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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온라인 지역 커뮤니티가 지역 상권 움직인다?!

인터넷 지역 모임 카페가 지역 상권을 좌지우지하고 있어요. 이때문에 지역상권 조성에도 악영향을 미친다고 하네요. 주민들과 지역 상인들이 서로 존중받는 문화는 어떻게 만들어 갈 수 있을까요?

 

 

"손님, 혹시 이 아파트 주민 중 지인 계세요?” “저희 미용실에 대해 어떤 말이 오가는지 궁금해서 그러는데, 지역 카페 회원 아이디를 가지고 계신 분이 없나 해서요.”

일산에서 미용실을 개업한 지 4개월 됐다는 A씨는 머리를 자르러 온 기자에게 탐문이나 하듯 말을 걸어왔다. 동네 아파트 주민들 사이에서 미용실에 대한 평판이 어떤지 궁금했던 것이다. 호기심이 동한 기자가 “왜 그러시냐”고 되묻자 A씨는 흥미로운 얘기를 하나 들려줬다.

자신과 비슷한 시기에 개업을 한 건너편 네일아트 가게가 경영난으로 곧 문을 닫아야 할 지경이라는 것이다. A씨는 매출이 나름 좋았던 네일아트 가게가 하루아침에 손님이 끊겼다고 귀띔했다. 그것도 ‘온라인 지역 카페’에서 악소문이 돌면서 주민들의 발걸음이 뚝 떨어졌다는 것.

“카페의 관리자로 활동하던 주민 한 분이 가게에서 큐티클(Cuticle, 손톱의 뿌리에 있는 부드러운 껍질) 제거를 하던 중에 손톱이 살짝 긁혔는데, 손님이 카페 게시판에 사건을 부풀려 올리면서 저 사달이 난 것이죠.”

앞 가게의 사건으로 온라인 카페의 존재를 의식하게 됐다는 A씨. 그날 이후로 미용실에 오는 손님들에게 카페에 관해서 묻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고 한다. 손님을 배웅할 때도 “안녕히 가세요”라는 말보다 “카페에 글 좀 잘 써 주세요”라는 인사가 앞선다고 혀를 찼다.

실상을 파악하고자 네일아트 가게 사장 김지영(가명)씨를 찾아갔다. 인터뷰로 인한 피해가 없도록 해 달라고 신신당부하던 김지영씨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처음 가게 문을 열었을 때는 지역 주민분들이 가게가 예쁘다며 관심 가져 주시고, 많이 찾아와 주셨죠. 그 덕분에 오픈 첫달 매출이 전에 있었던 곳보다 1.5배 이상 올랐어요.”

논란을 일으킨 카페 게시글 대목에 이르러서는 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제가 이전에 근무했던 곳은 주 고객이 20대 초반인 대학가였기 때문에 학생들이 저에게 직접 컴플레인하는 정도가 다였습니다. 지역 여론을 조성하는 커뮤니티의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애초에 몰랐죠. 지금 돌이켜보니 제가 신도시 아파트 상가로 가게를 옮긴다고 했을 때, 지역 카페 관리자에게 뇌물이라도 줘야 하는 거 아니냐며 지인들이 농담 삼아 한 이야기를 귀담아들었어야 했나 싶어요.”

불만을 품은 아파트 주민이 카페 게시판에 네일아트숍을 비난하는 글을 올린 뒤 매장의 매출은 눈에 뜨일 정도로 확 줄었다. 김씨는 이 사실을 다른 손님에게서 전해 듣고는 속앓이만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해명 글 하나 올리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마녀사냥을 당하는 심경”이라며 “글 하나가 한 사람 인생을 뿌리째 흔들 수 있는 것 같다”며 울상을 지었다.


‘권능감’ 선사하는 新지역공동체

 

 

이는 디지털과 함께 성장한 ‘Z세대’들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합류하면서 오프라인을 중심으로 돌아가던 지역공동체가 온라인으로 대체되는 트렌드와 맞물린 사회적 현상이기도 하다. 인근 아파트 단지에서 만난 한 주민은 “이사 오고 나서 동네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 적도 없는데, 카페에 초대한다는 메일을 먼저 받았다”고 전했다. 그는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대화 한마디 주고받지 않는 시대인데, 카페에 들어가니 모두가 친해 보여서 참 뜻밖이었다”고 덧붙였다.

지역 커뮤니티 활동의 주 무대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겨가다 보니 김지영씨와 같이 피해를 보는 이들이 생겨나는 것으로 해석된다.

과거에는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임원, 부녀회장, 상가회 관계자 등이 지역 내 여론을 조성하는 오피니언 리더(opinion leader) 역할을 했지만, 이들의 존재는 대부분 공개되었다.

요즘은 해당 지역 주민들이 참여하는 온라인 커뮤니티가 대세다. 지역의 소수 여론주도층이 행사하던 영향력을 지금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글을 올리는 누구나 행사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작동하는 시대다. 이 온라인 공간에서는 ‘익명성’이 작용하므로 오프라인보다 누군가에게 더 쉽게 상처를 안기는 행위가 가능해졌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온라인 지역 커뮤니티에는 사회활동을 하다 육아, 가사로 돌아선 전업주부들이 왕성하게 참여하는 편이라고 한다. 이들은 자신의 주거 환경, 소비 생활에 대한 주장과 판단이 분명한 까닭에 일상의 불편과 불만 사항을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리는 데 익숙하다.

과거 지역 커뮤니티가 단순히 ‘지역 내 사랑방’ 역할을 했다면 김지영씨의 예에서 보듯 온라인 지역 커뮤니티는 ‘양날의 칼’로 쓰일 수도 있다. 해당 커뮤니티 내에서 익명으로 오가는 정보들이 지역 상인들의 흥망성쇠(興亡盛衰)를 결정하는 ‘결정적 한 방’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 유사한 온라인 커뮤니티들이 ‘갑질 카페’ 논란을 일으키는 이유도 카페에서 주민들이 특정 가게에 대한 지역 여론을 호도하거나, 상인들에게 무리한 요구를 한 사례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주민들 등쌀에 소상공인들 ‘울상’

 

 

파주 신도시에서 키즈 카페를 운영하는 B씨도 자신을 온라인 지역 커뮤니티의 피해자라고 주장한다. B씨도 “업종을 바꿔야 하나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린아이들과 동반하는 부모 고객들을 상대하는 스트레스가 인내의 임계선을 넘어서고 있다는 생각에서다.

“하루는 제게 가게에서 판매하는 음료수와 과자 품목을 자신들이 보낸 리스트로 바꿔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온라인 카페상으로 이미 투표를 끝낸 사안이라며, 지역 엄마들도 다 찬성한다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제 가게의 문제를 한마디 상의도 없이 카페 운영자가 결정했다는 사실을 도무지 납득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럼에도 B씨는 지역 주민들의 요구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 지역 주민들 등쌀에 못 이기는 척 결국 가게 물품들을 바꿔 줬다는 것이다. B씨는 “사장이 무슨 힘이 있냐”며 “이런 식으로 시시콜콜 간섭하는 환경에서는 창의적인 경영이 불가능할 거 같아 다른 길을 모색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실태를 알아보고자 틈틈이 지역 카페 활동을 하는 것이 취미라는 경기 신도시 주민 C씨의 회원 아이디를 빌려 지역 카페에 들어가 보았다. 외부 유입을 막고자 주민인증 단계를 철저하게 한다는 해당 카페는 회원 수가 2000명 남짓 되는 커뮤니티였다. 이곳에서 주민들은 자유롭게 동네에 관한 민원 글을 올리기도 하고, 학원이나 학교 같은 지역 교육정보를 주고받으며 친목을 다졌다.

“새로 생긴 ‘L 피부관리실’ 가격도 좋고, 친절해요. 카페 회원분들께는 20% 할인해 주신다니 아주 좋은 듯.”

“세븐일레븐 00점 사장은 무슨 연유로 맨날 퉁명스럽게 구는 거래요? 급해도 주인아줌마 얼굴 보기 싫어서 그 매장은 안 가게 돼요.”

자신이 이용한 가게를 추천해 주는 글들도 많이 보였고, 반대로 특정 상인을 비난하는 글들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C씨의 말에 따르면, 최근 지역 주민들이 담합해 새로운 가게가 들어오는 것을 막은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00 중학교 앞에 커피숍이 없어지고, 주꾸미 가게가 들어오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 사실을 안 카페 회원들이 반대의견을 모아서 가게 입주를 끝내 막았죠. (중략) 주민들의 주장은 초등학교 앞에 주꾸미 가게가 들어오면 저녁에는 술을 마시러 오는 손님들 때문에 학생들의 학업 분위기를 망치게 될지도 모르니 반대한다는 것인데, 그저 주민들 성에 차지 않으니깐 꼬투리를 잡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처럼 지역 생태계 안에서는 카페 회원들의 권력이 최정점에 서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결국 주민들을 배제할 수 없는 지역 기반 업체들에게 이들은 지역 행정기관만큼 상당한 영향력을 지닌 존재로 인식된다.


지역 상인들과 호혜적 거래 관계 지향해야

 

 

온라인 지역 커뮤니티는 지역 주민들 간 소통과 결속을 도모한다는 면에서 긍정적인 기능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활동이 특정인에 대한 부당한 압력이나 권력 행사로 이어진다면 지역 사회에 반드시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보기 어렵다는 반응도 낳게 된다. 네일아트 가게 사장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은 주민 한 사람이 커뮤니티상의 여론몰이로 가게 문을 닫도록 만든 사태가 결과적으로 공유지의 비극(개인이 극도의 사익을 추구하면 공익이 훼손되는 경우)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실제로 이 지역 주민 D씨는 주민들의 이러한 행태를 놓고 “주민들 입김 세다고 소문나서 아파트 상가에 좋은 상권이 들어오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정색을 했다. 또 이런 여론몰이가 다른 주민들에게는 뜻하지 않은 불편을 안길 수도 있다. 기자가 방문했을 당시 네일아트 가게에 있었던 손님 E씨는 “이 가게가 가성비, 가심비 모두 좋아서 단골이었는데, 제대로 알아보지도 못하고 무작정 발길을 끊어 버린 주민들을 이해할 수 없다”며 “만약 이 가게가 문을 닫는다면 이만한 가게가 다시 들어올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상의 거짓 소문이나 왜곡된 사실 유포로 특정인이 불이익을 당해도 피해 구제는 쉽지 않은 게 엄연한 현실이다. 게시글이 직간접적으로 소상공인들에게 피해를 줘도 처벌 규정과 범주가 모호한 탓이다. 염건웅 유원대 경찰소방행정학부 교수는 “카페 회원들이 영업장에 가서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면 법적인 잣대를 분명히 들이댈 수 있지만, 이 외의 사안들을 놓고 사실 여부를 가리는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상의 ‘갑질 횡포’가 사회적 이슈로 등장하면서도 쉽게 근절되지 않는 배경이다.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CTC)에 따르면 ‘갑질’이라는 단어는 영어로 번역이 안 되는 우리말 중 하나로 분류된다. 한국에서 유독 고질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송재룡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의 갑질 문화가 유교의 차등적 윤리 규범에 기초한 권위주의 문화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위계적 성향이 한국 시민의 의식구조 속에 상당히 견고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분석한다. 염건웅 교수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윤리적 소통에 대한 교육과 책임의식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활성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근 들어 온라인 커뮤니티와 지역 상인들이 신뢰 기반을 구축함과 동시에 호혜적 거래 관계를 지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는 변화하고 있는 시민 의식을 반영해 ‘2019 올해의 소비 트렌드’ 중 하나로 ‘매너 소비자’를 꼽았다. 고객과 소비자가 서로를 존중하는 워커벨(Worker&Customer Balance) 문화가 중시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는 의미다.

앞서 네일아트 폐업을 고려하던 김지영(가명)씨는 “요즘은 ‘손님이 왕’이라는 표현을 더는 쓰지 않는 시대가 아니냐”며 “지역 사회 내에서 주민들과 소상공인 모두가 권리를 존중받는 문화가 정착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호수 월간중앙 인턴기자 lake80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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