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 난 후 육아를 하면서도, 남편이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어도 붓을 꺾지 않은 불굴의 화가가 있어요. 화가이면서 종합대학 이사장까지 역임하였던 김경희 한국수채화작가회 회장 이야기에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떤 직업이나 작업에 필요한 트레이닝(training) 배경에 대해 고정관념이 있다. 예컨대 그래머스쿨 교육만 받은 셰익스피어(1564~1616)는 셰익스피어 작품의 작가가 아니라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됐다. 그래서 셰익스피어 희곡의 실제 저자는 다른 사람이었다는 설, 셰익스피어가 사실은 옥스퍼드대에서 공부했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셰익스피어 시대뿐만 아니라 첨단기술 시대에도 비슷한 고정관념이 살아 있다. 미래학자이자 첨단기술 구루(guru)로 유명한 비벡 와드와는 2017년 7월 “한국에 성공한 대기업 많지만 차세대 기업은 보이지 않는다”는 제목의 인터뷰에서 기자가 “한국 회사들은 인공지능(AI) 인력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채용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라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그 문제는 해결하는 게 어렵지 않다.
AI 분야에서 일하는 데 필요한 것을 배우려면 6개월이면 충분하다. 공대를 나오지 않아도 된다. 한국은 잘못 이해하고 있다. 공학 학사·석사가 필요한 게 아니다. 실리콘밸리 구글·페이스북·애플 같은 회사들은 ‘학위’가 아니라 창의력 같은 핵심 재능(core talent)을 채용한다. 창의력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인력난이란 있을 수 없다.”
셰익스피어 사례와 비벡 와드와 인터뷰는 무엇을 시사할까. 정치인이 되기 위해서는 꼭 법학과·정치학과·경제학과 전공자가 아니어도 된다는 의미다. ‘문과라서 죄송합니다’라는 표현도 있지만, 문과라도 충분히 AI 시대나 소위 제4차 산업혁명의 주역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또 교육학과나 경영학과를 나와야 교육행정을 담당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이치를 김경희 한국수채화작가회 회장(전 건국대 이사장) 또한 실증했다. 김경희 회장은 건축학을 전공한 서양화가지만 교육행정가로서도 성공했다. 예술가나 교육행정은 마치 대척점에 놓인 것 같지만, 현실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김경희 작가의 예술적 감각은 건국대 르네상스를 이끄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그는 건국대병원 신축, 스타시티와 국내 최초의 도심 실버타운인 ‘더 클래식500’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주로 수채화의 세계에 대해 서양화가인 김경희 작가를 인터뷰했다. 다음이 요지.
‘모든 한국인은 이미 수채화 작가다’라고도 할 수 있다. 초·중·고 때 수채화를 그렸다. 이 사실을 의식하기 힘들다. 수채화의 핵심을 소개한다면?
“수채화(水彩畵)는 말 그대로 물에 용해되는 매재((媒材, 일반적으로는 아라비아 풀)와 안료(顔料)로 그린 회화를 의미한다. 시대적으로 말하면, 유화기법이 일반화된 것은 르네상스를 거치면서였다. 르네상스 이전에는 안료를 물에 섞어 그림을 그렸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선사시대의 알타미라 동굴벽화나 라스코 동굴벽화, 고대 이집트의 파피루스 재질의 작품, 그리고 동양의 전통 회화인 수묵담채화, 채색화도 모두 수채화 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김경희 작가는 과감한 붓 터치로 에너지를 분출하며 생명의 향기를 표현한 꽃 그림, 사랑·추억·기다림을 함축하는 화풍으로 유명하다.
“유명 아이돌그룹 소녀시대 리드보컬인 태연 양이 부른 ‘수채화(Love in Color)’라는 노래가 있다. 이 노래의 가사는 이렇게 시작을 한다. ‘마치 투명한 색깔로 촉촉이 스며와 서로에게 물들던 시간들, 채워지던 사랑, 빛 내 맘속 선명했던 사랑이…’
제 마음에 아주 깊이 와닿는 노랫말이다. 노래 가사처럼 밝으면서도 투명하고, 눈이 부실 만큼의 강렬함을 통해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꽃이라는 식물은 우리를 슬픔에서 이끌고 나와 희망으로 안내한다. 사랑은 우리가 살아가는 생(生)의 원천이며, 추억과 기다림은 인간성 회복의 모태와도 같다. 저는 제 그림을 통해, 우리들의 세상에 깊이 자리를 잡고 있는 절망과 슬픔을 희망과 기쁨으로 바꾸어놓고 싶다는 간절함을 지니고 있다.”
소녀시대 태연의 ‘Love in Color’, 수채화 감성 잘 표현
막연하게 수채화는 유화에 비해 ‘동양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수채화와 유화를 놓고, 서구적 또는 동양적이라고 구분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굳이 구분한다면, 동양의 대표적 회화인 수묵담채화 자체가 수채화의 범주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산수묵화는 물의 번짐과 종이의 흡수성 조화가 생명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현대의 수채화와 전통적 동양회화의 기법은 같다고 할 수 있다. 현대 수채화가 우리에게 낯설지 않고 정감 있게 느껴지는 것도 그 뿌리와 기법이 같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중국 난징대 초청전을 했다. 중국 측 반응 중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
“2018년 11월 13일부터 23일까지 중국 장쑤(江蘇)성의 난징(南京)대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난징대 이사장께서 치료차 건국대병원을 방문했는데, 이때 병원 벽면에 걸린 제 작품을 보고 어떤 느낌이 오셨는지 초대전을 제의했다. 저로서는 2000년 이후 18년 만에 갖는 개인전이라는 의미도 있었다. 초대전에는 수채화와 유화 40여 점을 전시했다.
아주 많은 분께서 와주셔서 저는 깜짝 놀랐다. 작품을 둘러보신 분들은 대부분 ‘한국의 회화 수준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반응했다. 아마도 그분들은 현대 수채화가 중국의 수묵화와 기법이 비슷하다는 점에서 어떤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화사하면서도 부드럽고, 온화하면서도 강렬한 제 작품들을 보시고 많은 생각이 드셨던 것 같다. 여백의 미(美)만을 강조하는 전통적 수준에 머물러 있는 중국 수채화의 수준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던 것으로 본다.
제 유화에 대해서도 화사하고 강렬한 색상과 과감한 붓 터치 기법을 보시고는 분에 넘치는 호평을 많이 해주셨다. 저로서는 정말 감사할 뿐이다.”
중국 전시회의 주제는 ‘나의 꿈, 나의 사랑(My Dream, My Love)’이었습니다. 우리나라나 더 나아가 세계를 이끌어갈 세대에게 꿈이란 무엇이고, 사랑이란 무엇인가?
“역사가 과거의 거울이라면, 꿈은 미래의 거울이다. 오늘날 인류문명이 이처럼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게 된 것도 모두 꿈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따라서 꿈은 미래이고 발전이며 삶과 존재의 가치인 셈이다. 오늘날 문명을 이끌어나가고 있는 기성세대들이 젊었을 때 꿈을 가지고 있었듯이,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 우리 청소년들에게 어떠한 경우에도 결코 꿈을 버려서는 안 된다는 말을 꼭 해주고 싶다. 꿈은 미래의 희망이고, 사랑은 인류문명의 존재가치다.”
‘수채화 한류’의 가능성은 어떤가. 드라마·영화 한류, 음악 한류는 이미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우리나라 수채화는 ‘수채화 한류’를 역동적으로 추진할 수 있을까?
“수채화나 유화 구분할 것 없이 모두 세계인을 대상으로 ‘그림 한류’를 충분히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림은 그 어떤 분야보다도 통합과 융합의 시대정신을 잘 반영한다. 문제는 우리만의 색채와 스타일을 어떻게 확립해서 세계인들의 예술적 감성에 호소하느냐에 있다고 본다.”
수채화에 대한 일반인들의 대표적인 오해가 있다면?
“일반인들께서 수채화가 특정한 틀에 얽매여 있다고 생각하시는 경향이 많은 것 같다. 대부분 일반인은 중·고교 시절에 단순하고 정형화된 수채화만을 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수채화는 연령이나 성별에 구분이 없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회화의 한 분야다. 모든 장르의 회화가 그렇듯이 개성과 창의성이 매우 강조되는 예술 분야이기도 하다.
수채화를 통해 배운 인생의 지혜는?
“작품 구상을 위해 여행을 자주 간다. 그때마다 지나온 과거를 생각하게 된다. 반성도 많이 하게 된다. 제게 작품은 반성의 거울인 동시에, 미래에 대한 설계도인 셈이다. 작품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 그 작품을 보는 사람들이 어떤 느낌을 받느냐의 여부에 따라서 그 작품의 역할도 정해진다. ‘나’를 드러내기보다는 상대의 생각과 입장을 존중해주는, 양보와 나눔의 미학을 배우려고 노력하고 있다.”
양보와 나눔의 미학 배우려고 노력
‘수채화도 산업이다’라고 할 수 있는지. 아니면 그러한 테제에 반대하시는지.
“수채화를 포함한 모든 그림은 당연히 훌륭한 산업 부문이다. 산업이 발전을 거듭하면 할수록 인간본성을 향한 그리움은 더 간절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인간본성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그림이야말로 가장 경쟁력 있는 산업의 한 부문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수채화는 불교에서 말하는 무념무상의 경지와도 통하는가?
“감히 제가 무념무상의 경지를 논할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수채화 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이 개념적 차원에서 상통한다고 생각한다. 무념무상이란 모든 상념을 떠나 마음이 텅 빈 상태를 이르는 개념이라는 차원이라고 볼 때, 수채화나 유화도 마찬가지다. 작품에 몰두하다 보면, 미움도 슬픔도 소유욕도 그리고 기쁨조차도 전혀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림은 제 인생의 시련기를 이겨나갈 수 있게 해준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인생 100세 시대라고 한다. 이러한 인구학적 변화에 수채화는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 인생 두 번째, 세 번째 라운드에서 수채화는 대중친화적인 해법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인가.
“예술에는 나이가 없다. 어린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젊은 층은 젊은 층대로, 장년층과 노령층은 또 그분들 나름대로 예술, 특히 회화를 가까이하셨으면 좋겠다.
회화는 아이들과 젊은 층에는 꿈과 희망을 안겨주고, 노령층에게는 인간미가 넘치는 사회 어른의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도록 마음을 가다듬어줄 수 있다고 본다.
특히 수채화의 경우, 오랜 시간을 두고 계속 덧칠을 해가면서 완성하는 유화와는 달리, 단숨에 완성해야 한다는 점에서 유화보다 역동적일 수 있다. 수채화가 유화보다는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도 수채화만의 장점이기도 하다.”
그림은 꿈과 희망, 인간미 넘치는 사회로 안내
한국과 북한의 수채화는 분단 이후 어떻게 달라졌는가? 남북 수채화 교류의 가능성은? 남북 수채화 교류는 남북 화해·협력·통일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가?
“북한의 미술계 동향에 대해서는 제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다만, 체제나 이념을 떠나서 예술가들 간 순수한 차원의 교류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남북 간 화해와 협력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회화예술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다시 태어나도 서양화가가 될 것인지.
“당연하다. 제게 그림은 전부다. 대학법인을 맡아 운영하면서도 늘 그림은 돌아가고 싶은 고향이었다. 그래서 바쁜 가운데서도 시간 날 때마다 붓을 들었다. 지금까지 작가로서의 길을 걸어오면서 단 한 번도 그림이 싫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림은 저에게 인생 그 자체이며 삶의 기쁨이며 삶의 또 다른 목적이기도 하다. 화가로서의 삶이 그 무엇보다 행복하고 감사하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다.
건국대 이사장은 일을 많이 했다. 그중 인생에서 최고의 보람은?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제가 건국대 법인 이사장으로 17년 일했으니 당연히 건국대는 제 인생의 중요한 부분이다. 그중에서도 건국대병원을 신축한 것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의사이셨던 시아버지께서 설립하신 ‘민중병원(현 예술대학 부지)’의 시설이 낡아 새로 짓는 것이 큰 과제였다.
신축비 3000여억원을 조달하기가 정말 막막했다. 그렇다고 쓰러져가는 민중병원을 그냥 바라만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건국대 앞에 있던 야구연습장을 개발해야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됐다. 병원과 학교 관계자들에게 저의 이런 생각을 밝히니까, 모두 불가능한 일이라며 반대했다.
저는 마냥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번듯한 병원 건물을 지어 달라’고 애원하는 의대생들과 서로 손을 맞잡고 눈물을 흘렸던 일들을 생각하며 입을 꽉 다물며 결심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누구나 불가능하다고 하는 그 길을 반드시 가야겠다··· 시아버님의 건학이념을 실천하고야 말아야겠다’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
또한 국내 사립대학 중 35위권에 머물러 있던 건국대를 10위권으로 끌어올린 일은 이사장이었던 저에게 자부심을 갖게 해주었다. 시아버님의 건학이념을 어느 정도 받들었다는 생각은 저로 하여금 인생의 보람을 느끼게 해주는 대목이다.
건국대 야구연습장 부지에 세운 스타시티와 국내 최초의 도심 실버타운인 ‘더 클래식500’의 건물을 바라볼 때마다 가슴 뿌듯함을 느끼곤 한다. 건국대병원과 스타시티, 더 클래식500의 조성사업은 서울 광진구 주민들의 의료복지향상과 지역개발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는 일이었다. 저녁에 건국대 근처를 방문해보시면 좋겠다. 홍대 주변에 버금가는 불야성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리더십은 ‘비전·디테일·배려’의 종합예술
건국대 이사장으로서 수많은 리더를 만나셨을 터인데 리더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무엇이 리더를 만드는가?
“리더십은 종합예술이다. 특정 분야의 장점만을 가지고는 조직 전체를 이끌고 나가는 리더십을 갖출 수는 없다.
제가 지금까지 만나온 분야별 지도자들은 비전(vision)과 디테일(detail), 배려심 등의 측면에 있어 특출한 장점을 가지고 계셨다. 물론 확고한 리더십을 갖추기 위해서는 미래에 대한 예측력과 추진력을 반드시 보유하고 있어야 할 것 같다.
그뿐만 아니라 강력한 리더십을 갖추기 위해서는 디테일에 강해야 한다. 사소한 실수가 조직 전체의 결속력을 약하게 한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디테일에 약한 리더는 결코 큰 조직을 통솔할 수 없다.
월간중앙 독자들에게 강조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월간중앙 독자님들과 만나서 반갑다. 감사드린다. 이번 인터뷰를 계기로 해서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해보려고 한다. 2020년 5월에 개인 초대전이 있다. 좀 더 활발하게, 좀 더 맹렬하게 작품 활동을 하겠다.”
[박스기사] 김경희 회장은··· 수채화 영역 넓힌 중견 서양화가
지금까지 10회의 개인전과 30여 회의 합동전시회를 가진 중견 서양화가.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했다. 미술에 매료돼 대학 4학년 때 국전에 입선했으며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김 회장은 건국대 설립자인 상허(常虛) 유석창 박사의 맏며느리가 될 때 시아버지께 “결혼생활 중에도 그림을 그리게 해 달라”고 간청했고, 유 박사는 흔쾌히 승낙했다. 김 회장이 결혼을 하고, 두 딸을 키우면서도 계속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은 시아버지의 깊은 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결혼생활 8년 만에 남편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뒤에는 미국 유학길에 올라 본격적인 미술공부에 매진했다. 지난 2011년부터 제5대 한국수채화작가회 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한국수채화작가회는 한국화단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해온 작가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단체다. 1984년 창립 이래 국내 정기전·특별전, 일본문화원 초대전(1985년), 프랑스 5개 도시 순회전(1987년) 등 해외전을 통해 한국수채화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특히 투명수채화 기법 등 독창적 표현 기법 개발과 과슈·템페라·아크릴 등 다양한 재료의 실험적 탐구로 수채화 세계의 영역을 넓혀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1년부터 2017년까지 학교법인 건국대학교 이사장을 맡아 대학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일했다.
[박스기사] 김경희 회장 작품 세계는 - “원색조의 그림 사랑·추억 같은 많은 이야기 함축”
▶김종근 미술평론가: “김경희 작가의 작품은 색채 표현이나 붓질에 있어서 샤갈만큼이나 환상적이다. 김 작가가 가장 빈번하게, 그리고 인상적으로 혼합해서 쓴 빨강과 녹색 꽃의 격렬한 조합은 작가의 뜨거운 내면을 보여준다.”
▶이종순 월간 미술문화 편집국장: “김경희의 작품은 원색조의 그림으로 사랑과 추억, 기다림 같은 많은 이야기를 함축하고 있기에 그 향기는 더욱 짙다.”
▶저우경신 중국 장쑤성 미술가협회 주석: “김 작가의 작품에서는 사랑의 온도가 있는 치열한 사랑을 볼 수 있다. 그의 예술언어 속에 숨어 있는 꿈의 날개도 볼 수 있다.”
▶장이빈 중국 난징대 당서기: “김 작가의 그림은 야성적이고 매우 선명한 색깔과 풍부한 내면적 풍경이 함께 어울려서 동양 여성 특유의 성숙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특히 김 작가의 그림은 자랑스러운 영혼의 고백이 있다.”
글 김환영 중앙콘텐트랩 대기자 whanyung@joongang.co.kr /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squeeze@joongang.co.kr
사진 박종근 비주얼에디터 joke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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