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에 출생해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운동권 출신 50대들을 이른바 586세대라고 하지요. 대한민국 개혁의 아이콘이었던 이 세대는 지금은 진보 꼰대라는 이야기를 듣는 상황이에요.

 

우석훈 경제학 박사(왼쪽)와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던 586세대의 특권 의식과 불공정에 실망한 젊은이들의 좌절과 분노를 우려했다.

 

발단은 ‘조국 사태’였다. 조국이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됐다고 종결될 일이 아니다. 설령 법적인 문제가 드러나지 않더라도, 싸늘한 여론이 돌아설 것 같진 않다. 조국에서 비롯됐지만 조국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게 됐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우리 사회는 조국으로 상징된 ‘586세대(1960년대에 출생해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운동권 출신 50대들)’ 전체에 관한 신용평가를 한없이 떨어뜨리고 있다.

이철승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불평등의 세대]에서 “평등의 가치를 한국 사회에 전파했지만, 자신은 연공제에 기반을 둔 동아시아적 위계 문화를 여전히 체내화했다”고 586세대를 비판했다. 또 ‘586세대의 정치권력과 시장권력 독점이 분노의 근원’이라고 적시했다. 이전까지 586세대는 ‘군부독재에 저항했다’는 선민의식을 지녔고, 우리 사회는 부채의식을 떨치지 못했다. ‘조국 사태’로 이 프레임은 순식간에 깨졌다.

[88만원 세대]의 저자인 우석훈 경제학 박사는 개인 블로그에 ‘사회는 사법개혁보다 큰 개념인데 사법개혁에 사회개혁의 우선순위가 밀리는 것을 보는 일은 고통스럽다’고 썼다. 개혁을 표방한 문재인 정부의 진정성마저 의심받을 상황에 부닥친 것이다.

‘이익은 사유화하고, 손실은 사회화하는’ 586세대는 어느덧 개혁의 주체가 아니라 개혁의 대상으로 취급되고 있다. 586세대가 아무리 옳은 말을 해도 ‘메신저 거부 반응’이 일고 있다. “‘미안하다. 아빠가 훌륭하지 못해서’ 이런 얘기를 하는 집이 많아지면 어렵다”는 박용진 민주당 의원의 우려는 ‘아군 뒤에서 총질이냐’는 식의 진영논리에 매몰됐다.

이제 좋든 싫든 586세대를 총합적으로 정리하지 않은 채, 한국 정치와 한국 사회의 다음 스텝을 논할 수 없는 시점에 직면했다. 월간중앙이 9월 10일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우석훈(51) 박사와 박용진(48) 의원의 대담을 요청한 출발점이기도 했다.


“역린을 건드렸다”

 

조국 장관을 향한 국민적 반감이 좀처럼 누그러들지 않는 듯하다.

박용진_ 내가 이번 사태 초기 ‘국민의 역린(逆鱗)을 건드린 것 같다’고 얘기했던 이유는 교육 문제 때문이었다. 교육은 출발선이 전혀 다른 지역·집안·성별의 차별 구조를 완화하거나 극복할 수 있는, 대한민국에서 유일한 기회 균등의 사다리다. 그동안 (사람들이) 말은 못해도 ‘이것(교육의 공정성) 자체가 무너지고 있다’고 (막연히) 생각은 했는데 조국 사건을 통해 부모의 지위와 신분, 재산 정도에 따라서 아이의 출발선과 과정과 결과가 불공정하고 불의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음을 보게 된 것이다. 게다가 조국 장관이 그동안 진보를 표방하고 가치를 설파하고 적극적으로 행동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실망과 분노, 좌절이 더 생겼다고 본다.

우석훈_ 대부분 동의한다. 얼마 전 책을 쓰며 이런 생각을 했었다. ‘지난 10년간 보수 정권이었고, 그전부터 굶고 어렵게 살았으니까, 지금 권력을 쥔 586이 부패를 할 것이다’라고 생각을 했는데, 조국 사건을 보면서 그 부패를 (사회 전체가) 보게 된 것이다. 어쩌면 억울할 수 있다. 많은 50대 운동권들은 시민운동으로 전향하거나 도시 빈민으로 가난하게 살고 있는데…. 개중에 먹고살 만한 사람들은 몇 명 되지 않지만 국민은 한 덩어리로 보게 된 것이다. ‘촛불 집회로부터 위임받은 모든 것을 부당한 자들끼리 남용했나?’ 하는 의심을 하는 것이고….

박용진_ 그렇다.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말과 행동이 다른 표리부동, 내로남불 아니겠나. 보수냐 진보냐, 개혁이냐 반(反)개혁이냐의 진영의 문제가 아니라 ‘그저 (586세대도) 기득권이었구나’라는 자각을 대중이 한 것이다.

우석훈_ 2008년 촛불 집회부터 (2016년)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까지 10대부터 40대가 하나의 그룹으로 왔다. 그러나 이번에 드러난 부분은 좌우의 문제가 아니라 위아래의 문제라는 것이다.‘(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잘사는 사람들이 저기(우리 사회의 상층부) 올라가는 것이다’라는. 별것 아닌 것도 다 세습돼 내려가는 것이다. 10대, 20대가 보기에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니라 아예 ‘분리된 운동장’인 것이다. 학교 가는 방식, 사는 방법 다 분리돼 있었다. 원래 그렇게 살던 사람이 그랬다면 아마 안 놀랐을 텐데….

박용진_ 최근 조선시대 사림에 관한 책을 읽었다. 이들이 정치적으로 등장하는 과정을 돌이켜보면, 훈구파들이 사회적 기득권을 가져가는 방식을 맹렬히 비판하며 등장했다. 철학적으로 열려 있고, 젊었지만 정권을 장악하니 다른 게 없었다. 백성들 먹고사는 데 아무런 변화와 개혁을 만들어 낸 적이 없었다. 1년상이냐, 3년상이냐, 상복을 뭘 입어야 하느냐, 족보가 왜 이러느냐 같은 논쟁을 할 뿐이었다. 지금 586들이 그렇지 않은가. 과연 이들이 국민의 삶을 돌보고, 뛰어난 식견을 보여 주고 그랬냐는 거다. 삶이 달라진 것이 없으니까 물음표가 달리는 것이다. ‘훈구파를 밀어낸 사림이 기존 기득권 세대와 같았던 것처럼 (586세대도) 자식들 문제, 재산형성 문제에서 똑같이 보여 주지 않았나’라는. 거기서부터 오는 실망·좌절·분노 이런 것들이 얽혀 있는 것 아닐까.

우석훈_ 재벌 사회에서 3대째 세습하고 있다. 그랬다면 아마 ‘그래. 너네 알아서 해라’ 그랬을 텐데. 그러지 않았을 것이라고 믿었던 곳에서 똑같이 그렇게 했으니까 문화 충격이 생긴 것이다.

촛불의 힘으로 정권이 바뀌지 않았나. 그러나 ‘집권 여당의 586 정치인들이 촛불 정신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독점한 것 아닌가’라는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박용진_ 촛불 정신에 해제를 달자면 불공정·불평등·특권과 관련된 것이다. 동서고금 어느 나라나 이것들 때문에 망했다. 절대 권력에 대한 강력한 경고였다. 국민은 좌우의 문제가 아니고, 대한민국 헌법에 기록돼 있는 공정, 평등을 실현하지도 못하고 되레 악화시키고 있는 권력에 대해 탄핵을 한 것이었다. 그것이 단순히 우파 기득권 세대에 대한 탄핵으로만 생각했으면, ‘우리(진보 진영)는 괜찮겠지’라고 생각했다면 잘못된 결론이다.

우석훈_ 사실 (현실 정치 안에서) 586세대들의 의견이 과도하게 반영돼 있다. 20~30대, 심지어 1970년대에 출생한 40대의 의견도 잘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다양성이란 측면에서 우리 시스템상 문제가 있는 것이다. 50대 남성 엘리트 그리고 진보, 이런 사람들이 사실 몇 % 되지도 않는데 ‘꿀물’을 빨 수 있는 구조가 딱 돼 있다. 무슨 공을 세워서가 아니라 그냥 사고 치지 않고 있으면 10년을 보낼 수 있는 구조다. 드러나는 큰 부패는 없는데 속에서 썩어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10~20대가 지켜보기에 불공정한 사회인 것이고. 더 그렇게 갈까 봐 걱정이다.


“정치에 능하나 경제에 취약한 586”

 

 

586 정치인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박용진_ 국민의 공통된 요구는 먹고사는 문제다. ‘(보수 정부) 10년 동안 부의 양극화는 더 심해졌던 것 아니냐’, ‘재벌 총수들의 사회적 영향력은 더 확장된 것 아니냐’, ‘대다수 노동자의 삶은 더 열악해졌다’, 그러니까 촛불 집회에서 이런 불공정, 불평등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다. 그 동력을 이어받아서 집권했기 때문에 더불어민주당이 ‘사람이 먼저다’라는, 대접받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 것이라고 기대했을 것이다. 그것을 해 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국민의) 배신감이 있을 것이다.

우석훈_ 586들이 기술이나 전문적으로 성장한 사람이 많지 않다. 정치 쪽, 특히 이미지에 강하다. 이게 단기 전략에는 좋다. 멋있고 폼 나니까. 그러나 중장기적으로는 이미지로 안되고, 변화를 만들 정책을 써야 하는데, (그 사이에) 배가 고 파지니까 사람들이 더 화가 나는 것이다. 성장률이 7~8%대였다면 (조국 사태가 터졌어도) ‘고등학교만 나와도 일자리 널렸는데 너희가 (잘 알아보지 않고) 안 간 거 아니야?’, ‘쟤는 가더라도 나는 말자’ 이럴 수도 있었던 것인데, 경제가 너무 힘든 상황이니까….

박용진_ 586세대가 집단화도 했고, 정치 영향력을 확대해 갔는데 기술 분야, 특히 경제 관련해서 돈을 버는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부분은 젬병이다. (웃음) 경제 관료들은 586보다 집단으로서 이미 더 견고한 사람들인데…. 그들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도 ‘모피아(기획재정부 출신 관료와 마피아의 합성어)’였고, 문재인 대통령 때도 모피아다. 불평등한 노동시장, 사회구조를 누가 만들었나? 관료들이 만든 것이다. 관료들을 변화시키지 못하고, 철학적으로 끌고 가지 못하고, 오늘은 이걸로, 내일은 저걸로, 싸우고 있으니 국민은 속이 터진다.

박용진 의원, 금태섭 의원 등이 민주당 내부에서 합리적 비판을 했을 때 그것마저 적대시하는 극단적 진영논리를 목격했다. 586 정치인들은 왜 이에 대해 저항감이 거의 없을까?

박용진_ 여기 얻어맞은 산증인이 있으니 이건 우 박사님이 얘기해 달라. (웃음)

우석훈_ 가슴 아픈 얘기다. 1980년대에 학생운동 하면서 화염병 들고, 돌 들고, 깃발 들고 진입하고, 우리도 군대처럼 했다. 저쪽 백골단이 진을 짠 것처럼 우리도 연습하고 그랬다. 우리는 일사불란하게 하는 것을 잘하는 것인 줄 알았다. 원래 민주주의는 욕하는 것이다. 그런 아수라장에서 질서를 찾아 나가는 것이 민주주의다. (586들은) 그걸 정리할 기회가 없었다.

민주당에 ‘민주’가 없다면 민주주의의 위기 아닌가?

박용진_ 나에게 (민주당 지지자 일부에서) ‘내부 총질’, ‘자유한국당으로 가라’고 그렇게 얘기하는데…. 여기서 공개할 수 없는 더 심한 얘기도 들었다. 그럴 때마다 하고 싶은 말은 ‘이견을 인정하고, 존중하고 접점을 찾아 제도화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이분들은 나에게 민주주의가 아니라 일사불란만 요구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망할 때도 이견을 용납하지 않고, 되레 응징했다. 민주당이 천만다행인 것은 구조적으로 그런 위험은 없다’는 것이다. ‘말하기 곤란하지만, 민주당 안에 이런 얘기도 있다. 민주당을 걱정해 주는 사람들이 이런 얘기를 한다’고 내가 공개한 것이다. 금태섭 의원도 마찬가지다. ‘여기(민주당에) 나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도 많다’고 이렇게 (국민에게) 얘기한 것이다. 문자 몇 개 받았다고 민주당 전체가 박근혜 때처럼 망조로 가고 있다? 이것은 오버라고 본다.

문자 몇 개가 아니라 폭탄 수준이지 않았나?

박용진_ 사람이 담대해야지. (웃음) 누구에 의해 좌표를 찍혔든 말든, 당원들이 각자 개인의 의견을 보내는 것이다. 박용진에 대한 불만, 비판도 (민주당원들이 내는 의견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586이 한국 사회의 주류가 되었음에도, 통합보다 편 가르기 판짜기에 집착하는 것 같다.

우석훈_ 흔히 586이라고 묶는데 그 안에도 또 여러 그룹이 있다. 그 안에서 싸우다 보면 다른 거 들여다볼 시간이 없게 된다. 권력 투쟁화된 것이다. 넓게 보면 명분 싸움이지만 정확하게 보면 소수의 권력 엘리트끼리의 분점현상이다. 어떤 나라나 벌어지는 일이다. 다만 이것이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권력이 30~40대로 넘어오고, 다양성이 존중되면 괜찮은데 지금은 (586세대에 권력이) 집중됐고, 독점화 현상이 나타났다. 일부 연령대와 그룹이 과잉 대표되고, 20~30대 혹은 40대가 과소 대표되는 것은 다양성의 관점에서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586의 정치 활동이 20년 동안 이어지고 있다. 한마디로 ‘너무 오래 해 먹고 있다’는 시선이 강해지고 있다.

박용진_ 586을 출생연도로 따지는 것은 과학적 분석이 아닌 것 같다. 정치 분야는 독특하다. 어떤 사람은 공천을 계속 받고, 의원을 4~5번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몇몇에 의해 (586이) 규정화될 수 있다. 586이라고 얘기할 만한 민주화 운동 경력이 없는데 나이가 비슷하다고 그 자장 안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어느 세대가 스스로 자기 세력을 내려놓고 물러나겠나? 그런 경우는 없다. 그러려면 (586 정치인을) 대체할 만한 비전과 경험을 가진 세력들이 그룹화해야 가능한 것인데 그럴 만한 사람들이 30대 초반에 무슨 기회를 얻었나? 586들은 대한민국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이 될 때가 30대 초반이었는데, 그 후배들은 (그 나이에) 그저 의사결정에 부차적인 일만 하도록 만들었다. 2012년 민주당 공천 경선 때, 내가 청년 가산점과 관련된 규정을 정확히 만들어 달라는 의견을 냈더니 ‘너희처럼 한 것도 없는 애들이 청년이란 이름으로 거저 들어오려고 하는가’라는 매몰찬 답을 듣고 너무 놀랐다.


“이대로 가면 586 과잉 더 심해질 수도”

 

 

우석훈_ 1987년이라고 하는 매우 특별한 시대와 사회 현상이 (586 선민의식의) 기원이 된 것이다. 유럽은 영국 보수당에서 캐머런을 40대 당 대표로 올렸다. 40대 정치인을 보수가 먼저 쓴 것이다. 프랑스의 사르코지도 보수였다. 한창 유럽에서 좌파가 좋았을 때 (보수) 원로들이 30대를 발탁하고 후견인 역할을 하면서 40대 당 대표, 총리를 만들어 냈다. 이렇게 40대를 내보내니까 반대쪽(진보)에서도 할아버지만 내보낼 수 없으니 균형을 맞추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보수가 안 그러니까. (웃음) 인위적으로라도 인센티브를 주지 않으면 이 상태로 그냥 계속 갈지도 모른다. 비단 국회의원 공천이 아니라도, 지방 광역의원 대기자들 절대다수가 586이다. 어쩌면 (586의 과잉은) 이제부터 생기는 문제일 수 있다.

박용진_ 청년들에게 기회를 줘서 시의원으로 들어오면 1년 만에 지쳐 있더라. 국회의원들은 어리바리해도 훌륭한 보좌진들이 있으면 각을 잡아가는데 구의원, 시의원들은 혼자 있지 않은가. 민주당이 지방선거에서 과감하게 호남, 영남에 45세 미만 청년을 배치해서 많이 이겼다. 그것만 잘 모아 내도 이른바 민주당 정치학교가 될 수 있다. (청년 정치인들의) 과감한 도전도 필요하다. 586 정치인들 흉만 볼 것이 아니다. 그들 중에서도 후배들을 데려와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나는 이번 총선에서 당이 그럴 만한 준비가 돼 있다고 본다. 과감하게 발탁하고 공천해 주는 것도 이해찬 지도부의 역할 중 하나라고 본다.

우석훈_ 박용진 의원 얘기처럼 나이가 기준이 아니라 철학과 방향으로 재편해서 논의하면 좋을 것 같다. 바꾸자는 것이 이미지를 바꾸자는 것은 아니지 않나. 경제를, 사회 부조리를 개혁하는 근본적인 것을 했으면 좋겠다. 이번에 선거법이 개정되면 소수정당 상황이 예전보다 나아질 것이다. 지금까지 현실 정치에서 의미를 두지 않았던 작은 정당들이 진출하고, 그런 희망이 있다.

선거법 개정이 586의 출구, 그러니까 젊은 세대와의 화해 실마리가 될 수도 있다?

우석훈_ 요즘 심란해서 존 스튜어트 밀의 [정의론]을 다시 펴봤다. 뒷부분에 러시아 얘기가 나온다. 러시아에 다녀온 사람들의 보고서를 보니까 차르(러시아 황제)가 공무원들을 마음대로 못한다는 것이다. 밀은 이게 더 심해지면 러시아에 혁명이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런데 그 혁명이 나와도 관료체제를 바꿀 수 없기 때문에 그 혁명도 똑같이 결국은 망할 것이라는 게 밀의 통찰이다.

박용진_ 예지력이 보통이 아닌데.

우석훈_ 여야라는 정치 세력이 있지만 검사를 포함해서 관료 체계가 있다. 이들과 어떻게 같이 일을 할 것이며, 의제를 만들 것인가. 시킨다고 되는 구조가 아니다. 이거는 집권을 어떻게 할 것인가와 또 다른 질문이 필요한 것이다. 법을 전공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는데, 검찰개혁이라는 것은 부분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공무원 전체 중에서, 법무부 내에서, 또 작은 검찰청에 관한 얘기 아닌가. 이것만 문제가 아니라 사실 나머지도 다 문제다.

검찰개혁보다 사회개혁이 더 큰 범위라는 맥락인가?

우석훈_ 경제를 배울 때, ‘경제시스템은 사회시스템의 하부’라고 배웠다. 그런데 경제를 안 배운 사람들은 ‘사회는 사회고, 경제는 경제다’라고 많이 생각한다. 사회가 제일 큰 것 아닌가. 법, 정치 심지어 종교까지, 그 사회의 일부 시스템이다. 지금 사람들이 분노한 것은 조국이 아니고, 이 사회 시스템에 너무 격차가 생겼고 불공정하다는 것이다. 이것을 지금 조국 개인의 문제로 넘기고 끝낼 것이 아니라 차분하게 문제화시켜야 한다. 이런 큰 얘기들을 내년 총선으로 가는 길에 논의하게 되면 전화위복이 될 것이다. ‘우리 편이 이겼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만 가지면 1인당 소득 3만 달러가 되는 이 복잡한 시스템을 감당하기 어렵다.


‘진보 꼰대’가 되지 않으려면

 

조국 장관 임명을 계기로 문 대통령 지지율이 40% 아래로 빠질 수 있다는 예상도 있다. 어떻게 봐야 할까?

박용진_ 일단 희망 사항을 얘기하자. 대통령이 여러 반대와 우려에도 불구하고 발탁해서 부담을 안게 됐다. (자카르타 아시안게임 축구대표팀) 김학범 감독이 황의조를 발탁했을 때도 난리가 났다. (황의조처럼) 해트트릭은 안 바라니, (조 장관이) 적시에 한 골만 넣어 줬으면 좋겠다. (웃음)

우석훈_ (정치는) 상대방이 있는 야구경기 같은 것이다. 서로 못하면 점수가 비슷비슷하게 된다. (웃음) 결정적인 자살골이 나오지 않는 이상, (문 대통령) 지지율이 많이 빠지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우려하는 것은 당장의 문제가 아니고 10대와 20대들이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던 믿음이 붕괴하는 것이다. 이게 위험하다. 단기적으로 (지지율이) 빠질 것 같았으면 당장 민주당부터 움직여서 ‘이러면 안 된다’고 했을 텐데 둘러보니까 (당장은) 그런 것이 안 보이는 거다.

박용진_ 모든 선거는 중도층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결정 난다. 그들에게 얼마나 설득력을 갖고, 희망을 주고 우리 편으로 끌어오느냐, 이것이 되게 중요하다. 그런데 정치를 하다 보면 우리 지지층의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이게 되고, 거기에만 반응하려는 일이 자꾸 벌어진다. 이번 선거에서 이겨 개혁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지게 되면 악순환이 벌어지고, 문재인 정부의 후반기가 정말 힘들어질 것이다.

우석훈_ 정치는 단기 이슈 싸움 같은 것이 많다. 막 요동친다. 그러나 오래가지 않는다. 그런데 경제는 몇 년에 걸쳐서 성과가 난다. 일단 성과가 나면 이때 얻은 점수는 잘 안 빠진다. 박정희가 경제에서 점수를 땄다. 평생 가지 않는가. 그러니까 진짜 개혁은 경제라고 생각하고, 거기서 잘하면 나중에는 정치가 필요 없는 순간이 올 수 있다. 박정희가 그런 거 아닌가. 박정희 후광만 있어도 그냥 표가 나오지 않았나? 정치는 눈에 보이지만 제도는 눈에 잘 안 보인다. 조국 임명에 썼던 에너지의 10분의 1만 경제와 사회에 쓰면 우리는 선진국이 된다.

조국 사태와 586세대에 관한 환멸을 갖게 된 20·30세대가 정치에서 이탈하는 무관심층이 될 개연성은 어떻게 보나?

박용진_ 지난번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관련 논란 때, 되게 화가 났던 것이 있다. 이사장이 20대 청년들, 대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정의의 기준에 대해 ‘너희 주위에 자유한국당 사람들 손길이 있을 수도 있다’ 이런 식의 얘기를 들으면서 내가 20대에 데모할 때 들었던 말들이 떠올랐다. ‘너희가 뭘 안다고!’ ‘야, 1987년에는 나도 했어, 그런데 지금이 1987년과 같아?’ 1987년에 (선배 세대들이) 전두환한테 열 받아서 했다면 (우리 세대는) 노태우에 대한 불만을 내가 생각하는 사회적 정의를 기준으로 얘기한 것이다. ‘박용진 데모할 때와 지금 20대 청년들의 정서가 같은 것이다. 구박하지 마라’가 내 얘기다. 기득권 세대들은 자기들이 만들어 놓은 질서에 순응하라고 얘기하는 것이다. 이건 인류사에서 계속 있었던 갈등이다. ‘나라가 어떻게 되려고 젊은것들이 결혼을 안 하느냐’ 이러면 꼰대가 되는 거다. 정치인들은 그렇게 얘기하면 안 된다. 주택정책, 교육정책을 미래지향적으로 개편하는 것이 맞다.


‘티슈 정치’와 ’혐오의 정치‘를 넘어서


우석훈_ 일본처럼 극단적으로 될 거 같진 않다. 일본 청년들은 정치에 관심이 없다. 한국은 그래도 지난 10년 동안 큰 사건을 거치면서 공동의 경험을 학습했다. 정치 환멸이 문제가 될 거 같지 않다.

박용진_ 기존 정당이 새로운 정치 신진을 키우기 위한 아무런 노력을 안 한다. 일본은 차라리 자기 자식이라도 키워서 한다. 우리는 이벤트로 선거 때 한둘 데려와서 쓰고 버리는, ‘티슈 정치’를 해 왔다. 30대 정치인이 제도적으로 어쩌다가 들어왔다고 치자. 무슨 돈이 있어서 정치하겠나. 내가 정치자금법 개정하자, 기초의원과 광역의원도 평상시에 후원금을 걷을 수 있도록 해 주자고 하면 다 반대다.

우석훈_ 자기 동네에서 무서운 놈 클까 봐.

박용진_ 그렇게 생각한다. 한 사람은 나한테 ‘싹수없어지고, 부정부패가 말도 못하게 된다’고 하더라. 그래서 내가 ‘의원님은 정치자금 받으면 뒷거래하나?’라고 반문해도 무조건 안 된다는 거다. 정치후원금 제도를 법으로 규정해서 바꿔줄 필요가 있다.

우석훈_ 1980~1990년대 한국은 내부에 문제가 있을 때 지역감정으로 몰아갔다. 지금 지역감정은 완화된 대신 젠더 문제와 난민 문제 같은 것들을 타고 극우화가 될 가능성이 있다. 우리 안에 약자를 자꾸 찾아서 공격하는 그런 식이다. ‘된장녀’ 이런 것에서 출발했다고 하는데, 이제 별의별 약자를 틈만 나면 찾고 있다. 정치에 대한 관심은 줄지 않을 것 같지만, 이것이 혐오의 재생산으로 갈 가능성이 높을 수 있다. 위기라고 생각한다.


글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사진 김경빈 선임기자 kgboy@joongang.co.kr

정리 박호수 월간중앙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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