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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변기 만드는 남자, 여명테크 현돈 대표

화장실 변기를 한 번 사용할 때 들어가는 물의 양은 생각보다 굉장히 많아요. 특히 기존의 변기는 한 번 물을 내리기 위해 적어도 8리터 이상의 물을 써야 한다고 해요. 하지만 신기술을 통해 물 사용량을 3.5리터까지 줄인 절수형 변기가 개발되었다고 해요. 

 

현돈 ㈜여명테크 대표는 “절수형 변기로 쓰기엔 기존의 사이펀 방식과 미국의 워시다운 방식 모두 한국 실정에 맞지 않다”고 말했다.

 

10.5ℓ. 화장실 변기에 사용되는 물량을 측정하는 유량계 눈금이 6ℓ를 훌쩍 넘어 멈췄다. 변기를 지켜보던 주승용 의원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다른 변기도 이렇습니까?”

국회 의원회관에 설치된 변기들은 바꾼 지 2년이 안 된 절수 제품(1회 물 사용량 6ℓ 이하)이었다. 환경부는 수도법 시행규칙에 따라 2014년부터 모든 신축 건물에 물 사용량이 6ℓ 이하인 대변기를 쓰도록 의무화했다. 주 의원이 유량계 시험을 한 때는 2017년이었다. 따라서 변기 물 사용량이 환경부 시행규칙에 따라야 함에도 현실은 따로 놀았다.

비단 국회뿐만이 아니다. 2016년 당시 서울대 빗물연구센터장 한무영 교수가 실측한 결과에 따르면 규정이 지켜진 공공시설은 표본 열 곳 가운데 한 곳에도 못 미친 것으로 조사됐다. 제작업체의 눈속임이었을까.

“기존 방식으로는 물 사용량을 8ℓ 밑으로 줄이기 어렵다.”

2년 전 주 의원 사무실에서 유량을 실측했던 현돈 ㈜여명테크 대표가 설명을 이었다.

“흔히 쓰는 ‘사이펀 트랩(배수관)’ 방식은 8ℓ가 한계에 가깝다. 그 이하로 내려가면 변이 시원하게 씻겨나가지 않는다. 그러니 설계는 6ℓ 이하로 했어도, 설치할 때 ‘볼탑’이라고 부르는 수위조절장치를 늘려놓는다.” 일종의 편법이 동원되는 것이다.

현 대표는 이를 해결할 기술을 진작에 확보했다. 2013년 개발한 ‘중력가변 트랩’ 기술이 그것이다. 이듬해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신기술(NET)인증’을 받았다. 물 사용량을 3.5ℓ까지 줄이고도 세척력을 잃지 않는 점 등이 평가를 받았다. 이 기술을 적용해 제작한 변기 ‘에바스(EBAS)’는 지난해 ‘신제품(NEP)인증’을 받았다. 절수형 변기 가운데선 유일하다. 산업기술혁신 촉진법은 공공기관이 구매하려는 품목에 NEP 제품이 있는 경우 구매액의 20% 이상을 NEP 제품으로 구매토록 한다.

엔지니어 출신인 현 대표의 집념과 도전의 산물이었다. “전 세계 공항 화장실을 돌아다니며 갖가지 변을 만져봤다”고 그는 말한다. 올 한 해 6배 매출 신장을 기대한다는 현 대표의 ‘변(便)’론에는 막힘이 없었다.


일반 양변기 대비 물 사용량 65% 줄어

사진 : 그래픽 여명테크

용어가 어렵다. 사이펀 원리가 뭔가?

“자동차 엔진에서 기름 뽑아낼 때를 생각하면 쉽다. 입으로 호스 한쪽을 빨아 당겨서 기름을 끌어올리면 어떻게 되나. 일단 호스 끝까지 빨아올리면 그 다음부턴 힘들이지 않아도 엔진에 있던 기름까지 빨려나온다.

변기도 마찬가지다. 레버를 내리면 S자 배관에 물이 찬다. 그러다 배관의 가장 높은 지점까지 물이 차면 ‘솨’ 소리를 내면서 변기 바닥에 있던 오물까지 배관으로 빨려나간다. 깔끔하게 빠져나간 뒤엔 변기에 물이 다시 고인다. 그러니 배관에서 악취가 안 올라온다. 사이펀 원리를 적용한 변기가 240년 넘게 쓰이는 이유다.”

사이펀 방식으론 물을 최대한 아껴도 8ℓ가 한계라고 말했는데.

“문제는 사이펀 원리를 작동시키는 데 드는 수량이다. ‘배관 구경×배관 길이’로 여기에 필요한 물을 계산하는데, 일반 양변기(배관 단면적 53㎜)에선 적어도 4ℓ다. 변기 세척용으로 들어가는 물이 2ℓ, 그리고 다시 변기 바닥에 고이는 물이 2ℓ다. 그러니 최소한 8ℓ가 돼야 사이펀을 작동시키면서 충분하게 변기를 세척할 수가 있다.”

그러면 사이펀 방식으로는 절수형 변기(6ℓ/회)가 불가능한가?

“배관 구경을 줄이면 적은 물로도 사이펀이 작동하긴 한다. 보통 45㎜까지 줄인다. 그런데 배관에 변이 자주 걸린다. 굵은 변의 지름이 35㎜ 정도 된다. 여기에 휴지까지 넣으면 막히기 일쑤다. 막히면 물을 두세 번 더 내려야 한다. 이용객이 많은 공용 화장실에선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

예를 들면.

“고속도로 휴게소 변기를 교체하고 한 달가량 실측한 적이 있었다. 기상천외한 물건들이 나왔다. 팬티는 기본, 생리대도 많았다. 심지어 인공장기까지 발견한 적도 있었다. 누가 일부러 버리나 싶어 추석 연휴 내내 휴게소 화장실 앞에서 대기하기도 했다. 좁은 배관으론 이런 변수들을 감당 못한다.”

중력가변 트랩은 어떻게 작동하나?

“형태가 변하는 변기 배수관(가변 트랩)에 작동수(水)가 공급된다. 물의 무게로 가변 트랩이 넘어지면 변기에 있던 오물이 트랩을 지나 오수관으로 배출된다. 거칠게 설명하면 그렇다. 다른 동력을 쓰지 않고 물의 무게만으로 트랩이 변형되도록 설계해서 ‘중력식’이라고 덧붙였다.”

중력가변 트랩을 적용한 변기는 안 막히나?

“중력가변 트랩 방식은 배관 구경을 70㎜로 늘렸다. 기존 절수형 변기보다 2.5배 넓다. 얼마 전에 한 휴게소에 영업하러 갔는데, 청소하시는 분들이 ‘아 생리대 안 막히는 변기’ 하고 아시더라.”

‘뚫어뻥’(화장실용 압축기)을 과거의 유물로 만들려는 건가?

“유감이지만 그렇다.(웃음)”

그런데 배관 구경을 늘리면 물 사용량도 늘어나는 것 아닌가?

“사이펀 방식처럼 ‘시동’ 거는 데 물을 쓸 필요가 없다.”

허언이 아니었다. 2017년 2월 서울대는 캠퍼스에 설치된 변기 467대를 에바스 제품으로 교체했다. 그 결과 2017년 상반기 서울대 관악캠퍼스의 물 사용량이 4.8%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대는 이후 화장실 22개소에 변기 727대를 추가로 교체했다.

2016년 서울도시철도공사(현 서울교통공사)의 실험 결과는 보다 획기적이었다. 일반 양변기 대비 물 사용량이 65% 줄었다. 막힘 건수도 35.5회에서 1.6회로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5·8호선 천호역과 7호선 마들역 남녀화장실에 에바스를 설치하고 45일간 시범 운영한 결과다.

한국공학한림원(회장 권오경)은 지난해 10월 ‘2018년도 산업기술 성과 15선’을 발표했다. 삼성전자의 10나노급 D램, LG디스플레이의 8K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등 쟁쟁한 글로벌기업들이 이름을 올렸다. 여명테크도 여기에 이름을 올렸다. 벤처기업으로선 유일했다.

비유하자면 다윗이 골리앗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형국이다.

“NEP인증의 힘이 컸다. 딸 수 있는 공인인증의 최대치였다. ‘변기는 곧 도기(陶器)’라는 고정관념을 깼다는 점도 중요하다. 기존의 도기 일체형 변기는 배관만 파손돼도 전체를 바꿔야 했다. 그러나 에바스 제품은 플라스틱 배관 부분만 떼어내서 교체하면 된다. 내구재로선 상당한 발전이다.”


“유체는 이론+경험칙… 안 만져본 변 없어”

 

물이 찬 가변트랩(가운데)이 PVC재질의 오수관으로 기울고 있다. / 사진 : 여명테크 캡처

 

특별히 새로운 기술이 아니란 지적도 있다. 미국엔 이미 4ℓ 이하로 물을 사용하는 양변기 모델이 4000개가 넘는다고 하는데.

“미국은 사이펀이 아니라 워시다운(wash-down) 방식을 주로 쓴다. 단순하게 물로 변을 밀어내는 방식이다. 역시 사이펀 방식처럼 따로 시동 걸 필요가 없으니 물이 적게 쓰인다. 그런데 사이펀처럼 깨끗하게 변기를 씻어내지 못한다. 잔변이 여기저기 묻는다. 청결도나 위생 면에서 한국에 비할 바 아니다.”

미국이 한국보다 더러움에 관대한 건가?

“변의 차이도 고려해야 한다. 미국인의 변은 딱딱하고 묵직하다. 그래서 변기바닥에 가라앉는다. 강하게 세척하지 않아도 잘 내려간다. 반면에 한국인의 변은 묽고 잘다. 물 위에 잔변이 잘 뜬다. 식습관이 서구화됐다고 해도 섬유질 섭취량이 비교가 안 된다. 물 위에 뜬 잔변은 워시다운 변기에선 한 번에 잘 안 내려 간다. 두세 번 내려야 하니 결국 절수라고 보기 어렵다.”

상상될 정도로 구체적이다.

“실제로 많이 만져봤다. 해외 나가면 가장 먼저 공항 화장실을 찾는다. 막힌 변기를 찾아서 위생장갑을 끼고 변을 만져본다. 너무 많이 만지다가 장갑을 뚫고 독이 오르기도 했다.”

변기를 개발하려면 변을 먼저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인가?

“그렇다. 유체는 공학으로 푸는 게 어렵다. 경험칙이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카탈로그 상 사용수량만 보면 한국에도 3.5ℓ짜리 초절수형 변기가 없지 않다. 그런데 연구실에서 플라스틱 공 넣고 측정한 결과다. 실제 변을 기준으로 놓고 보면 많이 다르다. 물론 우리도 실험할 땐 된장으로 대용 변을 만들어서 진행했다.”

에바스 카탈로그엔 물 사용량이 4.5ℓ로 소개돼 있더라. 3.5ℓ가 맞는지, 4.5ℓ가 맞는지 독자들이 혼란스러워 할 것 같다.

“초절수형 변기로 인증을 받은 건 3.5ℓ다. 카탈로그에 기재한 수치는 ‘어떤 오수관에서도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정도’를 기준으로 삼은 결과다. 변기 배관에서 나와 정화조까지 가는 오수관에서도 직경과 길이에 따라 필요한 수량이 다르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에선 운동장 건너편에 정화조가 있는 경우도 있다. 화장실에서 100m거리다. 물이 적으면 오수관 중간에서 변이 이동을 못한다. 공학도로서 하수도체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 대표는 대학에서 환경조경학을 전공하고 건설회사와 토목설계회사에서 10년 이상 철도 설계 업무를 맡았다. 회사를 다니며 중력가변 트랩 기술을 개발했다. 2013년 인천의 한 창업경진대회에서 수상하면서 현 대표는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냈다. 그리고 동료 엔지니어 4명과 함께 창업했다.


올해 전국 이마트 변기 5000대 이상 교체 전망

 

현돈 대표는 ‘여명’이라는 회사명의 의미를 묻자 “사람들이 아침에 일어나서 화장실을 가장 먼저 가는 데서 착안했다”고 밝혔다.

 

‘왜 하필 변기냐’는 반응은 없었나?

“많이 들었다. 그러나 호기심이 있었다. 설계파트에 오래 있다 보면 ‘어떻게 설계해야 에너지효율을 높일까’ 늘 고민한다. LED등을 달아서 전기를 아끼고, 벽을 두껍게 해서 난방 효율을 높일 수 있다. 그런데 물은 답이 없다. 한국에서 1년에 쓰는 물 가운데 6%가량이 변을 내리는 데 들어간다. 공업용수에 소모되는 양과 비슷하다. 산업 들어가는 용수는 뭔가 생산하는 데 쓰이지만, 변기 물은 내려진 뒤에는 아무것도 안 하고 버려진다. 자체 조사해보니 한 번 내리는데 평균 12.6ℓ가 쓰이더라. 물을 아끼려면 변기가 바뀌어야 했다.”

보다 개인적인 계기가 있었다고 들었다.

“민망한데.(웃음) 회사 다닐 때 집에서 잠만 자고 나오는 날이 많았다. 하루 16시간씩 일하다 보니…. 여자친구가 집안일을 도와줬는데 어쩌다 물탱크에 금이 가게 했다. 고치진 못하고, 2주 동안 바가지로 물을 부어서 변을 내렸다. 그런데 몇 바가지를 부어도 안 내려가더라. 사람들이 평소에 계량을 안 하지 않나. 정말 말도 안 되게 많은 물이 들어간다는 생각에 확 깨더라.”

만 40세에 창업해서 7년째 회사를 이끌고 있다. 소위 말하는 ‘위기의 40대’를 정신없이 보내고 있는 셈인데.

“아내도 토목공학과 출신이다. 여러가지 생각 끝에 준비한 프로토타입 영상과 도면을 아내에게 조심스레 보여줬다. 그랬더니 쿨하게 해보라고 하더라. ‘음, 이 정도면 할 만해’라고 생각한 게 아닐까. 첫째 아이가 태어난 다음날 사표가 수리됐다. 고민 많이 했다.”

발상부터 창업까지, 아내 도움이 컸다.

“아내 공이 60%다.”

올해부턴 전국 이마트 점포 143곳의 양변기를 모두 교체한다고?

“양변기 수로 따지면 5000대 이상이다. 전체 교체비용을 한 해 절수금액으로 충당 가능하다. 보수적으로 잡은 게 이 정도다. 내부적으론 더 줄어들 것으로 본다. 단적으로 오수가 줄어드니 정화조 청소비용도 줄지 않겠나. 내구연한을 10년으로 보면 최소 10배 이상의 비용 절감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교체 물량이 상당하다. 여명테크에서 이마트에 먼저 제안했나?

“이마트에서 절수형 설비를 물색하는 과정에서 우리 제품이 선정됐다. 교체가 시작되면 올해 매출액이 지난해 대비 6배 이상 성장할 것이라 기대한다.”

향후 10년을 내다본다면.

“지금까진 물을 절약하려면 사용자가 불편해야 했다. 비누칠을 다 씻어내기도 전에 수도꼭지가 잠기고, 변기 물을 아끼자니 변이 시원하게 씻겨나가질 않는다. 결국 물을 한 번 더 내리거나 솔질로 변을 닦아내야하지 않나. 단순한 절약을 넘어서 ‘편안한 절수’라는 화장실 문화를 만들고 싶다. 궁극적으로는 공공화장실에 솔루션을 제공하는 회사로 자리매김하고 싶다.”

 

글 문상덕 월간중앙 기자 mun.sangdeok@joongang.co.kr

사진 김경빈 선임기자 kgbo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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