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화가 가운데 가장 비싼 그림을 그린 작가는 바로 영국 출신 작가인 데이비드 호크니예요. 얼마 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성대하게 막을 내린 데이비드 호크니 전에서 그의 다양한 작품을 볼 수 있었죠.
2018년 11월 15일 뉴욕 크리스티에서는 살아 있는 작가의 작품 중 사상 최대 가격으로 그림이 팔렸다. 주인공은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2013년에 5840만 달러를 기록한 제프 쿤스의 ‘풍선 개(Balloon dog)’를 제치고 9030만 달러(약 1019억원)에 낙찰된 호크니의 ‘예술가의 초상(Portrait of an Artist-Pool with Two Figures)’은 “인간관계 속에 존재하는 엄청난 복잡함을 압축했다”는 크리스티의 평을 받으며 예술계의 주목을 단번에 끌어냈다.
당시 미국 출신 작가들이 독식하던 경매에서 영국 출신 작가가 이룬 흔하지 않은 업적이었다. 그 후로도 데이비드 호크니는 끊임없이 새로운 작업을 선보이며 ‘살아 있는 가장 비싼 작가’로서 입지를 단단히 굳히고 있다.
데이비드 호크니가 서울을 찾았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올해 3월 22일부터 8월 4일까지 이어지는 [데이비드 호크니 전]은 영국 테이트 미술관과 공동 기획하여 선보이는 그의 첫 대규모 아시아 개인전이다.
이번 전시는 영국 테이트 미술관을 비롯한 총 8개 해외 기관에서 대여한 호크니의 회화, 드로잉, 판화 133점을 7개 소주제로 나누어 구성했다. 특히 호크니의 대표작인 ‘더 큰 첨벙’, ‘클라크 부부와 퍼시’, ‘더 큰 그랜드캐니언’ 같은 작품뿐만 아니라 작가의 생애별 주요 작품들을 국내 최초로 선보였다.
런던스쿨 실존주의 화풍의 대가
호크니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인지 그를 미국 출신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은데, 호크니에 대한 테이트 미술관의 연구와 메이저 국립 컬렉션은 그의 작업 전체를 조망함으로써 영국인 호크니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서도 관객들은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는 호크니의 ‘미국풍’ 유화 작품을 기대했을 것이다.
혹자는 이러한 유화 작품을 많이 볼 수 없었던 점이 아쉬웠다고 평하기도 했다. 하지만 진정으로 호크니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회화와 드로잉, 판화, 사진 등 다양한 매체와 재료를 넘나드는 호크니의 작품 세계 전체를 보아야 한다. 이번 전시는 호크니의 다양한 작품을 국내에 소개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호크니의 명성 때문에 사람들이 간과하곤 하지만, 미술사 안에서 그의 의미는 그림 가격 이상이다. 그는 1970~1980년대 프랭크 오엘바흐, 레온 코소프, 루치안 프로이트로 이어지는 런던 스쿨의 실존주의적 화풍을 이어받은 중요한 작가다. 런던스쿨 작가들은 인간과 자연의 고뇌를 있는 그대로 캔버스에 담아냈는데, 당시 미국의 추상표현주의가 미술계의 주류로 인정받고 있었지만 그들은 런던의 고유한 표현방식을 연구해갔다.
당시 유명한 작가 대부분이 추상회화를 고집했지만 호크니는 오히려 개인적이고 사소한 주제의 작업을 했다. 호크니는 자연을 묘사하는 방식에서도 사진적 관점(Photographic Perspective)을 회화에 충실히 적용했다. 20세기 포토그래피를 충실히 이해해서 독보적인 장르를 개척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사진의 평면성 벗기 위해 노력
그의 그림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떠올리게 한다. 호퍼는 대도시 카페나 사무실 등에 있는, 얼굴을 알 수 없는 인물들을 그리면서 도시가 주는 쓸쓸함과 단절을 이야기했다. 이에 비해 호크니는 미국 교외의 가정과 수영장, 그 안에 있는 인물들을 매우 섬세하고 사적인 모습으로 담아냈다.
특히 그의 화풍을 대표하는 환한 화면과 선명한 색감은 그가 LA에서 지내면서 받은 영향일 것이다. 1969년 이전까지 런던에서는 게이라는 것을 밝히기도, 게이로 살아가기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1960년대 초 영국의 동성애 반대 법안에 도전하는 그림들을 공개했고,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이는 1964년 호크니가 LA로 넘어가는 계기가 됐는데, 런던과 확연히 다른 자연환경에서 빛을 발견한 것이 그의 회화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았나 싶다.
호크니는 회화와 더불어 판화, 드로잉, 사진 등 다양한 재료와 관점으로 작업했지만, 공통의 문제의식은 바로 ‘3차원 세상을 어떻게 평면에 구현하는가’였다. 호크니의 작업 중 가장 눈에 띄는 점이 바로 사진을 이용하여 입체파적 시각을 재해석한 것이다.
그는 1980년대 초부터 포토콜라주(photocollage) 작업을 시작했는데, 이 시기는 호크니에게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됐다. 피카소의 영향을 받은 호크니는 그의 저서에서 “피카소와 마티스는 세상을 흥미롭게 보이도록 만드는 반면, 사진은 따분하게 만들어버린다”라고 할 정도로 사진의 평면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대상을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여러 각도에서 찍고 이것을 연결하여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작업을 하기도 하고, 모터가 달린 리플렉스 카메라로 촬영한 이미지 수천 장을 이어 붙이기도 했다. 그는 사진이라는 새로운 기술을 접목해 회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는데, 전통적인 원근법의 단일 시점에서 벗어나서 한 평면 위에 입체적인 세계를 투사하는 작업은 80세가 훌쩍 넘은 현재까지 거대한 서사를 느낄 수 있는 대규모 풍경화로 이어가고 있다.
2013년에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린 [데이비드 호크니: 와터 부근의 더 큰 나무들] 전시에서 이러한 거작(Masterpiece)들을 특별히 조명했다. 관객들을 그림 속으로 끌어들이고 대화하게 만드는 그의 작업들이 ‘살아 있는 가장 비싼 작가’라는 그의 명성을 설명해주는 것이 아닐까.
국내서도 대규모 국제 전시 인기
특히 이번 전시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놀랄 만큼 많은 어린아이가 무리 지어 전시를 관람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아이들은 서울시립미술관 교육팀의 인솔을 받으며 사뭇 진지하게 작품을 관람하고 있었다. 이제 국내에서도 아이들이 어린 시절부터 미술을 즐기고 체감하는 문화가 안착해간다는 점이 굉장히 고무적이었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 세대를 위해 미술관이 해야 할 역할이 막중하다는 사실도 새삼 떠올랐다.
전시관 안을 가득 메운 사람들, 전시를 보기 위해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 관람객들의 모습을 보며 어린아이뿐만 아니라 국내에서 전시를 보는 관람객 수가 해가 다르게 증가하고 있는 점도 체감할 수 있었다. 이렇게 충분한 관람 수요를 보여주었기 때문에 호크니 전과 같은 대규모 전시를 기획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번 전시의 성공을 발판으로 앞으로 더 많은 국제적 대규모 전시를 국내에서 만나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 이지윤은… 20년간 런던에서 거주하며 미술사학 박사, 미술경영학 석사를 취득하고, 국제 현대미술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큐레이터다. 2014년 귀국하여 3년간 경복궁 옆에 새로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총괄을 역임했다. 현재 2003년 런던에서 설립한 현대미술 큐레이팅 사무소 숨 프로젝트를 운영하며,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겸임교수, 북경 중앙 미술학원 객원 큐레이터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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