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플레이 기술의 발달이 무시무시해요. 얼마 전 LG는 OLED패널을 사용해 두루마리처럼 말리는 TV를 만들기도 하였죠. 이제는 투명하고 구부려지기까지 하는 혁신적인 OLED는 점차 그 활용 분야를 넓혀가는 추세라고 해요.
지난 10월 25일, 펠리페 6세 스페인 국왕이 서울 마곡 LG사이언스파크를 방문했다. 한국 정보통신기술(ICT) 탐방차 LG를 찾은 펠리페 6세는 자율주행솔루션·로봇 등 여러 기술 현장을 관람했다. 그가 가장 놀란 것은 TV였다. LG ‘롤러블 TV’의 화면이 아래에서 스르륵 올라오자 “와우”라고 큰 탄성을 터뜨렸다.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을 사용해 둘둘 말려 들어가는 이 TV는 올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가전 박람회인 CES에서 최고 혁신상을 받은 제품이다.
OLED 기술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판이 얇기 때문에 원론적으로는 자유자재로 휘거나 구부릴 수 있다. 과거 브라운관(CRT) TV는 상자에, 액정표시장치(LCD) TV는 캔버스에 비유됐다. 그러나 OLED는 형태를 규정할 수 없는 TV로 진화할지도 모른다.
OLED 디스플레이가 대중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10년께다. 삼성전자와 애플이 스마트폰 디스플레이에 OLED를 도입하기 시작하면서다. 당시 OLED는 물에 취약하다는 치명적 단점이 있었다. OLED는 유리와 금속으로 이뤄진 일종의 거울이다. OLED는 얇은 유리 위에 나노미터 단위의 유기물과 반사율이 높은 금속막을 층층이 쌓은 구조다. 그런데 유기물이 물이나 산소에 닿으면 성질을 잃거나 망가진다.
패널을 감싸서 이 문제를 해소할 수 있지만, 이 경우 화면을 구부릴 수 있는 OLED의 특성을 활용하기 어렵다. 화면을 구부리면 패널 사이에 이격이 생겨 수분이 스며들기도 했다. 그러나 봉지(encapsulation) 기술의 발달로 이런 문제를 해소했다.
봉지기술은 산소와 습기에 약한 OLED 유기물질에 이물질이 접촉되지 않도록 패널을 감싸는 기술이다. 참치를 캔으로 밀봉해 보존 기간을 늘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 OLED는 축구장 100개 넓이에 물방울 하나가 투과되는 것과 비슷할 정도로 습기 투과율이 낮다. 이에 철·유리 등 소재를 OLED에 합착 시키거나 흡습제를 넣는 방법 등이 나왔다.
박막봉지기술 덕에 OLED 혁신적 발전
최근 가장 많이 쓰이는 기술은 박막봉지기술(TFE)이다. OLED 위에 유·무기 박막을 번갈아 얇게 씌워 틈을 차단하는 방식이다. 습기를 차단하고 휘어지는 성질을 보존할 수 있다. 흡습제나 유리캔 방막 기술은 가격이 저렴하고 안정적이라 TV·스마트폰 등 OLED 디스플레이에 쓰인다.
그러나 OLED의 휘어지는 성질을 유지하려면 TFE 기술이 적합하다. 세계 최초 접는 스마트폰인 갤럭시 폴드도 삼성SDI가 개발한 TFE를 사용했다. 봉지기술의 발달로 구부러지거나 접을 수 있는 디스플레이 기술이 다가온 것이다. 장현준 유비산업리서치 선임연구원은 보고서에서 “TFE 방식은 엣지나 풀스크린 타입 플렉시블 OLED 패널에 계속 적용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LCD도 어느 정도는 휠 수 있다. 다만 LCD는 백라이트유닛(BLU)이 있기 때문에 BLU에서 발생한 빛을 컨트롤하기 어려워 안정적인 화상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OLED는 외부 충격에 약해 봉지기술 개선만으로는 완전히 휘거나 구부리는 디스플레이로 활용하기 어렵다. 이를 보완할 수 있는 기술로 최근 그래핀이 주목받고 있다. 그래핀은 탄소 나노 튜브처럼 탄소 원자로만 이뤄진 육각형 벌집 구조의 한겹의 탄소를 뜻한다.
전자가 빠르게 흐르고 빛 투과율이 98%나 돼 OLED 화상에 간섭이 적다는 점이 장점이다. 자유롭게 휘어지면서도 수분과 산소로부터 디스플레이를 보호할 수 있어 미래 소재로 주목받고 있다. 현재는 빛을 다소 굴절시키고 가격이 비싸다는 점이 문제로 꼽히지만, 양산 체제를 갖추기 시작하면 문제가 해소될 것을 보인다.
그래핀을 봉지 소재로 활용하기 시작하면 신문처럼 접어 휴대할 수 있는 대형 OLED 디스플레이를 생산할 수 있다. 디스플레이를 휘거나 접음으로써 TV·모니터·스마트폰은 물론 옥외 광고판·초대형 스크린 등으로도 사용할 수 있어 디스플레이 전반의 혁신이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LG디스플레이는 최근 세계 최대 항공기 제조사 미국 보잉과 손잡고 차세대 항공기에 적용할 ‘스마트 객실’ 개발에 나서기로 했다. LCD를 OLED로 교체하면 기체가 가벼워져 유류비를 아낄 수 있어서다. 또 기내 객실 천장과 벽면, 창문 등에도 OLED 패널을 부착해 승객 편의를 높일 수도 있다. 천장과 벽면 디스플레이를 통해 비행 정보와 광고 등의 콘텐트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LG전자는 투명한 디스플레이로 내부 식재료의 신선도를 확인할 수 있는 냉장고와 날씨와 미세먼지 등 기상 정보를 알려주는 스마트 유리창을 선보인 바 있다. 이런 가운데 LCD용 액정을 독점 생산하는 독일 소재기업 머크퍼포먼스머티리얼즈도 OLED 기술 개발에 역량을 쏟고 있다.
최근 디스플레이와 조명, 건축용 유리, 스마트 안테나 등의 첨단 제품을 공개해 화제를 모았다. 최근에는 OLED를 활용한 웨어러블 디스플레이도 새 산업군으로 주목받는다. 섬유에 유기물을 접목해 옷이나 모자·가방 등 의류·잡화를 디스플레이처럼 만드는 기술이다. 원하는 도안과 색상을 자유자재로 입히는 등 자신만의 개성을 표출할 수 있다.
이처럼 디스플레이가 휘기 때문에 자연히 자유자재로 휠 수 있는 배터리 기술도 개발되고 있다. 미국 애리조나대학 등이 배터리의 단위 면적당 에너지 밀도를 높여 종이처럼 접을 수 있는 배터리를 개발해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다만 아직 안전성과 투명 디스플레이와의 호환성, 경제성 등 문제가 검증되지 않아 상용화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릴 것으로 보인다. 물론 플렉시블 OLED는 여러 기술적 한계와 높은 가격 때문에 시장이 쉽사리 커지지는 않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의 플렉시블 OLED 출하량은 지난해 1억5900만대에서 올해 1억6700만 대로 5% 증가하는 데 그쳤다.
중소형 OLED 생산 경쟁도 치열
이에 기업들은 당장은 시장 수요를 끌어낼 수 있는 중소형(리지드) OLED 생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삼성전자의 갤럭시 폴드 등 접는 스마트폰이 선풍적 인기를 끌면서 리지드 OLED의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판단해서다. 실제 삼성디스플레이의 리지드 OLED 라인 가동률은 올 상반기 50~60%에 그쳤지만 3분기 들어 90%로 치솟았다. 시장조사업체 IHS마킷도 올해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리지드 OLED가 유일하게 출하 대수·매출 모두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더불어 가상현실(VR)·증강현실(AR)용 고해상도 스크린으로도 사용처가 늘어날 가능성이 커 리지드 OLED 경쟁은 더욱 치열할 전망이다.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이코노미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