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피할 수 없는 정년퇴직. 직장인들은 대개 60세 전후로 ‘인생 일모작’을 마친 뒤 뒤안길로 사라져요. 100세를 기준으로 하면 나머지 40년가량 할 일이 막막한 경우도 많아요. 하지만 나이를 잊고 왕성한 활동을 하는 사람들도 많죠. “정년퇴직은 인생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고 말하는 그들에겐 어떤 특별함이 있을까요.

 

이배용 코피온 총재는 “나이 들수록 공동체 의식과 애국심을 가져야 한다”라고 힘줘 말했다.

 

어려서부터 유독 화사한 색상의 옷을 즐겨 입었다. 어머니는 어린 딸에게 빨간색이나 핑크색 옷을 자주 해 입히며 이렇게 말했다. “얘야, 사람은 밝은색 옷을 입어야 기분이 밝아지고 또 주위 사람들에게 밝은 기운도 줄 수 있단다.”

60여 년이 흘러 고희(古稀)가 지난 지금도 검은색 옷은 조문(弔問) 갈 때나 입는다. 어쩌다 남색 투피스 같은 걸 입으면 “무슨 일이라도 있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다.

이배용(72) 코피온 총재 겸 (재)한국의 서원 통합관리 보존단 이사장의 애칭은 ‘핑크색 작은 탱크’, ‘핑크색 총장’. 이화여대 총장 재직 시절 학생들이 이 총재를 그렇게 불렀다.

제13대(2006~2010년) 이화여대 총장을 지낸 이 총재는 퇴직 후 더 바쁘게 살고 있다. 제2대 국가브랜드위원회 위원장, 한국학중앙연구원장,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부위원장 및 세계유산분과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냈거나 현재 직(職)을 수행하고 있다. 코피온은 국내 최대 규모의 대학생 중심 해외봉사단체이고, (재)한국의 서원 통합관리 보존단은 한국 서원의 우수성을 세계에 널리 알리는 일을 하는 곳이다.

“이화여대 교수로 27년을 살았는데 단 한 차례도 안식년을 써보지 못했을 만큼 일이 많았어요. 저한테 일은 활력과 보람이자 존재 이유기도 합니다. 체력이 다하는 날까지 국가와 사회를 위해 일을 할 겁니다.”

월간중앙이 2019년 12월 9일 서울 마포구 토정로 코피온 사무실에서 ‘핑크색 작은 탱크’ 이배용 총재를 만나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법을 들었다. 이 총재는 이날 역시 빨간색 투피스에 핑크색 블라우스를 입고 나왔다. 명불허전(名不虛傳)이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일이 많아서 일에 묻혀서 살아요(웃음). 국내 최대 규모의 해외봉사단체인 코피온 총재와 (재)한국의 서원 통합관리 보존단 이사장을 맡고 있습니다. (최근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서원 9개가 5개 도와 9개 시·군에 걸쳐 있거든요. 요즘 전국을 돌며 지역 유생들과 고유제(告由祭)를 지내고 있습니다.”

2019년 7월 한국의 서원 9곳(▷영주 소수서원 ▷안동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경주 옥산서원 ▷대구 달성 도동서원 ▷함양 남계서원 ▷정읍 무성서원 ▷장성 필암서원 ▷논산 돈암서원)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서원은 조선시대 사학으로 성리학 발전의 중심지이자 각 지역의 교육·문화·여론의 구심점이었다. 중국에도 서원이 있긴 하지만 제향(祭享) 기능이 없는 데다 정부 중심으로 운영된다는 점에서 한국과는 성격이 다르다.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 출신인 이 총재는 국가브랜드위원장 시절부터 한국의 산사·서원 등의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해 왔다. 2018년 6월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데 이어 2019년 서원이 등재된 데는 이 총재의 역할이 작지 않았다.


사찰·서원 세계유산 등재에 기여

 

2009년 4월 당시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이화여대에서 특강을 마친 후 이배용 총장에게 ‘명예 이화인’ 기념패를 받고 있다.

 

얼리버드(Early Bird)로 유명하던데요.

“저는 늘 밤 10~11시쯤 잠자리에 들고 아침 4시면 눈을 떠요. 신문을 보면서 생각을 가다듬지요. 새벽에는 전화 같은 게 없는 간섭이 없는 시간이라 좋아합니다. 아침 7시만 돼도 한낮 같아요.”

2006~2010년 이화여대 총장을 지냈습니다. 퇴임 이후 더 바쁜 것 같은데 왕성한 활동의 비결은 무엇인가요?

“총장이 되기까지 오랫동안 쌓인 나름대로 경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경력 속에는 대학만이 아닌 국가에 필요한 콘텐트가 있겠죠. 그게 비결이라면 비결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국가와 사회를 위한 사명감이겠죠. 학교에 몸담을 때는 학교를 위해 일하는 게 우선이었지만, 퇴임 이후로는 국가를 위해 자유롭게 일할 수 있게 됐어요. 그게 축복이라고 생각해요. 대학 때 역사를 전공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더 무르익는 것 같아요. 2010년 7월 말 총장 임기를 마치고 9월에 곧바로 국가브랜드위원장을 맡게 됐어요. 위원장직을 수행하면서 한국의 전통문화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때 뿌린 씨앗이 지난해(2018년) 사찰 그리고 올해 서원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라는 결실을 본 겁니다.”

이화여대 총장 재직 시절 ‘분홍색 탱크 총장’으로 유명했습니다. 특별한 사연이 있나요?

“7남매(2남 5녀) 중 넷째로 자랐습니다. 그런데 어려서부터 어머니가 빨간색·핑크색·파란색 등 화사한 색의 옷을 해 입히셨어요. 그러면서 ‘옷을 밝게 입어야 마음도 밝아진다. 그래야 운명도 더 밝아지고 주위에도 좋은 기운을 전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렇게 입다 보니 지금까지도 화사한 색의 옷을 좋아하고 있어요. 제가 화사한 옷을 입으면 주위에서 ‘분위기가 환하다’며 반기시더라고요. 저에게 핑크색이나 빨간색은 어려서부터 체화(體化)된 색이라고 할 수 있어요.”


꽃은 피면 지게 마련, 나이 들수록 집착 버려야

 

도산서원에 설치된 유네스코 세계유산 기념 표지석.

 

평생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는 원동력이 궁금합니다.

“새벽 4시부터 원고 쓰거나 책을 읽습니다. 그리고 빨간색 옷을 입으니 더 씩씩해지는 것 같아요(웃음). 이화여대 총장 시절 해외 출장 때 제가 앞장을 서서 걸어가면 다른 교수들이 따라가기 어렵다고 하소연하곤 했습니다. 제가 이처럼 오랫동안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원동력은 긍정의 힘인 것 같아요. 긍정적으로 보면 할 일이 많고, 일을 많이 하다 보면 건강도 생기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가 불교 1000년에 유교 600년입니다. 그런데 어찌 불국사와 석굴암만 세계유산이겠어요? 그런 사명감을 가지고 사찰과 서원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 발 벗고 나섰던 겁니다.”

가장 보람된 일 그리고 가장 아쉬운 일은 무엇인가요?

 

2019년 7월 2일 아제르바이잔에서 열린 제43차 세계유산위원회 총회에서 한국 서원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가 확정되자 이배용 코피온 총재(가운데 핑크색 재킷) 등 참석자들이 기뻐하고 있다. / 사진:(재)한국의 서원 통합보존 관리단

 

“전통문화를 미래화·세계화하는 데 역할을 했다는 데 대해서는 보람을 느낍니다. 역사학자로서 교육자로서 우리 것을 다음 세대뿐 아니라 세계에 알림으로써 대한민국의 국가 위상을 높이는 데 일조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모르면 보석도 돌로 보이게 마련이에요. 아무리 가치 있는 비석이라도 모르면 평범한 빨래판으로 쓸 수밖에 없어요. 그런 점에서 저는 학생들과 다음 세대에게 우리 것을 알림으로써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애썼어요. 또 동료 교수들이나 학생들과 답사를 다닐 때 병아리를 몰고 다니는 어미 닭처럼 제가 늘 맨 앞에 서서 우리 역사를 설명하곤 했죠. 다행히 저의 기억력은 국보급이라 많은 걸 외울 수 있었어요(웃음). 반면 우리 역사를 세계에 더 잘 알리기 위해 여러 나라 언어를 배웠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아요.”

장단고저(長短高低)의 차이만 있을 뿐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전성기가 있다고 합니다. 전성기가 지났을 때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할까요?

“집착을 버리라고 말하고 싶어요. 순리라는 게 있잖아요? 거슬러 올라가서 붙잡으려 하면 상처만 더 커지더라고요. 제가 역사학도·역사학자로서 전국 방방곡곡 답사를 다녔잖아요? 거기서 배운 게 있다면 자연의 순리입니다. 꽃은 피면 지게 마련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건 덕담입니다. 돈 없고 권력 없어도 할 수 있는 게 상대방에 대한 덕담입니다. 나이 들수록 집착은 버리고 덕담은 많이 해야 합니다.”

100세 시대입니다. 은퇴 후로도 일하고 싶어하는 분들에게 조언해 준다면.

“이제 우리나라도 고령사회니까 놀고만 살 수는 없어요. 그건 너무 무의미하죠. 세종대왕 때 궁궐로 80세 이상 노인들을 초청해서 양로연(養老宴)을 열었어요. 또 100세 이상 노인들에게는 작은 부삽이 달린 지팡이를 선물했어요. 밭고랑에 물길을 내는 그 부삽으로 젊은이들에게 지혜를 전해 주라는 의미입니다. 봉사에도 여러 가지가 있어요. 이제는 같은 봉사를 하더라도 국가와 다음 세대에 대한 사명감을 가졌으면 합니다. 나이 들수록 공동체를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요.”


한국적 가치 세계화하는 게 남은 목표

 

2006년 7월 21일 이화여대에서 거행된 취임식에서 이배용 신임 총장이 취임사를 하고 있다.

 

이배용 총재에게 ‘일’이란 무엇인가요?

“활력이자 보람입니다. 또 존재 이유입니다. (교수 시절에는) 솔직히 방학이 더 힘들었습니다(웃음). 안식년을 한 차례도 쓰지 못했는데 저는 이상하게 안식년이 다가올 무렵 일이 더 많아지더라고요. 요즘도 아침에 일어나서 ‘무슨 일이 있지’라고 생각했을 때 스케줄이 있으면 힘이 나는데 특별한 게 없으면 좀 재미가 없어요. 사실 제가 하는 일은 잘 드러나진 않지만, 국가와 사회를 위한 게 많아요. 또 하나, 일을 많이 할수록 그릇이 커지고 넓어진다는 걸 배웠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일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한다고 할 수도 있죠.”

좌우명이나 신조가 있으신지.

“진정성이 제 좌우명이에요. 진정성이란 진실과 정성입니다. 저는 진정성과 긍정의 힘 그리고 사명감을 가지고 살아요. 자녀들한테도 진정성을 가지고 사람을 대하면 처음에는 모르는 것 같아도 나중에는 다 알게 된다고 강조합니다.”

인생 후반전에서 중요한 가치가 무엇일까요?

“결국 나눔과 배려 아닐까요? 꼭 돈이 없더라도 어른은 베푸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젊은이들에게 존경받아요. 그 베풂은 결국 사랑이죠. 또 나이 들수록 푸근하고 따뜻해야 사람이 따라요. 비록 사과 한 쪽이라도 받은 사람은 기억하거든요. 아이들이 좋아하는 게임에도 따뜻한 스토리가 담긴 콘텐트가 많이 개발됐으면 좋겠어요.”

건강관리 비결이 궁금합니다.

“일하는 게 건강관리의 비결이에요. 저는 골프도 안 칠뿐더러 운동을 좋아하지도 않아요. 고난도 운동보다는 걷기가 가장 좋은 것 같아요. 음식은 가리지 않고 아무거나 잘 먹습니다. 그래도 나이 들었으니까 채소를 좀 많이 먹으려 노력합니다.”

남은 목표나 비전이 있나요?

“그동안 한국적인 것을 세계화하는 일을 하면서 자신감과 경력이 붙은 것 같아요. 물론 구체적으로 하다 보면 다 쉽지는 않더라고요. 앞으로도 종가(宗家)문화·한옥·한복·한지 같은 한국적인 가치를 세계화하는 일을 하고 싶어요. 콘텐트는 매우 많아요. 또 하나, 제가 지금 전개하고 있는 ‘대자연과 함께하는 착한 선진화’라는 캠페인을 더 널리 알리고 싶어요. 답사를 통해서 배운 것 중 하나가 자연에 담긴 조화입니다.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는 것처럼 자연에는 조화가 있어요. 이런 자연의 정신을 배워야 인류가 망하지 않아요.”

비슷한 연배의 독자들에게 인사말을 전해 주신다면.

“즐겨 하는 건배사가 ‘주전자’입니다. 내가 존재하는 한 주인정신이 필요해요. 또 대단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나름대로 전문성을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자긍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애국심인 것 같아요. 우리가 이만큼 사는 것도 애국심이 있었기 때문 아닐까요?”


글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squeeze@joongang.co.kr

사진 김경빈 선임기자 kgbo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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