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6개 부문의 후보에 올라 4관왕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뤘어요. 하지만 이 이면에는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을 위해 물밑 홍보작업을 이끈 컨설턴트들이 있었어요. 마치 실제 선거전을 방불케 하는 고도의 전략으로 홍보를 한 것이지요. 들어간 시간과 금액만도 엄청나다고 해요.
한국 시간 오후 1시 30분경. 느닷없는 환호성이 서울 도심 곳곳의 사무실에서 터져 나왔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미국 LA에서 열린 ‘제92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받는 순간이었다. 이 밖에 감독상·각본상·외국어영화상까지 받으면서 4관왕에 올랐다. 101년째를 맞는 한국 영화사가 새로운 장에 접어드는 순간이었다.
이날 수상 결과를 초조하게 지켜보는 또 하나의 그룹이 있었다. 이들은 바로 ‘컨설턴트(consultant)’ 혹은 ‘전략자(strategist)’라고 불리는 오스카 캠페이너들이다. 아카데미의 수상을 위해 스튜디오나 제작사는 대통령선거 캠페인 하듯 자신의 작품을 홍보해줄 전문가를 고용한다. 실제로 오스카 캠페이너들 가운데 꽤 많은 수가 실제 선거캠페인 매니저 출신이라고 한다.
‘아카데미의 미다스 손’으로 불리던 하비 와인스타인은 [실버라이닝 플레이북](2012) 홍보 당시 오바마 전 대통령의 캠페인 매니저를 고용한 것으로 알려져 눈길을 끌었다. 와인스타인은 [잉글리쉬 페이션트](1996)를 시작으로 [셰익스피어 인 러브](1998)와 [시카고](2002)까지 세 개 작품을 오스카 작품상의 주인공으로 이끈 인물로 정평이 났다. 그가 주도한 캠페인은 비용 면에서, 그리고 홍보 파티의 스케일로도 여태까지 벌어진 아카데미 캠페인 중 가장 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전문가들의 고용은 주로 선댄스 영화제나 칸 영화제 직후에 이루어진다. 이들은 보통 시상식 6개월 전부터 공격적인 캠페인을 시작한다. 20년 넘게 이어져오는 아카데미의 숨은 전통은 아카데미의 수상을 바란다면 반드시 거쳐야 할 필수 코스가 된 지 오래다.
소형 영화제도 아카데미 전초전으로
[기생충]의 미국 현지 배급을 맡은 회사는 ‘NEON’이라는 곳이다. 임직원 스무 명 남짓을 거느리고 2017년 세워진 영세 배급사다. 역사도 짧고 규모도 작지만, 흥행 실적은 예사롭지 않다. 설립한 해 배급한 영화 [아이, 토냐]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데 이어, 이듬해엔 영화 [경계선]으로 분장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지난해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으로 칸 영화제 각본상을 받았다.
이 회사의 공동 대표 톰 퀸(Tom Quinn)은 앞서 소개한 와인스타인 아래서 경력을 쌓은 인물이다. 2013년 봉 감독의 전작 [설국열차]의 미국 배급을 담당했는데, 이때 영화 편집을 놓고 와인스타인과 대립하면서 봉 감독과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생충] 미국 배급과 오스카 캠페인을 두고 봉 감독과 톰 퀸 대표는 늦어도 지난해 4월부터 논의가 오가던 것으로 추정된다. [기생충]이 한국 시장에서 관객 수 1000만 명을 돌파하던 즈음이다. 당시 봉 감독은 한국 평단으로부터 11월에 열리는 노르웨이 오슬로 영화제 출품을 제안받기도 했다. 이에 봉 감독은 “그때 즈음이면 미국에 있을 것 같다”고 답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단언할 순 없지만, 이미 7개월 뒤 미국에서의 동선을 기획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에 관해 작품 내적인 완성도, ‘불평등’이라는 의미만 짚는다면 반쪽짜리 분석에 그치고 만다. “국내 배급사인 CJ ENM이 막대한 자금력으로 밀어붙인 결과일 뿐”이라는 이죽거림도 온당하지 않다. 그만큼 아카데미 캠페인에 대한 한국 영화계의 이해도가 높아졌다는 방증으로 읽어야 타당하다.
도대체 아카데미 캠페인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 걸까? 가장 중요한 일은 아카데미 선거인단(AMPAS)이 후보작을 볼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선거인단에 속한 8500명 모두가 영화를 보도록 해야 한다. 해외 체류 중인 인원에겐 스크리너(screener, 영화 정식 상영 전 보내는 견본)를 보내고, 미국 내의 인원을 대상으론 시사회를 마련한다. 그런데도 못 보는 사람들을 위해 각종 미디어 인터뷰와 토크쇼 게스트 출연을 진행한다.
아카데미에 시기적으로 근접한 영화제에 작품을 내거는 일도 중요하다. 아카데미 후보로 지명되는 데 가장 결정적이라고 알려진 미국 내 영화제는 두 가지다. 아카데미 레이스의 시작을 상징하는 텔룰라이드 영화제(매년 8월 말~9월 초)와 오스카 캠페인의 절정기에 열리는 산타바바라 영화제(매년 1월 초)가 그것이다. 이 영화제들에서의 상영 여부, 관객과의 대화 행사도 선거인단에게는 중요한 평가 요소다.
위에 나열한 일들을 하는 것만으로도 비용이 만만치가 않다. 해외용 스크리너 제작, 배포만도 25만 달러 정도가 소요된다. DVD 형태로 제작하던 시절에는 비용이 더 크게 들어갔다고 한다. 현재는 웹하드에서 파일을 다운로드받듯 디지털 형태로 주고받는다. 게다가 시사용 극장 대관, 영화제 참가비용, 미디어 출연 시 메이크업, 헤어 비용, 텔레비전과 빌보드 광고 등을 모두 배급사에서 부담해야 한다.
단순히 영화를 보게 하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캠페인 기간에 셀 수 없을 정도로 칵테일 파티가 자주 열린다. 보통 일주일에 3~4번 정도로 알려져 있다. 선거인단 중 한 명인 스튜 자킴(미국 잡지 출판사 AMI의 대변인)은 [더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파티에 갈 수 있는 것이 아카데미 멤버로서의 가장 큰 특권”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7000만 달러 캠페인’에 맞선 '기생충'
아울러 아카데미는 선거인단에게 주는 소정의 선물을 허용하고 있다. 이에 캠페이너들은 자신의 영화를 각인시킬 만한 재치 있는 기념품을 준비한다. 이 기념품 경쟁 역시 만만치 않다. 가장 흔한 선물은 영화와 관련된 책, 초콜릿 정도인데 영화에 등장했던 아이템을 그대로 재현해 기념품을 만들어 보내는 경우도 있다.
일례로 올해 넷플릭스는 영화 [두 교황]을 홍보하면서 교황들이 영화 안에서 신고 나온 붉은색 공단 슬리퍼를 선물한 바 있다. [두 교황]은 교황 베네딕토 16세와 후임 프란치스코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이렇게 캠페인을 치르는 비용은 얼마나 될까? 사실 언론에서 나오는 비용은 어디까지나 ‘일설에 따르면’을 전제로 한 추측이다. 정확한 비용은 스튜디오마다 영업비밀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다만 앞서 짚은 오스카 캠페인의 구성 요소들을 통해 그 규모를 짐작해볼 수는 있다.
예를 들어 2008년 작 [허트라커]는 300만 달러, 2012년 작 [아르고]는 2500만 달러, 2013년 작 [그래비티]는 2000만 달러를 홍보비로 썼다고 전해진다. 메이저 스튜디오에서 나온 작품 기준으로 적게는 300만, 많게는 2500만 달러가 쓰인 셈이다.
그런데 스트리밍 플랫폼 업체인 넷플릭스의 공세가 시작되면서 규모가 훌쩍 뛰었다. 지난해 넷플릭스는 1970년대 멕시코의 현실을 그려낸 영화 [로마]에 오스카 캠페인 비용으로만 2500만~3000만 달러를 투입했다. 제작비가 1500만 달러인 점을 고려하면 전에 없던 수준이다. 이 밖에 [스타 이즈 본]에는 2000만 달러, [더 페이버릿]에는 500만~1000만 달러 사이를 들였다고 한다. 모두 합치면 다른 스튜디오와는 비교가 안 되는 거금이다.
넷플릭스는 올해 아카데미 캠페인에서 또다시 신기록을 경신한 모양새다. [아이리시 맨] [두 교황] [결혼 이야기]를 홍보하는 데 7000만 달러가 넘는 금액이 투입된 것으로 현지에선 추산하고 있다. 넷플릭스 한 회사만 쳐도 한국 대통령선거에 들어가는 총 선거비용(19대 대선 기준 1240억원)에 버금가는 비용을 내놓은 것이다.
이렇게 오스카 캠페인에 들어가는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자, 할리우드 배우 수잔 서랜던은 지난해 칸 영화제에서 “아카데미 시상식이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게임으로 변해가고 있다”며 “오스카 캠페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꼬집기도 했다.
넷플릭스가 유독 오스카 캠페인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돈을 쓰는 이유가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의 예술성에 대한 냉소적인 시선을 타파하기 위해서다. 2018년 3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일주일도 안 되는 기간 한두 극장에서 상영한 영화가 아카데미 후보에 오를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곧이어 칸 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티에르프레모는 “넷플릭스를 비롯해 스트리밍 회사의 영화들은 경쟁부문에 초청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이런 발언들은 전 세계 골수 영화 광들의 여론을 대변한 것이기도 하다. 영화의 동맥과도 같은 극장에서의 상영을 필요로 하지 않는 스트리밍 회사(넷플릭스)에서 예술성이 충만한 영화를 만들어낼 리 없다는 것이다.
이런 여론에 대응하기 위해 넷플릭스는 작품성을 인정받은 감독을 대거 영입하고, 이들의 작품들을 홍보하기 시작했다. 넷플릭스의 공격적인 아카데미 캠페인은 이런 노력 중 하나다. [비스트 오브 노 네이션](2015)을 필두로 넷플릭스는 그야말로 자기들만의 아카데미 레이스를 펼치기 시작했다. 넷플릭스의 끊임없는 아카데미 구애는 결국 작년 [로마]의 아카데미 수상(감독상·촬영상·외국어영화상)으로 결실을 봤다.
“오스카는 지역축제일 뿐이다”
아카데미 4관왕의 영예를 차지한 [기생충]은 어땠을까. 국내 보도에선 [기생충]이 오스카 마케팅에 100억원(약 848만 달러)을 썼다고 추정한다. 물론 배급사나 제작사가 공개한 공식적인 수치가 아니다. 비교적 자세한 추산을 내놓는 외신에서도 [기생충]의 오스카 캠페인 비용을 따로 밝히지 않고 있다.
보도된 수치와 [기생충] 캠페인 기간의 활동을 바탕으로 가늠해보면, 1000만~1250만 달러를 지출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CJ ENM이 화려한 물량 공세를 펼쳐 4관왕을 따냈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인 셈이다. 되레 적은 살림으로 알찬 성과를 냈다고 칭찬해줘야 할 정도다.
[기생충] 팀은 이번 오스카 레이스에서 ‘감독 마케팅’에 올인했다. 미국 현지 배급사 NEON은 미국 내의 [기생충] 홍보, 그리고 아카데미 캠페인의 키워드를 철저히 봉준호에 맞췄다. 스필버그나 타란티노에 비해 인지도가 떨어지는 봉준호 감독을 내세워 총체적인 영화 마케팅을 한 것은 과감한 시도다. 그만큼 봉준호에 대한 강한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수백 회에 이르는 관객과의 대화, 미디어 인터뷰, 특강, 토크쇼에서 봉준호는 특유의 온화함과 재치, 번뜩이는 멘트들을 쏟아냈다. 특히 관객과의 대화에서 봉준호는 관객들의 질문에 매번 심혈을 기울여 반응했다. 아마도 미국의 관객들은 감독의 이러한 세심한 대답에 감동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이 과정에서 밝혀진 그의 재치 있고 친절한 화법으로 그는 미국 젊은 층이 가장 선호하는 지미 팔론 쇼(Jimmy Fallon Show)에 출현하게 된다.
봉준호의 발언 가운데서도 압권은 다음과 같았다.
“오스카는 국제 영화제가 아니다. 지역축제일 뿐이다.”
그는 지난해 10월 9일 현지 연예매체 [벌처(VULTURE)]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영화가 20년간 큰 영향력을 발휘했음에도 오스카 후보에는 오른 적 없다”고 묻자 위와 같이 답했다.
봉준호의 답은 미국 아카데미가 갖고 있던 한계를 직격하는 것이었다. 아카데미가 지난 92년 동안 극복하지 못했던 것이 바로 지역이라는 장벽이었다. 무던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카데미는 북미 대륙에 한정된 행사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카데미로서는 그걸 뛰어넘어야 했고(세계 시장에서의, 위협받고 있는 점유율과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함으로써 세계인들이 향유하고 또 그들과 동반하는 영화 시상식이라는 이미지로 거듭나려고 했다.
때마침 아카데미는 봉준호와 [기생충]이라는 걸출한 작가와 작품을 만났고, 그것이야말로 아카데미로서는 희대의 기회였다. 아카데미는 봉준호와 [기생충]에 감독상·각본상·외국어영화상에 작품상까지 몰아주면서 혁신과 혁명의 화룡점정을 찍는 대단원을 연출했다.
봉준호와 [기생충]의 성과는 당연히 그 작품성이 제1 요인이다. 다만 그 외의 복합적인 원인, 이해관계의 조합, 고난도의 마케팅 기술, 정치와 시대의 함의가 섞여 있다는 점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될 일이다. 무엇보다 아카데미의 지난 역사와 깊은 관계가 있으며 그들의 변화의 방향과도 깊은 관계가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그 모든 것을 씨줄 날줄로 파악하는 것이야말로 이번 수상의 진정한 의미를 대중적으로 착지시키는 길이다.
그리고 수상의 결과를 국내 영화문화와 영화산업의 선순환 구조로 연결하는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봉준호의 성취는 실로 기적적이고 놀라운 일이지만 여기서 그치면 안 된다. 우리는 좀 더 나아가야 한다. 영화가 할 일이 많다.
[박스기사] 인종·이념·젠더… 미국 아카데미 ‘빗장의 역사’ - 92년 지역 장벽, '기생충'으로 전기(轉機) 맞다
세계시장에서의 영향력 감소 대응 위해 다각도 변화 모색
미국의 영화상 아카데미 어워드는 지난 92년 동안 쏠쏠한 재미를 선사해줬다. 무엇보다 우리가 잘 알고, 또 좋아하는 배우들, 감독들을 한꺼번에 모아서 볼 수 있는 행사로서는 (변방의 우리에겐)아카데미가 거의 유일했다. LA비평가협회니 뉴욕비평가협회 혹은 전미(全美)비평가협회니 하는 단체가 여는 시상식은 언감생심, 알지도 못하는 것이었다.
아카데미의 설립자는 루이 버트 메이어다. 메이어는 메이저 영화사인 MGM의 소유자 중 한 명이었다. MGM은 영화사 메트로와 골드윈, 그리고 메이어 3사의 합작으로 만들어진 대규모, 대자본의 영화사다. 아카데미의 출발 자체가 매우 상업적인 것이었음을 보여준다. MGM은 현재 과거 영화의 라이브러리로 연명하는 군소 영화사로 전락해 있다.
메이어라는 이름으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유대인 혈통이다. 아카데미는 이 때문에 이스라엘을 옹호하는 시오니즘과 미국 내 성공한 유대인 부자, 곧 백인 중산층의 이데올로기를 대변했다. 이 같은 ‘출생의 비밀’은 지난 92년 역사 동안 아카데미를 가리켜 ‘그들의 파티’라고 손가락질한 이유가 됐다. 극히 최근을 제외하고는 백인 전통 보수층(Angle-Saxson Male)만을 위한 영화상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2017년 [문 라이트]가 변화의 징조
아카데미는 1960년대 반짝, 보수적 분위기를 벗어난 적이 있었다. 1964년 흑인 배우 포이티어에게 남우주연상을 시상한 일이 그랬다. 포이티어는 당시 [들백합]이라는 작품에서 주연을 맡아 상을 받았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는 케네디 형제와 마틴 루서 킹, 맬컴 X의 암살 등 흑역사와 함께 리처드 닉슨의 등장으로 그 시기를 마감했다.
아카데미의 진정한 생명력은 감독과 배우들을 중심으로 줄기차게 전개된 변혁의 움직임에서 나왔다. 1978년 여배우 버네사 레드그레이브가 시상식 무대에 올라 시오니즘을 정면으로 비판한 것은 아카데미로서는 정신적 살부(殺父)와 다름없었다.
매카시즘의 광풍으로 미국에서 추방된 위대한 희극배우 찰리 채플린이 1972년 공로상을 탈 때는 그가 무대에서 퇴장하기까지 모두가 기립박수를 쳤다. 반대로 [에덴의 동쪽]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등을 만들었지만, 매카시의 반미활동위원회에 출두해 영화계 동료를 공산주의자로 밀고했던 엘리아 카잔 감독이 1999년 공로상을 받을 때는, 대다수의 감독과 배우들이 기립과 박수를 거부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흑인 배우 에디 머피와 역시 흑인 감독인 스파이크 리(올해 봉준호에게 감독상을 시상한 시상자)도 아카데미 변화를 주도한 대표적인 할리우드 멤버들이다. 그들은 아카데미가 유색인종과 소수 민족의 차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해왔다.
아카데미가 확실하게, 무엇보다 진정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3년 전인 2017년부터라고 볼 수 있다. 당시 작품상은 [문라이트]가 수상했으며 2019년에는 [그린 북]에게 영광이 돌아갔다. [문 라이트]의 수상은 특히나 주목을 받았는데 이 영화는 흑인 남자 둘의 동성애를 그린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그린 북]은 성공한 흑인(재즈 피아니스트)과 그의 운전기사인 하층 백인 남자의 우정을 그린 내용이다. 둘은 1960년대 흑백 차별이 가장 심하다는 조지아와 미시시피 등 미국 남부를 중심으로 순회공연을 다닌다. 두 영화가 단순히 배우상이나 기타 다른 상을 수상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작품상이라는 최고상을 탄 것은 아카데미가 그만큼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또 한편으로 올해의 아카데미는 미국이 ‘영화적으로나마’ 트럼프 시대라는 극단적 혐오의 시대를 탈피하고자 하는 욕망을 대신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트럼프 시대는 차별과 분리, 백인 우월주의, 미국 이기주의를 대변하고 있으며 할리우드는 이미 반(反)트럼프 전선을 구축한 지 오래다.
김효정 수원대 연극영화학부 교수, 오동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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