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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대한민국 중산층의 기준과 경기 부양 정책

서울시 성북구 A뉴타운 지역에 살고 있는 김진영(55)씨는 지난 1년간 생활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김씨는 지난 봄, 다니던 회사를 나와 세 달 전에 소유하던 34평형 아파트를 팔고 24평형 낡은 아파트 전세로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퇴직 후, 김씨는 아내와 함께 소나타 승용차로 교외 나들이를 즐기거나 집 근처 체육공원에서 테니스를 치러 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여유도 잠시, 얇아진 가계 수입을 불평하던 아내 임씨(53)가 인근 프랜차이즈 스테이크 가게에 취업하면서 김씨가 생각했던 행복한 노후생활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식사를 차리는 것부터 집안 청소, 쓰레기 수거 등 집안일이 김씨의 업무가 되었기 때문이다. 집안일보다는 자영업을 해볼까 생각도 했지만 자영업 절반이 3년 내에 망한다는 친구의 얘기를 듣고는 그 생각도 접어버렸다. 취직난에도 불구하고 큰 아들이 기업체 입사시험에 합격을 했지만 아들이 여자친구와 결혼 날짜까지 잡자 신혼집 전세비용을 마련해주는 일이 발등의 불이 되었다.

김씨 부부는 밤잠을 안자고 궁리하던 끝에 살고 있던 34평형 아파트를 팔기로 하고 인근 부동산에 살고있는 아파트를 급매물로 내놓았다. 분양 당시만 해도 중산층을 위한 맞춤형 아파트라고 프리미엄까지 붙었던 아파트였지만 그 새 인기가 떨어져 매수자도 나타나지 않았다. 


2012년 입주 당시에는 4억8천만원까지 올랐지만 지금은 4억2천만 원에도 매수자가 없었다. 시세보다 1천만 원 싸게 내놓으니 겨우 매수자를 만날 수 있었다. 새로 들어가게 될 전세금을 빼고 퇴직금과 집을 판돈 나머지로 아들 신혼 전세집을 마련해 준 후, 보험료와 기름값을 아끼자는 아내의 성화에 나들이에 사용하던 자동차도 중고차로 팔아버리게 되었다. 그래도 남은 퇴직금, 전세집이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나중에 딸을 시집보낼 때는 전세금도 빼고 월세로 살아야 한다"며 손사래를 쳤다.



'자본주의' 대한민국을 떠받치던 4~50대 중산층 가정이 급속도로 허물어져가고 있다. 경기 불황과 부동산 가치 하락으로 가계소득은 줄어들고 비정규직 일자리로 내몰리면서 점점 삶의 질이 하락하고 있다. 위의 김씨 사례는 서울, 수도권에서 익숙한 장면이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김씨는 34평형 아파트와 2억 원이 넘는 퇴직금 등 약 5억 원 대의 자산을 가진 어엿한 중산층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아내의 수입 외에는 변변한 소득도 없는 현실이다. 중산층이라는 귀속의식은 커녕 남은 노후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가 막막할 따름이다.

중산층 기준


경기불황이 장기화되면서 자영업자들의 가계 소득이 줄고 있는 것도 중산층 감소의 이유 중 하나이다. 자영업도 잘 되지 않자 결국 장ㆍ노년층이 어쩔 수 없이 비정규직의 직업전선으로 다시 뛰어들게 되는 것이다. 중산층이 몰락하고 있다는 것은 결국 소득불균형이 심화됐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전문가는 설명한다. 

줄어든 중산층은 부유층으로 가기 보다는 빈곤층으로 이동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비정규직이 급속도로 증가했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소득불균형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 7월 14일 통계청이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에서 발표한 수치에서도 올해 3월 현재 비정규직 근로자는 591만명으로 1년 전인 574만 명보다 17만이나 늘어났다.



이렇게 사태가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통계청이 발표하는 우리나라 '공식 중산층' 규모는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이유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정한 기준인 중위소득만으로 중산층을 정의하기 때문이다. 통계청에서 분류하는 방식은 전체 가구를 소득 순으로 줄을 세운 뒤 한 가운데 차지하는 50~150%의 소득계층을 중산층으로 보고 있는데, 이는 2124만~6372만 원을 받는 사람에 속한다. 연봉 2600만 원을 받는 A씨나 연봉 6천만 원을 받는 부장급 간부 B씨나 같은 중산층으로 분류된다는 말이다.

중산층의 기준


이 기준에 따라 우리나라 중산층은 2009년 63.1%에서 2010년 64.2%, 2011년에는 64%, 2012년에는 65%로 계속해서 증가해왔다. 박근혜 정부의 중산층 70% 공약도 이 수치에 근거하고 있다. 하지만 현대경제연구원에서 지난해 8월 전화설문조사를 한 결과, 자기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느끼는 사람은 46.4%에 불과해 정부 기준과 20% 정도 차이가 나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정부에서 OECD 기준으로 중산층에 해당한다고 분류된 사람들 중 55%는 자신이 중산층이 아닌, 저소득층이라고 답변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해 1인 가구의 월간 중위소득은 177만 원이었다. 이렇게 따져 중위소득 50%에 해당하는 1인 가구, 즉 88만5천 원을 버는 사람은 중산층 보다는 차상위계층, 빈곤층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이처럼 소득으로만 중산층을 산출하다보니 빈곤층에 해당하는 사람들도 중산층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통계청은 여전히 OECD 기준이라며 소득 기준으로 중산층을 산출한다. 수치와 현실의 괴리가 커질수록 사회ㆍ경제적인 불안, 불만이 커지고 소비심리도 위축되기 때문에, 정부도 지난해부터는 과거와 다른 통계수치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통계청에서는 새로 개발한 '신(新) 지니계수'를 적용한 결과를 내놓았다. 신 지니계수는 0.353이라고 발표했으며 OECD 평균치를 넘긴 수치로 상위권 6위에 해당했다. 불평등이 심화돼 중산층이 감소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수치이다. 또한 울프슨(Wolfson)지수도 중산층이 줄었다는 결과를 나타내주는데, 0에 가까우면 중산층에 가깝고 1에 가까우면 몰락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우리나라는 2011년 0.254, 2012년에는 0.256으로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불황


위의 수치처럼 우리나라 소득 불평등은 위험수위로 치닫고 있다는 분석이다. 동국대 경제학과 김낙년 교수에 따르면 한국은 2012년 현재 소득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45%를 차지하는 극심한 소득 불균형 국가다. 세계에서 가장 소득 불균형이 심한 미국은 소득 상위 10%가 48.16%를 점유하고 있는데, 그 다음으로 높은 수치이다. 하지만 정부는 울프슨지수 수치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 않다. 그래서 중산층 지표와 관련된 논란을 끝내기 위해서는 고소득층의 정확한 소득 파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중위소득 파악을 위해서이다.




지난 6월 12일, 현대경제원구원 이준협 연구위원은 전국 성인남녀 817명에게 ‘당신은 중산층입니까?’ 라는 질문을 한 후, 그 결과를 분석해서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서는 ‘월평균 515만원의 수입, 341만원의 지출, 3억7천만원 시가의 35평까지 주택을 소유하여 총 6.6억 원 상당의 순 자산을 보유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월 4번 매주마다 12만원 상당의 외식을 즐기면서도 사회적 약자를 위해 소득의 2.5%를 기부하며 무료 봉사하는 것을 중산층으로 보았다.

대한민국 중산층


하지만 실제 국민들이 느끼는 중산층의 삶은 매달 416만원을 벌어서 252만 원을 쓰고 27평 주택을 포함해 총 3.8억원 상당의 순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것을 나타났다. 또한 매달 6만원 상당의 외식을 세 차례 즐기고 사회적 약자를 위해 소득의 1.1%를 기부후원하며, 1년에 3.1회 무료봉사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경환


중산층이 붕괴하면서 국가적인 사회 안정도 흔들리고 있다. 그래서 많은 국민들이 현재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경기 부양 정책에 주목하고 있다. 이번에 추진중인 LTV(주택 담보대출 인정비율)와 DTI(총부채 상환비율) 규제완화 정책이 얼마나 경기를 활성화할지 말이다. 과연 경기부양 정책이 성공해 중산층 70% 공약을 달성하고 사라진 중산층들이 돌아올 수 있을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만약 경제팀의 부동산 정책이 성공하지 못할 경우 한국의 중산층은 더 붕괴될 것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