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은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인 ‘J 노믹스’ 설계자다. 그런 그가 정부에 연일 쓴소리를 던진다. 소득주도성장을 앞세운 경제정책에 사이렌을 울리고 있는 것이다.
두 시간에 걸친 대담에서 김광두 부의장은 기업가의 애환과 어려움을 이해하면서 기업 스스로의 노력과 역할에 대한 고언을 아끼지 않았다. 포브스코리아는 11월호부터 박혜린 옴니시스템 회장과 함께 한국의 ‘경영 그루(guru)’를 만나 대담하는 시리즈를 시작한다.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서강대 경제학부 석좌교수)은 최근 경제계에서 가장 핫한 ‘빅 마우스’다. 정부와 기업이 공동체와 효율성의 조율을 통해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뤄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는 중요 경제정책 수립에 관해 대통령께 자문하는 것을 목적으로 1999년 설립됐다. 그러나 그동안 “뭐하는 곳이냐”는 비아냥거림이 많았다. 친정부기관이라는 한계 탓에 정부의 잘못된 경제정책에도 침묵하거나 동의로 일관하면서 존재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이곳에서 뉴스가 쏟아지고 있다.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의 ‘쓴소리’ 때문이다.
그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인 ‘J 노믹스’ 설계자지만 정부 정책의 방향이 틀어질 때마다 사이렌을 울린다. 8월 30일엔 문재인 대통령을 직접 만나기도 했다. 1시간가량 진행된 대담에서 김 부의장은 “소득주도성장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 중심 성장경제’의 한 부분이다. 소득주도성장 논쟁에만 매몰되지 말고 ‘사람 중심 성장경제’라는 큰 틀에서 얘기하자”며 “기본으로 돌아가자(Back to the basic)”고 건의했다.
경제 상황이 어려워지자 한국 경제의 ‘구루(Guru)’인 그의 생각을 듣고자 하는 수요가 넘친다. 최근 각종 조찬 모임과 강연 참석 요구가 부쩍 늘었다. 10월 10일 서강대 남덕우경제관에서 만난 김 부의장은 “정부가 잘못된 방향으로 갈 때 옆에서 충고하는 게 자문회의의 역할이자 경제학자의 몫”이라며 “쓴소리를 하지 못한다면 그만둬야지”라고 말했다.
그는 또 “요즘 기업인을 만나면 스스로를 ‘소외계층’이라며 자조한다. 정치적으로 노동자 세력의 힘이 세기 때문에 정부가 귀를 더 기울이고 있고, 이 때문에 기업인들의 기가 많이 죽어 있다”면서 “그러나 이 정부 핵심부에선 정상적 기업 활동에 반감이 없다. 그동안 일부 기업의 납품 비리, 기술 탈취 등 불공정 거래와 편법 승계, 갑질 등 ‘비정상을 정상화’하는 과정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사람 중심 성장경제' 큰 틀로 돌아가자
▎김광두 부의장은 “정부가 잘못된 방향으로 갈 때 옆에서 충고하는 게 자문회의의 역할이자 경제학자의 몫”이라고 말했다. 그가 은사인 남덕우 전 국무총리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김 부의장은 남덕우기념사업회 회장도 맡고 있다.
“기상정보, 교통정보도 실시간으로 예측 서비스를 해줍니다. 그러나 최근 경제 상황을 보면 경제학자들이 ‘워닝(경고) 역할’을 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어요. 경제는 국가와 사회 구성의 기본 토대인데 요즘 기업을 경영하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기업가들 사이에서 ‘이번 정부에서 기업가는 미운 오리새끼’라는 말이 나올 정도예요.”
첫 대화부터 매서웠다. 박혜린 옴니시스템 회장은 작심한 듯 기업가의 입장을 대변했다.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으로서, 경제학자로서 역할은 무엇입니까?
경제학자들은 역사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이론을 세웁니다. 그 이론으로 현재 경제 상황을 판단하고 미래를 예측하죠. 우리 학자들은 현재 국가 경제정책 방향이 잘못 가고 있다고 계속 경고해왔습니다. 그러나 경제정책 수립은 정치인의 몫입니다. 유력 정치인이 누구의 이야기에 중점을 두는가에 따라 정책 방향이 달라지죠. 지금 정부는 효율성을 중시하는 그룹보다 공동체를 강조하는 그룹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다고 봅니다.
효율성 중시와 공동체 강조에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효율성에 방점을 두는 사람들은 글로벌 경제 시대엔 효율성이 떨어지면 경쟁에서 진다고 봅니다. 효율성이 떨어지면 상품과 서비스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상품이 안 팔리면 세금이 덜 걷혀 생활이 어려워진다는 것이 배경 이론이죠. 반면에 공동체 강조 그룹은 빈부격차를 해소하고 함께 잘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최저임금을 올리고, 기업의 폐해를 공정거래를 통해 고치자고 주장하지요.
늘 존재하는 논리인데요. 합의점은 없습니까?
지속가능성이라는 개념을 넣으면 됩니다. 빈부격차를 줄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함께 못사는 방향으로 가는 것은 원하는 바가 아니잖아요. 효율성을 무시하면 산업과 기업의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역사적인 경험입니다. 이미 구소련, 구 중국, 구 동구권, 현재의 북한과 쿠바 등이 증명하고 있지 않나요. 결국 공동체 사회가 지속가능성을 갖추려면 효율성과 조화가 필요합니다. 최근 베네수엘라가 적당한 예입니다. 석유 수출만 믿고 포퓰리즘에 빠져 있다가 유가 폭락으로 살기가 어려워졌어요.
그런데 김 부의장의 발언이 진영 논리나 이익 관계에 따라 입맛대로 쓰이고 있습니다.
저는 경제학자이자 경제학 교수입니다. 앞으로도 이 직업으로 살 것입니다. 가치는 개혁적 보수를 지향하고, 경제는 시장원리를 존중합니다. 제 주장과 발언은 늘 이 포지션에서 나왔습니다. YS 정부 때부터 박근혜 정부를 지나 이번 정부에서도 같습니다. 핵심은, 시장 원리는 존중되어야 하지만 불공정 거래는 바로잡아야 한다, 소득 격차는 줄이도록 노력하되 그 방법이 산업이나 기업의 국제경쟁력을 저하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제 일관된 주장입니다.
김 부의장은 시장 원리를 존중하는 경제학자다. 박근혜 정부 때는 창조경제 확산·실현을 위한 정책 제안을 하는 중소기업 창조경제확산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박근혜의 경제교사’로 불렸으나 집권 이후 멀어졌다. 19대 대통령선거 당시 문재인 후보 캠프의 ‘새로운 대한민국위원회’ 위원장으로서 ‘J 노믹스’를 설계한 주역 중 하나로 꼽힌다. 2017년 5월,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에 임명됐다.
그는 “문 대통령께서 시장경제 옹호론자에게 손을 내민 것은 균형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당선 이후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 오리지널 버전에 속하는 내용의 우선순위와 일부 용어가 바뀌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오리지널 버전에는 사람의 기초생활권 보장, 생활환경에 대한 투자, 교육·보육·의료 등 사람의 능력 제고를 위한 투자가 들어 있었고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용어는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 그는 “오리지널 버전의 회복과 집행을 희망한다”고 말했다.
직업훈련 강화해 직원·기업 경쟁력 높여야
▎1947년 전남 나주 출생, 광주제일고, 서강대 경제학과. 미국 하와이주립대 경제학 박사,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서강대 부총장, 국가미래연구원 원장, 서강대 경제학부 석좌교수,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그렇다면 사람다운 삶을 가능케 하고 기업 경쟁력도 높일 수 있는 방안이 있습니까?
직업훈련을 통해 노동자들의 능력을 키워주는 것입니다. 노동자 스스로 높은 수준의 직무능력을 보유하면 자연스럽게 소득이 올라가고 삶의 수준도 높아집니다. 기업은 직원의 직무 능력이 높아지면 결과적으로 제품과 원가 경쟁력이 높아지죠. 이때 필요한 정책이 바로 교육 훈련인데요. 직무능력, 직무전환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직업교육 프로그램이 활성화되어야 합니다. 직무전환능력을 가진 노동자나 전문 인력이 있어야 산업의 구조조정도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산 부담 탓에 기업 혼자서는 어렵고, 정부와 함께 준비해야 합니다. 프로그램 개발과 교육 기자재 생산, 강의 인력 양성 등 교육에 대한 투자는 곧 내수 증대로 이어져 경기활성화에도 기여합니다.
기업을 대변할 대표 단체를 말씀하셨는데요.
시장경제 체제에서 가장 핵심은 기업이고, 기업인들 스스로가 시장경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투자를 해야 합니다. 기업인들의 논리를 생산하고 대변할 싱크탱크를 만드는 것도 그중 하나입니다.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보수 싱크탱크를 설립해 다양한 계층의 의견을 수립하고 시장경제 체제가 갖는 우월성을 전파해야 합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보수 측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이 좋은 예입니다. 역사는 늘 정반합을 통해 균형을 맞추며 발전합니다. 기업인들이 투자하여 그런 사상과 이론의 틀을 만들고 그것을 바탕으로 다른 세력과 대화하고 협력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CEO들에게 조언을 하신다면.
삼성의 이병철 회장은 연초에 해외를 돌아다니며 해외 기업과 석학들을 만나 그들에게서 얻은 지식과 영감을 국내에서 사업으로 연결했습니다. 정주영 회장은 대단히 창의적인 사업 머리를 가진 분입니다. ‘임자, 해봤나’로 대변되는 도전 정신이 기업 성공의 발판이었죠. 이런 글로벌 감각과 도전 정신이 지금의 CEO들에게도 필요합니다. 또 내부적으로 쓴소리를 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모 기업의 누가 오너에게 쓴소리를 했다더라’는 말을 들어보기가 어려워요. 기업가가 기업을 망치는 것은 국가적으로 큰 손실입니다.
[박스기사] 정부·재계에 사이렌 울린 김광두의 말·말·말
▎대담은 서강대 남덕우경제관에서 진행됐다. 김광두 부의장과 박혜린 대표는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함께 활동하고 있다.
“2025년이면 전기차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된다는 시각이 지배적인데 한국 기업들이 이때도 현재와 같은 위상을 지킬지 불분명하다. 메모리 반도체 역시 중국이 대규모 투자를 단행해 추격 중이다. 중국은 정부와 산업계가 한 팀을 이뤄 제조업 핵심 가치 변화에 맞춘 목표를 설정하고 전략을 추진 중인데, 이대로 가면 우리 기업과 중국 기업 간 기술 격차가 축소되고 해외 주요 시장에서 경쟁 격화가 불가피하다.” - 10월 11일 호남미래포럼 강연에서
“투자가 죽어가고 있다. 이것은 우리 경제의 잠재력과 산업경쟁력의 약화를 의미한다. 동시에 우리 경제의 조세부담 능력이 저하될 수 있음을 예견할 수 있게 한다.” - 9월 9일 페이스북에서 ‘7월 국내 설비 투자가 작년 7월보다 10.4% 감소했다’는 보고서를 링크하며
“장발장은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감옥에 갔다. 외환위기 후, 당시 경제부총리와 경제수석이 ‘정책 오류’ 혐의로 법정에 선 적이 있었다. 예컨대 1조원은 엄청난 돈이다. 기업에서 이런 돈을 훔치거나, 의사결정 오류로 손실을 냈다면? 감방, 파면, 손해배상청구 등의 용어가 떠오른다. 정책 오류는 한 국가에 돌이킬 수 없는 부담을 줄 수도 있다. 그런데 책임이 애매하다. 이 문제, 법조계에서 논의가 있었으면 좋겠다.”- 8월 26일 페이스북
“현상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필요하다. 지형도 살피지 않고 진군하는 군대는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될 수도 있다. 전쟁터에서 명장은 최소의 전력 손실로 승리하는 장군이다. 10만의 군사를 잃고 1만의 적에게 이겼다면, 그것은 패장이다.” - 8월 25일 페이스북에서 ‘54조원을 쓰고도 성과가 미비하다’며 일자리 정책 비판
“버스 지나가고 손 흔들면 무슨 소용? 항상 한 발씩 늦는 이유가 뭘까? 통계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시장 바닥을 뛰어다니며, 기업 현장을 찾아다니며 경기 현상을 체감해야. 기재부, 한은 등의 경기 인식이 현실과 괴리되는 것은 국가경제에 불행스러운 현상인데, 더욱 한심한 것은 이런 현상이 무한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 8월 8일 페이스북
“재직근로자 교육훈련을 통해 생산성 향상 및 근로조건을 개선함으로써 ‘일자리의 질 제고’와 ‘지속 가능한 임금상승’을 실현할 수 있다. 기업은 기술변화에 대응해 경쟁력 제고가 가능하고, 시장 환경 변화에 따른 원활한 업종 전환에도 유용하다.” - 6월 27일 전경련 주최 ‘양극화, 빈곤의 덫 해법을 찾아서’ 특별대담에서 세계적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 미국 뉴욕시립대 교수와 대화 중
※ 박혜린은…신용카드· 전자화폐시스템 업체 바이오스마트, 스마트전력계량플랫폼 기업 옴니시스템, 라미화장품 등 10개 회사의 매출 총합은 지난해 3000억원을 넘었다. 지난 5월에는 출판사 시공사를 인수해 화제가 됐다. ‘영업이익의 10%를 무조건 기술개발에 투자한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
조득진 기자 chodj21@joongang.co.kr·사진 박종근 포토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