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지면, 다시 일어서면 되죠. 금수저? 헬조선? 저는 그런 말 몰라요. 새벽 찬 공기 맞으며,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작업장에서 인생을 배우는 사인사색(四人四色) 이들 청년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통계청에 따르면, 2015년 ‘취업을 한 번도 못한 대졸 이상 실업자’는 6만5천명. 1년 전에 3만 명이었던 것이 갑절 이상 늘어났다. 청년들이 느끼는 고통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들의 좌절이다. ‘금수저’, ‘헬조선’, ‘노오력’ 등 지난해 우리 사회를 달궜던 많은 신조어 중의 대부분이 젊은층에서 만들어졌다. 하지만 고통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는 청년도 분명 존재한다. 그들은 어떻게 좌절감에 함몰되지 않고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 걸까? 24절기 중 가장 춥다는 소한(小寒). 소위 ‘극한알바’를 뛰고 있는 청년들을 수소문해 만나보았다.
첫 번째, 분홍빛 긍정형-한국민속촌 알바 김다예 씨
개장 30분 전, 한국민속촌 분장실이 배우 여덟 명의 움직임으로 부산하다. 대여섯 벌의 옷을 껴입고 있는 남자들 사이에서 홍일점인 김다예(20) 씨가 콧물을 그리는 것으로 자신의 분장을 마무리한다. 대학에서 뮤지컬을 전공하고 있는 김씨는 ‘광년이’ 역을 맡았다. 어눌한 말투가 핵심이다. 따로 정해진 무대나 대본은 없다. 매 주말, 8시간 정도 관람객을 상대한다.
일이 힘에 부치는 건 어쩔 수 없다. 실제로 한 번은 다리에 힘이 풀려 고꾸라진 적도 있단다. 하지만 가장 힘든 건 막무가내형 관람객을 대할 때다. 화장실까지 아이들이 쫓아올 때에도 미소를 보여야 한다. 그만큼 서러운 것도 없다.
설혹 그런 일이 있을 때도 김씨는 “민속촌은 나의 무대”라고 상상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관람객들의 상처 주는 말과 행동은 달리 생각하면 김씨가 그만큼 ‘광년이’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실제로 이런 마음가짐을 갖게 되자 연기력 향상에도 도움이 되었다.
“하루 종일 연기할 수 있는 기회가 흔하진 않잖아요.” 질문에 진지하게 답하다가도, 관람객들이 말을 걸면 바로 천치가 되어버리는 그녀. 똘똘함과 어눌함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김씨는 이미 베테랑이다.
두 번째, 푸르른 인내형-가락시장 알바 송원재 씨
오후 4시의 가락시장은 온통 초록색이다. 건물 안에선 차량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대형트럭이 몰고 온 바깥 공기에 썰렁한 경매장. 깻잎 상자를 옮기는 송원재(26) 씨의 몸이 다부져 보인다. 송씨는 일주일에 다섯 번 출근한다. 4시에 출근하면 채소를 실은 트럭이 하나둘 도착한다. 제일 무거운 건 미나리다. 협력작업을 한다고 하지만, 1인당 미나리 200포대쯤을 옮겨야 한다. “여기서 일하는 10명 중 3명이 디스크 환자예요.” 온몸에 붙여놓은 파스를 내보이며 송씨가 말했다.
작업 환경도 ‘최악’이다. 양철 건물이라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냉장고다. 그런 가락시장이 송씨에게는 “인생의 배움터”다. 노동자는 못 배우고, 불만만 많은 사람들이라고 지레짐작했던 그였다. 더구나 하루 20시간씩 일하고, 외국 대학이나 고위직 출신의 노동자가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송씨는 지난해 하반기 공채로 조선소에 채용되어 2월 입사를 앞두고 있다. 도매시장에서 5년 넘게 알바를 뛰면서 보고 들은 것이 그만의 무기가 되었다. “놀면 뭐해요. 입사할 때까진 계속 일하려고요.” 인터뷰를 마치고 그가 쏜살같이 다른 트럭을 향해 뛰어간다.
세 번째, 샛노란 의지형-조선소 알바 이종수 씨
웬만한 동(洞) 하나 크기의 A조선소. 축구장 두세 개보다 넓은 배들 사이로 부는 겨울바람이 매섭다. 옷깃을 세우는 이종수(가명·24) 씨의 등 뒤로 아파트 40층 높이의 골리앗 크레인이 우뚝 서 있다.
이씨가 조선소 일을 시작한 건 목돈마련을 위해서였다. 자신의 브랜드를 론칭하는 데 3천만원이 필요했다고 한다. 그때 조선소 모집 공고가 눈에 들어왔다. 일당 10만원, 한 달에 최대 300만원을 벌 수 있어 큰맘을 먹었다.
막상 조선소에서 일을 해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위험했다. 종종 건물 10층 높이에서 발판 하나에 의지해 서 있으면 “이대로 떨어지면 죽겠다”는 생각에 다리가 후들거린다. 머리 위에서 철재가 떨어진 적도 숱하다.
그의 작업은 주로 용접가스로 가득 차 있는 밀폐구역 안에서 이뤄진다. 마스크와 고글을 쓰고 들어가더라도, 두세 시간 머물다 보면 “화생방훈련이 따로 없을 정도”로 고통스럽다. 그럼에도 이씨는 조선소 일을 하면서 자신감을 얻었다고 했다. 매사에 최선을 다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렸다. 그런 소문을 들었는지 지금 일하는 A조선소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 일을 시작한지 불과 두 달 만이었다.
땀으로 범벅이 된 이씨의 몸은 퇴근길 찬바람에 금세 말라버린다. 숙소로 들어서는 그의 얼굴이 새까맣다. “샤워를 할 때가 하루 중 제일 행복하다”고 그가 말했다. 욕실 수채구멍으로 흘러 들어가는 목욕 물에 그의 고단함마저 씻겨 내려가는 듯하다.
네 번째, 순백의 열정형-스키장 제설(製雪) 알바 장서원 씨
칠흑같이 어두운 밤, 조명이 환하게 비추는 슬로프에 시끄러운 엔진 굉음을 내며 돌아가는 제설(製雪)기가 굵은 인공눈발을 토해낸다. 쏟아지는 눈 속에서 장서원(19) 씨가 삽으로 연신 눈을 퍼 흩뿌린다.
지난해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장씨는 대학을 가지 않았다. 한동안 방황하다 부모님에게서 독립하기로 결심했다. 자립하려면 돈이 필요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때 장씨의 눈에 띈 게 ‘스키장 제설 알바’ 모집공고였다.
장씨의 일과는 영업이 끝난 밤 10시 이후 시작된다. 제설기를 설치·조종하는 게 주 업무다. 제설기가 공중에 작은 물방울을 흩뿌리면 떨어지면서 얼음알갱이(인공눈)가 된다. 두세 시간 작업하면 한 시간 정도 휴식이 주어진다. 이 과정을 세 번 반복하면 퇴근 시간이 된다.
제일 힘든 건 삽질이다. 제설기 주변에 쌓이는 인공눈을 삽으로 퍼내는 일이다. 제때 치우지 않으면 순식간에 사람 키보다 높이 쌓이곤 한다. 눈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왕복 한 시간 정도 걸리는 슬로프를 매일 세 번씩 오르내린다.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강추위는 두꺼운 털부츠와 여러 겹의 옷을 뚫고 뼛속까지 엄습한다.
스키장 제설 알바는 청년들 사이에 ‘극한 알바’로 통한다. 같은 스키장 알바라도 패트롤(안전요원)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시급은 최저임금 수준으로 박하다. 그런데도 장씨의 목소리는 밝기만 하다. “앞으로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디서 뭘 하든 여기보다 힘들겠어요?”, “지금처럼만 열심히 살려고요.” 하얀 이를 드러내고 활짝 웃는 송씨의 얼굴이 새하얀 설원처럼 빛나고 있었다.
재택이나 사무실에서 일하는 꿀알바 대신에 사람들이 꺼리는 극한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년은 아마도 많이 있을 것이다. 비록 몸과 마음이 힘들지만 그만큼 그들에게 값진 시간이 되길 바란다. 좌절해도 오뚝이처럼 일어서며 자신이 꿈꾸는 하고 싶어하는 것에 대한 끊임없이 도전하는 청년에게 분명 좋은 날들이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