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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bes Korea

아스피린 회사가 농업∙바이오에 뛰어든 이유는?

최근 71조원을 들여 농업 왕국 몬산토를 인수한 바이엘(Bayer)은 가정상비약 ‘아스피린’을 만든 독일의 화학제약회사인데요. 150년 전통을 자랑하며 의약업계 선두를 달리던 회사가 ‘농업과학’ 분야의 선두로 일어섰습니다.

인류 치료제를 만들던 바이엘의 미래 전략은 동물, 식물까지로 확대해 인류 생태계에 다시금 맞춰진 듯한데요. 아스피린 회사의 이유있는 변신을 자세히 알아볼까요?

 

바이엘

 

# 아스피린 회사로 이름을 알린 바이엘은 올해 6월,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인수를 단행했다. 미국의 농업생명공학 기업 몬산토를 630억달러(71조원)에 인수한 것. 이로써 세계 최대 ‘종자 공룡’ 회사로 자리매김했다. EU에 이어 미국은 바이엘의 종자사업부 일부를 독일 바스프에 매각하는 조건으로 인수를 승인했다.

 

올해 유럽을 뒤흔든 이슈다. 제약업계 거물이 통 큰 인수합병으로 그다지 관련 없어 보이는 세계적인 종자 회사를 사들이는데 사활을 걸었기 때문이다. 11월 13일 서울 동작구 바이엘 코리아 사무실에서 만난 잉그리드 드렉셀(Ingrid U. Drechsel) 대표는 “몬산토의 유전자 조작 종자, 디지털파밍 기술과 바이엘의 작물보호제가 합쳐지면 큰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며 “베르너 바우만 바이엘 최고경영자(CEO)도 ‘농업은 앞으로 가장 유망한 산업 중 하나’라 봤다”고 전했다.

 

사실 메가 트렌드 ‘식량’과도 관련이 있다. ‘인터스텔라’나 ‘마스’ 같은 SF 영화에서 인간의 최후 식량, 우주식량으로 옥수수, 감자 등을 등장시킬 정도다. 드렉셀 대표는 인구와 식량 문제는 허구가 아닌 현실이라 강조한다. “2050년이면 세계 인구가 90억 명으로 늘어 현재(2017년 기준 74억 명)보다 20억 명 많은 인구를 대상으로 식량농업을 준비해야 합니다.”

 

제약사 바이엘은 엄밀히 따지면 화학업체다. 바이엘은 1863년 독일 바르멘에서 작은 염료회사로 시작했다. 제1차 세계대전 중 대유행한 스페인독감으로 1899년 만들었던 ‘아스피린’은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현재(2017년 12월 기준) 직원 10만여 명이 종사하고 전 세계 79개국에서 5000여 개 제품을 생산한다. 지난해 매출 350억 유로를 올렸고 올해는 390억 유로를 내다볼 정도로 순항 중이다.

 

그런데 몬산토 인수에서 화학사가 제약을 넘어 농업·바이오 분야로까지 손을 뻗쳐야 한다는 절박함이 묻어난다. 실제 업계에서 몬산토는 단순 곡물 유통사가 아니라 1만 종이 넘는 작물 유전정보를 보유한 세계적인 기업이다. 바이엘도 바로 몬산토의 이 점을 높이 샀고, 이들이 보유한 각종 바이오 유전자 정보로 정교화된 농약·비료를 생산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벌써 성과도 나왔다. 11월 14일 발표된 3분기 경영실적에 따르면 지난해보다 23.4%나 성장해 매출 규모만 총 99억 유로에 달했다. 인수합병 후 거둔 첫 실적인데다 농업 부문만 보면 37억3300만 유로로 83.8%나 뛰어올랐다는 점이 인수합병의 의미를 더 빛나게 했다.

 

하지만 드렉셀 대표는 너무 사업적 측면으로만 비춰지는 걸 경계했다. 특히 바이엘 인수합병 배경엔 ‘작물보호’와 ‘상생’이란 측면이 짙게 깔려 있다고 했다. 실제 1955년 바이엘이 한국에 첫발을 내디딘 것도 작물보호 때문이었다. 드렉셀 대표는 “물론 현재 한국 시장에서 매출 3관왕을 달리고 있는 분야는 제약(심혈관, 황반변성, 여성 건강)이지만, 한국에 마련한 연구시설과 생산 공장 3곳 모두 농업과학 분야”라고 강조했다.

 

더불어 생물학자 출신답게 생태계의 ‘상생’을 강조했다. 드렉셀 대표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후추를 소작하는 인도 농부와 대규모 생산 체계를 갖추고 생산 효율성을 높이려는 미국 농부 간 격차를 줄이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디지털 농업 솔루션 분야는 그 역할 중 하나다. GPS 기술로 세분화된 토양에 종자·비료·농약 등의 투입 최적화, 토양 영양·특성에 따른 종자, 정확한 파종 간격과 밀도, 인공위성·드론을 활용한 작황 시찰 등 농업 재배와 관련한 모든 데이터를 분석해 농가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신제품 개발 위한 디지털 ‘오픈 이노베이션’

 

이노베이션

 

‘혁신’을 강조하는 회사가 많지만 실행에 옮기는 기업은 많지 않다. 바이엘은 보스턴컨설팅 그룹이 선정한 ‘2016 가장 혁신적인 기업’에서 생명과학·제약 분야 1위를 차지하는 등 대내외적으로 혁신을 이끌고 있다. 바이엘의 기업문화 전반에 통 큰 투자전략이 깔려 있어서다. 바이엘은 신제품 개발을 위한 R&D로 이미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현재 연구 분야에만 1만4000명이 종사하고 2017년에만 총 45억 유로를 투자했다. 매출의 12.8%에 해당한다.

 

유연성도 따라줘야 한다. 기술개발 아이디어를 내부에서만 진작하는 건 일찍이 탈피했다. “바이엘이 보유한 전문지식과 외부의 창의적인 잠재력을 발굴하는 게 혁신과 성공을 위한 요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웹 기반 크라우드소싱 기술개발 투자 프로그램 ‘오픈 이노베이션’이 대표적이다. 쉽게 말해 바이엘의 사업 분야별 기술에 실제 활용될 프로젝트를 사내 전문가들뿐 아니라 외부 개발자, 스타트업, 학계 등을 지원해 아이디어를 공유하게 하는 것이다. 현재 60여 개국 1만4260명 직원과 3000여 개 아이디어로 285개 프로젝트를 지원한다.

 

본사

 

바이엘의 사업 분야별 프로그램은 이렇다. ▶그랜츠포앱스(Grants4Apps)는 헬스케어 분야로 업계 최초로 시도했다. 건강 진단, 치료 관리, 예방 프로그램이 주요 내용이며 프로젝트 개발자와 스타트업이 아이디어를 실제 구현할 수 있는 환경을 독일 본사에서 직접 마련해 지원한다.

 

▶제약과 작물보호 분야의 화학적 솔루션을 제공하는 그랜츠포타깃(Grants4Targets)은 종양학, 심장학, 산부인과, 혈액학, 안과학 등에서 약제 분자 표적을 발견하는 게 목표다. 작물보호 분야는 곰팡이, 식물 병해충을 방지하는 해법을 찾기 위해 시작됐다.

 

▶그랜츠포인디케이션(Grants4Indications)은 보조금 프로그램이다. 화합물에 대한 치료 영역(적응증) 발견을 목표로 보조금을 지원한다. 첫 단계가 성공적이면 선정된 연구에 보조금을 받게 된다. 드렉셀 대표는 “이미 ‘그랜 츠포앱스’ 프로그램으로 한국의 젊은 스타트업 팀이 독일 본사에서 지원을 받으며 활동하고 있을 만큼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바이엘의 전통을 말할 때 제약을 빼놓을 수는 없다. 120년간 명약으로 알려져온 아스피린을 탄생시킨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드렉셀 대표도 “아스피린은 바이엘의 역사와 전통, 혁신을 상징하는 대표 품목이다”며 “소염진통제로 시작한 약품은 혁신을 거듭해 심장마비, 뇌졸중, 심혈관 질환 예방에도 유용하게 활용됐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미래 건강 책임져온 제약 분야

 

연구원


제약 분야는 바이엘에서 48%를 차지하는, 여전히 가장 큰 사업이다. 자렐토 등으로 잘 알려진 순환기 질환 치료제 등과 안구의 황반변성 치료제, 임신부 영양제와 피임제를 비롯한 여성 건강 제품 등이 바이엘 매출을 이끄는 효자 품목들이다. 개선된 새 상품 출시를 목전에 두었거나 개발이 진행 중이다. 드렉셀 대표는 “특히 여성 건강에 지대한 기여를 했던 바이엘의 경구피임제가 꾸준히 1위를 수성한 데 이어 최근엔 자궁 내 피임장치(IUS) 카일리나도 성장 동력이 되고 있다”고 피력했다.

 

한독상공회의소의 첫 여성 회장을 맡기도 한 드렉셀 대표는 여성에 대한 관심도 크다. 전체 임직원은 남녀 절반씩 구성됐지만, 임원진에선 오히려 역차별 얘기가 나올 만큼 제약사업부 임원 10명 중 8명이 여성이다. 드렉셀 대표는 “그만큼 여성이 일하기 좋은 기업으로 자리한 게 아니겠냐”며 웃는다.

 

회사 역사는 150년이지만 기업문화는 늘 진보를 거듭한다. 2014년 리모델링한 바이엘 코리아 본사엔 놀이터를 연상케하는 그네가 설치된 ‘혁신룸’도 있다. 매주 월요일에 과일을 나눠 먹는 ‘프룻풀 먼데이’도 새로운 시도다. 바이엘 코리아는 직장인들의 만족도를 반영한 ‘2017 임직원이 뽑은 일하기 좋은 기업’으로 꼽혔다.

 

한편 장기적인 로드맵을 위해 몸을 사리지 않는 바이엘에도 위기가 없는 건 아니다. 몬산토 인수합병 두 달 뒤인 8월 몬산토 제초제 제품을 사용하다 암에 걸렸다고 주장한 피해자에게 약 3235억원을 배상하라는 1심 판결이 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이엘은 몬산토를 품고 잘 헤쳐 나가겠다는 의지가 더 강하다.

 

드렉셀 대표는 “개인적으로 안타깝지만, 아직 재판이 진행 중이라 명확한 입장 정리가 힘들다”며 “전 세계 연구기관의 800여 개가 넘는 연구를 토대로 입장을 정리하면 제초제 성분인 글리포세이트는 발암과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몬산토와의 통합 비즈니스에도 변함없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바이엘은 몬산토와 함께 그린바이오(Green Biotechnology) 등 미래 농업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고 전망했다.

 

잉그리드 드렉셀 바이엘 코리아 대표가 말한 기업철학은 ‘수평’과 ‘균형’으로, 몬산토와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축이 될 듯하다. “모든 생태계는 식물부터 동물, 인간까지 연결돼 있습니다. 고령화 및 인구 증가는 인류가 직면한 중대한 문제로, 이 사업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될 것입니다. 바이엘은 생명과학업에 맞는 지속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을 예정입니다.”

 

                                                               박지현 기자 centerpark@joongang.co.kr·사진 전민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