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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혼돈의 강남 부동산!

분양가 상한제가 민간택지로 확대돼요. 강남 재건축 아파트의 분양가를 규제해 집값을 잡겠다는 의도인데요. 다만 이로 인해 수급 불균형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해요. 정책의 효과가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시장의 동향을 살펴봐야 해요.

 

 

“정부의 분양가 (간접) 규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파트를 다 짓고 일반분양 물량을 분양하는 후(後)분양을 추진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또 바뀌었다. 8월 24일 열리는 조합원 임시총회 때 규제를 받더라도 선(先)분양을 할지, 아니면 좀 더 버텨볼지(후분양) 최종 결정이 날 것 같다.”

 

8월 23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청담공원 앞 사거리 인근의 부동산중개업소에서 만난 상아2차 아파트의 한 재건축조합원은 “답이 안 나온다”며 이렇게 말했다. 정부가 10월부터 분양가 상한제를 민간택지로 확대키로 한 데 따른 것이다. 정부가 시행 지역이나 시기를 못 박은 건 아니지만, 부동산시장에서는 당연히 강남권이 첫 타자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도 상한제 확대 시행을 발표하면서 “강남권 아파트 분양가가 너무 오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강남권 재건축 단지는 저마다 주판알을 튕기느라 분주하다. 특히 상아2차나 강동구 둔촌주공처럼 이주·철거까지 진행한 단지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그동안 규제책이 나오더라도 재건축 사업이 거의 끝난(관리처분계획) 곳은 대상에 제외했지만, 이번엔 ‘소급(遡及·과거 사안까지 적용)’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민간택지 상한제를 ‘입주자모집공고 단지부터’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관리처분계획을 인가 받았거나 신청했더라도 일반분양 입주자모집공고를 내지 않았다면 상한제 대상인 것이다. 이에 대해 위헌 논란이 일고 있지만, 상아2차나 둔촌주공은 이를 따져 볼 겨를도 없다. 당장 일반분양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결정해야 한다.


일반분양 줄이기 위해 안간힘

 

 

사업이 초기 단계거나, 아직 관리처분계획을 세우지 않은 단지는 그나마 여유가 있는 편이지만 수익성이 나빠지는 건 마찬가지여서 해법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한 재건축조합은 새로 짓는 아파트의 입주민 전용 편의시설 면적이나 마감재 품질을 낮춰 공사비를 줄이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렇게 하면 그나마 떨어진 수익성을 끌어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조합원에게 ‘1+1’ 분양을 독려하는 방안을 고려 중인 단지도 있다. 일반분양 물량을 최대한 줄여보겠다는 것이다. 사업이 초기 단계인 곳에서는 가구 수 증가가 거의 없어 일반분양 물량이 적은 이른바 ‘1대 1 재건축’으로 방식을 바꾸거나 아예 사업을 연기하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송파구의 한 재건축조합 관계자는 “(우리 단지가) 상한제 대상이 되면 일단 사업을 접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조합원이 많다”며 “(정권이 바뀔 때까지) 사업을 무기한 연기하는 것도 방법인 것 같다”고 말했다.

상한제는 건축비에 택지비를 더해 아파트 분양가를 산정하고, 그 가격 이하로 분양하도록 하는 제도다. 분양가가 오르면 주변 아파트값이 따라 오르고, 오른 아파트값이 다시 분양가를 끌어 올리는 악순환을 끊기 위한 규제책이다. 반(反)시장 정책이라는 비판이 거세지만 집값을 잡기 위한 카드로 꾸준히 거론돼왔다.

 

‘집값과의 전쟁’을 벌였던 노무현 정부도 공공택지(2005년)에서 시작해 민간택지(2007년)로 상한제를 확대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민간택지에서의 상한제 적용 문턱을 확 높였고(2014년), 이후 지금까지 상한제가 적용된 민간택지는 한 곳도 없었다. 상한제는 ‘반시장 정책’이라는 비판을 듣는 만큼 정부가 상한제 카드를 꺼내기까지는 논란이 많았다. 여당 내에서 조차 경기 침체 우려가 큰 시기에 부동산 규제를 발표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실제로 최근 한국 경제 상황이 녹록하지 않다. 올 1분기 역성장을 기록한 한국 경제는 2분기 반등에 성공했지만, 수출 주력 품목인 반도체 단가 하락 등으로 8개월 연속 수출이 뒷걸음질 쳤다. 잠시 소강국면이었던 미·중 무역분쟁도 환율전쟁으로 번지고 있고, 일본과의 무역갈등도 장기화하고 있다.

 

상황이 이런에도 정부가 상한제 카드를 꺼낸 건 지난해 9·13 부동산 대책 이후 잠잠하던 주택시장이 2분기 들어 강남권 재건축 단지를 중심으로 꿈틀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정보회사인 부동산114에 따르면 서울 재건축아파트값은 4월 셋째 주(19일 기준) 상승세로 돌아선 후 8월 셋째 주까지 18주 연속 상승했다.

 

지난해 9·13 대책 이후 6개월여 만에 반등한 것이다. 재건축의 대표주자인 강남구 대치동 은마 아파트 76㎡(이하 전용면적)형은 최근 18억원, 84㎡형은 20억원에 팔리기도 했다.

송파구 잠실동 주공5단지 82㎡형은 최근 지난해 최고가(20억2800만원)를 넘긴 20억6800만원에 팔렸다. 주요 재건축 단지가 후분양을 통해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분양가 규제를 피하려는 움직임도 상한제 도입에 결정타가 됐다. 상아 2차, 반포우성, 둔촌주공 등 이른바 ‘대어급’ 재건축 단지가 정부의 분양가 간접 규제를 피하기 위해 후분양을 검토 중이었다.

 

이들 단지가 HUG의 분양가 규제(주변 분양가의 105% 이내)를 받는다면 일반분양 분양가는 3.3㎡당 4000만원 중후반대에 머물게 된다. 하지만 후분양을 해 간접 규제를 피하면 주변 시세 수준(3.3㎡당 6000만~7000만원대)에도 분양할 수 있다. 정부가 위헌 논란이 예상되는 데도 상한제를 소급 적용키로 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동안 HUG가 주요 지역 아파트 분양가를 간접 통제했는데도 분양가가 큰 폭으로 오른 것도 영향을 미쳤다. HUG에 따르면 5월 말 기준 지난 1년간 서울 민간 아파트의 분양가는 평균 12.54% 상승했다. 한국감정원 조사 기준으로 지난해 5월부터 올해 5월까지 1년 새 서울 아파트값이 1.96% 오른 것에 비하면 6배 이상으로 뛰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서울 분양가 상승률이 (기존) 아파트 가격 상승률의 2배 이상으로 높다”며 “분양시장은 실수요자 중심인데 무주택 서민이 분양 받기에는 분양가가 상당히 높다”고언급한 것도 이 때문이다.


간접 규제에도 분양가 큰 폭으로 올라

 

 

이 같은 분양가 상승세는, 상한제를 적용하면 확실히 잡을 수 있다. HUG를 통한 분양가 규제가 이미 조합이 설정한 분양가를 ‘조금 깎는’ 수준이라면, 상한제는 분양가를 산정할 때부터 정부가 강력히 개입하기 때문이다. HUG의 분양가 산정기준으로 현재 강남권 재건축 단지의 분양가는 3.3㎡당 4500만∼4700만원 선이다. HUG가 상아2차에 요구한 분양가도 인근인 강남구 일원동 디에이치포레센트 수준인 3.3㎡당 4569만원이었다.

 

그런데 이 단지에 상한제를 적용하면 분양가가 3.3㎡당 3400만원대로 확 낮아질 수 있다. 현재 이 아파트 주변 시세는 3.3㎡당 6500만∼7000만원 선으로, 분양가가 시세 대비 반값 수준으로 확 떨어지는 것이다. 분양가가 내려가면 주변 집값도 안정될 것으로 정부는 내다본다. 이문기 국토부 주택토지 실장은 “상한제 적용되면 주변 집값도 안정돼 무주택 실수요자의 내 집 마련 기회가 많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장 상한제 확대 발표 이후 주택시장은 관망세가 짙어지고 있다. 2분기 들어 상승폭을 키워가던 아파트값도 상승폭이 둔화했다. 강남구 개포동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사장은 “지금은 일단 지켜보자는 분위기”라며 “매수세가 활발한 편은 아니었지만 정부 발표 직후 그나마 뚝 끊겼다”고 전했다.

 

희소성이 부각되면서 입주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새 아파트에 주택 수요가 일부 몰리고 있지만, 추격 매수세는 뜸한 편이다. 서초구 반포동의 대방부동산중개업소 김순영 실장은 “정부가 강남 재건축 단지를 콕 찍어 규제하고 있는 만큼 재건축 단지는 물론 일반 아파트까지 투자 심리가 꺾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단기적으로 집값 안정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본다.

 

굳이 기존 아파트를 사지 않고 저렴한 상한제 아파트를 분양 받으려는 관망 수요가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주택 수요자의 관심이 단기적으로 신축 아파트나 일반 아파트로 이동할 가능성이 있지만 거래가 크게 증가할 가능성은 작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상한제 효력이 장기화하긴 어렵다는 게 전문가와 시장의 중론이다. 상한제가 주택 공급 속도를 확 늦춰 수급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은 특히 재개발·재건축이 사실상 유일한 신규 주택 공급처인데, 상한제를 확대하면 재개발·재건축 사업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서울시까지 재개발·재건축 일몰제를 적극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허윤경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상한제는 재개발·재건축 사업성 악화와 조합원 간 갈등 확대로 사업의 장기화 혹은 표류 가능성을 키워 시차를 두고 주택 공급 감소로 이어질 확률이 있다”고 우려했다.

 

정부는 서울 주택 수급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당장은 괜찮더라도 중·장기적으로는 줄 것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현재 진행 중인 사업은 별 수 없이 진행을 하더라도 머지않아 불투명한 수익성 등을 이유로 재건축 등 주택사업이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상한제가 전세시장을 들쑤실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오랫동안 안정세를 보이던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최근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상승폭은 작지만, 6월 셋째 주(21일 기준) 이후 8월 셋째 주까지 10주째 상승세를 이어갔다. 이런 상황에서 저렴한 상한제 아파트를 기다리는 예비 청약자가 전세로 눌러 앉으면 전셋값 상승세가 가팔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상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상한제 확대로 매매 수요가 전세 수요로 돌아서면 불안한 서울 전세시장이 들썩일 수 있다”고 내다봤다.


위헌 논란 속 시행 여부 촉각


시장의 우려에도 국토부는 상한제 개선안에 대해 9월 23일까지 입법예고를 거쳐 10월 초 공포·시행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정치권 일각에서는 건설경기 악화와 한·일 무역갈등 등 대외경제 여건이 좋지 않은 탓에 시행이 미뤄질 수도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특히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최근 건설 업황을 들어 ‘상한제 1·2단계 접근론’을 거론하면서 부처 간 엇박자가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홍 부총리는 이후 “상한제는 조율된 사안”이라고 해명했으나 논란이 여전한 게 사실이다. 이 때문에 한편에서는 반쪽짜리 대책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논평을 통해 “전면적인 상한제 실시가 아니라 일부 적용으로는 고분양가와 아파트값 급등을 막을 수 없다”며 “시장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진행한다는 것은 사실상 상한제를 하지 않기 위한 꼼수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시행도 전에 위헌 논란이 거세지고 있어 헌법재판소로 직행할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일부 재건축 단지를 중심으로 헌법소원을 예고하고 나섰다. 강남의 한 재건축 조합 관계자는 “개인의 재산을 침해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위헌의 소지가 있다고 본다”며 소급적용에 대한 부당함을 제기했다.

 

이어 “조합원들이 매우 격앙돼 있어 정책이 확정되면 다른 조합과 함께 집단 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법조계마저 “다툼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는 입장이어서 후폭풍이 거셀 전망이다. 상한제의 구체적인 적용 지역과 시기는 개선안 시행 이후 주거정책심의 위원회를 통해 결정한다.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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