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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새정치민주연합의 고질병, 계파 정치 청산 가능할까?

추석 연휴가 지나면서 정치권은 또다른 방향을 맞을 전망이다. 추석 이후의 정국은 불투명하고 흐리다. 세월호 이후 보여준 정치권의 무능함이 이번 추석 연휴에 사람들에게 어떤 이야기와 모습으로 나타날지가 향후 정국을 타개해나가는 열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상황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의 위치와 역할이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날지 사뭇 궁금하다. 


새정치민주연합




한국갤럽이 8월 15일 발표한 국민들의 새정치연합 지지도는 23%다. 새누리당 지지율 44%의 절반 수준이다. 새정치연합은 원내의석 130석을 가진 거대 야당이다. 그런데도 국민들에게 제 1야당이라는 존재감을 주지 못한다는 평가다. 오히려 무기력한 정치력 때문에 ‘관제야당’ 이라는 비판까지 듣는다. 왜 그럴까?

가장 최근에 있었던 7·30 재보선 이후 벌어진 일련의 상황을 복기해보면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미니총선’으로 불린 7·30 재보선에서 새정치연합이 15석 의 의석 가운데 4석을 얻는 졸전을 치르며 참패하자 당내에서 비판이 난무했다. 그러자 곧바로 책임론이 대두되면서 지도부가 사퇴했다. 


안철수 김한길


그 다음은 예의 고구마 줄기처럼 자성론이 뒤따랐다. 하지만 딱 그뿐이다. 선거 참패 직후 자청해서 “국민의 뜻을 깊이 새겨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고 세월호 특별법을 꼭 제정하겠다”고 했던 새정치연합이 지난 8월 11일 세월호 특별법 합의와 관련해 소집한 의원총회 때 참석한 의원은 전체 130명의 의원 가운데 70명에 불과했다. 도리어 제1야당의 무기력함에 실망해 단식하는 국민의 수만 늘려놓았다.

새정치연합은 지난 11년 동안 당 대표가 무려 28번이나 바뀌었다. 지도부를 흔들어 갈아치우는 행태는 100년 정당을 표방하고 창당했던 열린우리당 시절에 시작됐다. 열린우리당이 존재한 4년 동안 김원기→정동영→신기남→이부영→임채정→문희상→정세균 →유재건→정동영→김근태→정세균 의장(대표) 등 지도부가 11번이나 바뀌었다.

새정치연합은 당 대표나 대선후보를 지 낸 중진들은 죄다 상임고문 자리를 주는 바람에 현재 상임고문만 10명이 넘는다. 말이 상임고문이지 각 계파를 대표하는 수장들이라서 당 대표 입장에서는 하나같이 머리꼭대기에 있는 ‘시어머니’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같은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이를 바꾸고자 했던 이가 바로 김한길 전 공동대표였다. 그는 지난 해 9월 1일 민주당 여의도 대산빌딩 10층에 마련한 민주당 중앙당사 입주식에서 “최근 들어 당내 계파주의가 상당부분 벽을 허물고 있는 것은 매우 긍정적인 변화”라며 계파 척결과 정당혁신의 기치를 자신있게 내걸었다.


문재인


하지만 그는 임기를 못 마치고 중도사퇴하는 비극의 주인공이 됐다. 비주류 수장으로 당내 세력 부족을 절감한 그가 특유의 전략적 두뇌로 안철수 의원의 ‘새정치연합’과 통합을 이뤄내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7·30 재보선 공천파동이 족쇄가 되어 스스로 무너진 것이다. 현재 원내 130석의 새정치연합은 노무현계, DJ계, 김근태계, 노동단체, 시민단체, 안철수계 등 다수의 계파가 화학적 결합을 이루지 못한 채 새정치민주연합이라는 어정쩡한 집안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형국이다.

이중 가장 아랫목을 차지하고 있는 당내 다수파는 문재인 의원이 수장으로 있는 친노계다. 친노계 의원들 다수는 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추모열기에 힘입어 지난 2008년 총선 때 대거 정치권에 유입됐다는 특징이 있다. 여기에 2012년 총선 때 친노계가 공천권을 행사한 비례대표 의원들, 그리고 이인영·우상호 의원 등 운동권출신 486의원들과 열린우리당 대표를 두 번이나 지낸 정세균계가 합류해 범친노계를 형성한다.


손학규


이에 대적하는 당내 비주류는 김한길-안철수 연합세력, 그리고 시민단체와 한국노총 등 노동계에서 당 대 당 통합 형태로 합류한 인사들이 주축이다. 박지원 의원을 주축으로 광주·전남 지역구 의원이 많은 호남파와 김근태 의원이 주도했던 민평련계는 상황에 따라 친노파나 비주류와 우호적 관계를 맺는 계파다. 이런 구도에서 소수파로 버티고 있었던 손학규계는 지난 7·30 재보선 정국에서 손 전 대표가 정계은퇴를 선언하면서 당내에서 존재감을 상실했다.



이들 계파는 당 대표나 대선후보를 지낸 의원, 그리고 3선 이상의 중진급 의원이 수장을 맡아 대선과 총선, 전당대회 때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합종연횡하며 세를 불려왔다. 새정치연합은 이렇듯 복잡하게 계파들이 서로 얽혀있는 데다 이념갈등을 유발하는 정치적 이슈에 따라 다시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다. 새정치연합의 한 의원은 그래서 기자들에게 “계파가 다른 의원들끼리는 밥 한 번 먹는 것도 어렵다”고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비교적 계파색이 엷어 비대위원장으로서 추대된 박영선 원내대표로서는 재임 기간 동안 어느 한쪽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한마디로 줄타기를 해야하는 신세다. 물론 새정치연합이 그동안 고질병인 계파정치 문제에 눈만 감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해 4월 민주당은 <새로운 출발 을 위한 성찰>이라는 제목의 제18대 대선 평가보고서를 펴냈다. 민주당 18대 대선평가위원회(위원장 한상진)는 이 보고서에서 18대 대선에서 민주당이 패배한 중요원인으로 계파주의를 꼽았다.

대선평가위원회는 “계파주의는 공천이나 당직인사에서 계파 나눠먹기를 뜻하며 계파 이기주의와 계파 패권 주의, 계파 배타주의는 당 운영의 모든 분야에서 독과점을 지탄하는 용어”라며 “18대 대선에서 국민의 요구는 정권교체였으나, 특정 계파는 후보 고수와 당권 유지에 더 무게를 두었다는 비판이 많았다”고 적시했다.



보고서는 또 “민주당의 주요 인사들이 계파정치의 문제점을 일반 국민보다 더 강하게 인식하고 있다. ‘친노, 비노, 주류, 비주류 등 편가르기를 계속 하는 한 민주당의 미래는 암담하다’는 설문에는 무려 93.3% 가 찬성하고 있다”라며 민주당의 계파정치를 청산해야 한다 는 국민여론을 전달하기도 했다. 당시 보고서에서 한상진 대선평가위원장은 “계파정치 청산은 대선패배의 큰 원인으로서 이제 민주당의 미래를 위한 최우선 과제”라고 강조했지만 민주당은 새정치연합으로 당명을 바꾼 뒤에도 그때의 반성으로부터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민주당 계파정치


정치권에서는 새정치연합의 계파정치가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정치권의 속설을 현실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진단한다. 그런 점에서 새정치연합이 새누리당보다 더 구태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새누리당은 친박계니 비박계니 서로 헐뜯고 싸우다가도 선거 때가 되면 공동의 목표달성을 위해 계파싸움을 중단하는 모습을 보여왔다는 것이다. 18대 총선 공천 탈락으로 원조 친박계에서 이탈했던 당시 김무성 전 의원이 당 총괄선대본부장을 맡아 박근혜 대통령 탄생에 공을 세운 것이나 당권을 장악한 비주류의 수장인 김무성 대표가 최근 들어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에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 준 것이 그 단적인 사례다.

이와 대비되는 것이 새정치연합 김한길-안철수 전 대표의 지 난 7·30 재보선 공천파동이다. 서울 동작을에 공천신청한 금태섭 전 대변인을 수원으로로 이동시키고, 광주 광산을에 공천신청한 기동민 전 서울시 정부부시장을 연고도 없는 서울 동작을로 끌어올리는 대신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 을 광산을에 전략공천한 변화무쌍한 ‘정치공학’은 결국 민주주의의 요체인 지역구민의 의사를 무시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해 새정치연합이 참패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날개 없이 추락하고 있는 새정치연합에 희망이 있을까? 박영선 비대위원장은 외부인사들로 비대위를 구성하겠다고 했지만 아직 인선안조차 내놓지 못하고 있다. 내년 초 있을 전당 대회 때 당권 잡는 것이 중요한 각 계파 수장 입장에서는 외부 인사가 비대위원으로 오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들 때문에 당 안팎에서는 공천권 문제 해결책으로 ‘오픈프라이머리’ 도입이 대안으로 제기되고 있다.


박영선


오픈프라이머리는 완전국민경선제로 불리는 개방식 예비선거다. 예비선거에 당원이 아닌 사람도 참가할 수 있는, 국민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상향식 공천이다. 이 방식을 도입하면 의원들이 더 이상 공천권을 얻기 위해 특정계파 수장에게 줄 댈 일이 없게 된다. 이미 민주당이 2002년 국민참여경선이라는 형식으로 대선후보 선출 때 도입한 경험도 있다. 바로 노무현 대통령후보를 만들어냈던 그 방식이다. 문제는 제도를 도입하려고 해도 당을 장악하고 있는 각 계파의 수장이 제도 도입에 합의하지 않으면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박영선 비대위원장이 “전략공천을 배제하고 선진국의 오픈프라이머리 제도를 도입하는 등의 선거제도 개혁이 불가피하다”며 제도 도입에 의지를 보여 귀추가 주목 된다. 진보를 자처하면서도 보수라고 비판하는 새누리당보다 수구가 되어버린 새정치연합. 과연 이 거대야당은 국민들의 지지를 회복해 3년 뒤 ‘어게인 2002’를 재현할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