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함으로 인한 몰락의 사례는 역사적으로도 많이 나타나고 있어요. 그리고 일본의 무역 규제 역시 오만에 빠진 잘못된 판단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오만, 철학 책에서나 나올 법한 이 단어는 아직 많은 이에게 낯설다. 하지만 해외 경영학계는 오만을 인문학, 심리학 영역에서 추출해 경영 리스크 관리 영역에 포함시켰다. 역사적인 사건·사고를 ‘리더의 오만’이란 키워드로 분석하는 것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1946년 극동국제군사재판 (도쿄전범재판) 법정에 일본 A급 전범들이 앉아 있다. 앞줄 맨 왼쪽의 도조 히데키 전 총리는 사형선고를 받았다. / 사진:글항아리

 

우리는 역사적으로 리더의 오만이 얼마나 나쁜 의사결정을 내리게 했고 그로 인해 큰 재앙을 가져왔는지 어렵지 않게 사례를 찾을 수 있다. 오만으로 인한 폐해와 쇠락을 경험하고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오만해져 같은 오류를 범하는 리더는 어리석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과거에 맛본 쓰디쓴 시련을 학습으로 승화하지 못하고 더 나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리더의 오만이 전염병처럼 퍼져 조직에 만연하게 되고 심지어 국가 단위로 오만에 무감각해진다면 어떻게 될까.

‘오만’이라는 키워드를 갖고 최근 한국과 무역 분쟁을 야기한 일본의 사례를 살펴보자. 한 세기를 거슬러 올라가 서양에서 선진 문물을 들여오고 제국주의를 빠르게 학습한 일본은 배운 것을 가까운 나라 조선에 그대로 적용했다. 의외로 허망하게 무너져버린 조선을 보며 승리감을 맛본 일본은 차례로 중국과 러시아와 치른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오만의 바이러스가 국가적으로 확대됐다.

 

오만이 퍼지기 시작하자 일본군에는 조직적인 기민함이 사라지고 커뮤니케이션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시작했다. 그리고 리더들은 상보다는 징벌이란 쉽고 빠른 방법으로 조직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오만해진 일본은 과거의 성공을 과신하며 더 많은 것을 좇기 시작했고 마침내 당시 전쟁 군수물자 공급을 제재하던 미국을 겨냥하게 됐다.

 

그리고 1941년 12월 7일 진주만 공습을 단행했다. 결론적으로 태평양전쟁을 겪으며 자국민 300만 명의 목숨뿐 아니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으로 인한 방사능 피해까지 겪고 나서야 ‘오만의 질주’를 멈췄다. 국가가 만신창이가 된 것은 물론 주권을 잃고 미군정의 통치를 받는 수모를 톡톡히 치렀다.


오만 연구는 지속가능 경영의 핵심 키워드

 

2015년 7월 도시바 경영진은 원전 사업 회계 부정에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 사진:글항아리

 

일본은 오만을 경계하지 않았다. 다만 탐욕을 좇았을 뿐이었다. 산업계에서 일본의 오만한 판단을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가 도시바다. 한때 일본의 주력 산업이었던 반도체 사업을 한국과 대만에 내어준 근본적인 원인도 오만한 투자 판단 때문이었다.

 

도시바의 몰락은 2006년 1월 아츠토시 니시다 대표와 사사키 노리오 부사장의 밀실회의에서 시작됐다. “더 지불해도 좋아.” 사사키 부사장으로부터 미국 핵발전소 건설업체 웨스팅하우스 일렉트릭 인수 건을 보고 받은 니시다 대표는 입찰 금액을 올리더라도 어떻게든 손에 넣으라고 지시했다. 이후 입찰 금액은 54억 달러까지 부풀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많은 이사진이 웨스팅하우스 인수에 대해 경고했으나 니시다 대표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도시바가 핵발전 사업으로 영역을 확대하고 20년 안에 시장에 되팔아 수익을 남기겠다는 큰 그림만 앞세웠다. 그리고 도시바가 핵발전 사업으로 확대하면 미국의 제너럴일렉트릭 같은 대규모 경쟁사를 따라잡을 수 있다는 과도한 자신감에 휩싸여 있었다.

 

이는 주위의 경고를 무시하고 현실감을 잃어가는, 오만 리스크의 전형적인 과정이다. 그러나 2008년 웨스팅하우스의 원자로 2기 건설 계획은 공사가 지연되면서 비용이 초과됐고, 2011년 3월 일본 북동부의 지진과 쓰나미로 원자력발전소가 붕괴되는 블랙스완이 발생했다.

도시바의 핵발전 사업은 실패했고 죽은 자산을 보유하게 됐다. 결국 웨스팅하우스는 2017년 파산을 신고했고 도시바는 투자금액 1조 엔(11조원) 손실을 기록해 일본 기업사에서 최대 손실로 기록됐다. 니시다 대표와 주위 간부들은 대규모 회계 스캔들로 사임했다.

도시바가 써 내려간 오만의 흑역사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도쿄주식거래소에 도시바가 상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5000억 엔(5조원) 이상의 순자산을 소멸해야 했고 그룹 영업이익의 90%를 차지하는 메모리칩 생산시설을 매각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일본의 반도체 산업은 1990년대 세계시장 점유율 50% 이상이었고 기본 특허를 다수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저가를 내세우는 한국과 대만 반도체 제조업체를 의식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도시바의 몰락으로 인해 일본은 결국 반도체 사업에서 뒤쳐지게 됐다. 반면 같은 시간 삼성전자는 도시바가 제공한 반도체 특허를 이용해 시장을 확대하고 매출을 늘려가고 있었다.

도시바의 사례는 지난 7월 11일 포브스코리아가 주최한 오만 포럼에서 강연한 유진 새들러 스미스 교수가 경고한 오만 리스크의 징후와 판단 오류의 유형에 따른다. 니시다 대표의 오만한 배짱식 의사결정은 도시바의 몰락과 일본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수년 만에 무너뜨리는 놀라운 파괴력을 보여줬다.

그리고 2019년 7월, 일본 정부 수뇌부는 또다시 오만한 의사결정을 내렸다고 볼 수 있다. 한국 반도체 제조 소재에 대한 무역규제다. 자국 산업과 국익에도 불이익의 가능성을 인식하면서도 말이다. 이번 일본의 무역규제를 오만 리스크로 판단할 수 있는 근거는 네 가지다.

 

첫째, 과거의 성공에 집착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격을 하더라도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더 많은 상대로 판단하고, 과거의 성공이 이번에도 통할 것으로 믿는 오만에 빠졌다.

 

둘째, 변화 신호를 놓치고 있다. 한국의 산업 경쟁력은 과거와 같이 과소평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셋째, 자신이 유일하고 완전하다고 믿고 있다. 불화수소 등 주요 소재를 일본만 공급할 수 있다고 잘못 판단하고 있다.

 

넷째, 무역규제의 목적이 뚜렷하지 않다. 일본 정치권의 명분 외에 실제 무역규제를 통해 일본이 얻을 수 있는 효용이 명확하지 않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적지 않다.

오만이 현대사회에서 키워드로 등장하고 이에 대한 연구가 시작된 지는 불과 수년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영국, 미국 등의 경영학계에서는 오만으로 인한 리스크 사례를 발굴하고 다양한 프레임워크를 설계하고 있으며 실제 정치인, 경영인 등을 대상으로 오만 진단을 시도하고 있다. 오만 연구와 오만 리스크 관리의 궁극적 목적은 집단지성을 통해 역사적으로 오만이 빚어낸 비극을 예방하자는 것이다. 즉, 오만으로 인해 경제 위기, 기업 파산, 인명 사고 등이 반복되는 것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는 가설인 것이다.


이진원 기자 lee.zino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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