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이 새로운 회장을 맞이해요. 12월 19일 예비후보 등록과 함께 ‘농민 대통령’ 선거전에 돌입했어요. 내년 1월 31일에 투표를 하면 새로운 회장이 선임하게 되는데요. 과연 이번 선거전의 양상은 어떻게 흘러갈까요?

 

"12월 19일 예비후보자 등록부터 (2020년) 1월 16~17일 후보자 등록 전후 한 달 새 판세가 크게 요동칠 겁니다. 정치권에서 자주 등장하는 합종연횡(合從連橫)이 농협중앙회장 선거에서 재현된다니까요.”

월간중앙이 최근 만난 농협중앙회 고위 간부는 이번 농협중앙회장 선거전(戰)도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안갯속에서 치러질 거라며 이렇게 귀띔했다.

“최근 몇 차례 선거에서도 초반에는 10명 안팎의 후보가 거론됐지만 실제로 완주한 사람은 3~4명에 불과했다. 뿐만 아니라 역대 대부분의 선거에서 1차 투표에서는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았다. 1차 투표의 1위가 결선투표에서 뒤집힌 경우가 많았다. 이번 선거도 비슷하게 전개될지 지켜볼 일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2019년 12월 9일 농협중앙회장 선거일정을 확정·공고했다. 출마를 희망하는 사람은 12월 19일부터 2020년 1월 15일까지 중앙선관위에 예비후보로 등록할 수 있다. 예비후보는 최대 28일간 명함·전화·문자메시지·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

후보자 등록은 2020년 1월 16~17일 중앙선관위를 통해 가능하다. 후보자의 공식 선거운동 기간은 1월 18~30일 13일간이다. 선거인(대의원)은 선거 당일인 1월 31일 오전 서울 중구 농협중앙회 대강당에 모여 투표권을 행사한다. 당선인은 선거인 과반수의 투표와 투표자 과반수 득표자로 결정된다.

1차 투표에서 과반수의 득표자가 없으면 최다 득표자와 차순위 득표자가 결선투표를 치른다. 이번 선거부터 결선투표 때도 후보자들이 선거인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지지를 호소할 수 있다. 또 이번 선거부터는 결선투표를 앞둔 후보자가 1차 투표 탈락 후보자를 지지했던 선거인들을 대상으로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


150명만 잡으면 누구든 ‘농민 대통령’

 

2019년 11월 28일 김병원 회장(왼쪽)을 비롯한 농협중앙회 대의원들이 농협중앙회 본관 대강당에서 공명선거 실천 결의문을 들고 있다. / 사진:농협

 

농협중앙회장 선거에서 투표권을 가진 선거인단, 즉 대의원들은 총 292명이다. 전국 조합장이 1118명이니 어림잡아 4명 중 1명꼴로 대의원인 셈이다. 제도상으로는 조합장들의 투표를 통해 대의원을 선출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인접 조합 3~4개 끼리 자체적으로 순번을 정한 뒤 조합장들이 돌아가면서 대의원을 맡는 게 관례처럼 됐다. 특정 지역(광역 기준)에 대한 쏠림 현상을 막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는 게 농협 관계자의 설명이다.

중요한 건 대의원 수다. 모두 합쳐도 300명이 안 되기 때문에 누구든 150명만 잡으면 ‘농민 대통령’이 될 수 있다. 농협 출신 선거 컨설턴트는 “대의원이 292명이라는 데 농협중앙회장 선거의 최대 맹점이 있다”며 “150명만 내 편으로 만들면 252만 조합원, 12만 임직원, 28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연간 수조 원을 집행하는 4년 임기(단임제)의 농협중앙회장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과거 농협중앙회장 선거에서는 전국 조합장 전원이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조합장이 1200명에 이르다 보니 특정 후보끼리의 합종연횡이 큰 위력을 발휘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명박(MB) 정부 시절인 2009년 12월 현행 간선제로 바뀌었다. 비용을 절감하고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부정 선거를 막기 위한 조치였다. 하지만 되레 부작용을 키웠다는 지적이 농협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농협 일부 관계자들은 간선제 이후 속칭 ‘광’ 파는 사람들이 늘었고, 그로 인해 선거가 혼탁해지고 있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농협중앙회의 한 간부는 자신의 존재감 과시나 암묵적인 ‘지분’ 확보를 위해 출마 의사를 비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비판했다.

“농협중앙회장 선거의 가장 큰 문제가 후보 난립이다. 선거 두세 달 전부터 언론 보도를 통해 출마 의사를 비치는 사람은 10명쯤 된다. 그런데 막상 본선에 오르는 사람은 서너명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나머지는 뭘까. 애초에 완주 의지나 능력이 없으면서도 한 표가 아쉬운 유력 후보에게 다가가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 선거판을 기웃거리는 이들이다. 이런 사람들을 농협 선거판에서는 ‘광’ 파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완주할 의지가 없는 후보일지라 하더라도 드러내놓고 ‘광’을 팔 수는 없다. 예비후보로 등록한 사람이 다른 예비후보 지지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히고 사퇴하는 건 규정상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합종연횡, 속칭 ‘광’ 파는 행위는 어떻게 이뤄질까. 농협중앙회 간부 출신 한 인사의 말이다. “후보자 간의 독대와 담판을 통해서 매우 은밀하게 딜이 이뤄진다. 후보의 가방을 챙기는 측근조차 합종연횡의 구체적 내용은 알기 어렵다. 가령 A가 B를 밀어주는 대신, B가 당선되면 (현직 조합장인) A에게 농협중앙회의 자리든 (농협의) 자금 지원이든 어떤 식으로든 배려해 준다는 식으로 담판을 짓는 거다.”

또 다른 농협 관계자는 “지역에서 오랫동안 존재감을 키워 온 일부 인사들은 처음부터 예비후보 등록에 초점을 맞추고 애드벌룬을 띄우기도 한다”며 “그러면 유력 후보들이 먼저 다가가 손을 내미는 경우도 있다”고 귀띔했다. 그래서 “콘텐트도 없으면서 ‘광’만 팔기 위해 선거판을 기웃거리는 사람들을 퇴출하려면 모든 조합장이 투표권을 갖는 직선제로 개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병원 회장 전격 사퇴가 미칠 영향은

 

2016년 농협중앙회장 선거 결선투표 끝에 당선된 당시 김병원 후보가 큰절하고 있다.

 

안갯속 선거전에서 자천타천 후보로 거론되는 인사는 줄잡아 10명쯤 된다. 이성희(70) 전 경기 낙생, 여원구(72) 경기 양서, 이주선(68) 충남 송악, 김병국(68) 전 충북 서충주, 유남영(64) 전북 정읍, 강호동(56) 경남 율곡, 문병완(61) 전남 보성, 강성채(69) 전남 순천 조합장 등이 중앙회장 선거 하마평에 오른다.

 

또 농협중앙회 출신인 천호진(57) 전 북대 구공판장도 신발 끈을 죄고 있다. 예비후보로 거론되는 인사들 면면을 살펴보면 하나같이 농협에서 잔뼈가 굵은 ‘농협 맨’들로 주위의 신망이 높다.

농협 사정에 밝은 관계자들의 분석을 종합해 보면 강호동·김병국·유남영·이성희(가나다순) 예비후보가 조심스레 4강으로 분류된다. 이 가운데 유 예비후보는 김병원 현 회장과의 각별한 인연으로도 화제가 되고 있다. 유 예비후보는 이전 농협중앙회장 선거 때 김 회장 캠프에서 요직을 맡아 선거를 지휘했다. 이 예비후보는 2016년에 이어 재수에 나섰고, 김 예비후보는 첫 도전이다. 역시 첫 도전인 강 예비후보는 유일한 50대다.

농협중앙회 간부 출신 선거 컨설턴트는 “강호동·김병국·유남영·이성희 예비후보 4명 모두 또는 적어도 3명은 완주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선거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라며 “지금 우열을 말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고, 결국 1월 중순은 돼야 우열의 윤곽이 보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완주를 다짐하는 후보들의 목표는 1차 투표에서 적어도 2위 안에 드는 것”이라며 “역대 선거에서 1차 투표 2위 후보가 결선투표에서 역전한 경우도 많았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2016년 선거 때도 1차 투표에서는 이성희 후보가 104표로 1위를 차지했으나, 결선투표에서 뒤집혔다. 1차 투표에서 94표에 그친 김병원 후보가 결선투표에서 163표를 얻어 126표에 그친 이 후보에 역전승을 거뒀다.

이런 가운데 김병원 회장은 12월 16일 농협중앙회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같은 날 고별강연을 끝으로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곧바로 총선 출마를 선언했다. 두 번 낙선 후 2016년 선거에서 당선된 김 회장은 자신의 고향인 나주·화순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농협 핵심 계열사 대표급 인사는 “김병원 회장이 선거 40여 일 전에 사퇴한 것도 이번 선거에서 큰 변수라 할 수 있다”며 “아무래도 회장이 선거 막판까지 직(職)을 지키고 있으면 어떤 형태로든 (대의원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농민 대통령’ 선거에 청와대나 정치권의 입김은 작용하지 않을까. 이 대목에서 농협에서 20년 가까이 재직했던 한 인사의 말은 귀 기울여 볼 만하다. “과거에는 선거가 다가오면 청와대 모 수석비서관실에서 농협회장에게 연락이 오곤 했다.

 

청와대에서 염두에 두고 있는 후보가 누구인지 암시하면, 회장은 대의원들에게 암묵적으로 그런 메시지를 전달하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농협중앙회장 선거에 개입할 여지가 예전만 못한 것으로 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정치권에서는 여야를 불문하고 농협중앙회장 선거에 지대한 관심을 갖는다.”


호남 재집권론 vs 중부권 통합론

 

농협중앙회장 선거 선두권으로 거론되는 강호동 예비후보, 김병국 예비후보, 유남영 예비후보, 이성희 예비후보(왼쪽 사진부터, 가나다순).

 

농협을 건강하게 개혁하겠다, 잘사는 농촌을 만들겠다는 건 후보들의 ‘공통 공약’이다. 그렇다면 이번 선거의 진짜 어젠다는 뭘까. 농협중앙회장 선거를 여러 번 치러 봤거나 가까이서 지켜본 인사들에 따르면 ‘호남 재집권론’ vs ‘중부권 통합론’으로 요약할 수도 있다. 대의원들을 대상으로 치르는 농협중앙회장 선거는 일반 선거와는 어젠다 성격이 다를 수밖에 없다.

호남 재집권론은 김병원 회장의 바통을 유남영 예비후보가 이어받는 걸 의미한다. 2016년 김 회장은 호남 출신으로는 최초로 농협중앙회 회장직에 올랐다. 김 회장의 정책·이념 등을 가장 잘 계승할 후보로 유 예비후보가 꼽힌다. 둘은 오랫동안 인연을 이어오며 나름대로 시너지효과를 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이에 대한 거부감도 있다. 특정 지역 출신이 농협중앙회장직을 독점하는 데 대한 반감이다. 농협중앙회장직을 지역별로 돌아가면서 맡을 수는 없지만, 특정 지역 출신이 연속으로 맡는 건 마뜩잖다는 설명이 곁들여진다.

중부권 통합론은 역대 민선 회장 중 경기·충북 등 중부권 출신이 한 명도 없었다는 데서 출발한다. 역대 민선 회장은 ▷1대 한호선(원주) ▷2대 원철희(아산) ▷3대 정대근(밀양) ▷4대 최원병(경주) ▷5대 김병원(나주)이었다.

중부권 통합론에 대한 반론도 있다. 이번 선거에서 중부권이라는 용어의 개념 자체가 느슨하고 모호할 뿐 아니라 후보의 능력이나 자질보다 출신 지역이 우선시되는 듯한 논리를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번 선거를 좌우할 전국 대의원 분포를 보면 ▷영남권(31%) ▷호남권(22%) ▷충청권(19%) ▷서울·인천·경기권(18%) ▷강원권(8%) ▷제주권(2%)으로 나뉘어 있다. 영남과 호남이 전체의 절반이 넘는다. 다른 지역을 다 더해도 47%에 그친다. 그래서 영남을 기반으로 하는 강호동 예비 후보의 득표력에도 시선이 쏠린다.

농협 관계자는 “이번 선거에서는 과거처럼 영남 대 호남, 영호남 대 경기 등 지역 구도는 강하게 드러나지 않을 것”이라며 “결국 어떤 후보가 대의원들의 마음을 살 만한 자질과 정책을 보이느냐에 따라 승패가 결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다른 농협 관계자는 대의원들의 연령과 성향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대의원들의 평균연령은 약 57세에 초·재선 비율이 70%가량 된다는 게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과거 농협조합장이나 대의원이라고 하면 60대 중·후반의 시니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농협도 젊어지면서 대의원들의 평균연령이 50대 중·후반으로 낮아졌다. 사회적으로 보면 이른바 586세대들이다. 이들은 지역 구도보다 실리를 중시한다. 어떤 후보가 회장이 돼야 자신의 조합에 득이 될지 꼼꼼히 따지고 고민할 것이다.”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squeez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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