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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100엔 공화국 일본의 ‘햐쿠엔쇼프’ 가르침

저소득 고령자의 생명과 삶의 즐거움을 연장시켜줄 유일한 희망… 최고 브랜드로 떠오른 유니클로·니토리는 일본 희망드라마의 실체



▎유니클로 긴자점 면세창구의 중국인 관광객. 중국보다 가격이 절반 정도로 저렴해 필수 구입 상품군에 속한다.


‘키즈나(絆)’라는 말은 2015년, 나아가 2016년 일본의 모습을 한마디로 압축한 키워드에 해당된다.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직후 탄생된 말로, 정신적·심리적·정서적 차원의 ‘유대(紐帶)’를 의미한다. 필자 판단으로는 21세기 일본 열도 전체의 공기를 대변하는, 새로운 이데올로기의 모두(冒頭)에 해당된다. 키즈나에 바탕을 두고 국가와 국민이 하나로 연결된 것은 물론, 기업·언론·학교 모두가 종횡으로 이어져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전전(戰前)의 국가적 슬로건인 ‘1억총결사(一億總結死)’와 비슷하게 느껴지지만,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르다. 1억총결사가 외부에서 주어진 상명하달식 구도인데 비해, 키즈나는 개개인을 주변의 사람과 함께 엮어 풀어나가는 자발적 환경에 해당한다.


경제가 살아나고 청년 일자리가 넘친다. 정치는 안정되고 2020년 올림픽을 향한 준비도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다. 17조원짜리 신칸센(新幹線)을 수주한 인도발 낭보에서부터, 2015년 일본인 노벨상 수상자의 활동에 관한 스웨덴발 소식, 고대 그리스 문명사 시리즈 1권 발간에 나선 83세 일본 여성작가 관련 이탈리아발 뉴스에 이르기까지, 밝고 힘찬 행진이 일본 사회 구석구석으로 밀어닥치고 있다.


흥미롭게도 현재의 일본 재생에 기여하는 최고의 견인차는 중국인이다. 서로 전쟁을 목전에 둔 것처럼 으르렁거리지만 재생 일본의 도우미로 중국인이 등장하고 있다. 백화점·지하철·공항·식당 등 도쿄(東京) 거리 전체가 중국 관광객들로 넘쳐난다. 도쿄만이 아니라, 교토(京都), 홋카이도(北海島), 나라(奈良)를 비롯한 일본 대도시가 이른바 ‘바쿠가이(爆買い: 중국관광객이 한꺼번에 대량 구매하는 것)’의 열기로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한국에서는 ‘망해가는 일본’이 상식으로 여겨지지만, 도쿄공항에 내리는 순간 일본 재생의 현황이 어떤 것인지 쉽게 직감할 수 있을 듯하다. 심리적 측면만이 아닌, 갖가지 구체적인 경제수치를 통해서도 일본에 불고 있는 희망드라마의 실체를 확인해볼 수 있다.


2016년을 맞이하는 일본 재생의 모습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한 것으로 특정 숫자에 대한 분석을 빼놓을 수 없다. 주인공은 ‘100’이다. 일본의 어딜 가도 쉽게 만날 수 있는 숫자로, 가격 100엔을 의미한다. 가까이는 자동판매기 콜라 가격에서부터, 편의점의 삼각김밥과 회전스시(すし)에 이르기까지 일본 어디에 가도 쉽게 볼 수 있는 숫자가 100엔의 100이다.


▒ 뭔가 부실해 보이는 한국의 1천원 매장 풍경


▎1엔 단위로 판매되는 채소와 과일. 공산품만이 아닌 음식도 100엔 시대에 들어간다.


100이 갖는 의미와 가치를 가장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는 곳은 햐쿠엔쇼프(百円ショップ), 즉 100엔 상품가게다. 2012년 기준으로 일본 전국에 5500여 개 점포를 가진, 연간 5조원 정도의 수입을 올리는 일본 내 기간산업 중 하나인 곳이다. 2015년 12월 10일 기준으로 100엔은 953.4원에 해당된다. 달러로 치자면 1달러에도 못 미치는 85센트 정도다. 대략 1천원, 85센트의 물건들을 파는 곳이 햐쿠엔쇼프다.


햐쿠엔쇼프를 일본 재생의 상징물로 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100엔이 갖는 가격 경쟁력은 물론이고, 상품의 질과 다양한 제품이란 측면이 가장 큰 이유다. 전 세계를 무대로 할 때 햐쿠엔쇼프를 넘어서는 가격·매장·물건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젓가락에서부터 수예용 바늘, 욕조 도구와 전선, 나아가 애완견 음식과 관상용 비료에 이르기까지 일상사는 물론 취미생활을 돕는 갖가지 물건이 햐쿠엔쇼프를 구성하고 있다.


햐쿠엔쇼프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한국에도 들어와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말하는 1천원 매장은 일본의 햐쿠엔쇼프와 크게 다르다.


한국의 1천원 매장을 일본과 비교할 때 크게 다른 점은 다양한 가격대다. 1천원이라고 하지만, 좀 괜찮은 물건이라 싶으면 2천~3천원으로 올라간다. 5천원짜리도 본 적이 있다. 대략 살펴보면 50% 정도가 1천원대이고 나머지는 그 이상의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 물건의 질이나 종류도 일본에 비해 열세다. 일단 물건이 크다. 국자나 유리그릇 같은 것을 보면 햐쿠엔쇼프보다 한국 내 제품이 훨씬 크다. 크다고 해서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생산단가가 올라간다고 볼 수 있다. 햐쿠엔쇼프의 경우 친환경 제품으로 플라스틱 대신 나무를 많이 쓰는데 비해, 한국은 화학소재로 만든 물건이 많다. 언뜻 봐도 물건이 크고 빈틈이 있다는 느낌이 든다. 좀 심하게 표현하자면 뭔가 부실하게 보인다.


매장의 크기나 구조를 봐도 햐쿠엔쇼프와 차이가 많다. 일단 한국 매장의 경우 크다. 햐쿠엔쇼프 통로의 경우 한 사람이 겨우 걸어갈 정도의 협소한 공간으로 이뤄져 있다. 한국의 경우 두 사람이 지나쳐도 될 만큼 넓다. 한 곳에 쌓아둔 물건의 양도 한국이 월등하게 많다. 공간활용이란 점에서 볼 때 한국은 크고 넓다. 그만큼 지출이 많다는 의미다. 한국에서 1천원 매장이 저렴한 가격으로 인기를 끈다고 하지만, 일본의 햐쿠엔쇼프를 안다면 구입을 주저할지 모른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질이나 상품 종류라는 측면에서 볼 때 1천원 매장은 한참 처져 있다.


▒ 햐쿠엔쇼프의 가격 역사성


▎2시간 동안 1만원만 내면 마음껏 마실 수 있는 식사 코스. 일본에는 1천 엔으로 끝나는 마시고 먹는 코스가 유행이다.


필자가 햐쿠엔쇼프를 일본 재생에 연결시키는 이유로 ‘햐쿠엔쇼프의 역사성’에 관한 부분을 강조하고 싶다. 간단히 말해 10년 전, 아니 20년, 30년 전에도 100엔 하던 상품이 아직도 100엔이라는 점이다. 필자가 햐쿠엔쇼프를 처음 접했던 것은 25년 전인 1990년 겨울이다. 신주쿠(新宿)역 근처에서 처음 만났던, 당시로는 상당히 비싸다고 느껴지던 상품이다. 1990년 환율은 현재와 비슷한 수준인 100엔=939.4원이다. 당시 대학을 막 졸업한 필자의 월급은 약 50만원이고, 일본의 대졸초임은 20만 엔 정도였다. 4배 정도 격차였다. 100엔이라고 하지만 물가를 감안하면 현재의 4천원 정도 물건으로 비쳤다. 햐쿠엔쇼프 물건의 종류도 오늘날처럼 많지 않았지만, 일본 내 모든 물건이 엄청 비싸게 느껴졌기에 100엔 짜리조차 상당히 거리감이 느껴졌다.


햐쿠엔쇼프가 일본에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1985년이다. 일본이 버블경제의 극에 달했던 시기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1926년 오사카(大阪) 다카시마야(高島屋) 백화점에서 선보인 ‘무엇이든지 10전 매장(なんでも十銭均一売場)’을 원류로 삼을 수 있겠다. 하지만 현대적 의미의 햐쿠엔쇼프는 1985년이 원년이다. 햐쿠엔쇼프는 이미 1873년 미국의 프랭크 울워스(Frank Woolworth)가 만든 ‘5센트에서 10센트 스토어(5-and-10 Cent store)’를 모델로 삼고, 다카시마야가 축척한 비즈니스 노하우를 근거로 한 개량형 소매 매장이라 볼 수 있다. 햐쿠엔쇼프가 처음 등장한 1985년 당시의 이미지는 싸구려 잡화점에 불과했다.


1990년대 들어 일본 경제의 버블이 터지면서 상황은 급변한다. 햐쿠엔쇼프에 대한 수요가 급증한다. 극빈층이 아니라 신학기를 맞은 학생들을 위한 학용품, 신방을 꾸미는 신혼부부용 식기 생필품, 나아가 화초, 자수와 같은 여가 활용을 도와주는 도구의 공급처로 햐쿠엔쇼프가 부상한다.


1990년대 중반 한국 원화가 오르면서 100엔이 700원대까지 떨어진다. 한국의 물가가 급상승하면서 햐쿠엔쇼프가 비싸지 않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은 21세기 들어서부터다. 놀랍게도 1985년 탄생된 햐쿠엔쇼프는 21세기 들어서도 똑같은 가격을 유지한다. 2015년 말 햐쿠엔쇼프에서 만난 물건들은 한국 내 1천원 상품에 비해, 가격·질·양 모든 면에서 앞선다. 1990년 도쿄에 들렀을 때 비싸서 엄두도 내지 못했던 햐쿠엔쇼프이지만, 25년 만에 일본제 물건이 한국산 물건보다 경쟁우위에 서게 된 것이다.


최근 일본 방문을 통해 접한 엄청난 ‘경이(驚異)’로 햐쿠엔쇼프의 새로운 진화가 떠오른다. 원래 100엔 상품은 공산품, 학용품, 취미 관련 제품이 대부분이다. 대량 생산된 다양한 제품을 유효기간 없이 싸게 파는 곳이 햐쿠엔쇼프다. 2016년 햐쿠엔쇼프는 다르다. 음식과 채소와 같은 유효기간을 필요로 하는, 생필품이 깔리기 시작했다. 모밀국수, 스시, 김밥으로 이루진 100엔짜리 도시락도 등장한 것이다. 배추나 과일을 8등분, 4등분해서 판매하는 100엔 시장도 도쿄 근처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물론 100엔만이 아니라, 그 이하 가격의 물건도 많다. 콩나물 24엔, 두부 36엔 같은 식이다. 양을 많이 해서 100엔을 넘기는 물건도 있지만, 대략 150엔 선에서 멈춘다. 음식의 경우 도시락만이 아니라, 소고기·돼지고기·생선·덴푸라 같은 제품도 있다. 건강을 생각해 당뇨병과 혈압에 좋은 통조림 음식도 100엔 상품으로 나와 있다.


100엔 음식의 등장은 현재 일본이 딛고 있는 ‘비극적’ 사회현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고령사회다. 한국은 고령화가 나타나면서 확산되는 상황이지만, 저소득 독거형 고령자들이 급증하면서 햐쿠엔쇼프도 진화하기 시작했다. 100엔짜리 음식이 대안이다. 나이가 들면 요리를 하기 어려워진다. 그렇다고 해서 매일 비싼 음식을 사먹을 수도 없다. 20대가 보면 부실하고도 적은 양이지만, 끼니를 이어가기 위한 수단으로 100엔 음식이 선보인 것이다.


▒ 한국의 고령화 사회의 미래, 키타센쥬 역 주변


▎1. 햐쿠엔쇼프 물건의 90%는 100엔대다. 물건의 질이나 종류도 한국이나 미국에 비해 양호하다. / 2. 100엔짜리 삼각김밥. 한국의 편의점과 비슷하거나 싼 가격이지만, 1 질로 따지면 한국제품이 따라가기 어렵다.


일본 방문기간 동안 고령자들의 집단거주지로 알려진 도쿄 북부지역에 들른 적이 있다. JR전철 키타센쥬(北千住)와 미나미센쥬(南千住) 역 주변으로, 대낮에도 인적이 드물다. 도쿄 교외라 하지만, 전철을 타면 25분이면 긴자(銀座)에 들를 수 있는 지역이다.


카타센쥬에서 미나미센쥬로 걸어오는 동안 필자는 한국에 닥칠 고령사회의 참상이 어떤 것인지 피부로 절감할 수 있었다. 평일 대낮인데도, 보행객이 드문 것은 물론 길가의 가게도 50% 정도는 폐업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손님이 적기도 하지만, 가게 주인들도 나이가 많아 문을 못 열기 때문에 폐업상태가 이어진다는 것이다. 장사가 잘되면 가게를 계속 유지하려는 자식이 생기겠지만, 그럴만한 여건도 못 된다고 한다. 그나마 문을 연 가게의 경우도 대부분 70대 노인이거나, 중국 필리핀 점원으로 채워져 있었다.


햐쿠엔쇼프는 그 같은 음울한 상황을 역설적으로 웅변해주는 번창(繁昌) 비즈니스의 상징처럼 와 닿았다. 곳곳에 햐쿠엔쇼프가 늘어서 있다. 특히 편의점 로손(Lawson)이 운영하는 햐쿠엔쇼프가 거의 1㎞ 거리마다 들어서 있다. 공산품은 물론, 100엔 도시락과 과일이 매장을 채우고 있다. 구입자의 90%가 70대 이상의 노인들이었다. 로손 바로 앞 길가에 앉아서 술을 마시는 노인도 눈에 띄는 등 일본에서 보기 어려운 모습도 접할 수 있었다.


도쿄 북쪽에서 만난 햐쿠엔쇼프는 저소득 고령화로 인한, 사회 전체 디플레이션화(化)의 증거이기도 하다. 그러나 국가경제가 아닌, 저소득 고령자의 입장에서는 관점이 달라진다. 햐쿠엔쇼프야말로 자신들의 생명과 삶의 즐거움을 연장시켜줄 유일한 희망에 해당된다. 2014년, 일본의 1인당 명목 국민소득은 3만6221달러에 달한다. 같은 기간 한국은 2만7970달러. 1만 달러가 더 많은 국민소득의 나라지만, 하루 1만원 정도로 식사와 여가를 즐길 수 있는 나라가 일본이다. 햐쿠엔쇼프에 의존하는 디플레이션 나라라고 비난할 수도 있겠지만, 저소득 독거 고령화로 내몰린 사람들이 살 수 있는 최적의 땅이 바로 일본이다.


▒ 생활용품 만드는 기업의 가치 재발견


▎길고 긴 불황을 이겨내는데 도움을 준 의류 유니클로. 원래 1천 엔대의 저가 의류지만 최근에는 1만 엔대를 넘기는 고급의류도 병행해서 판매한다.


현재 햐쿠엔쇼프에는 대략 5천 개의 물건이 공급된다고 한다. 일본 내 생산지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해외공장에서 제조돼 수입된 것이다. 일본인이 직접 가서 기술을 제공하기 때문에, 물건 제조가 끝나는 순간 공장도 폐쇄된다. 따라서 일본 내에 집적된 상품의 물류창고가 엄청나게 필요하게 된다. 햐쿠엔쇼프를 운영하는 일본 내 기업은 전부 20여 개에 이른다. 이들 기업의 판매망과 실적은 현지에서의 생산단가는 물론, 일본 내 물류창고의 확보에 있다고 보면 된다. 전국 곳곳에 창고를 갖고 있을 경우 햐쿠엔쇼프 매장도 주변에 확산 시킬 수 있다.


둘째는 판매시점 정보관리, 즉 POS시스템(point of sales system)에서 햐쿠엔쇼프의 비밀을 발견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해 100엔짜리 상품 하나를 구입하는 순간, 얼마가 창고에 남아 있고 어느 창고에 가면 공급받을 수 있는지를 곧바로 확인할 수 있게 만든 유통구도다. 재고 정리나 공급 루트가 중앙집권식 컴퓨터를 통한 POS시스템으로 이뤄진다. 바코드로 물건 가격을 찍는 순간 POS시스템을 통해 물류 정보가 확보된다. 언뜻 봐선 너무도 간단한 시스템이지만, 햐쿠엔쇼프가 1엔 단위의 순익확보를 위한 저가상품 비즈니스란 점을 감안하면 POS시스템의 의미를 재음미해 볼 수 있다.


지난 12월 4일 서울에서 열린, 2016년 대한민국 재테크 박람회에 8천여 명의 청중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기준금리가 1%대로 떨어진 상황에서 어디에 투자할지를 망설이는 사람들이 찾았다고 볼 수 있다. 당시 박람회의 스피커로 나선 사와카미 아쓰토(澤上篤人)투자신탁 회장은 한국인 투자가들에게 새로운 스타일의 투자 지침을 권유해 화제를 불러모았다.


“사람들은 매일 생활 속에서 사용하는 제품을 만드는 기업들을 (첨단이나 유행에 뒤졌다고) 뒤돌아보지 않지만, 그런 기업 중에 혁신을 이어가면서 10년이 지나도 기업가치를 잃지 않는 회사에 투자해야만 초저금리 시대를 헤쳐나갈 수 있다.” 신문에 실린 사와카미 회장의 발언을 대하면서 필자가 주목한 부분은 ‘생활 속에서 사용하는 제품’에 관한 것이다. 버블경제가 터진 뒤 이어진 잃어버린 20년을 관찰해본 사람이라면 ‘생활 속의…’가 의미하는 구체적인 분야가 어디인지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 대부분이 오해하고 있지만, 잃어버린 20년은 IMF 한파 이후 한국에 나타난 대량실업형 경제구도와 무관하다. 5% 미만의 실업률과 함께 고용도 유지되며 여름에는 가족 동반 해외관광도 나선다. 그렇지만, 정부재정이 적자로 나아가는 국가 침몰형 구조가 잃어버린 20년의 초상화다.


일본 특유의 집단주의에 근거해 해고 없는 ‘워크 쉐어(Work Share)’를 통한 경제가 버블 이후 경제의 키워드 중 하나다. 연봉 1억원이던 사장이 월급을 반감하면서 해고될 사람 서너 명을 더 고용하는 식이다. 모두가 조금씩 양보하거나 절약을 하면서 일자리를 나눠 갖는다. 그러나 수입은 모두 줄어든다. 따라서 구매능력도 약화된다. 의식(衣食)과 관련된 생활용품의 경우 지출이야 줄겠지만, 아예 없앨 수는 없다. 그 같은 환경 아래서 나타난 것이 햐쿠엔쇼프다. 사와카미 회장이 말한 새로운 투자영역이다.


▒ 일본 최고의 갑부는 옷장수


햐쿠엔쇼프는 거품을 뺀 다이어트 경제·경영의 상징에 해당된다. 어두(語頭)에 100이란 숫자를 키워드로 하는 과정에서 햐쿠엔쇼프에 대한 얘기를 다뤘지만, 사실 햐쿠엔쇼프 정신은 잃어버린 20년을 통해 곳곳에서 나타난다. 필자는 햐쿠엔쇼프에 비견되는, 더 이상 뺄 수 없는 다이어트 비즈니스 가운데 특히 두 분야를 주목한다. 의류의 유니클로(ユニクロ)와 가구의 니토리(ニトリ)다. 잃어버린 20년이 낳은, 불황의 상징이자 불황을 극복한 비즈니스의 상징이다.


유니클로의 경우 한국 매장을 통해 한국인에게도 친근한 상품이다. 최근에 갑자기 10만원이 넘는 고가 고급 의류로 변신하고 있지만, 잃어버린 20년 일본인의 국민유니폼으로 사랑받은 것이 유니클로다. 속옷·양말·내복·잠바·바지·장갑·코트·신발 등 거의 대부분의 의류가 유니클로를 통해 일본인들에게 공급됐다. 질적 수준에 비해 가격이 엄청 싸기 때문이다. 싼 게 비지떡이 아니라, 싸면서도 놀라울 정도의 수준을 유지해온 테크놀로지 첨단 의류가 유니클로다.


가구 니토리는 햐쿠엔쇼프와 유니클로의 연장선에 있는 제품이다. 일본 220곳, 타이완(臺灣) 17곳의 매장을 가진 중저가 가구상이다. 필자 판단으로는 스웨덴의 이케아(IKEA)보다 튼튼하고 고급스럽다. 그런데도 가격은 비슷한 수준이다. 1만 엔 정도 지불하면 쓸 만한 가구를 구입할 수 있다. 전반적으로 가구의 크기는 이케아 제품보다 작다. 그러나 쓰고 버리는 식의 이케아 가구와 달리, 한 번 구입하면 영원히 갈수 있는 제품이다. 이미 일본에서는 가구의 유니클로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신혼살림이나 새 사무실을 장식하는 필수 제품에 해당된다. 침대·의자·책상·식탁 전부를 구입해도 100만원 이하다. 탁월한 디자인과 가격 경쟁력을 감안해볼 때 가까운 시일 내 한국에도 등장할 듯하다.


100엔으로 다져진 일본의 경쟁력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은 물론, 한·중·일 사이에 이뤄질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힘을 드러낼 것이다. 단언컨대 일본의 햐쿠엔쇼프가 한국에 들어가는 순간, 한국산 생필품은 초토화될 것이다. 외국인 관광객이 일본에 들러 구입하는 대표적 물건 중 하나가 햐쿠엔쇼프 제품이다. 필자 역시 마찬가지지만, 사면 살수록 돈을 버는 느낌이 든다. 중국인조차 자국산 물건보다 질적으로 우수하고 가격도 싸다고 말한다.


‘앞으로 닥칠 길고 긴 불황의 터널’. 2016년 한국 경제를 얘기할 때 떠올려지는 수식어 중 하나다. 20년 인고(忍苦)의 시간을 통해 새롭게 탄생된 것이 햐쿠엔쇼프·유니클로·니토리 같은 상품이다. 잃어버린 20년은 일본 전체를 다이어트 경제·경영체제로 바꿔놓았다. 어려운 시간을 통해 새로운 발상과 제품이 등장한 것이다. 한국 역시 앞으로 닥칠 시련을 통해 제2, 제3의 도약이 가능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거품을 뺀 구도와 더불어, 키즈나 즉 일심단결로 내일을 맞는 일본 발 교훈과 경험이 절실하게 와 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