 더 크고, 더 무섭고, 더 끔찍한 재난에 노출된다. 날이 갈수록 그 범위와 파급력이 커져가는 재난의 이면에는 끊임없이 상처받고, 고통받으며, 점점 ‘예전의 자신’을 잃어가는 인간의 깊은 상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가로놓여 있다.

과학기술문명의 허를 찌르는 철학자 폴 비릴리오는 <미지수>에서 이런 명언을 남겼다. “범선이나 증기선을 발명한다는 것은 곧 난파를 발명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열차의 발명은 탈선의 발명이며, 자가용의 발명은 고속도로상에서 벌어지는 연쇄 충돌의 발명이고, 공기보다 무거운 물체(비행기나 기구)를 날게 만든다는 것은 추락의 발명이다.”

우리는 더 빠르고 더 세련된 기계를 발명할 때마다, 더 무섭고 더 끔찍한 재난을 함께 발명하고 있는 셈이다. 문명이 발전할수록 재난의 파괴력도 함께 커지면서, 우리는 편리한 기계문명의 이점을 누리는 대신 항시적인 대재난의 위험을 떠안고 살아가게 됐다. 속도의 발명은 재난의 발명으로 이어지고, 그 뒤를 따르는 것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비롯한 갖가지 정신적 고통이 됐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질병’의 반열에 오르지 못했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이제 정신의학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다루어지는 질병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이렇듯 21세기로 접어들면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급격하게 늘어난 또 다른 이유는 ‘문명의 발전’과 함께 ‘현대인의 삶의 패턴’이 변화했기 때문이다. 점점 더 개인화돼 가는 현대인의 생활패턴 속에서 사람들은 정신적 고통을 ‘공동체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문제’로 경험하게 됐다. 과거의 대가족제도와 마을공동체 사회 속에서 사람들의 고통은 ‘우리 모두의 문제’였지만, 이제 1인가구가 급증하고 ‘혼밥’과 ‘혼술’이 급격히 대중화돼가는 현대사회에서는 개인의 고통은 ‘개인이 혼자 처리해야 할 문제’로 제한돼 버리고 말았다. 사람들은 고통을 드러내어 말하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하게 됐으며, 타인의 고통에 관심을 갖는 것을 ‘오지랖 넓은 행동’으로 폄훼하게 됐다. 우리는 문명의 속도를 얻는 대신 언제라도 추락, 붕괴, 테러 등의 대규모 재난으로 인한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을 뿐 아니라, 그 커다란 재난 앞에서 결국 집으로 돌아오면 ‘나 혼자 내 고통을 돌봐야 하는 현실’에 직면하게 됐다.

재난이 일어났을 때 처음에는 온 나라가 들썩이다가 점점 ‘당신의 상처는 당신이 알아서 처리하시지요’라는 쪽으로 돌아서는 사회의 냉정한 반응을 지켜보는 피해자들. 그들은 추락, 붕괴, 화재 등의 1차 트라우마보다 더 끔찍한 2차 트라우마, 3차 트라우마를 겪게 된다. 도와주지 않는 이웃, 공감하지 않는 타인, 상처 입은 사람들을 향해 각종 유언비어를 지어내 비난하는 사람들. 재난 이전까지만 해도 ‘설마 나에게 저런 일이 일어날까’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막상 재난의 당사자가 되면 재난보다 더 무서운 ‘타인의 냉대’를 겪곤 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의학적 치료도 중요하지만, 가장 먼저 바뀌어야 하는 문화는 바로 이런 ‘집단적 냉소’ 문화다. 이것은 ‘이제 그렇게 힘들고 고통스러운 문제는 그만 생각하고 싶다’는 집단적 방어기제의 발로지만, 그 방어기제로 인해 누군가는 더욱 커다란 상처를 입을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치명적인 고통 중 하나는 ‘재난 이전’과 ‘재난 이후’가 결코 같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것, 즉 ‘재난 이전의 나로 절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의 참혹한 자기인식이다.

하지만 ‘내 주변에 나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심리적 안전장치야말로 이런 슬픔을 겪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위안이 될 수 있다. 심각한 사고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을 겪었을 때, 그 기나긴 극복과 치유의 과정 속에서 무엇보다도 ‘나는 원래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기억해내는 것이 중요하다. 내 두 손으로 나를 챙기고, 내 두 발로 내 인생의 길을 걸어왔던 나에 대한 기억을 잊지 않는 것이야말로 치유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육체와 정신이 분리되는 듯한 ‘얼음 반응’

 

제1차 세계대전 당시의 치료소.

 

살다 보면 어깨 위에 산 전체를 걸머지는 고통과 벼락처럼 마주할 때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믿었던 관계가 깨지고 곤두박질하듯 무일푼 신세가 된다. 당혹스럽기도 하고 힘에 겨워 무릎이 꺾여 넘어진다. 그럴 때 사람들의 반응은 거의 같다. 일어나는 방법을 잊었다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다시 일어나고 어떻게 걸을 수 있는지 알고 싶어한다. 살고 싶어서다.

트라우마 현장 경험이 누구보다 많은 치유자 정혜신의 처방은 간명하다. 걱정할 거 없다. 지금 일어설 수 없으면 일어서려 하지 않아도 된다. 더 주저앉아 있어도 된다. 꺾였을 때는 더 걸으면 안 될 만한 이유가 있는 거다. 그걸 인정해 줘야 한다. 충분히 쉬고 나면 저절로 걷게 된다. 당신은 원래 스스로의 다리로 걸었던 사람이다. 그걸 잊지 않는 게 중요하다.



“모든 인간의 어린 시절 ‘나’는 온전한 나, 치유적으로 건강한 나의 원형이다. 나는 본래 그렇게 사랑스런, 사랑받아 마땅한 혹은 사랑받았던 사람이다. 절대적으로 괜찮은 존재였다.” -이명수, <내 마음이 지옥일 때>, 해냄, 2017.

 

감당하기 어려운 재난을 겪었을 때, 사람들은 이렇게 고백하곤 한다. 몸과 마음이 분리된 것처럼,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고.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었다고. 이렇듯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반응 중 하나가 바로 얼음 반응이다. 재난을 당했을 때의 증상은 주로 ‘이성적인 반응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정신’과 ‘좀처럼 뜻대로 되지 않는 육체’가 분리되는 것이다. 불의의 사고로 누군가 죽는 장면을 눈앞에서 목격한다든지, 대형 화재나 폭발 사고 등이 일어났는데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을 때, 사람들은 뭔가 필요한 조치를 적극적으로 해내기보다는 얼음처럼 몸이 굳어지는 경험을 한다. ‘이러면 안 되는데, 뭐라도 해야 하는데’라는 생각과 달리, 몸이 좀처럼 움직여지지 않는 것이다. 이런 상태를 ‘얼음 반응(freezing response)’, 또는 긴장성 부동(不動)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재난에 대한 전문적인 훈련이 되어 있지 않은 모든 사람이 겪기 쉬운 신체 반응이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바로 이 ‘얼음 반응’ 때문에 사후적인 죄책감을 느끼고, ‘내가 좀 더 잘 대처했더라면 그때 그 재난의 피해가 훨씬 적어졌을 텐데’라는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는 점이다. 얼음 반응은 우리의 신체와 정신을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방어기제다. 곰 같은 거대한 맹수가 지나갈 때 맞서 싸우기보다는 차라리 죽은 척하는 것이 살아남을 확률이 높은 것처럼, 인간의 육체는 수많은 경험을 통해 ‘위기 상황에서 섣불리 움직이는 것보다는 가만히 있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학습해왔다. 물론 이런 방어기제가 언제나 효율적인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신체는 ‘얼음 반응’을 함으로써 재난의 충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있는 것이다.

<내 인생을 힘들게 하는 트라우마>를 쓴 임상심리상담사 바빗 로스차일드는 ‘얼음반응은 본능이다’라는 사실을 환자에게 이해시킬 수만 있다면, 환자 스스로 죄책감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다고 말한다. 투쟁, 도피, 얼음 반응은 자율신경의 움직임에 따른 생존 반응이라는 것이다. ‘내가 적에 맞서 싸울 수 있다’는 판단이 순간적으로 들면 ‘투쟁’을 할 수 있지만, ‘싸우기보다는 도망가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 때는 ‘도피’를 택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다.


“네 잘못이 아니야”


 

당사자들은 재난 보다 무서운 ‘타인의 냉대’를 호소하곤 한다. 1998년 6월 월남전고엽제전우 회원 5000여 명이 처우개선을 위해 전국대회를 열었다.

 

강간은 강간범의 잘못이며 결코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 학대는 학대자의 잘못이며 결코 학대받는 자의 잘못이 아니라는 점을, 생존자 스스로가 깨달아야 한다. 영화 <굿 윌 헌팅>에서 아버지에게 학대당한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주인공에게 의사가 “네 잘못이 아니야!(It’s not your fault!)”라고 반복적으로 말하는 과정처럼, 오래전에 일어난 일을 마치 어제 일어난 것처럼 생생하게 기억하는 사람, 그리고 그 고통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피해자’가 아닌 ‘생존자’의 감각을 일깨워줄 필요가 있다. 그는 결코 수동적으로 피해를 입은 자에 그치는 것이 아니며, 그 힘든 상황 속에서 살아남은 자, 생존자라는 것만으로도 승리자임을 일깨워줄 필요가 있다.

재난이 내 몸을 덮쳤던 그 순간, 내가 얼마나 두려웠고, 내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를 고백하는 일은 중요하다. 그 고통을 나눌 사람이 있다는 것, 그 두려움을 고백할 사람이 있다는 것이야말로 치유의 닻이 되어준다. 아픔을 고백하고 공감해줄 사람이 있다면, 고난의 바다를 향해 아무리 멀리 항해한다 하더라도, 다시 돌아와 마음의 닻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바로 그런 ‘공감의 파트너’가 스스로 되거나, 그런 공감의 대상을 상상하게 해주는 것이 치유자의 역할이다.

그렇게 아직도 ‘그때 그 시간의 충격과 고통, 분노’에 고착돼 있는 환자에게 상담사는 이런 제안을 한다. 당신이 가장 믿고 의지할 만한 사람, 당신이 어떤 이야기든 다 할 수 있는 친구를 상상해보라고. 당신은 그런 사람에게 당신의 고통을 이야기한 적이 있느냐고. 게일은 슬픔에 잠겨 고백한다.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 얼마나 두려움에 떨었는지,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했다고. 그는 다른 사람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자신이 건재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살아남은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이야기했을 뿐이었다. 정작 돌봐야 할 자신의 고통은 누구에게도 내보이지 못한 채, 그는 ‘나는 살아남았으니 얼마나 축복받은 사람인가’라는 긍정적인 메시지만을 전달하려 했던 것이다. 상담사는 게일에게 ‘당신이 가장 믿는 사람을 상상하면서, 그에게 당신이 겪은 모든 고통을 털어놓아보면 어떨까’라고 제안함으로써 그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다. 게일은 상담사를 상상 속의 친구로 삼아 그날 자신이 느꼈던 온갖 분노와 수치심, 고통과 두려움을 모조리 털어놓을 수 있었던 것이다.



마음껏 고통을 호소하라

 

3년 전 세월호 참사는 그 누구보다 생존자들에게 뼈아픈 고통을 남겼다. 전남 목포신항 세월호의 선수에 ‘세월’ 글자가 선명하다.

 

그때 그 장소의 공포와 분노에 고착돼 있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환자에게 필요한 또 하나의 감각은 바로 ‘과거와 현재가 전혀 다르다는 느낌’이다. 당신은 이제 그때 그 시절의 위험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것, 이제 그 사건은 당신에게 완전히 종결된 것이라는 점, ‘그때 그 사건은 더 이상 현재의 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것이야말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치료에서 매우 중요한 조치다. ‘그때는 피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피할 수 있다’는 느낌, 그때 그 끔찍한 사건은 더 이상 일어나고 있지 않다는 실재감(here-and-now reality)을 강화하는 것이야말로 환자에게 용기를 북돋워 줄 수 있다. 예컨대 강간이나 폭행을 당할 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사실 때문에 괴로워하는 환자들에게는 ‘그때는 움직일 수 없었지만, 지금은 스스로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몸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명징하게 느껴보는 것이야말로 효과적인 트라우마 케어가 될 수 있다.


 

‘내가 나임을 느끼는 것’, ‘나와 나 아닌 것의 경계를 구분하는 것’ 또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서 중요한 치유법이다. 특히 신체적인 학대나 공격으로 인해 발생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는 신체적 통합의 감각, 나와 나 아닌 것 사이의 경계를 분명히 나누는 감각이 상실되는 경우가 많다. 타인의 신체 일부가 자신의 몸에 닿기만 해도 극심한 스트레스를 느끼는 환자들의 경우에도, 피부를 통해 ‘나와 나 아닌 것의 경계’를 느끼는 훈련이 중요하다. 이것은 영역감(sense of boundary)를 되찾는 방법이다. 양손으로 자신의 몸 전체를 천천히 문지르도록 한다든지, 의자가 엉덩이에 닿는 느낌, 신발이 발에 닿는 느낌, 손바닥을 허벅지에 올려놓는 느낌 등 다양한 감각을 느껴보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촉감적 훈련은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되찾아주고, ‘이것이 바로 나구나’, ‘여기서부터 여기까지가 바로 나구나’하는 영역감을 되살아나게 한다. 그럼으로써 ‘나는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과거의 감각, 생생하고 구체적인 자아에 대한 감각을 회복시켜주는 것이다. 나 스스로 지켜야 할 나, 내가 돌봐야 할 나 자신에 대한 느낌을 되찾는 것이야말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극복하는 길이다.



촉감 훈련으로 살아있다는 감각 깨워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환자에게 필요한 것은 ‘내가 좀 더 용감했다면 그런 일을 겪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으로부터의 탈출이다.

 

바빗 로스차일드는 <내 인생을 힘들게 하는 트라우마>에서 신체적 접촉 자체를 너무도 두려워하여 친구조차 없는 헬렌이라는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을 이렇게 설명한다.

헬렌은 상담사인 바빗에게 ‘어깨를 쓰다듬거나 건드리지 말라’고 요구한다. 상담이 끝난 뒤 환자에게 작별인사를 하기 위한 제스처조차도 거부했던 것이다. 피부와 근육 자체가 지나치게 민감한 헬렌을 위해 상담사는 근력 증강운동을 제안한다. 팔굽혀펴기와 윗몸일으키기, 도보 운동을 통해 근력을 키우고, ‘원치 않는 접촉을 피하는 방법’과 ‘다른 사람의 손이나 어깨를 자신의 신체에서 떼어내는 방법’을 가르쳐줬다. 헬렌도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타인과 접촉하는 것은 불가피한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럴 때 자연스럽게 타인의 신체에서 자신을 분리해내는 법을 알게 된 헬렌은 이제 상담사와 함께 ‘사회적 접촉에 익숙해지는 법’을 배웠다. 상담사와 신뢰를 쌓아가면서 타인이 자신의 어깨에 손을 올리거나 등을 토닥이는 것이 결코 불쾌한 것이 아님을, 오히려 매우 기분 좋고 행복한 접촉도 있다는 것을 배우기 시작하자 헬렌은 점점 밝고 따스한 미소를 짓게 됐다. 오히려 상담사가 악수를 하거나 자신의 어깨를 두드리는 것을 바라게 된 것이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환자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내가 그 끔찍한 사고 이전과는 너무도 달라져버렸다는 느낌, 더 이상 내 삶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는 느낌, 내가 좀 더 용감하고 유능했더라면 그런 일을 겪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으로부터의 탈출이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치료는 결국 외부의 자극을 견디는 내적 힘을 기르는 것이다. 그것은 신체적 자극을 융통성 있게 받아들이는 힘, 나아가 부정적인 자극조차도 긍정적인 자극으로 바꿀 줄 아는 지혜를 포함하는 것이기도 하다. 영어 표현 중에 ‘thin skinned(비판이나 모욕 등에 상처를 잘 받는다는 의미)’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환자의 상태를 정확히 표현한다. 즉 신체적 피부뿐 아니라 정신적 피부도 매우 얇은 상태여서 아주 작은 자극이나 상처도 참지 못하게 되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런 아픔을 겪고 있는 환자들에게는 일종의 ‘고정장치’가 필요하다. 상처를 받은 이후에도, 마음이 몸 밖으로 달아나버린 것 같은 극심한 해리 증상을 겪고 난 뒤에도, ‘나는 나 자신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믿음을 회복시켜줄 고정장치가 필요하다. 그것은 주로 가까운 타인과의 신뢰와 애정을 기반으로 한 애착관계에서 비롯된다. 또한 트라우마를 일으킨 외적인 사건 자체를 바꿀 수는 없어도, ‘사건의 내적인 의미’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기르는 일이기도 하다.

정여울 - 작가, 문학평론가. 1976년생. 서울대 독문과 졸업 후 같은 대학에서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을 마쳤다. 2004년 <문학동네>를 통해 등단했다. 저서로 <공부할 권리> <내가 사랑한 유럽 TOP 10>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마음의 서재> <헤세로 가는 길> <그때, 나에게 미처 하지 못한 말> 등이 있다. 제3회 ‘전숙희문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