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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디지털 전환할 때...기술보다 ‘이것’이 우선?

기업체들은 기존의 자료들을 디지털화하는 디지털 전환이 필요불가결한 요소라고 느껴왔어요. 하지만 엄청난 양의 아날로그 자료들을 디지털화하는 것은 비용과 시간이 크게 들어갈 뿐만 아니라 자칫 전환 실패마저 위험 요소로 잡혀있어요.

 

지난 수년간 국내 기업들 사이에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은 큰 화두 중 하나였다. 인공지능(AI), 클라우드, 빅데이터, 로봇프로세스자동화(RPA), 스마트공장 등 시대적 조류에 편승하지 않으면 곧바로 도태될 수 있다는 통념이 지배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막대한 비용뿐 아니라 첨단 기술을 도입하면서 기업 체질을 전면적으로 바꿔야 하는 만큼 몇몇 리스크가 뒤따른다는 함정도 도사리고 있다. 디지털 전환은 결국 변화 속도가 빠르지 않은 사람에 관한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실제 디지털 전환 계획의 70%가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연구도 있다.

 

미국 주요 기업들의 경영진은 2019년 가장 큰 우려사항으로 디지털 전환에 따른 리스크를 꼽았다. 노스캐롤라이나대학의 ‘기업리스크관리이니셔티브’가 기업 CEO, 임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디지털로 기업 체질을 바꿨지만 기존의 운영방식, 동반기술인프라, 기업문화가 그만큼 빠르게 전환되지 않아 리스크를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을 많은 경영진이 경계하고 있었다. 실제 디지털 전환 계획의 70%가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연구도 있다.

기업들은 디지털 전환으로 효율성을 높이고 고객 가치를 혁신하며 새로운 수익 창출을 기대하며 막대한 비용을 투자한다. 하지만 직원 참여 부족, 부적절한 관리 지원, 기능적 협업 실패, 책임소재의 불분명 등으로 인해 디지털 전환이 제 기능을 못 하는 ‘디지털 전환의 함정’에 빠진 사례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대표적인 디지털 전환 실패 사례가 영국 국영방송 BBC의 디지털 미디어 이니셔티브(DMI)다. 이 계획의 주요 목표는 온 디멘드 디지털 콘텐트를 제공하기 위해 BBC 직원 및 파트너가 각자 동영상과 오디오를 편집, 공유, 개발할 수 있는 기술 솔루션 제공이었다.

 

이를 위해 BBC는 구조화 콘텐트 데이터로 전환하고 데이터 베이스 관리시스템과 검색기능을 구축했다. 그리고 직원들의 데스트톱용 콘텐트 편집 도구 및 기반이 되는 전사적 시스템 등을 개발했다. 하지만 결과는 특별한 성과 없이 2013년 1억 파운드(1500억원)의 자산 평가절하를 이유로 전면 취소됐다. 이는 ‘1억 파운드의 디지털 재해’로 기업사에 기록됐다.

글로벌컨설팅사 PWC는 BBC의 사례에 몇 가지 질문을 제기하며 실패원인을 찾아나갔다. 첫째, DMI의 거버넌스 준비가 잘되어 있었으며 목적에 부합했는가. 둘째, DMI의 기대했던 혜택이 재무적 성과로 이어지도록 적절한 프로젝트 및 재무 관리가 이뤄졌으며, 이는 목적에 부합하고 합의된 내부 방법론을 따랐는가. 셋째, 리스크 관리 협약이 무엇이며 이는 목적에 부합했는가. 넷째, 프로젝트의 보고가 BBC 경영진에게 적절히 이뤄졌으며 그들이 목적에 부합하게 따라왔는가. 다섯째, 정부의 프로젝트 관리 거버넌스 및 리스크 관리에 대한 권고를 이행했는가. 여섯째, DMI 프로젝트를 적용할 수 있는 다른 부분에 대한 고려가 있었는가.

DMI 프로젝트의 가장 근본적인 실패 원인은 디지털 전환의 ‘조직적 관리 역량’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채 기술 도입에만 급급했다고 PWC는 진단했다. 즉, 디지털 전환의 관리자와 경영진이 실제 지식과 경험이 부족한 가운데 새로운 변화를 시도해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기존 시스템의 지원과 균형을 유지해야


141년 GE도 지난 2013년부터 야심 차게 디지털 전환을 추진하며 산업인터넷 플랫폼 ‘프리딕스’ 구축을 통한 스마트공장을 목표로 삼았다. 내고장성(耐故障性) 확보와 운영비용 절감으로 기대되는 수혜가 수십억 달러가 될 것으로 산정했다. 당시 제조업계에서는 GE가 디지털 혁신의 아이콘으로서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했다.

 

하지만 2017년 GE의 디지털 전환을 이끌었던 제프리 이멜트 회장이 물러나고 프리딕스의 기술적인 어려움과 지연으로 인해 추진 동력과 투자는 대폭 줄어들었다. 새로 바통을 이어받은 존 플랜너리 대표는 “프리딕스의 문제들을 해결하고 적용 산업을 확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마무리 지었다.

디지털 이니셔티브에 종종 수반되는 첨단 기술과 아키텍처 패턴은 혁신적인 가능성을 제공하지만, 업무에 중요한 기존 레거시 시스템(사용해오던 방법론)은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디지털 기술이나 아키텍처를 사용하여 신규 영역 애플리케이션을 구축할 수는 있지만 수직 계열의 다양한 적용에서 새 디지털 기술은 기존 시스템의 지원과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 시스템과의 호환 문제로 홍역을 앓은 사례가 서울아산병원이다. 아산병원은 2015년부터 3년간 약 400억원을 투입해 차세대 병원정보시스템 ‘아미스(AMIS)3.0’ 구축 사업을 야심 차게 추진했다. LG CNS가 ‘일괄수주계약(턴키)’ 방식의 최종 사업자로 선정돼 3년간 약 350명을 투입했다.

 

하지만 완료 예정시점이었던 2017년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다. 납품된 새 시스템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산병원 측은 새 시스템이 잘 구동되지 않았고, 이전 버전인 아미스2.0의 모든 기능이 구현돼야 한다고 요구했으나 실현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에 LG CNS는 완전히 별개 시스템이므로 수용하기 어렵다고 맞섰다.

 

결국 양사는 현재 379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이후 아산병원은 새로운 사업자를 재선정하고 2년간 추가 구축과정을 통해 지난 3월에 마침내 새 시스템을 가동했다. 아산병원 측은 “추가 기간 동안 오히려 의료진, 간호사, 행정직원을 대상으로 새 시스템에 대한 충분한 교육이 가능해 소프트랜딩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단계별 전환으로 변경, 실효성 추구


적극적으로 디지털 전환을 추진하고 있는 국내 금융권도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다. 많은 금융사가 초기 ‘빅뱅’ 방식의 차세대 시스템 사업을 추진했다. 외부 주사업자를 선정해 2년여의 시간을 두고 계정 및 정보계 등 은행 시스템 전반에 걸쳐 여러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도중에 빅뱅 방식에서 벗어나 단계적 디지털 전환으로 전략을 변경하고 실효성을 추구하는 추세다. KB국민은행의 경우 주 전산시스템을 다운 사이징하는 것을 골자로 차세대 시스템 추진 계획을 지난해 전면 수정했다. 기존 주 전산시스템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되 개별 IT혁신 사업들을 시기에 맞춰 추진함으로써 디지털금융,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취지에서다.

 

KB국민은행의 사례는 기존에 같은 사업을 추진해오던 다른 여러 금융사에 반면교사가 됐다. 그동안 빅뱅 방식의 차세대 시스템을 구축해오던 금융사들은 올해 일단 사업을 재검토하고 시스템별 단계적 개발방식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디지털 전환의 정의는 기존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재고다. 변화는 파괴를 수반하기 때문에 기존 시스템과 조직이 거부한다. 디지털 기술을 통한 천지개벽은 없다. 그래서 디지털 전환 이니셔티브를 수천 명 임직원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대규모 사업보다는 작은 조직에서 시작해 실험과 시행착오를 거치며 업종·업무별로 중장기에 걸쳐 체질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장기적인 전략 목표보다는 단기 매출 성장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 결국 실패로 끝나 막대한 투자에도 성과가 없었던 사례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미 디지털 전환의 함정에 빠진 기업들과 경영진이 너무 많기 때문에 지난해 미국에서 열린 가트너 심포지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컨퍼런스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와 메시지는‘기술우선주의’를 경계하라는 것이었다. 디지털 전환은 기술이나 전략에 앞서 내부의 혁신 문화가 우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부 혁신은 결국 사람들에 대한 것, 즉 기업문화와 사고방식의 전환으로부터 디지털 전환이 시작된다는 점이 강조됐다.

 

이진원 기자 lee.zino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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