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면 쓰레기, 모으면 자원이란 말이 있어요. 그러나 현실에선 쓰레기가 자원으로 재탄생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해요. 특히 대표적인 분리배출 항목인 플라스틱·종이 커피잔은 대부분 매립장으로 향한다고 하네요.
경상북도 의성군 단밀면 도안로 1014-61번지. 나무와 들풀이 있어야 할 임야의 중턱엔 10여m 높이의 쓰레기 더미가 쌓여 있다. 언제 버려졌는지도 모를 정도로 새카맣게 변한 비닐과 원탁·페트병·나뭇조각·부직포·파이프 등이 흙과 마구 뒤엉켜있다. 그야말로 쓰레기 산이다. 여러 해 묵은 쓰레기는 악취와 먼지를 내뿜고 있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굴착기 한대가 홀로 힘겹게 쓰레기 더미를 치우고 있을 뿐이다.
이곳에 쌓인 폐기물은 17만3000t에 이른다. 중형 승용차 12만3000대 분량의 무게다. 누군가 몰래 버린 쓰레기가 모이고 모여 좁은 땅 위에 산을 이룬 것이다. 이런 방치폐기물은 경북 의성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총 120만t에 달한다. 인근 주민들은 “여름철이면 마을 전체에 쓰레기 썩는 냄새가 진동한다”며 “날이 더울 때 불이 나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전국의 방치폐기물 120만t
현대인들은 쓰레기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산업화, 도시화, 인구 증가로 버려지는 쓰레기는 나날이 늘고 있다. 2017년 발생한 생활폐기물만 534만t이나 된다. 2013년 487만t에 비해 크게 늘었다. 무차별적으로 버려지는 쓰레기는 동·식물의 생존에 치명적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유독성 물질과 미세먼지 등 심각한 환경오염을 일으키고 있다.
정부와 국민은 분리수거 등으로 폐기물 배출량을 줄이고, 자원을 재활용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한국의 폐기물 재활용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독일에 이은 2위(2013년 기준)를 기록하는 등 폐기물 처리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지난해 중국의 폐플라스틱 수입 중단, 서울·수도권 재활용 수거 업체의 폐비닐 수거 거부 등으로 쓰레기 대란이 벌어졌다. OECD 회원국 중 재활용률이 두 번째로 높은 나라지만 실상은 폐기물 처리 체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환경부가 2017년 발표한 ‘제5차(2016~2017년) 전국 폐기물 통계조사’에 따르면 재활용할 수 있는 자원 중 69% 이상을 분리 배출했다. 아파트 주민들이 종이·플라스틱·캔·유리류를 모범적으로 분리 배출해서다. 이것도 모자라 아파트 경비원들이 2차로 분류한다.
이 결과 전체 폐기물의 재활용률은 86.4%(2017년 기준)에 이른다. 세계 어느 나라·도시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수치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통계일 뿐이다. 일견 분리 배출된 86.4%의 쓰레기가 모두 재처리 과정을 거쳐 오롯이 새로운 제품으로 다시 탄생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상과는 거리가 멀다.
한국의 생활폐기물 재활용 시스템은 크게 ‘수거-선별-처리’의 3단계를 밟는다. 시민들이 분리수거한 쓰레기는 수거 업체를 거쳐 선별 업체로 넘어간다. 선별 업체는 컨베이어 벨트에 쓰레기를 올려 재활용되는 것만 솎아내고 나머지는 처리 업체로 넘겨 매립하거나 태운다.
정부 통계는 선별 업체로 넘긴 것까지만 추적한다. 선별 단계까지 갔다면 모두 재활용된 것으로 따진다. 선별 업체가 재활용 쓰레기를 매립했는지 태웠는지는 통계에 드러나지 않는다. 폐기물 처리 과정에서 분류가 바뀌기도 한다. 박상우 저탄소자원순환연구소 소장은 “생활폐기물이 재활용 업체를 거치면 사업장폐기물로 바뀌는데, 여러 폐기물과 섞여 폐기물의 발생지를 따질 수 없다”며 “통계의 정확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일회용 아이스커피컵 대부분 매립
실제 선별 단계에서 재활용의 영광을 누리는 플라스틱 양은 많지 않다. 대개 페트병 등 분리수거 된 플라스틱은 다른 페트병이나 일회용 커피컵 등을 만들기 위해 공장에서 작게 분쇄한다. 분쇄 플라스틱의 순도가 높아야 경제성이 생기는데, 페트병에 색상이 있거나 이물질이 묻은 경우 재처리 비용이 많이 들어 선별 과정에서 빼버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페트병에 라벨을 붙이기 위한 접착제를 제거하려면 고온·고압의 수처리가 필요한데, 그러기에는 돈이 너무 많이 든다.
일회용 아이스커피컵도 재활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폴리스티렌(PS)이 섞여 있어서다. 일회용 아이스커피컵은 분리수거해 배출하지만, 정작 선별 과정에서 탈락해 매립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페트병 뚜껑도 재질이 몸통과 달라 재활용이 어렵다.
환경부는 폐기물 선별 과정에서 탈락하는 잔재물을 39% 정도로 추정하고 있으며, 환경단체에서는 분리수거 플라스틱이 재활용되는 경우를 30% 수준으로 보고 있다. 이런 복잡하고 까다로운 재처리 과정을 거치고도 기업들은 안정된 품질을 보장받기 어려워 도입을 꺼린다. 유가 하락으로 화학제품 가격이 내려가, 새 페트병을 만들어 쓰는 것이 오히려 저렴하고 안전해서다. 현재 폐페트병(투명·연두·갈색 기준) 가격은 1㎏당 200~400원 수준이다. 식품용 랩이나 햄·소시지의 필름, 블리스터(투명 플라스틱) 포장 등에 주로 쓰이는 폴리염화비닐(PVC)은 새 제품의 가격이 1㎏당 1000원 안팎이다.
비단 플라스틱만의 문제는 아니다. 종이 역시 비닐을 씌운 잡지 표지나 내부를 폴리에틸렌(PE)으로 코팅한 일회용 커피컵·우유팩 등은 이물질이 섞여 있어 재활용이 어렵다. 일회용 커피컵은 일반 펄프보다 20% 이상 비싼 고급 품질의 버진펄프로 만든다.
그러나 코팅을 벗기려면 차염소산나트륨(NaClO)이라는 화학물질을 사용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2차 환경오염이 발생한다. 이 때문에 소각하거나 매립하는 경우가 많다. 재활용되더라도 두루마리 휴지나 페이퍼타월 등 부가가치가 낮은 제품의 원료로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환경부는 한 해 약 200억개의 일회용컵이 사용되며, 이 중 5∼10%만 재활용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한국 자원재처리 업체들은 이처럼 재활용하기 어렵고 수익성이 떨어지는 쓰레기를 그간 중국·필리핀 등지로 수출했다. 수출로 수익을 보전해온 것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수출한 폐플라스틱은 6만7441t에 달했다. 그러나 중국의 폐플라스틱 수입 중단과 바젤협약 개정으로 한국의 폐플라스틱 판로가 막히고 있다. 세계적으로 환경 관련 규제가 강화되고 주요국들이 서로 쓰레기를 떠넘기고 있어서다.
바젤협약 개정으로 주요국 쓰레기 떠넘기기 복마전
특히 배달 서비스 애플리케이션 사용자가 늘며 최근 1~2년 새 플라스틱 용기 쓰레기가 급증하는 등 재활용 쓰레기 문제는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폐기물 정책을 전면 개편할 필요성이 커진 시점이다. 강신호 대안에너지기술연구소 소장은 “대체재 개발 등 플라스틱 사용량 저감과 더불어 제품 생산 때 재활용을 우선시하는 디자인을 마련해야 한다”며 “생산자재활용책임제도·재활용기금·환경부담금 등의 적극적 재활용을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정부는 유색 페트병을 만들거나 페트병 라벨을 접착제로 붙이는 행위 등을 금지하는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자원재활용법)의 하위법령 개정안을 12월부터 시행한다. 앞으로는 페트병 몸체를 무색으로 만들어야 하며, 몸체에 라벨 접착제가 묻지 않도록 처리해야 한다.
PVC는 합성수지와 섞이면 재활용이 어렵고 유해 화학물질인 염화수소가 발생하기 때문에 포장재 사용을 금지하기로 했다. 종이팩·유리병·알루미늄 캔·발포합성수지 등 9종의 포장재도 재활용 난이도에 따라 ‘최우수’ ‘우수’ ‘보통’ ‘어려움’의 4개 등급으로 나눠 처리하기로 했다. 어려움 등급으로 포장재를 만들 경우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의 분담금을 할증 적용해 최우수 등급 포장재의 재질·구조 개선 촉진에 쓰기로 했다.
건설산업 폐기물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현재 지정(상업)·생활폐기물은 매립, 소각하는 경우가 많다. 생활폐기물은 대부분 소각하지만, 지정·건설폐기물은 대기오염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에 매립 수요가 커서다. 지정폐기물은 해당 사업장이 처리하는 것이 원칙으로, 대부분 기업은 이를 해당 지방자치단체 내의 민간 전문 처리 업체에 위탁한다.
이들 업체는 매립이든 소각이든 폐기물의 수집·운반·보관·처리를 도맡는다. 이들은 여러 소재가 혼합된 폐기물을 인력을 동원해 분류하는 등 비용 부담이 큰 편이다. 영세한 폐기물 처리 업체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익 구조다. 각 지자체가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지만, 수익을 보전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이에 따라 폐기물을 인적이 드문 곳에 몰래 버리거나, 처리를 못 하고 쌓아둔 채 파산 신고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다른 지역으로 쓰레기를 옮기기도 한다.
이런 가운데 소각 시설이 줄어든 점도 방치폐기물 증가에 영향을 줬다. 2008년 폐기물 소각시설은 952개에서 2017년 395개로 557개(58.5%)가 감소했다. 정부가 2006년부터 발암물질인 다이옥신 배출 기준을 적용하는 소각시설 범위를 확대했고, 미세먼지 문제까지 나타나 많은 소각시설이 폐쇄돼서다.
폐타이어 등으로 만든 고형폐기물 연료(SRF)를 사용하는 열병합발전소가 주민 반발에 막혀 가동을 못 하는 일도 발생하며 폐기물 처리에 어려움이 커졌다. 경북 의성에 방치폐기물이 산을 이룬 것은 이런 일이 누적된 결과다.
쓰레기 처리 브로커도 등장, 정부 EPR 도입키로
환경부가 집계한 1t 넘는 방치폐기물 더미는 전국적으로 총 235개에 달한다. 경기도의 경우 올 초 폐기물 방치 우려가 큰 사업장 583개를 조사한 결과 87개 업체가 보관 기준 위반, 불법 소각 등 현행법을 어긴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와 여당은 사업자의 권리·의무 승계에 사전 허가제를 도입해 대행자를 내세워 책임을 회피하거나 불법 폐기물로 취득한 부당 이득액의 수배에 달하는 과징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폐기물 재활용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폐기물 매립지는 포화상태에 다다르고 있다. 한국산업폐기물매립협회에 따르면 사업장폐기물을 매립할 수 있는 최종 처분 시설 잔여 용량은 1365만㎡(2018년 말 기준)에 불과하다. 현재 속도라면 3년 후면 매립할 땅이 사라진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현희(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수도권매립지공사로부터 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서울·인천·경기 지역의 경우 폐기물을 매립하는 인천광역시 서구의 수도권매립지는 반입량 과다로 2024년 11월 다 찰 전망이다. 앞으로 5년 안에 대체매립지를 발굴하지 못하면 쓰레기가 쌓이기 시작한다.
특히 지역 내 매립지가 없는 서울시의 문제가 가장 클 전망이다. 전현희 의원은 “대체 매립지 선정 후 조성에 최소 9년이 걸린다”며 “현재 매립지를 최대한 사용하려면 생활폐기물은 물론 건설·사업장 폐기물 감축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장에서는 폐기물 분리 및 처리에 기술과 자금이 부족하다는 현실적 한계를 토로한다. 한 민간 폐기물 처리 업체 대표는 “행정 당국은 분리 배출을 원칙으로 삼고 있지만, 영세한 업체들이 인건비를 부담해 폐기물을 일일이 분류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어 폐기물을 대량의 토사와 섞어 지방에 버리는 업체가 많다”며 “방치폐기물 인근 주민들도 부동산 시세에 악영향을 줄까 쉬쉬하고 있어 공론화가 잘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쓰레기 처리를 대행해주는 불법 브로커들도 등장했다. 대개 일반 사업장 대표에게 “자신에게 맡기면 20~30% 저렴하게 처리해주겠다”며 접근한다. 이들은 인근 토지를 임대해 버리든가, 산골에 몰래 버리고 도망가는 식으로 쓰레기를 처리한다. 경기 남부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이런 브로커 역할을 한 조직 폭력배 일당을 검거하기도 했다.
매립지 포화… 폐기물 효율적 관리 방안 절실
이에 폐기물 발생을 줄이는 한편 혼합 폐기물을 소각·매립 단계로 넘기기 전 재활용 가능한 것을 최대한 분류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기존에 기술 부족, 인건비 문제로 폐기물 처리에 겪던 어려움을 기계화·자동화를 통해 일부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폐기물처리 업체 이도(Yido)의 사공명 소장은 “폐기물을 제대로 분류하지 않고 매립하면 토양 오염 등 2차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며 “폐기물 처리와 관련한 국가 예산을 분류 기술 향상과 관리 기법 제고에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미 일부 중견 건설 업체들은 사업 다각화 차원에서 이미 방치폐기물을 분류할 수 있는 자동화 설비와 재처리 기술을 마련하고 사업 진출에 나서고 있다.
배재근 서울과학기술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방치폐기물이 생기는 구조를 개선하지 못하면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라며 “매립장은 더는 어렵다. 기존 소각장을 활용해 동맥경화 현상을 풀어주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의성·인천=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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