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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마트의 종말?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의 혁신

이마트가 위기에요. 온라인 마켓이 대세가 된 지금 마트의 위기론은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어요. 이 가운데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초저가 시장을 겨냥하고 부활을 꿈꾸고 있어요.

 

'마트는 없어질 것이다.’ 정용진(51)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21세기 버전 ‘(트로이의 멸망을 예견한) 카산드라의 예언’과 맞서고 있다.

신세계 주력 계열사인 이마트 주가는 8월 12일 장중 한때 10만4500원까지 떨어졌다. 불과 1년 전인 2018년 2월 이마트 주가는 32만3500원을 찍었다. 약 1년 반 만에 3분의 1로 오그라들었다.

이마트를 둘러싼 위기론은 오프라인 유통업의 경쟁력을 시장이 우려스럽게 본다는 시그널이다. 소비자가 굳이 마트까지 찾아가 물건을 구매할 필연성이 희미해진 시대다. 쿠팡 등 온라인에서 클릭 몇 번이면, 안방 소파에 앉아 원하는 상품을 장바구니에 담을 수 있다. 조 단위에 달하는 적자 규모에도 시장은 상대적으로 쿠팡의 미래 가치를 인정한다. 그동안 ‘직접 눈으로 보고 사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했던 과일·야채·아이스크림·육류·어류 등도 포장 기술의 발달로 배달이 가능하다.

그동안 정 부회장은 ‘유통업 혁신의 아이콘’ 이미지가 뚜렷했다. 다만 정 부회장의 혁신은 주로 오프라인에 꽂혔다. 스타필드, 피에로쇼핑, 이마트 트레이더스, 이마트24, 분스, 부츠, 올반, 노브랜드 버거, 베키아에누보, 레스케이프 호텔 등에 걸쳐 ‘정용진이 하면 다르다’는 기대감을 품게 했다. 다만 아직 시장 반응은 ‘신세계백화점, 스타벅스 이상의 임팩트는 없다’는 쪽이다.

이 가운데 신세계백화점은 정 부회장의 여동생인 정유경(47) 총괄사장의 영역이다. 신세계백화점은 2019년 1~2분기 연속해서 이마트보다 영업실적이 양호했다.

어느덧 정 부회장에 관한 시장의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고용 창출과 문화생활 업그레이드를 동시에 추구하는 혁신적 경영자”라는 호평은 여전하다. 그러나 한편에선 “사업 중심이 온라인으로 이동하는 트렌드에 CEO로서 둔감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용진 부회장은 2019년 6월 신세계그룹 경영전략회의에서 “위기는 생각보다 빨리 오고, 기회는 생각보다 늦게 온다”고 경계했다. 재계 10위 신세계그룹과 정 부회장은 기회가 다시 올 때까지 위기를 헤쳐 나갈 모멘텀을 어디서 찾아낼 수 있을까.

정 부회장이 지휘하는 이마트는 2019년 2분기 299억원의 영업 손실을 발표했다. 1993년 창사 이래 첫 적자였다. 이를 예감한 정 부회장은 2019년 초부터 위기를 자주 거론했다. 1월 신년사에서는 “앞으로 유통시장은 ‘초저가’와 ‘프리미엄’의 두 형태만 남게 될 것”이라며 “초저가 시장에서 기회를 찾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중간은 경쟁에서 도태될 것”


6월 서울 성수동 이마트 본사에서 열린 하반기 경영전략회의에서도 “지금은 역량을 축적해야 하는 시기이며, 기회가 왔을 때 축적된 역량을 바탕으로 기회를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전, 가정·생활용품 등에 모든 판매 품목에 걸쳐 이마트 매출이 감소하는 상황을 경시하지 않는 발언이다.

시장의 불안을 해소하고자 정 부회장과 이마트가 꺼내놓은 활로는 큰 틀에서 ▷자사주 매입 ▷자산 유동화 ▷초(超) 저가, 이렇게 세 가지다. 특히 ‘일상화된 초저가’는 정 부회장의 일관된 경영전략으로 꼽힌다. 온라인으로 이탈한 소비자들을 다시 매장으로 흡입하는 급소를 가격이라고 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탄생한 결과물이 노브랜드, 노브랜드 버거, 에브리데이 국민가격 프로젝트 등이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보다 싸게 팔겠다는 의도다. 실제 노브랜드의 구호는 ‘브랜드가 아니다. 소비자다 ’이다.

정 부회장은 신년사에서 “고객에게 환영받지 못하고,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중간’은 결국 치열한 경쟁에서 도태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세상 모든 상품의 양극화를 예견한 발언이다. 소비자는 아주 비싼 ‘프리미엄’ 아니면 아주 싼 ‘초저가’를 선별적으로 고를 것이란 트렌드 예측이다.

신세계백화점은 수도권 대형 매장에 명품 라인업을 갖춘 럭셔리 프리미엄 전략을 펼치고 있다. 이에 대비해 이마트는 할인점의 본질이라 할 가격에 집중할 때 활로가 열릴 것이란 판단이다.

이런 철학에서 꺼낸 반전 카드 중 하나가 이마트 트레이더스다. 9월 5일 경기도 부천에 17호점을 개업했다. 이마트 트레이더스는 ‘오프라인 매장보다 30~50% 저렴한 가격’을 고객들에게 제시하고 있다.

정 부회장은 개점을 이틀 앞둔 9월 3일 부천 매장을 찾았다. 현장을 중시하는 평소 행보가 고스란히 발휘됐다. 아울러 이마트 오프라인 유통사업 부문에서 ‘물러서지 않겠다’는 결연함이 담겨 있는 것으로 시장은 받아들이고 있다.

이마트는 8월 1일부터 1년 내내 싸게 판다는 ‘에브리데이 국민가격’을 시작했다. 1차로 30여 개 초저가 제품을 판매한데 이어 8월 29일부터 생활필수품과 가전제품 등 40여 개 제품을 추가로 선보였다.

이마트는 8월 1일부터 26일까지 1차로 30여 개 초저가 제품을 판매한 실적을 공개했다. 이마트 방문객 숫자가 7월 같은 기간에 비해 8%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이때 호응을 얻었던 대표적 상품이 4900원짜리 와인이다. 원래 가격의 40% 수준으로 판매한 것이다. 도스코파스 레드블렌드(스페인산)와 도스코파스 카버네소비뇽(칠레산)이라는 와인이다. 육류와 잘 어울리는 술로 알려져 있다.

 

이마트가 집계한 결과에 따르면, 26만 병이 팔려 나갔다. 통상적으로 잘 나가는 와인이 1년에 7~8만 병 매출을 기록한다. 초저가 와인은 채 1달도 안 된 기간에 보통 와인이 1년간 팔리는 양의 3배를 훌쩍 넘긴 것이다. 이마트는 “총 판매 중 55% 이상이 최근 6개월 동안 와인을 한 번도 구매한 적이 없는 고객에 의해 이뤄졌다”고 반색했다.


4900원 와인, 1900원 햄버거

 

 

미국의 다이얼 비누 가격도 기존 판매가의 65% 수준(8개 3900원)으로 낮춰졌다. 이 역시 15만 개가 팔렸다. 지난해 이마트 비누 판매 1위 품목인 제품이 1년 동안 17만 개 팔렸으니 폭발력을 짐작할 수 있다. 이밖에 바디워시가 18만 개, 워셔액도 20만 개가 판매됐다.

초저가 품목을 전진 배치한 효과에 힘입어 와인은 41%, 목욕 용품은 16%, 자동차 교환 용품은 10% 매출이 상승했다. 성과에 고무된 이마트는 초저가 제품 품목 확대에 나섰다. 700원짜리 물티슈, 2000원짜리 치약, 17만9000원짜리 LED TV 등을 내놓았다. 이마트는 향후 500개까지 초저가 할인 품목을 확대할 계획이다.

이렇게 가격을 낮추려면 원가를 절감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 부회장은 상품을 기존에 해왔던 것보다 수십에서 수백 배까지 대량 매입하는 전술을 활용했다. 또 기존 거래처 외에 가격경쟁력을 갖춘 신규업체를 발굴하기로 했다.

최저가 1900원짜리 노브랜드 버거도 출시됐다. 8월 19일 마포구 서교동에 1호 매장인 홍대점을 열었다. ‘정용진 버거’로 네이밍 된 신세계푸드의 외식 브랜드 버거플랜트가 싸늘한 반응에 직면하자 가성비로 대결하는 노브랜드 버거를 내세워 판매 포인트를 바꿨다. 저렴한 가격임에도 햄버거 패티가 두꺼운 것으로 알려지자 사람들이 찾고 있다. 평일 1500명, 주말 2000명이 매장을 방문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노브랜드 버거는 올해 안으로 신규 매장을 4~5곳 더 열 계획이다.

정 부회장은 평소 “신세계그룹의 핵심가치에 우리의 존재 이유와 의사결정 기준은 고객이라고 명시돼 있다”라고 주지시켰다. “유통 사업은 고객에게 시장을 알려주고 도와주는 사업이 아니”라면서 “우리의 목적은 고객의 지갑을 열게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위기 국면에서 정 부회장이 모색한 초심은 고객이었다. 소비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발굴하고, 최적의 가격 조건으로 공급하는 데 이마트의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지향성이다.

정 부회장과 이마트의 초저가 전략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과연 최저가 전략으로 온라인과 붙어서 이길 수 있느냐’가 의구심의 본질이다. 정 부회장도 “창사 이래 최대 위기로 판단된다”라는 말에서 읽을 수 있듯 심각성을 모르지 않는 듯하다.

가격을 극단적으로 싸게 팔면 사람들은 모일 수 있고, 판매량이 증가할 순 있다. 그러나 사태의 핵심은 오프라인 대형 할인매장이라는 업황 자체가 내리막길일 수 있다는 비관론에 있다. 정 부회장도 이를 경시하지 않고, 이마트를 뒷받침할 기획들을 연속적으로 론칭했지만 아직 어느 하나 확실한 성공 궤도에 진입하지 못했다. 1인 가구 증가 트렌드에 대응해 이마트24를 열었지만, 손실이 누적되고 있다. 적자가 흑자로 전환되기까지는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 사이 주력사인 이마트는 월 2회 의무 휴업, 영업시간 제한, 상권영향평가 강화 등 규제의 벽에 갇혀 있다. 인건비는 증가하고 있고, 점포 확장은 어려워지고 있다. 즉 지출은 확대되고 있는데 수익은 불확실성이 증폭된 상황이다. 이마트 앞에 ‘바닥을 모르는’, ‘벼랑 끝’ 같은 수식어가 붙고 있다.

이에 굴하지 않고 정 부회장은 자사주 매입과 자산유동화로 시장을 안심시키려 하고 있다. 신세계그룹은 2011년 대형마트 부문을 분할했다. 이명희 회장을 최대주주로 두고, 정용진 부회장이 이마트, 정유경 총괄사장이 신세계의 경영권을 가졌다. 이마트와 신세계가 중간지주사 성격을 갖고 계열사를 지배하는 구조다. 정 부회장은 이마트 외에 마켓, 쇼핑몰, 식음료 사업 등을 책임지기로 했다. 정 총괄사장은 신세계백화점 외에 면세점, 패션 부문을 확보했다.


이마트는 온라인 쇼핑과 공존할 수 있나?

 

 

2011년 기업 분할 이후 이마트가 자사주 매입과 자산유동화에 나선 것은 처음이다. 이마트 주가가 하락하는 것을 방어하겠다는 포석이다. 아울러 정 부회장이 책임경영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자사주를 매입하려면 ‘실탄(현금)’을 확보해야 한다. 이마트는 점포 건물을 매각한 뒤 임차(세를 들어 빌려 쓰는) 형식으로 사업체를 계속 운영하는 ‘세일 앤 리스백’ 방식을 마련했다. 이를 통해 대략 1조원을 마련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마트의 점포 매각은 창사 이래 최초다. 이마트는 2019년 상반기 79%까지 늘어난 부채비율을 2018년 수준(71~72%)으로 낮출 예정이다.

부채비율이 낮아지면 그룹 신용도 평가에 유리하다. 글로벌 신용평가회사 스탠더드앤푸어스(S&P)는 8월 5일 이마트의 국제신용등급을 BBB에서 BBB-로 하향 조정했다. 신용등급이 떨어지면 그만큼 금융기관으로부터의 자금 조달 조건이 불리해진다. 기업 유동성을 원활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신용등급 관리는 사활적 영역이다.

자산유동화 작업과 병행해 이마트는 950억원 규모의 자사주(90만주)를 매입했다. 주가부양책이다. 950억원은 이마트 시가총액의 3.23%에 달하는 액수다. 정 부회장 개인이 아니라 이마트 법인 차원에서 자사주를 사들인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이 모든 절차의 목적은 ‘이마트는 건재하다’는 신호를 주기 위함이다. 실제 이마트가 자산유동화와 자사주 매입을 선언한 뒤 이마트 주가는 일시적으로 반등했다. 그러나 이마트와 정 부회장이 추진한 일련의 사업들은 시장의 주목과는 별개로 연착륙까지는 아직 시간을 필요로 한다. 초고가 전략은 매출 증가에는 도움이 될 수 있어도 수익성을 담보하지 못한다. 이마트에 반등의 순간이 언제 찾아올지, 그때까지 시장이 기다려 줄지는 미지의 영역이다.


재산세와 종부세도 경영에 부담

 

신세계그룹도 온라인 유통 채널을 보유하고 있다. 온라인 통합법인 SSG닷컴이 그것이다.

정용진 부회장은 3월 28일 “세상에 없고, 아마존을 능가하는 최첨단 온라인 물류센터가 들어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하남시 미사지구에 SSG닷컴의 물류센터를 짓겠다는 구상이다. 이어 정 부회장은 “30층 아파트 높이 규모로 지으면서 예술성을 가미해 하남의 랜드마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물류센터라기보다는 온라인의 심장부이자 분사하게 될 SSG닷컴의 가장 핵심 시설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오프라인에서는 규모의 경제를 극대화해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마켓을 서울 외곽에 확장하고 있다. 월마트 등의 글로벌 트렌드를 따라가는 모양새다. 그러나 방향성에 대한 공감과 별개로 이마트는 단기 실적 악화에 직면해 있다.

정 부회장이 아무리 혁신적이라도, 소비자의 변덕은 더 예측불가능하다. 가령 최근 부동산에서 유행하는 용어 중 ‘슬세권’이 있다. 슬리퍼를 신고, 걸어갈 수 있는 백화점 근처의 아파트를 일컫는다. 고객들은 백화점과 마트를 차별화해 보고 있다. 단순히 물건을 사러 가는 곳이 아니라 맛집, 명품점 등을 들르는 기분을 위해 백화점을 찾는다. 소비의 양극화가 빚은 현상이다. 게다가 서울 시내에 백화점을 또 지을 땅은 사실상 없다. 역설적으로 서울 시내의 기존 백화점들은 더 강력한 시장 지배력을 확보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이마트의 자산유동화는 의미심장하다. 10년 전부터 자산유동화를 진행한 롯데마트와 달리 이마트는 최근 첫 자산유동화에 돌입했다. 수익성이 떨어지는 지방의 적자 점포가 ‘세일 앤 리스백’ 대상이 될 것이다. 오프라인 점포의 또 하나 부담은 세금이다. 이마트가 2019년 감당해야 할 부동산 보유세만 1012억원으로 집계됐다. 2019년 8월 기준으로 이마트는 142개 중 121개, 이마트 트레이더스는 16개 중 14개가 보유 점포다. 임대료 부담이 없는 대신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종부세)가 발생한다.

글로벌 시장도 이마트가 생각하는 성장 동력이다. 온라인쇼핑에 치여 누적된 실적 부진을 해외시장에서 메울 수 있다. 해외의 개발 도상국들은 오프라인 시장이 먹힐 수 있는 공간이 광활하다. 이마트가 베트남, 몽골 등에 점포를 내는 배경이기도 하다.

이마트는 9월 3일 몽골 울란바토르에 이마트 3호점을 개점한다고 발표했다. 몽골 내 대형마트 중 최대 규모로 열 계획이다. 이마트는 2016년 7월 몽골에 1호점을 냈다. 이어 2017년 9월에 2호점이 뒤따랐다. 몽골 이마트 매출액은 2017년 530억원, 2018년 720억원으로 알려졌다.

이마트는 떠오르는 시장인 베트남에도 진출했다. 2015년 호찌민에 1호점을 열고 영업을 개시했다. 이어 2020년 호찌민에 2호점을 개장할 계획이다. 지속적으로 베트남에 부지를 구입하고 있다. 이는 이마트 베트남 점포가 더 늘어날 것을 짐작하게 한다.

이마트는 중국에서 실패한 아픈 경험이 있다. 1997년 상하이에 첫 점포를 열었다. 2010년까지 점포 숫자가 26개에 달했다. 그러나 2013년부터 적자로 돌아섰다. 결국 1500억원의 손실을 보고 2017년 철수했다.

중국에서 쓴맛을 봤지만 이마트는 미국 시장을 노릴 채비를 하고 있다. 중장기적으로 내다보고, 틈새를 공략하겠다는 의도다. 2020년을 목표로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PK마켓을 열 예정이다. 이마트는 PK리테일홀딩스라는 회사를 2018년 7월 설립했다. 이후 이 해 12월 현지 식료품 리테일 사업자 굿푸드홀딩스를 3070억원에 샀다. 이마트 설립 이래 최초의 해외기업 인수였다.


“고객의 소비보다 시간을 빼앗겠다”


이마트가 위기에 처해 있음에도 정용진 부회장을 향한 일반 대중의 호감은 견고하다. 정 부회장은 재벌가 경영자 중 드물게 소통에 능하다.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 박용만 두산 인프라코어 회장과 더불어 ‘SNS 셀럽’으로 통한다. 실제 정 부회장의 인스타그램 팔로워 숫자는 19만3000명에 달한다. 트렌드 세터로서 정 부회장의 성향은 기업 경영에도 영향을 미친다. 신세계그룹이 지분참여를 통해 운영하는 커피 전문 체인점 스타벅스의 국내 진출을 끌어내 성공시킨 사례가 대표적이다.

오너 경영자임에도 직원의 복지와 기업 문화 개선에 진정성 있는 관심을 보여줘 사회적 가치를 다하는 기업인 이미지를 쌓았다. 2017년 12월 신세계가 대기업 중 최초로 주 35시간 근무를 도입한 것은 정 부회장의 결단이 아니었으면 어려운 일이다. 정 부회장은 근무시간을 단축했지만 임금은 그대로 유지했다. 신세계 직원은 “이미지 차원인 줄 알고, 설마 했는데 정말로 회사가 35시간을 지켰다”고 증언했다.

정 부회장은 정재은 명예회장과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 사이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이명희 회장은 삼성 창업주인 고(故) 이병철 회장의 막내딸이다.

미국 브라운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1995년 신세계그룹 전략기획실에 입사했다. 이후 2006년 신세계그룹 부회장에 올랐다. 당시 정 부회장과 정유경 총괄사장은 신세계주식(147만4571주)을 증여받았다. 당시 가치로 6872억원 규모였다. 여기서 증여세만 3400억원을 냈다.

정 부회장은 2019년 4월 241억원(14만 주)에 달하는 이마트 지분을 장내 매입했다. 이를 통해 정 부회장의 지분율은 10.33%(288만399주)가 됐다. 국민연금을 제치고 이마트의 2대 주주로 올라섰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마트 주가가 17만원 선까지 내려간 시점이라 ‘저점매수’가 가능했다.

이에 앞서 정 부회장은 2016년 정 총괄사장과 남매 지분 맞교환을 했다. 정 부회장이 보유한 신세계 주식과 정 총괄 사장이 보유한 이마트 주식을 바꾼 것이다. 이로써 그룹 대주주(이마트와 신세계 지분 18.22%)인 이명희 회장 체제에서 정 부회장의 이마트 승계 작업에 가속도가 붙게 됐다.

신세계그룹은 2017년부터 재계 순위 10위를 지키고 있다. 유통에 주력한 회사가 재계 순위 10위에 진입한 것은 이례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지금 이마트와 정 부회장은 갈림길에 서 있다. “고객의 소비보다 시간을 빼앗겠다”는 정 부회장의 꿈은 어떻게 현실화될까.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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