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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기업 M&A는 모험이자 기회

외환위기 당시 구조조정에 내몰린 기업들을 외국계 사모투자펀드(PEF)가 손쉽게 주워 담았다. 1990년 후반에는 기업을 인수해 약간 손질한 다음 차익을 남기고 팔아 치우는 전문'꾼'들이 횡행했다. 기업 또는 자산을 사고 팔고 합치고 떼어놓는 일은 지금도 반복된다. M&A 흥망사를 알아보자.


기업 M&A


▒ SK : M&A로 일가를 이루다


자산기준 재계 3위인 SK그룹을 이끄는 에너지와 통신은 둘 다 M&A로 시작됐다. 선경직물로 출범한 SK그룹은 섬유업계의 수직계열화가 한창 진행되던 1980년 대한석유공사 주식 50%를 671억 7800만원에 인수했다. 대한석유공사는 1982년 유공, 그리고 SK에너지로 이어진다. SK그룹은 수많은 인수와 합병, 분할을 통해 SK이노베이션을 사업 지주회사로 삼아 원유 정제업은 물론 각종 석유화학업도 수행하고 있다.


대한석유공사를 인수할 당시 사업 구조조정도 단행했다. 워커힐여행사, 선경식품을 매각하고 이듬해에는 선경반도체 해산, 선경유화와 워커힐교통을 내다팔았다. 1990년대 중반까지 소규모 인수합병을 통해 사업을 키우고 해운업에도 진출했으나 주력사업은 석유화학과 에너지였다. SK그룹이 또 한 번 도약한 계기는 1994년 한국이동통신 인수다.


한국이동통신 인수로 1992년 제2이동통신 사업권을 따내자마자 정치적 특혜 시비에 휘말려 사업권을 반납한 아쉬움을 떨쳐내는 순간이었다. 한국이동통신이 현재 SK텔레콤이다. 또 한 번의 모험으로 수차례 매각에 실패한 하이닉스 인수전에 뛰어들어 결국 승자가 되었다. SK텔레콤을 인수 주체로 앞세워 약 3조4천억 원을 쏟아부었다.


SK M&A


그러나 당시 하이닉스 인수는 우려가 많았다. 대한석유공사와 한국이동통신 인수를 이끈 오너는 고(故) 최종현 회장이었고 하이닉스는 아들인 최태원 회장의 몫이었다. 더군다나 하이닉스는 국내는 물론 세계 시장에서도 삼성전자에 한참 뒤진 D램 분야의 2위 사업자다. 게다가 D램 가격의 하락으로 하이닉스는 대규모 적자를 보였다.


하지만 하이닉스 인수를 완료하는 시점에 D램 업계에 커다란 소용돌이가 일었다. 세계 3위인 일본 엘피다가 파산을 신청하고 다른 업체들도 감산에 들어가면서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의 입지가 공고해진 것이다. 이에 따라 D램 가격이 반등하며 SK하이닉스로 재탄생한 후 이듬해(2013년)에는 인수가격에 육박하는 금액의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반도체는 에너지, 통신과 함께 명실공히 SK그룹을 이끄는 삼두마차가 됐다. 최근에는 CJ헬로비전과 OCI 머티리얼즈를 인수해 유료방송과 반도체 소재 사업 강화에도 나섰다.


▒ 한화 : M&A의 본능은 한화에서 배워라


한화 M&A


2014년 한 해가 저물어 가는 시점에 한화그룹은 삼성그룹과 놀라운 거래를 발표했다. 삼성테크윈, 삼성종합화학, 삼성토탈, 삼성탈레스 등 삼성그룹 계열 4개사를 한화그룹이 인수키로 한 것이다. 방위사업과 석유화학사업을 동시에 강화하는 거래다.


한화는 M&A 기업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그룹의 주력인 한화케미칼은 1982년 한양화학과 한국다우케미칼 인수에서 비롯됐다. 한화호텔앤드리조트는 정아그룹, 한화갤러리아는 한양유통, 한화생명은 대한생명, 한화에너지는 여수열병합발전, 한화솔라원은 중국의 솔라원파워홀딩스, 한화큐셀은 독일의 큐셀 등의 인수에서 시작됐다.


태양광을 포함한 에너지와 석유화학, 금융, 유통·레저 등 그룹의 주력이 거의 모두 M&A를 통해 형성됐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수완도 좋다. 헐값 매각 논란이 일었던 대한생명(현 한화생명)은 2002년 M&A 당시 누적 손실(2조3천억원)을 2008년에 모두 털어냈다. 최근에는 다시 삼성 계열사까지 사들일 정도로 여전히 M&A 본능을 번뜩이고 있다.


▒ 금호아시아나 : 성공에 중독 돼 빚 무서운지 모른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승자의 저주’라는 말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저돌적이라는 표현마저도 부족하다는 박 회장은 2002년에 그룹 회장직에 오른 뒤 우여곡절 끝에 2006년에 대우건설을 인수했다. 그로부터 2년 후 대한통운까지 계열로 편입했다.


금호아시아나 M&A


대우건설을 금호건설과 연결해 건설업체 1위로 올리고, 대한통운을 아시아나항공과 연계해 육해상 수송로를 장악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었다. 그러나 하나도 소화하기 힘든 기업을 2년 사이에 둘을 먹었으니 배탈이 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당시 대우건설 인수자금은 무려 6조4천억원. 이중 절반을 18개 금융기관에서 빌렸다. 금호그룹의 현금창출력을 고려했을 때 채권단은 까다로운 조건을 요구했다. 금호그룹은 담보로 대우건설 주식에 풋백옵션(매도 선택권)을 제시했다. 2009년 말까지 대우건설 주가가 3만2천원에 미치지 못하면 주가 차액만큼 금호그룹이 보상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대우건설 주가는 한때 6천원대로 떨어지는 등 부진을 면치 못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건설 경기부터 때렸다. 결국 금호아시아나는 2009년 대우건설을 다시 내놓기로 결정한다. 이런 상황에서 4조1천억원을 들여 대한통운을 인수했으니 위기는 그룹 전반으로 퍼졌다.


▒ 'M&A의 달인' '승자의 저주'는 결과론일 뿐


의사결정 과정이 어떻든 ‘M&A의 달인’과 ‘승자의 저주’라는 평가는 결과론일 뿐이라는 의견이 많다. 많은 돈을 쏟아부은 태양광이 언제 부메랑으로 돌아올지 모르는 한화그룹의 김승연 회장의 평가도 유보해야 한다. M&A로 일가를 이루고 천운을 타고났다는 SK그룹도 해외에만 가면 고개를 숙인다. 미국과 중국 등에서 이동통신이나 에너지 업체 지분을 인수했으나 처참한 결과로 이어졌다.


기업 인수합병


M&A 달인은 진정 없는 걸까. 오너는 아니지만 전문 경영인으로 탁월한 M&A 수완을 발휘한 CEO가 있다. 바로 차석용 LG생활건강 대표이사 부회장이다. 그는 코카콜라음료부터 시작해 다이아몬드샘물, 더페이스샵, 한국 음료, 해태음료 등을 연달아 인수하며 보수적인 LG그룹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


그는 단시간 내 적자 회사를 흑자로 전환하는가 하면 인수자금 유출로 악화된 재무구조도 곧바로 복구하는 수완을 발휘했다. 이후에도 보브의 화장품 사업부, 긴자 스테파니, 퓨처, 에버라이프 등 어마어마한 식욕을 과시했다. LG생활건강은 식음료는 물론 화장품에서도 확고한 시장 지위를 차지했고 해외 사업도 날로 번창하고 있다.


차 부회장이 알려주는 'M&A달인’을 위한 몇 가지 요건은 다음과 같다. ▷흙 속의 진주 발견 능력 ▷옵션이 덕지덕지 붙은 대규모 차입 지양 ▷덩치에 맞는 M&A ▷구체적인 재무개선 방안 ▷인수대상의 구체적인 수익 확보방안. 기업에는 모험이자 기회가 되는 M&A. 지나친 낙관보다는 철저한 시나리오 대비가 필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