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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한·일 청년 취업난, 스펙과 매뉴얼에 얽매인 청춘

취준기(취업 사춘기), 인구론(인문계 90%가 논다), 청년실신(청년 실업자나 신용불량자), 장미족(장기간 취업을 못한 사람) 등의 신조어가 유행한다. 한국의 젊은이들은스펙에, 일본의 젊은이들은 매뉴얼에 얽애며 취업난에 허덕이고 있다. 


일본 후생성의 발표에 따르면 2015년 4월, 일본의 대학 졸업자의 취업률(취업희망자 대상)은 96.7%로 2008년 리먼 쇼크 이전의 수준으로 회복했다고 한다. 구직을 희망하는 대졸자의 약 97%가 직장을 얻을 수 있다니 부럽기 그지없는 이야기다. 그러나 대기업 취업은 여전히 어려우며 고용환경은 개선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 후생성의 분석이다.


일본은 기본적으로 대학졸업 예정자를 우선 채용하는 관습이 있어 대학생들은 어떻게든 학교 재학 중에 입사를 확정받기 위해 4학년 신학기부터 본격적인 취업에 뛰어든다. 그리고 12월이 넘어가도록 회사로부터 내정을 얻지 못하면 다음 연도 채용을 노리고 휴학하거나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하면서 졸업을 유예하는 경우가 많다.


청년 실업


▒ 열악한 근무환경의 '블랙회사' 급증


일본에서 이른바 ‘블랙회사’로 불리는 곳이 있다. 말하자면 "하면 된다" 정신을 강요하고 근로기준법에 보장된 휴가를 사용할 수 없도록 무언의 압력을 가하고 10명이 해야 할 일을 2~3명이 하도록 채찍질하는 기업이다. 인건비 삭감을 위해 사원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전제주의적인 기업문화로 사원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블랙회사가 급증했다.


전 산업성 장관이 블랙회사 퇴치에 앞장서는 사회단체를 만들고, 후생성이 나서서 대기업 중에 블랙회사에 해당되는 기업명단을 공개하고 행정지도를 명하는 등 고용환경 개선에 부심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어려운 취업환경 속에서 블랙회사를 선택하게 되는 젊은층의 피해가 급증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근무환경이나 대우가 월등히 좋은 대기업에 대한 선호도는 우리나라 못지않다. 대기업 취직을 위한 그들의 도전은 인턴십부터 시작된다. 일본의 인턴십은 기본적으로 무보수로서 1~2주일 정도의 단기간에 걸친 기업연수다. 인턴십이 끝나면 각종 회사설명회에 참가하여 정보를 입수하고, 엔트리시트(ES)를 교부받아 작성에 들어간다.


▒ 일본 청년 취업을 위한 매뉴얼


취준생들이 엔트리시트의 작성에서 내용만큼이나 중요시하는 것이 어떻게 제출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각종 취업사이트에서 자세한 매뉴얼을 제시한다.


1. 서류는 접지 않는다.

2. 서류는 클리어파일에 끼워 넣어서 봉투에 넣어 서류가 구겨지거나 비에 젖지 않게 한다.

3. 봉투는 흰색의 A4사이즈를 사용한다.

4. 우편접수 시에는 제일 앞에 서류의 내용과 자기이름과 소속, 받는 사람, 인사말 등이 첨가된 송부장을 끼워 넣는다.

5. 직접 내사하여 제출할 때는 접수원과 눈을 맞춰 인사한 후 제출한다 등등.


서류평가를 통과하게 되면 필기시험과 면접을 치를 수 있다. 면접은 보통 2, 3차에 걸쳐서 진행되며 직후 기업은 최종적으로 필요한 인재를 선발하여 내정을 통보한다. 평균적으로 5월부터 입사를 위한 서류심사가 실시되고 8월 말까지 각 기업이 지원자에게 채용 여부를 통보하는 스케줄로 이루어진다.


일본 청년 취업


취업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고비는 역시 면접이다. 각 취업 사이트에서도 면접 기술에 대한 전문가나 선배의 조언이 가장 많이 소개된다. 그중 대부분은 ‘리크루트 패션’이라는 복장과 화장술에 대한 매뉴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1. 베스트는 역시 리크루트 슈츠!(감색의 정장으로 여학생은 바지 대신 스커트), 남학생은 사선의 스트라이프가 들어간 넥타이가 무난하고 여학생은 심플한 블라우스를 받쳐 입는 것이 단정한 인상을 준다.

 

2. 손목시계를 착용하는 것이 좋은데 글자판은 검은색이나 흰색이 베스트이며 푸른색까지는 무난하게 받아들여진다. 시계벨트는 메탈소재를 사용할 것을 추천!(디지털 시계는 NG)

 

3. 헤어스타일은 염색·탈색은 금기, 되도록 짧고 단정한 스타일을 추천. 여학생은 페이스 라인이 보이도록 하는 것이 포인트! 뒤로 단정히 묶는 것이 좋은데 너무 높이 묶게 되면 치어리더 같은 인상을 주게 되므로 NG.

 

4. 가방은 A4 사이즈 서류가 들어갈 정도 크기의 검은색의 무늬 없는 스타일을 지참한다.

 

5. 여학생의 메이크업은 신뢰감과 청결감을 높여줄 수 있는 방향으로. 구체적으로는 아이라인은 두껍지 않게, 아이섀도는 카키색은 금지(눈이 부어 보임), 펄감이 있는 아이섀도는 섹시해 보이기 때문에 비즈니스 화장술로는 적합하지 않다. 파운데이션은 자기 피부보다 밝은 색은 금지하며, 눈썹은 입술과 눈을 일직선으로 연결한 선에서 마무리해야 지성적이며 신뢰감을 주는 인상이 된다. 입술화장 역시 펄감은 사용하지 않고 핑크와 베이지의 중간색이 무난하고 안정감을 준다….


▒ 스펙에 얽매인 한국의 청춘


한편 우리나라 젊은이들도 전쟁과도 같은 취업시험을 치러내야 한다. 통계청의 ‘2015년 3월 고용동향’에 의하면 대졸 실업자 수가 50만명(9.5%)을 넘어서 IMF 이래 최악의 취업상황에 이르렀다. 한국경제연구원의 발표에 따르면 고학력 남성 청년층(15세∼29세)의 올 1∼8월까지 체감실업률 평균은 27.9%로 실제 실업률의 약 2.9배에 육박한다고 한다.


취업난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취업활동에서 가장 힘을 쏟는 부분은 단연 스펙일 것이다. ‘대학내일 20대 연구소’가 취업준비 중인 대학생 5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를 보면, 취준생들은 1인당 평균 5.2개의 스펙을 준비하고 있으며 취직을 위해 사교육을 받고 있는 비율이 절반에 이른다. 스펙 교육을 위해 사용하는 돈은 평균 130만원을 넘어선다.


청년층의 취업난은 개인뿐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가장 심각한 문제로 자리 잡고 있다. 인생의 출발점에서부터 어긋나버린 청년층들을 위한 대책에 정부도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햇살론, 청년희망펀드, 임금피크제 등 우리 정부가 내놓고 있는 청년 일자리 활성화 대책 중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다는 지적이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7월 ‘청년 고용절벽 해소 종합대책’을 통해 3년간 20만 개 이상의 일자리 기회를 창출할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이 중 과반 이상의 일자리가 청년인턴, 직업훈련, 일·학습병행 등의 비정규직으로 실효성에 의문에 제기되고 있다. 또한 청년 실업자가 올해 4월말 현재 44만5천 명에 달하는 상황에서 20만 개의 일자리는 너무 부족하다.


인재들의 열기와 열정으로 뜨거워야 할 우리나라 소위 ‘SKY대’ 인근이 쇠락한 고시원과 음식점, 커피점으로 채워져 있는 현실이다. 대량 실업, 빈곤, 창업이란 청년 경제의 현주소, 청년 취업을 위한 실질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