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아카데미가 주목하는 영화 <와일드>는 한 여자의 '특별한' 94일 간의 종주를 담은 영화다. 원작은 셰릴 스트레이드의 논픽션으로, 비록 자신이 젊긴 하지만 이미 삶의 막장에 닿아버렸다고 느낀 26세의 저자가 직접 경험하고 느낀 것을 기록한 수기다.
소설 <와일드>는 셰릴이 어마어마한 짐을 들고 PCT(Pacific Crest Trail·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종주에 나서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4258km에 달하는 미대륙의 서쪽 종단 코스 PCT는 건장한 남자들도 125일 정도가 소요되는 위험하기로 악명 높은 여행 코스다.
영화 <와일드> 역시 시작되자마자 숨을 헐떡이는 셰릴(리즈 위더스푼 분)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그 거친 숨소리의 원인은 거의 떨어져 나가버린 그녀의 오른쪽 엄지 발톱이다. 셰릴은 아예 발톱을 뽑고 고통에 몸부림치는데 그 와중에 벗어놓았던 신발 한 짝마저 절벽 아래로 굴러 떨어져버린다. 그것을 다시 주워 올 수 있는 방법도 없다.
발톱은 빠지고 신발은 한 짝밖에 없는 상황에서, 셰릴은 나머지 한 짝의 신발마저 절벽 아래로 내던져버리고는 짐승처럼 포효한다. 스물여섯 살의 젊은 셰릴이 어쩌다가 이처럼 험난한 여정에 나서게 된 것일까?
▒ 삶을 되돌리기 위해 종주에 나서다
힘든 트래킹이나 등반에 나서는 사람들을 보면 때때로 '왜 저런 고생을 사서하나'라는 의구심이 들 수 있다. 젊은 여성 혼자서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트래킹이나 등반은 어떤 점에서 몸을 학대한다고도 볼 수 있다. 건강한 심폐 기능을 위한 간단한 산보와는 달리 허리, 무릎, 발이 다치는 경우가 예사로 생기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긴 종주는 고행과도 같다고 볼 수 있다.
셰릴이 종주에 나선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종주에 나서기 전 셰릴의 삶은 '막장'이다. 셰릴이 유일하게 기대고 사랑했던 존재는 어머니. 셰릴의 어머니는 셰릴이 어릴 적에 폭력적인 남편과 이혼하고 혼자 힘으로 셰릴을 키워왔다. 그리고 셰릴이 스물두 살이 되자 암선고를 받는다.
일생을 헌신적으로 살아온 어머니의 암선고에 셰릴은 충격에 휩싸인다. 투병한지 한 달여 만에 세상을 떠난 어머니에 셰릴은 삶의 끈을 놓아버리고 만다. 자기 자신을 완전히 방기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자신을 아껴주는 남편이 있지만, 셰릴은 아무 남자와 만나 잠자리를 하고 헤로인을 맞자는 유혹에도 저항하지 않는다. 남편이 가까스로 그녀를 데려와 새 삶을 시작하려 하지만 그마저도 통하지 않는다. 셰릴은 약물 중독 끝에 팔뚝에 헤로인 주사를 맞을 혈관이 사라지자 발목에서 혈관을 찾는 지경에까지 다다른다.
게다가 언제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아이도 갖게 된다. 남편의 아이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결국 여전히 사랑하는 남편과도 이혼을 하게 된 셰릴의 눈에 들어온 것은 PCT 종주 안내서다. 그 안내서에 매혹된 셰릴은 자신의 삶을 되돌리기 위해 무작정 떠나야겠다고 마음먹는다. 그녀는 이 종단이 무척 고통스러울 것임을 알고 떠난다.
▒ 마음의 고통을 몸의 고통으로 치유하는 과정
어머니의 죽음 이후 셰릴이 섹스와 마약에 탐닉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살아있음을 확신할 수 없는 셰릴에게 살아있음을 확인하기 위한 가장 자극적인 감각을 체험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많은 중독자들이 깊은 늪에 빠져 헤어나올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감각적 자극을 통해 회피할 수 있는 삶의 근본적 고통은 없다. 고통을 피하고자 아무리 도망치려 해도 그것을 대면하지 않고서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 것이 고통이다. 한 번쯤은 고통과 맞부딪쳐야 하는 것이다.
영화는 감각적 즐거움을 추구하던 셰릴의 젊은 육체가 PCT 종주 중에 어떤 다른 감각과 만나는지를 교차 편집으로 보여준다. 헤로인 주사를 놓던 발목은 등산화에 쓸려 벗겨지고, 남자들을 휘어잡던 허리는 무거운 가방에 눌려 멍든다. 남자들을 유혹하던 그녀의 몸은 고통으로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몸이 된다. 그런 점에서 셰릴의 산행은 마음의 고통을 몸의 고통으로 치유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여행 첫날 1L짜리 병에 물을 담아 가방에 걸고 일어서려 한 셰릴은 뒤로 발랑 넘어져버린다. 자기 체중보다 무거운 짐을 쌌으니 당연하다. 산행을 할 때 가장 절실하게 느끼는 것은 바로 이 무게감이다. 내 힘으로 지고 가야 할 무게가 짐이라면, 더 많이 담을 게 아니라 더 많이 줄이는 게 옳은 일일 테다. 종주를 하는 데 필요한 것은 많은 짐이 아니다.
셰릴은 길을 가면서 짐을 줄이는 방법을 하나씩 터득해간다. 이는 늘 너무 많은 걸 짐 꾸러미에 쑤셔 넣으러 애쓰는 우리들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방법이기도 하다. 셰릴이 여행자 숙소에서 만난 나이 지긋한 베테랑이 이미 지나온 길의 지도는 필요없다며 책의 3분의 1가량을 찢어서 버리는 장면은 참 인상적이다.
▒ 나의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 <와일드>
결국 셰릴은 슬리퍼에 테이프를 둘둘 감아 발에 밀착시키고는 완주에 성공한다. 그것도 평균 125일이 걸린다는 험난한 종주를 단 94일 만에 완주한 것이다.
셰릴의 종주 과정을 보는 2시간 동안 우리는 인생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해보게 된다.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지만 정작 인생 종주의 끝은 생각지도 않고 있음을, 자기 등으로 감내하지 못할 무게의 짐은 어쩌면 불필요한 욕망의 대상일 수도 있음을 발견할 수도 있다.
영화 <와일드>를 통해 정신없이 바빴던 자신을 내려놓고 지금까지의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글 · 강유정(영화·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