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주도하는 1000억 달러 규모 비전펀드가 쿠팡에 20억 달러를 투자했습니다. 2015년 10억 달러에 이은 대규모 투자인데요. 손 회장이 적자가 지속되고 있는 쿠팡에 대규모 투자를 하는 이유는 플랫폼 전략 때문입니다.
2018년 11월 20일 늦은 저녁, 한국 스타트업계의 ‘빅 이슈’가 외신을 통해 알려졌다. 쿠팡이 소프트뱅크 비전 펀드로부터 20억 달러(약 2조2500억원) 투자를 유치했다는 소식이다.
쿠팡의 기업가치는 약 10조원이라고 알려졌다. 2015년 6월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쿠팡에 10억 달러를 투자했을 때도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투자 유치였다.
3년 만에 손 회장이 다시 이 기록을 깼다. 2010년 5월 김범석 대표는 쿠팡을 창업한 후 지금까지 34억 달러(약 3조8000억원)가 넘는 투자를 유치했다. 김 대표는 한 외신 인터뷰에서 “비전펀드는 비전을 만드는 펀드다. 비전펀드와 파트너십을 맺은 것이 자랑스럽다”고 밝혔다.
새로운 서비스와 인프라 구축에 20억 달러 사용
쿠팡의 대규모 투자 유치 소식이 전해졌을 때 업계에서 가장 많이 나온 이야기가 ‘손정의 회장이 쿠팡에 대규모 투자를 하는 이유가 뭔가’라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쿠팡의 위기설은 매년 끊이지 않고 언론에 나오는 단골 소재다. 쿠팡의 현재 상황은 ‘매출 수직 성장, 적자 폭도 커’다. 2014년 쿠팡의 매출액은 3485억원이었지만, 2018년에는 5조원을 넘어섰다. 5년 만에 14배나 성장한 것이다. 그럼에도 지난해 손실액은 6300여억원이나 된다. 지난 3년 동안 누적 적자는 1조7500여억원으로 알려졌다. 2018년 적자폭도 2017년에 비해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쿠팡의 적자는 당분간 줄어들기 어렵다. 이커머스 시장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어서다. 오프라인 유통의 강자인 이마트와 롯데쇼핑도 이커머스 분야에 대규모 투자를 발표한 바 있다.
네이버와 카카오 같은 ICT 기업의 강자들도 이커머스 분야에 도전하고 있다. 경쟁이 치열해지면 마케팅 비용은 올라가기 마련이다. 쿠팡은 여전히 인프라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가 “이커머스 시장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앞으로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다.
쿠팡은 ‘계획된 적자’라고 강조한다. 쿠팡은 물류센터 건설과 유통 등 인프라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그 덕분에 1일 배송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 수 있었다.
쿠팡 관계자는 “어느 정도 적자를 보더라도 규모의 경제를 만들려고 하는 것”이라며 “저녁 10시 이전에 주문하면 다음 날 배송을 99% 약속하는 쿠팡의 비즈니스 모델은 온라인 쇼핑몰에 대한 시각을 바꾼 사건이다”고 강조했다.
‘로켓배송(1일 배송)’은 쿠팡을 상징하는 단어다. 로켓배송에 대한 소비자의 만족감은 상당히 높다. 1일 배송 시스템이 가능한 것은 기술과 인프라에 투자한 덕분이다. 쿠팡 물류센터는 전국에 10여 개 정도 있다. 연면적은 2018년 10월 기준으로 축구장 151개 넓이다. 쿠팡 관계자는 “이커머스 업체 중 물류센터 규모는 압도적으로 1위”라고 강조했다.
하루에 배송되는 로켓배송 상자는 약 100만 개, 2018년 9월 기준 누적 배송량이 10억 개를 돌파했다. 쿠팡의 자체 배송량을 국내 택배업체와 비교하면 2위 수준까지 올라왔다.
고객이 선택할 수 있는 로켓배송 상품 품목은 현재 400만 개나 된다. 로켓배송은 쿠팡이 직접 상품을 매입해 배송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를 위해서는 전국 요지에 물류센터가 갖춰져야 하고, 자체 배송 시스템, 입출고 시스템의 고도화가 필요하다.
쿠팡은 아마존을 벤치마킹해 개발한 랜덤 스토(Random Stow) 시스템을 물류센터에 접목했다. 각 상품의 입출고 시점을 예측한 데이터와 저마다 다른 400만 종 상품의 사이즈와 인력의 동선 등을 모두 고려한 시스템으로 각 상품의 배치 공간을 지정하고 있다. 쿠팡 관계자는 “언뜻 보기에는 진열대 안이 무질서해 보이지만, 가장 효율적이고 빠르게 포장과 배송이 이뤄지는 시스템”이라고 자랑했다.
김범석 대표는 해외 통신사 인터뷰에서 “소비자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고 새로운 서비스를 준비하는 데 투자할 것”이라고 밝혔다. 물류 인프라 투자도 계속 진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손 회장의 플랫폼 전략 쿠팡에 적용
현재 쿠팡이 집중하고 있는 새로운 서비스는 로켓프레시, 로켓상품 새벽배송, 쿠팡이츠 등이 있다. 로켓프레시는 우유와 수산물 등 신선식품을 자정까지 주문하면 다음 날 7시 이전까지 받아볼 수 있는 서비스다. 현재 서울, 인천, 경기 지역에서 이용할 수 있다.
쿠팡 측은 이 서비스를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로켓상품 새벽배송은 일반 로켓배송 상품을 아침 일찍 받아볼 수 있는 서비스다. 수백만 종에 이르는 로켓배송 상품을 자정까지 주문하면 신선식품과 함께 아침 7시 이전에 받아볼 수 있는 것이다. 쿠팡이츠는 현재 서울 잠실 일부 지역에서 시범 서비스 중인데, 앱을 이용해 고객이 음료와 음식 등을 미리 주문하고 결제하면 매장에서 바로 받아보는 서비스다. 스타벅스의 사이렌 오더와 비슷하다.
쿠팡의 초기 투자사인 한킴 알토스벤처스 대표는 “쿠팡은 기존 물류 인프라가 소비자를 만족시키기에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직접 인프라를 구축했고, 앞으로도 여기에 투자를 지속할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쿠팡은 데이터 위주로 모든 것을 분석하는 조직이기 때문에 나름대로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오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손정의 회장은 지금까지 여러 차례 통 큰 투자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쿠팡 외에도 위워크와 엔비디아 등에 조 단위의 투자를 했다. 반도체 설계 회사 ARM을 35조원에 인수해 세계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손 회장이 이런 대규모 투자에 거침이 없는 것은 ‘1등이 되어 시장을 선점해 경쟁자를 눌러야 한다’는 지론 때문이다. 1981년 20대 나이에 컴퓨터 소프트웨어 유통업체인 ‘소프트뱅크’를 창업했을 때부터 소프트웨어 유통의 플랫폼을 장악하면서 성장했다.
일본 신문 니혼게이자이의 스기모토 다카시 기자는 저서 『손정의 300년 왕국의 야망』에서 손 회장의 플랫폼 전략에 대해 ‘이 당시(소프트뱅크 창업 초기) 소프트웨어의 흐름에서 상류와 하류의 최대 업체를 한 번에 독점해버린 것은 그 길만이 소프트웨어 유통의 플랫폼을 장악할 수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주 치밀하고 대담한 전략을 구사했다는 게 이제 이해되고 있다’고 밝혔다.
쿠팡에 10억 달러 투자에 이어 3년 만에 20억 달러 투자를 단행한 것은 100조원 규모로 커버린 한국의 이커머스 시장을 쿠팡이 선점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여준 것이다.
2018년 11월 13일 열린 소프트뱅크 제2사분기 결산 설명회에서 손 회장은 비전펀드 성과를 발표했다. 눈에 띄는 것은 비전펀드가 투자한 다양한 스타트업 중 공유 오피스 기업 위워크 다음으로 쿠팡을 소개한 것이다.
쿠팡에 신뢰감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날 손 회장은 “쿠팡은 한국의 아마존에 해당하는 회사다. 한국 이커머스 시장에서 압도적인 1등이고, 급성장하고 있다”면서 “우리는 이미 최대주주지만, 더욱 강하고 깊게 그들에게 도움을 주려고 한다”고 발표했다.
손 회장의 20억 달러 투자는 쿠팡의 지분 구조를 바꿨다. 쿠팡은 미국 법인 쿠팡LLC가 100% 지분을 가지고 있다. 손 회장은 2015년 10억 달러(얼마 전 10억 달러 투자 지분을 비전펀드에 7억 달러에 매각했다) 투자 이후 비전펀드를 통해 20억 달러 투자를 추가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비전펀드가 쿠팡LLC의 지분 30%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고 추산된다. 김범석 대표는 20억 달러를 투자받기 전까지 10% 후반대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전펀드가 1대 주주로 올라선 셈이다. 김범석 대표는 쿠팡 창업가지만 현재 전문경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쿠팡 측은 기업가치나 지분 변동을 묻는 질문에 “아는 바가 없다”고 답변했다.
1대 주주와 전문경영인이 가지고 있는 영향력은 차이가 난다. 이 때문에 20억 달러 투자 유치로 경영권에 변동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쿠팡 관계자는 “비전펀드는 실적으로 경영진을 바꾸는 펀드가 아니다”고 설명했다. 나비드 베이세 쿠팡 수석부사장도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손정의 회장의 투자는 김범석 대표에 대한 신뢰”라고 말한 바 있다. 손 회장의 행보를 보면 당분간 쿠팡의 경영권에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경영권 변화 없을 것이라는 예상 많아
비전펀드 결성 이후 손 회장은 67개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손 회장의 목표는 300년 동안 지속되는 소프트뱅크 왕국을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부채에 신경 쓰지 않고 5000개 기업을 거느리는 ‘군전략’을 펴고 있다.
스기모토 다카시 기자는 『손정의 300년 왕국의 야망』에서 “300년 왕국을 세우는 데 있어 손정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자금을 동원해 그룹을 만드는 일이었다. 기업을 매수해 서로 연결시키는 군전략이다”라고 설명했다. 또 군전략을 이루기 위한 방법론으로 “그는 리더십에 그다지 연연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투자처인 기업을 지배하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투자 성향에 대해서는 “즉각적인 투자 리턴을 추구하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한킴 알토스벤처스 대표의 의견도 같았다. 그는 “보통 미국에서는 투자가들이 대표이사보다 지분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게 흔하다”면서 “그렇다고 투자가가 투자사를 컨트롤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곳은 거의 없다. 김 대표가 회사 대표이고, 이사진의 신임을 받고 있기 때문에 경영권에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쿠팡은 ‘한국의 아마존’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쿠팡이 걸어온 길은 아마존의 행보와 일치한다. 쿠팡은 적자를 내면서도 대규모 투자를 지속하고, 물류와 배송 시스템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데 주력하고 있다. 쿠팡은 아마존처럼 수익을 낼 수 있느냐 마느냐의 기로에서 있다.
[박스기사] 비전펀드는…
2016년 10월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에서 세계를 놀라게 한 소식을 전했다. 1000억 달러(약 111조원)의 펀드 조성을 발표한 것. 5년 동안 소프트뱅크가 250억 달러,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계 투자펀드인 ‘공공투자펀드(PIF)’가 450억 달러를 각출하고 나머지 자금은 다른 곳에서 모은다는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공공투자펀드 투자 결정은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담당하고 있다. 2016년 9월 무함마드 왕세자가 처음으로 일본을 방문했을 때 일본의 재계 인사들을 만났고, 이때 손 회장도 처음으로 만났다. 당시 손 회장과 왕세자의 면담 시간은 10분. 이 짧은 시간에 손 회장이 비전펀드 설립 계획을 밝히고 왕세자의 투자를 이끌어낸 것이다.
이날 두 사람의 만남은 예정된 10분을 넘어 45분 동안 진행됐다고 한다. 손 회장은 비전펀드를 통해 5년 동안 100개 스타트업 투자와 인수라는 목표를 제시했다.
2018년 11월 5일 열린 소프트뱅크 결산 설명회에서 “비전펀드는 하나의 테마를 향해 투자를 진행한다”면서 “AI다. 비전펀드는 AI로 군전략을 전개하고 싶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동안 비전펀드가 투자한 기업을 살펴보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2016년 243억 파운드(약 35조원)로 영국 반도체 설계 회사인 ARM을 인수했고, 미국 엔비디아에 40억 달러(약 4조4500억원)를 투자했다.
2017년에는 인도 최대 이커머스 기업인 플립카트 그룹에 25억 달러(약 2조9000억원), 2018년에는 GM 자율주행차 연구에 22억 달러(약 2조5000억원) 등을 투자했다. 2018년 11월 쿠팡에 20억 달러(약 2조2500억원)를 투자했다.
최영진 기자 cyj73@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