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리얼 크리에이터] 김광수 스튜디오 케이웍스 대표는 11년간 재직한 학교를 떠나 현장에 뛰어든 그는 2004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 올해 개관한 ‘부천 아트벙커 B39’ 등 손대는 프로젝트마다 주목받고 있습니다.
건축계 예술가라 불리는 김광수 스튜디오 케이웍스 대표를 만나볼까요?
흔히 인간이 도시를 만든다고 한다. 건축가는 인간이 만들어가는 환경인 도시의 변모를 중재하고 인간과 도시의 관계에 개입한다. 스튜디오 케이웍스, 커튼홀의 김광수 대표는 문명사적 관점에서 도시 생명과 도시의 주인인 공간 사용자에 대한 통찰에 기초해서 도시와 인간을 연결하는 역할을 자임한다.
‘건축계의 예술가’, ‘협업에 능한 건축가’라는 평을 받아온 그는 최근 도시 재생의 관점에서 진행되는 다양한 공공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공공성과 수익성, 역사성과 효율성 등과 같이 양립하기 어려운 가치들의 조화를 실현하고 있다. 그는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찾는 과정에서 이상적인 건축과 현실적인 제약 사이의 접점을 탐험하듯 즐기며 변주해나간다.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와 예일대학교 건축대학원에서 수학했고 네덜란드 OMA 렘 쿨 하스 건축사무소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으며 2002년 이후 11년간 이화여자대학교 건축학부 교수로 재직했다. 소위 모범적인 교수이자 건축가였던 그는 4년 전 현장에 충실하겠다는 생각으로 과감하게 학교를 떠나 개성 넘치는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2004년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을 비롯하여 국내외 수많은 전시에 초대되었으며, 손대는 프로젝트마다 평론가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그의 주된 관심사는 무거운 것과 가벼운 것, 성스러운 것과 세속적인 것이 어떻게 만나고 조화를 이루는지를 풀어내는 일이다. 상반된 것들을 중첩시키고 공존시키는 방법을 찾아가면서 한국의 도시 문화에 대한 통찰력 있는 작업을 이어온 것이다.
올해 개관한 [부천 아트벙커 B39] 복합문화공간 프로젝트는 쓰레기 소각장이었던 기존 건물의 기능에 따라 세워진 골조를 그대로 이용하면서 특유의 건축미학적 요소들을 더하여 대표적인 혐오시설을 누구나 가보고 싶어 하는 장소로 탈바꿈시킨 사례로 주목을 받고 있다. 마치 시간이 만들어낸 광물을 땅속 깊숙한 곳에서 캐내어 반짝반짝 광을 내듯이, 그의 작업은 우리가 살아온 역사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만나게 한다. 김광수 대표가 지닌 도시와 도시인에 대한 질문을 따라 대화를 나눴다
공간사랑 소극장에서 건축 사랑 싹터
도시 진단은 미추 따지기 전에 이해해야
건축을 하기로 결심한 것이겠지요. 중학교 2학년 때 김수근씨가 건축한 [공간사옥] 안에 있던 공간사랑이라는 소극장에 연극을 보러 갔어요. 오태석 선생님의 ‘약장수’라는 공연이었는데 누나를 따라 갔었죠. 자그마한 건물에 들어서는 순간 그곳에 스며들던 햇빛이며 공간의 구성에 너무 놀라서 집에 돌아온 후에도 조명을 켠 연극 무대보다 훨씬 오래 기억에 남았어요.
그 후로 건축에 대한 관심을 키우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아무리 힘든 순간이 와도 건축이 싫거나 그만두고 싶은 적은 없었으니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가 조각가(김영중, 1926~ 2005)이셨고 집에 오시는 손님들도 명창 김소희, 동양화가 석성 김형수, 『얄개전』을 쓰신 소설가 조흔파 선생 등 문화예술계 인사가 대부분이어서 자연스럽게 보고 배운 것들이 있었을 겁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님이 순수예술을 하셔서 저는 좀 더 쓰임새가 있으면서 창의적인, 즉 비슷하면서도 다른 분야인 건축을 택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건축계의 예술가’라는 평가와 함께 비평가들의 관심도 많이 받으십니다. 그만큼 남다른 관점이 있으시다는 말이겠지요. 자신의 건축이 지닌 예술성은 무어라고 생각하십니까?
건축은 예술, 기술, 인문, 사회제도적 차원 등이 공존하는 업무 영역이기 때문에 건축을 다른 이름으로 부르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제가 그런 평을 듣는 이유는 아마 흔히 접할 수 없는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때문이겠지요. 저는 질문을 좋아해요.
좋은 질문 하나가 흔한 정답 백 개보다 훨씬 낫다고 항상 강조합니다. 인류 문명의 역사는 해답이 아니라 질문이 이끌었다고 생각하거든요. 좋은 질문은 준비된 답으로 해결되지 않으므로 답을 찾는 사람을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건축가로서 저의 질문은 ‘성(聖)과 속(俗)’, ‘무거움과 가벼움’에 관한 것입니다.
건축의 역사는 성스러운 것에서 세속적인 것으로, 무거운 것에서 가벼운 것으로의 흐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건축의 기원이라고 볼 수 있는 스톤헨지나 피라미드는 무겁고 성스러운 건축물이었습니다. 이 후로 콘크리트와 철골조를 사용하게 되면서 건물의 형태와 건축의 양상이 크게 달라져왔지요.
이제는 가운데가 텅 비고 엄청나게 가벼운 벌룬 스트럭처까지 볼 수 있을 정도로 가벼운 건축이 가능해졌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기술적 진화의 산물이지만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의 산물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이러한 가치의 변화에는 저항이 나타나기 마련이서 우리 사회는 가벼움과 무거움, 성과 속 사이의 긴장관계 속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작업은 대체로 이런 세속적이고 가벼운 것과 성스럽고 무거운 것들에 대한 고민의 결과물입니다. 예를 들어, 합천에 있는 영상테마파크는 영화 세트장으로 꾸며 놓은 옛날 건축물이 가득한 곳인데 사람들은 마치 자신의 근원을 찾아 나서듯 그곳에서 기념사진을 찍곤 합니다.
방문객들을 처음 맞이하는 곳을 어떻게 설계할까 구상하다가 그리스 신전의 형태를 빌려와서 신성에 대한 열망을 반영한 현대식 연예인 신전을 만들어야겠다는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무겁고 근엄했을 거란 오해와 달리 경쾌한 다신교 사회였던 그리스의 면모를 영상테마파크에 적용한 것이지요.
건축가로서 자신을 설명하는 키워드는 무엇일까요?
상반된 것들의 조화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상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현실적인 제약을 정확하게 보고 그 안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답을 찾는 방식이 이상적일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작업뿐 아니라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다움을 유지하고 발전하려면 시간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도시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하셨습니다. 무엇을 얻으셨고 무엇을 전하고 싶은지요?
사실 우리가 사는 도시는 인류 역사상 대단히 이례적인 환경입니다. 불과 100~200년 전만 해도 인구 천만 명이 넘는 도시를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좀 멀찍이서 바라보면 지금의 도시 형태를 평가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서울만 해도 인구가 집중하면서 엄청난 속도로 팽창한 도시입니다. 그러한 특이성이 지금의 서울을 만들었습니다. 쉽게 가치를 평가하거나 판단하면 오류를 범하기 쉽습니다. 간판이 너저분하게 붙어 있고 교회 첨탑과 지하 술집이 공존하는 근린생활시설 같은 건물들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이것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독특한 건축 형식입니다. 그냥 보기 싫다고 하는 건 사실 말이 안 됩니다.
근린생활시설은 시민들의 욕구를 그대로 떠받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모두의 숨통을 터주는 역할을 하는 겁니다. 아파트나 다가구주택 밀집지역뿐 아니라 업무 시설들도 근린생활시설이 떠받치고 있는 걸 생각하면 그 자체로 의미 있는 도시 구성요소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강남대로가 70m인데 바로 뒷길은 5m 도로입니다. 엄청난 차이지요. 이 차이가 그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산소통 역할을 하는 겁니다. 20층 건물에 근무하는 화이트칼라가 점심에 국밥이라도 편하게 한 그릇 먹을 수 있는 공간의 가치를 누가 함부로 틀렸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이렇듯 도시에 대한 진단은 미추나 선악을 따지기 이전에 이해하려는 시각이 중요합니다.
서울시 공공건축가로도 활동하셨는데 공공성과 수익성이 양립할 수 있나요?
식견 있는 건축가는 공공성을 중요하게 고려합니다. 과거에는 건축주 입장에서 이기적인 건축물을 원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요즘은 달라졌습니다. 이기적인 건축물이 장사도 잘 안 되거든요. 청담동에 성처럼 지어 올린 건물들을 생각해보세요.
보기엔 좋을지 모르지만 외부와 단절된 건물들을 짓다 보니 거리의 이야기가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상권이 죽는 겁니다. 이윤을 추구할 때도 공공적인 측면을 생각해야 하는 시대가 왔습니다. 그리고 위세를 떨치는 대형 건물의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대형 건물을 짓더라도 공간을 나누어서 마치 골목길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하지요.
기업 주도적인 프로젝트에서도 기존의 도시 맥락과 맞춰가려는 시도가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가로수길이나 한남동처럼 요즈음 사람들이 몰려드는 거리의 특징은 도시의 문맥을 활용하고 거리를 향해 열려 있는 건물을 짓는 것입니다. 이제는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을 만나게 함으로 써 도시적 경험을 디자인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사용자 또는 도시생활자의 입장에서 건축의 가치를 어디에서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십니까?
한국인은 집에 관심이 아주 많은데 이상할 정도로 인테리어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대부분 아파트에서 살고 이미 지어진 집을 사다 보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사실 건물의 익스테리어와 인테리어는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습니다. 건축은 이 둘을 아우르는 총체적인 미학과 기술의 결과물입니다.
주택 프로젝트를 맡을 때마다 다루는 문제이긴 하지만, 특히 작년에 판교에서 주택을 진행하면서 이 문제에 대해 많이 고민했습니다. 어떻게 안과 밖을 아우를 것인가? 판교의 도시설계 지침은 열린 마을을 지향하도록 권고하지만, 실제 그 지역은 고급 주택가임에도 불구하고 건물에 창문이 없고 집의 내외부가 철저히 분리되어 있습니다. 밤이 되면 유령마을처럼 길을 걷기 힘듭니다.
이런 결과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건물의 외형과 실내를 상반된 형식으로 설계해서 이 문제를 넘어보려고 했습니다. 외부에는 격자, 내부에는 아치형을 사용해서 대비를 만들고, 거실을 마당으로 느낄 수 있도록 개방감을 부여하고, 거실에서 이어지는 복도에 동굴 입구와 같은 원초적 감각을 더했습니다.
제 생각에 현대 도시생활자에게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들을 조화시키는 방법을 찾아가는 것은 심리적으로도 매우 중요합니다. 이것은 건축가만의 몫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행복을 위해 모두가 추구해야 할 삶의 방식입니다.
즉문 즉답
1. 10대 시절 장래 희망은?
건축가 또는 로봇공학자. 만드는 걸 좋아했다.
2. 20대 시절 가장 몰두했던 일은?
건축. 배우는 게 즐거웠다.
3. 40대에 품은 인생의 목표는?
작업 영역의 지속적 확장. 죽을 때까지 작업을 하면 정말 행복하겠다.
4. 경쟁력의 원천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속도 조절. 집중과 이완을 안배하고 통제하는 노하우.
5. 앞선 인물(부모나 의미 있는 사람 누구든)로부터 받은 물적, 심적 유산은?
아버지, 조각가 김영중. 예술적 환경에서 사랑받으면서 성장하게 해주셨다.
6. 현재의 나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은?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와 로베르트 발저(1878~1956). 상반된 이 두 사람을 돈독한 친구처럼 느낀다
.
7. 좋아하는 책이나 물건은?
니체 『이 사람을 보라』, 발저 『산책자』. 물건에 대한 집착은 없다.
8. 충전이 필요할 때 찾는 장소는?
집 또는 북한산 밤 산행.
9. 휴식할 때 주로 하는 행동은?
요즘은 명상하듯이 동양화를 그린다.
10. 앞으로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글씨로 이루어진 건물. 미술관 프로젝트에서 제안했는데 실제로 지어보고 싶다.
11. 한국의 청소년이나 청년에게 하고 싶은 말은?
꿈꾸지 말고 경험하라. 뻔한 지식을 기반으로 예단한 상상력은 오히려 방해물이다.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일과 삶을 발명해보라.
신수진 심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