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세일러 교수가 10월 9일(현지시간) 노벨 경제학상 수상 발표가 난 후 시카고대학교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는 역대 수상자 중 가장 대중적인 학자로 꼽힐 듯하다. 리처드 세일러(72) 미국 시카고대학 교수는 [넛지]와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선택] 등 책을 여러 권 써내 대중으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다. 그는 수상 발표가 난 후 기자회견에서 “40년 전 연구를 시작할 때 황무지 같았던 행태경제학 분야가 인정받았다는 점이 가장 기쁘다”고 말했다.
경제학과 심리학의 가교 놓은 세일러 교수
행태경제학은 오랫동안 주류 경제학의 이단아였다. 주류 경제학은 경제 주체가 장기적인 비용과 편익을 합리적으로 분석해 최적의 선택을 한다고 가정하고 이 기초 위에 이론을 쌓아 올렸는데, 세일러 교수를 비롯한 행태경제학자들은 인간 행동의 비합리성과 그 비합리성의 양태를 연구했기 때문이다.
노벨위원회는 그를 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한 판단에 대해 “세일러 교수는 경제학과 심리학을 잇는 가교를 놓았다”고 밝혔다. 노벨위원회는 “세일러 교수는 제한된 합리성과 사회적 선호 및 자제력의 결여가 개인의 결정과 시장의 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설명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심리적 회계, 보유 효과 등을 연구했다.
심리적 회계 이론은 같은 돈이라도 사람들이 심리적으로 다른 이름을 붙여 다르게 취급한다는 것이다. 또 손실을 기피하는 태도를 통해 사람들이 소유하지 않을 때보다 소유하고 있을 때 같은 물건을 더 아낀다는 보유 효과도 설명했다. 이 밖에 사람들이 새해 결심이나 노년을 위한 저축에 실패하는 중요한 이유를 인간이 단기적인 유혹에 굴복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넛지]는 인간의 심리적인 특성을 이해하고 여기에 맞춰 인센티브를 제공하거나 제도를 설계하면 적은 비용으로 특정한 행동을 유도할 수 있다는 주제를 담았다. [승자의 저주]에서는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하고도 지나치게 많은 비용을 지불한 탓에 결국 위험에 빠지는 상황을 분석했다. ‘승자의 저주’라는 용어는 이후 기업 인수·합병(M&A) 과정에서 자주 사용되고 있다. 가장 최근 저서인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선택]에서는 불완전한 인간의 잘못된 선택과 그 해결책을 풍부한 사례와 함께 제시했다.
행태경제학과 그 개척자들
처음 행태경제학을 연구하기 시작한 학자로는 세일러 교수 외에 허버트 사이먼 교수가 꼽힌다. 1978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사이먼 교수는 인간이 제한 없이 합리성을 추구한다는 전통적 경제 이론이 현실과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경제학은 제한된 합리성을 가진 인간을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의사결정에 미치는 감정의 영향도 중시해 연구했다. 또 2002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니얼 카너먼 교수도 행태경제학을 본격적으로 발전시킨 학자로 평가된다. 카너먼 교수는 경제학에 심리학과 심리학적 실험기법을 도입했다.
경제학의 대체재에서 보완재로
경제학은 인간의 합리성을 전제로 하지만, 행태경제학이 연구되기 전의 모든 경제학자가 사람의 비합리성을 완전히 외면한 것은 아니다. 경제학의 토대를 놓은 애덤 스미스도 인간 행위를 일으키는 심리가 온전히 합리적이지는 않음을 언급했다. 그는 예컨대 [도덕감정론]에서 “우리의 상황이 나빴다가 좋게 바뀔 때의 기쁨보다 좋았다가 나쁜 쪽으로 바뀔 때의 고통이 더 크다”고 말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리처드 세일러 미국 시카고대 교수의 저서 [넛지]와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선택] 등이 독자들의 관심 속에 서점마다 재고가 동이 났다. 10월 11일 오후 서울의 한 대형 서점에 [넛지]의 포스터가 전시돼 있다. / 사진:연합뉴스
행태경제학은 현재 경제학에서 입지를 얻었지만, 체계는 덜 잡혔다고 여겨지는 듯하다. 행태경제학은 과거 경제학계에서 경제학의 ‘대체재’로 도외시됐다. 그러나 행태경제학 덕분에 경제 주체의 의사결정과 행동 가운데 더 다양한 면이 이해 영역으로 들어왔다. 행태경제학은 이제 경제학의 ‘보완재’로서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
재조명된 [넛지], 유용함은 제한적
[넛지(Nudge)]는 리처드 세일러 교수가 2009년에 캐스 R. 선스타인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와 함께 써낸 책이다. 그가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하면서 이 책에 다시 관심이 집중됐다. ‘넛지’는 ‘팔꿈치로 가볍게 쿡쿡 찌르다’ ‘설득하다’는 뜻의 동사다. 두 저자는 이를 똑똑한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힘이라는 의미로 활용했다. 행태경제학과 넛지는 어떤 관계인가. 행태경제학은 합리성 외에 인간을 움직이는 심리적인 경향을 연구해 알아낸다. 그렇게 인간 본성의 결을 알아내면 사람들이 그 결을 따라 움직이도록 부드럽게 유도하는 정책을 만들 수 있다. 그렇게 부드럽게 유도하는 정책이 바로 넛지다. 세상의 중요한 문제 가운데 넛지로 풀 수 있는 것이 과연 몇이나 될까? 난제일수록 해법의 도출이 어려운 게 아니라 당사자들 사이에 이해의 배분이 힘들다는 점을 고려할 때, 넛지로는 쉬운 문제만 해결 가능하지 않을까? 행태 경제학은 ‘제한된 합리성’에 주목한다. 행태경제학이 대안으로 제시하는 문제 해결 방법도 효과가 제한적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