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소의 변화가 심상치 않아요. 이제 더는 기름만 파는 곳이 아닐뿐더러, 예전의 어둡던 이미지에서도 탈피하고 있어요. 복합 서비스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주유소의 진화에 대해 알아보았어요.

 

상전벽해-. 주유소가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과당 경쟁과 차량 연료 다변화 등으로 기름만 팔아서는 먹고살기 힘든 한계상황에 처하자 정유사를 중심으로 주유소를 서비스·에너지 복합 공간으로 바꾸고 있다. 카페·패스트푸드점과의 단순 결합은 이미 옛말이다. 택배와 물품 거래가 가능한 공간도 두고 있다. 최근에는 전기차·수소차 충전소까지 들이고 있다. 국내외 주유소의 대변신을 자세히 살펴봤다.

 

사진 : 전민규 기자

 

복합 서비스 공간과 복합 에너지 공간으로 대변신. 기름만 넣는 주유소는 옛말이 됐다. 주유소는 정비소·편의점·패스트푸드점·카페 등과 단순 결합하는 방식을 넘어 택배를 접목한 물류 공간과 전기차·수소차 충전소까지 끌어안은 복합 공간으로 확 달라지고 있다. 과당 경쟁에 따른 수익성 악화로 연평균 170곳이 넘는 주유소가 폐업하면서 정유 업계와 주유소 자영업자가 생존 차원에서 서비스 차별화에 나선 결과물이다.


중고 물품 거래까지 중개

 

 

지난 7월 17일 현대오일뱅크는 주유소 기반 전기차 충전 사업 계획을 발표했다. 지난 4월과 5월 각각 전기차 충전 사업에 나선 SK에너지와 GS칼텍스를 포함하면 올해 들어서만 3개 정유사가 주유소 내 전기차 충전 사업에 뛰어들었다. 에쓰오일은 6개 자영 주유소가 스스로 전기차 충전소를 설치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오일뱅크는 최근 수소연료전지차를 충전할 수 있는 복합에너지스테이션 확충 계획까지 밝혔다. 주유소를 태양광 발전소를 이용하겠다는 계획도 나왔다. 주유소가 ‘변화’를 넘어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GS칼텍스와 SK에너지가 변화를 이끌고 있다. 정유 업계 1·2위인 두 회사는 공동으로 주유소를 거점으로 활용하는 택배서비스 ‘홈픽’을 내놓은 데 이어 지난해 12월 ‘큐부’도 선보였다. 홈픽은 어디든 고객이 원하는 장소에 1시간 이내 방문해 택배를 수거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GS칼텍스와 SK에너지의 핵심 자산인 주유소(중간 집화 장소)를 물류 거점으로 활용하는 방식이다. ‘큐부’는 고객이 주유소에 설치된 스마트 보관함을 통해 중고 물품 거래, 세탁·물품 보관 등을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다. SK에너지 관계자는 “유류 판매, 세차 등 제한적인 서비스만 제공하던 주유소에 물류 허브 기능을 더해 추가 수익을 올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비즈니스를 추진할 수 있는 디딤돌 마련도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GS칼텍스 관계자는 “주유소 입장에서는 유입 고객 증가에 따른 매출 증대를 기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스마트 보관함을 광고 플랫폼으로 활용해 별도의 수익 창출도 기대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현대오일뱅크는 서울시와 협약을 맺고 현대오일뱅크 신사현대·사당셀프·구로셀프·관악셀프·중원점에 여성안심택배함을 설치했다. 직영주유소를 기준으로 판매량과 접근성 등을 고려해 선정했다. 지난 4월부터는 주유소 유휴 부지에서 개인 창고로 쓸 수 있도록 일정 공간을 대여하거나 짐을 박스 단위로 보관해 주는 ‘셀프 스토리지’ 사업도 펴고 있다. 현대오일뱅크는 상반기 서울시내 5개 주유소에 셀프 스토리지를 설치했다. 앞으로 전국 직영 주유소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주유소 택배 서비스를 곧잘 이용하는 문지현(31)씨는 “주유하러 간 김에 물건을 맡기거나 찾는데 차가 있으니 무거운 물건 옮기기에 편하다”고 말했다. SK에너지 보라매주유소를 운영하고 있는 서은국(47) 소장은 “택배 서비스 수수료는 월 10만원 안팎에 불과하지만 단골 확보나 서비스 확대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에쓰오일은 유통·물류·IT 등과 주유소를 결합해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에쓰오일이 지난 3월 서울 공항대로 하이웨이주유소에 연 국내 주유소의 첫 미래형 무인편의점이 대표적이다. 신동열 에쓰오일 국내영업본부 부사장은 “계열 주유소의 수익 창출을 위해 다양한 부대사업 아이템 발굴은 물론, 효율적인 주유소 운영 개선을 위해 마케팅 플랫폼 구축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황금알 못 낳는 주유소

 

 

주유소의 변신은 사업 다각화로 수익성을 높이려는 차원에서다. 한때 ‘황금알 낳는 거위’라고 불렸던 주유소는 과당 경쟁에 따른 수익성 악화로 최근 줄줄이 문을 닫고 있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전국 주유소 수는 2010년 1만3237개로 정점을 찍은 후 줄곧 줄고 있다. 올 들어 7월 현재 전국 주유소 수는 1만1507개다. 지난 10년 사이 해마다 173개의 주유소가 문을 닫은 셈이다.

주유소 감소 주요 원인은 난립에 따른 수익성 악화다. 주유소는 1995년 주유소 간 거리 제한 철폐 후 늘기 시작해 적정 수준인 8000개를 1997년 이미 넘었다. 여기에 2011년 알뜰주유소까지 도입돼 가격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 2015년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주유소 경영실태 진단 및 경쟁력 강화 방안’에 따르면 2008~2013년 사이 일반 소매업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8.3%를 기록한 반면 주유소는 2.9%에 그쳤다.

한국주유소협회는 주유소 경영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주유소 1곳당 연간 영업이익은 3800만원 수준이었다고 밝혔다. 서울시 광진구에서 주유소를 운영하는 김진철(51)씨는 “주유소 한곳을 짓고 운영하려면 10억원 넘게 드는데, 매월 수익은 300만원이 되지 않는다”면서 “임대료·인건비 등은 많이 올랐는데 기름 팔아 남는 마진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하소연했다.

이런 사정 때문에 주유소의 변신 시도는 2010년 이후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초창기엔 주유소와 패스트푸드점, 카페 간단순 결합을 시도했고 이후 무인편의점, 택배 서비스 등으로 영역이 넓어졌다.

주유소의 변화는 더욱 빨라질 전망이다. 환경 규제에 따른 연비 개선으로 자동차 1대당 휘발유 소비량이 줄고 있는 데 더해 전기·수소차 증가로 차량의 연료가 다양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자동차 1대당 연간 휘발유 소비량은 지난해 기준 1159ℓ로 12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심재명 한국주유소협회 팀장은 “주유소가 적정 수준으로 분석된 8000곳으로 줄어든다고 해도 수익성 개선 여부는 불투명해 정유 업계를 중심으로 전기차·수소차 충전소 등을 포함한 복합 공간으로 바꾸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정유 업계는 주유소를 복합 서비스 공간으로 변화시키는 데 더해 전기차와 수소차 충전을 겸한 복합 에너지 공간으로 확장하고 있다. 갈수록 내연기관차 비중이 줄어들고 전기차 등 친환경차 비중이 늘어가는 상황에서 한시라도 빨리 전기차 수요를 흡수하겠다는 복안이다. 2011년 338대에 불과했던 국내 전기차 보급 대수는 지난해 3만1696대로 100배 가까이로 늘었다. 2030년에는 누적 300만대에 이를 전망이다.

GS칼텍스는 지난 5월 LG전자와 손을 잡고 송파구와 중구 등 서울 시내 직영주유소 7곳에서 전기차 충전 사업을 시작했다. SK에너지는 지난 4월부터 SK 양평주유소에서 전기차 충전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7월 안에 전국 11개 주유소에 전기차 충전기를 설치하고 내년부터 서비스할 계획이다. 유럽의 주요 정유사인 로열더치셸과 BP, 토탈 등도 전기차 충전 기업을 인수하고, 자사 주유소에 급속충전기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주유소에 충전기 보급이 확산되면 전기차 운전자들의 충전 인프라 접근성이 크게 개선돼 전기차 보급 속도가 더욱 빨라질 수 있다. 주유소 입장에서도 유휴 공간에 충전기를 설치할 수 있어 기존 시설을 줄이지 않아도 된다. 수익률도 일반 휘발유 판매 대비 나쁘지 않다. 전기차 충전 요금인 1㎾당 174원 가운데 주유소가 챙기는 마진은 약 30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주유소 기반 전기차 충전 사업 계획을 발표한 현대오일뱅크는 이미 지난해 9월 울산시 북구 연암동에 위치한 총 5000㎡ 부지에 기존 주유소와 LPG 충전소, 전기차 충전소, 수소 충전 인프라까지 갖춘 복합에너지 스테이션을 열었다. 복합에너지 스테이션 구축을 주도한 성원용(33) 소장은 “주유소 유휴 부지에 전기차 충전기를 들이고 기존 셀프 세차장 자리를 수소충전소로 바꿨다”면서 “당장 큰 수익이 나지는 않지만 미래차 시장을 대비하는 차원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정유 업계는 주유소를 복합 서비스·에너지 공간으로 바꾸는 데 그치지 않고 공유경제 플랫폼으로 확장도 고려하고 있다. GS칼텍스는 올해 들어 차량공유(카셰어링) 업체인 그린카와 함께 전국 100여 개 주유소에 공유 차량을 배치하는 등 주유소를 거점으로 활용하기 위한 시도에 나섰다. 앞서 카셰어링 업체 쏘카 역시 주유소를 차고지로 활용하는 방안을 고려했었다.

주유소를 에너지 발전소로 전환하려는 시도도 나타났다. SK에너지는 SK주유소 상부에 태양광 발전 시설을 설치해 친환경 에너지를 생산한다는 방침이다. 지난 7월 11일 한국에너지공단, 에스트래픽과 친환경 에너지 사업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MOU)도 체결했다.

 

현재 수도권 소재 3개소를 비롯한 15개 직영주유소를 1차 설치 대상으로 선정했다. 인허가 및 설비 시공 절차를 거쳐 10월부터 단계적으로 상업 가동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김형건 강원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술 발달과 시대 변화에 맞춰 주유소도 생존에 적합한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편하는 과정”이라며 “다른 모든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주유소의 변화도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고 말했다.


SK주유소, 주유소 상부에 태양광 발전 시설 설

 

전기차 이용 고객이 SK동탄주유소의 전기차 충전기로 셀프 충전을 하고 있다. / 사진 : SK에너지

 

하지만 정유사들의 이 같은 시도는 주유소 상생 측면에선 아직 갈 길이 멀다는 평가다. 변화를 시도 중인 주유소들이 주로 도심 소재 직영주유소 중심으로 국한되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정준환 에너지경제연구원 석유정책연구실장은 “정유사들이 지속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곤 있지만 도심 소재 대형 주유소에 국한됐고, 지방 주유소로까지 확산하는 게 쉽지 않다”며 “때문에 많은 정유사들의 시도는 직영주유소 단계에서 끝나는 경우가 많고, 자영주유소까지 확산되는 사례는 드물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수익성과 확장성을 겸비한 사업모델을 찾는 게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해외에선 주유소의 변화가 이미 진행됐다. 한국보다 빠르게 내연기관차의 연료 효율 기술이 발전한 일본에서는 20여년 전부터 주유소가 급감해 주유소를 소규모 중고차 매매 단지나 세차장 등으로도 활용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연료 충전보다 식료품 판매에 더 치중하는 주유소가 늘고 있다. 문병찬 한국석유공사 비축사업본부장은 “기름을 파는 것보다 세차로 버는 돈이 많다는 자조 섞인 얘기가 나올 만큼 주유소 영업 환경이 녹록하지 않다”며 “수익을 낼 수 있는 다양한 서비스를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배동주 기자 bae.dong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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