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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PC는 물론 옷, 가구도 중고 산다고? 일본 중고산업의 성장

일본에서 중고물품 거래 규모 시장이 약 26조 원 규모까지 커지며 급성장하고 있는데요. 중고 시장 성장 배경엔 새 물건을 고집하지 않는다는 젊은이들의 소비 의식 변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오르지 않는 노동자 임금도 중고시장 활성화에 불을 붙였는데요. 오늘은 일본의 중고시장 활성화로 일본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아볼게요.

 

메루카리

▲일본 중고품 거래앱 메루카리(メルカリ)

 

일본의 중고품 시장은 기존의 중고품 판매점을 통한 매출 이외에 인터넷 가상공간에서 개인 간의 중고품 매매를 중개하는 프리마켓 어플리케이션(앱)의 등장으로 더욱 활기를 띠고 있다. 프리마켓 앱 시장을 선도하는 메루카리의 시가총액은 10월 5일 기준으로 4964억엔(약 4조9700억원)에 달한다.

 

메루카리는 지난 6월 19일 일본 신흥기업 주식거래소인 마더스에 상장했다. 메루카리의 매출(판매수수료 기준)은 연간 350억엔(약 3510억원) 정도에 불과하다. 높은 시총은 앞으로의 성장 잠재력이 크게 평가되고 있는 것이다. 일본 경제산업성에 따르면 주택과 자동차를 제외한 중고품 매매규모는 지난해 11.7% 증가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국민의 생활습관이 만들어낸 문화

 

사실 일본의 중고시장은 새로운 비즈니스가 아니다. 일본 국민의 생활습관이 만들어낸 문화다. 일본은 에도시대(1603~1868년)의 쇄국정치로 인해 자급자족적인 경제구조를 지향했다. 이 과정에서 당시 주요 에너지원이었던 삼림을 고갈시키지 않고 마을이나 공동체에서 공동 관리하자는 의식이 뿌리 내렸다. 이때 일본어로 ‘아깝다’는 뜻의 ‘못타이나이’라는 의식이 나왔고, 물건을 아끼고 재활용하는 지금의 중고시장이 형성된 것이다.



여기에 1, 2차 유가파동이라는 일본 경제의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일본은 대대적으로 자원과 에너지 절약에 주력하면서 환경의식이 강화됐다. 절약과 리사이클(재순환)이 국가와 가정의 과제로 인식된 것이다. 에너지나 자원을 절약하고 리사이클을 촉진하는 정책이나 법률도 강화됐다. 가전제품을 폐기할 때 소비자가 부담금을 지불하고, 폐기가전에서 유용한 자원을 회수하는 제도도 마련됐다. 이에 따라 중고 판매시장이 본격적으로 성장했다.

 

 

일본 중고품 시장 규모

 

이후 인프라 구축이 중고산업의 성장 기반을 만들었다. 몇년전까지만 해도 인터넷을 통한 개인과 개인 간 거래로 이어져왔지만, 최근 스마트폰 등을 통한 프리마켓 앱 기반으로 매매를 중개하는 인프라가 구축되면서 소비자의 편리성이 더욱 높아졌다. 프리마켓 앱은 인터넷 경매와 달리 고정 판매 가격으로 거래가 이루어지고, 물건을 사고파는데 수수료도 없다.

 

중고품 판매자는 물건의 사진을 앱에 올리기만 하면 제품 판매가 가능하고 결제대행 서비스를 이용해 대금도 받을 수 있어 간편하고 안전하게 거래가 가능해 소비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2013년 프리마켓 앱 서비스를 처음 도입한 메루카리는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1억 다운로드(일본 내 6000만건)를 돌파했다.

 

메루카리가 인기를 끌면서 비슷한 경쟁자가 늘고 있지만, 동사는 택배회사와 제휴해 수령자에게 신분을 노출시키지 않는 택배 서비스를 개발하거나, 편의점을 활용한 서비스를 개발하는 등 고객의 편의 제고에 주력해 인기를 끌고 있다. 여기에 일본 제품의 높은 품질도 중고 제품의 인기 비결이다.

 

일본 제품은 고장이 적기 때문에 중고품이라도 품질을 믿을 수 있다는 소비자의 신뢰가 높은 편이다. 예컨대 휘발유 및 전기 겸용의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신제품 가격은 비싸지만, 중고시장에서는 동일한 품질의 물건을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는 소비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일본자동차 회사들이 높은 품질을 유지하는 데 주력하는 것도 중고품 시장을 의식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결국 일본의 중고 판매를 뒷받침하는 이들 세 가지 요인은 쉽게 바뀌기 어렵고 전반적인 셰어이코노미(공유경제)의 트렌드와 함께 중고판매 시장이 확대될 수밖에 없다.

 

중고시장 확대로 경제성장률 0.2% 하락 효과

 

중고품 시장은 날이 갈수록 확대되지만 이에 따른 상반된 영향도 있다. 우선 긍정적인 효과 측면에서 보면 환경보전에 미칠 수 있는 효과를 들 수 있다. 자원의 낭비를 막고 재순환이 가능해서다. 또한 메루카리와 같은 새로운 사업자가 등장하면서 매출과 고용이 확대되는 효과가 있다. 여기에 중고품을 판매한 소비자는 판매 수입을 얻게 되며, 그 수입으로 새로운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 확대 효과가 가능하다.

 

물론 중고품을 매입한 소비자의 경우도 저렴하게 제품을 확보하기 때문에 실질 소득이 늘어나면서 다른 제품의 구매에 나서게 될 경우 소비 증대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반면 부정적 측면에서 보면 중고품 소비 확대는 단기적으로 보면 해당 제품의 소비를 대체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새로운 제품의 생산 감소 효과가 나타나게 될 수 있다.

 

이는 기업 매출 부진은 물론 고용 악화, 이로 인한 소비 악화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중고품을 취급하지 않는 소매점의 경우도 매출이 감소하는 효과가 있다. 또한 국민총생산(GDP)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중고품의 매매에서는 매매수수료 등은 프리마켓 앱 사업자의 매출은 GDP에 반영되지만 중고품의 상품거래 금액 자체는 새로운 생산이 아니고 재화의 소유권만 이전되는 것이기 때문에 GDP의 계산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중고품 판매 활성화는 긍정적인 소비 진작 효과가 커지지 않을 경우 경제성장률이 하락할 수도 있다. 실제로 다이이치생명경제연구소는 “일본은 중고시장의 확대로 일본 국내총생산(GDP)을 0.2% 하락시킨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중고품 시장 활성화은 장단점이 있지만 대체적으로 보면 소비자의 후생은 증대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 내각부도 중고품 판매와 라이드 셰어, 숙박 셰어 등을 포함한 전체 셰어이코노미의 경제적 규모를 포함해서 실태 파악에 나서기 시작했다. GDP 통계가 앞으로 확대될 셰어이코노미를 충분히 반영할 수 있도록 개선해 나가려는 것이다. 이에 국가 전체적으로 긍정적인 효과가 확대될 수 있도록 중고품 시장 환경과 인프라를 구축해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