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최고의 투수였던 두 사람이 메이저리그에서 만나게 되었어요. 작년 최고의 활약상을 보인 류현진과 김광현이에요. 두 사람은 KBO에서도 맞대결 운이 없었는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는데요. 과연 올해 메이저리그라는 세계적 무대에서 그 대결이 성사될 수 있을까요?

2010년 5월 23일 대전구장. 팬·취재진·방송사는 SK 대 한화 경기를 앞두고 긴장 상태였다. 인터넷 게시판에는 ‘대전 날씨가 어떤가’라는 글도 올라왔다. 전날 경기가 비로 취소되면서 류현진(33, 당시 한화)과 김광현(32, 당시 SK)의 첫 선발 대결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양팀 타자들은 마치 한국시리즈를 치르는 것처럼 집중하며 연습했다. 하지만 경기 시작 전 비가 내려 취소가 선언됐다. 이미 입장한 7000여 팬은 아쉬움의 탄식만 내쉬었다. 두 선수의 선발 맞대결 승부는 류현진이 2012시즌 뒤 미국 LA다저스에 입단할 때까지 끝내 성사되지 않았다.

미뤄뒀던 대결을 10년 만에 볼 수 있을지 모른다. 2019시즌 뒤 김광현이 포스팅(비공개 경쟁 입찰)을 통해 미국프로야구(MLB)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 입단한 것이다. FA(자유계약선수)가 된 류현진은 토론토 블루제이스로 둥지를 옮겼다.

세인트루이스와 토론토는 리그가 달라 딱 네 번 인터리그 경기를 치른다. 6월 2일~3일(토론토), 8월 19~20일(세인트루이스)에 열린다. 류현진은 최근 인터뷰에서 “한국인 선수끼리 대결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며 “(김광현을) 만나면 서로 안 지려고 열심히 할 것”이라며 미소 지었다.

“정말 힘들었습니다.” 김광현의 대리인 김현수 브랜뉴 대표이사는 김광현의 MLB행이 쉽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김 대표는 “김광현에게 손을 내민 구단은 여럿 있었다”면서도 “하지만 좋은 조건으로 계약하지 않는다면 기회를 잡기 어렵기 때문에 신중하게 접근했다”고 말했다. 이어 “세인트루이스는 물 위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꾸준히 김광현에게 관심을 드러냈다”며 “2년 800만 달러(약 93억원)는 만족스러운 계약”이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의 말대로 김광현의 미국행은 험난했다. 가장 큰 산은 원소속 구단 SK의 허락이었다. 김광현은 2016년 겨울 SK와 85억원에 4년 계약을 맺었다. 발표되진 않았지만, 별도의 인센티브를 합치면 총액 100억원이 넘는 규모다.

하지만 김광현은 왼 팔꿈치 통증이 악화했고, 결국 수술대에 올랐다. 계약기간 4년 중 1년(2017년)을 날렸기 때문에 FA가 되려면 두 시즌을 더 뛰어야 했다. SK가 김광현을 풀어주지 않는다면 미국에 갈 수 없었다.


재수 끝에 꿈의 무대에 선 김광현


사실 시즌 전만 해도 SK는 김광현의 미국행에 호의적이었다. 최근 12년 동안 한국시리즈를 네 번 우승하는 과정에서 김광현의 기여도가 높았기 때문이다. “우승한다면 미국에 보내주겠다”는 언질도 있었다.

하지만 SK는 정규시즌 1위를 달리다 막판에 두산에 역전 당했고, 그 충격으로 한국시리즈 진출에도 실패했다. 이미 2018년 메릴 켈리(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를 MLB로 보내고, 2019시즌 뒤 앙헬 산체스(요미우리 자이언츠)마저 떠날 상황이었던 SK로서는 김광현을 보내기가 쉽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오해가 생기면서 양측이 대립하기도 했다. 김광현은 국가대항전 프리미어12 도중 “미국에 가고 싶다”는 깜짝 선언하기도 했다. SK는 고심 끝에 김광현을 보내주기로 했다.

FA가 아닌 김광현은 포스팅을 거쳐야 했다. 김광현은 한 차례 포스팅에서 아픔을 겪었다. 2014년 겨울 미국행에 도전했고, 샌디에이고 파드레스가 최다입찰금액(200만 달러)을 써내 단독 협상권을 따냈다. SK는 기대치보다 훨씬 적은 이적료였지만 협상을 허가했다. 하지만 샌디에이고가 김광현에게 제시한 금액(연봉 200만 달러, 추정)이 적었기 때문에 최종 결렬됐다.

2018년 새로운 한·미 선수 계약협정이 맺어졌다. MLB 30개 구단 모두가 협상할 수 있고, 이적료는 선수가 받는 보장 금액의 20% 수준으로 변경됐다. 5년 전보다 훨씬 이적이 쉬워졌다. 2018년과 지난해 한국을 찾아 김광현을 체크했던 구단은 두 자릿수를 넘었다. 아직 30대 초반인 데다 시속 150㎞ 이상을 던지는 좌완은 미국에서도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 시장이 열리자 3~4개 구단이 적극적으로 달려들었다.

여름부터 김광현을 눈여겨봤던 세인트루이스는 곧바로 움직였다. 선발진 한 자리를 채우기 위해 김광현을 영입한다는 구상이었다. 세인트루이스가 적극적으로 나선 건 마운드가 우완 일색이기 때문이다. 세인트루이스 1~3선발인 잭 플래허티, 마일스마이컬러스, 다코타 허드슨은 모두 오른손투수다. 4~5선발 후보도 우완이다. 2016년 하이메 가르시아(30경기) 이후 3시즌 동안 좌완 선발 등판 경기는 14번뿐이었다.

계약 조건도 좋았다. 김광현의 보장 연봉(400만 달러)은 팀 내 투수 중 6위다. 연봉과 포스팅 금액을 합쳐 6000만 달러가 넘었던 류현진과 비할 바는 아니지만, 윤석민(3년 575만 달러)보다는 훨씬 낫다. 옵션(선발 15경기 40만 달러, 20경기 70만 달러, 25경기 100만 달러)을 포함하면 최대 500만 달러까지 수령할 수 있다. SK에 남았을 때를 가정하면 두 배 가까운 연봉을 받는다. 마이너리그행 거부권도 포함됐다. 일단 개막 엔트리에만 들면 풀타임 메이저리거가 될 수 있다.

2019년 12월 30일 인천국제공항. 토론토 공식 입단식을 마치고 돌아온 류현진은 점퍼를 입고 나왔다. 블루제이스를 상징하는 파란색, 그리고 캐나다를 상징하는 오리털 아웃도어 브랜드 제품이었다. 류현진 측 관계자에 따르면 토론토 구단에서 선물했다고 한다.


토론토의 에이스로 변신한 류현진

 

1. 류현진(오른쪽)과 김광현이 2019년 12월 6일 한 시상식장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2. 2010년 5월 23일 한화 대 SK의 경기가 비로 취소되자 한화 류현진과 SK 김광현이 인사하고 있다.

 

머리까지 파랗게 염색한 류현진은 구단 공식 기자회견에선 ‘헬로 캐나다, 봉주르’란 인사를 하기도 했다. 블루제이스가 토론토를 넘어 영어와 프랑스어를 모두 사용하는 캐나다 유일의 메이저리그 팀이란 사실을 잘 알아서다. 류현진은 “구단의 아이디어였다”며 “조금 얼버무리긴 했지만 잘한 것 같다”고 했다.

류현진의 전 소속팀 LA 다저스를 모르는 한국인은 거의 없다. 하지만 야구팬이 아니라면 토론토 블루제이스는 낯선 팀이다. 1977년 창단한 토론토는 캐나다를 연고지로 한 두 번째 팀이다. 하지만 2004년 몬트리올 엑스포스가 워싱턴으로 연고지를 옮기면서 유일한 캐나다 팀이 됐다.

아메리칸리그(AL) 동부지구에 소속된 토론토의 경쟁자는 월드시리즈 최다 우승팀(27회)인 뉴욕 양키스, 21세기 최다 우승(4회)을 차지한 보스턴 레드삭스, 신흥 강호 탬파베이 레이스, 볼티모어 오리올스다.

2년 연속 월드시리즈 우승(1992~93년)을 차지한 뒤 토론토는 21년간 플레이오프에 가지 못했다. 지구 우승도 6번(1985·89·91·92·93·2015년)뿐이다. 2016년에는 와일드카드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지만 최근 3시즌 연속 가을 야구를 하지 못했다. 2019시즌 67승 95패로 지구 4위에 머물렀다.

류현진의 토론토행에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MLB 전체 평균자책점 1위에 오르면서 지난해보다 류현진에 대한 평가가 급등했기 때문이다. 원소속팀 다저스를 비롯해 4~5개 구단이 류현진에게 공식적으로 손을 내밀었다. 그중에서도 토론토가 가장 적극적이었다.

류현진의 대리인인 스콧 보라스는 “마크 샤파이로 사장과 로스 앳킨스 토론토 단장이 집요하게 달려들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류현진은 “기간이 중요했다”고 토론토행의 이유를 설명했다. 부상 경력이 있지만 옵션 없이 4년을 보장한 게 만족스러웠다는 뜻이다.

토론토가 류현진 영입에 적극적이었던 건 2020시즌을 반등의 발판으로 생각해서다. 샤파이로 사장은 과거 클리블랜드 단장 시절 ‘리빌딩 전문가’로 통했다. ‘리빌딩’은 몸값이 비싼 선수들을 내보내고 유망주들을 모아 팀을 개편하는 걸 말한다.

2001년 클리블랜드 단장이 된 샤파이로는 “2005년을 컨텐더(도전자)의 해”로 선언하고 베테랑들을 차례로 내보냈다. 2002년부터 4년 연속 승률 5할 이하를 기록했던 클리블랜드는 2005년 95승 67패를 기록하며 도약했다. 이 과정에서 영입했던 유망주 중 한 명이 시애틀에서 데려온 추신수였다. 그리고 2007년엔 마침내 AL 중부지구 우승을 차지했다.

샤파이로 사장은 2~3년 이내 대권에 도전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러기 위해선 선발진을 강화할 필요가 있었다. 지난해 토론토 최다승 투수는 6승을 올린 트렌트 손튼이었다. 선발투수 대신 오프너(구원투수를 1~2회에 기용하는 전술)를 쓴 것도 21번이나 됐다. 리빌딩을 끝내고, 수확을 거둘 때라고 판단한 샤파이로 단장은 베테랑 선발을 모았다. 지난 3년간 32승을 올린 태너로어크(34)와 29승을 거둔 체이스 앤더슨(33)과 계약했다. 일본 프로야구 센트럴리그 다승왕 야마구치 슌(33)도 영입했다.

선발진의 정점을 찍을 에이스로는 류현진을 낙점했다. 4년 8000만 달러는 토론토 역사상 투수 최고액 계약이다. 팀내 최고 연봉자 역시 류현진이다. 로스 앳킨스 토론토 단장은 “토론토 선수들과 직원 모두 류현진 영입 소식을 반겼다”며 “연말에 문자메시지 등으로 크리스마스 인사를 나눴는데 류현진 계약 덕에 연휴 같은 (즐거운)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주전 유격수 보 비셰트는 “류현진이 토론토에 오다니 정말 기쁘다”며 “이제는 우리가 이길 때”라고 반겼다.

토론토는 연봉 외에도 특급 대우를 아끼지 않는다. 입단식에선 앞서 언급한 패딩 점퍼는 물론 아내 배지현씨와 태아를 위한 유니폼을 선물했다. 원정 경기를 떠날 땐 일반 방이 아닌 스위트룸을 제공한다. 팀 내에서도 많아야 두세 명만 누릴 수 있는 호사다.

대니얼 김 MLB 해설위원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그만큼 토론토가 류현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의미”라며 “얼마나 토론토가 류현진 영입에 공을 들였는지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했다.


김광현의 든든한 조력자, 포수 몰리나-코치 매덕스


김광현은 프로 입단 직후 김성근 감독의 지도를 받았다. 김성근 감독은 김광현과 같은 왼손투수 출신이다. 김 감독은 김광현을 붙잡고 직접 원포인트 레슨을 하기도 했다. 김광현의 트레이드마크는 수직에 가깝게 팔을 어깨 위로 들어올려 내리꽂는 오버핸드 투구다. 피니시 동작에선 왼발이 하늘을 향할 만큼 역동적이다.

김성근 감독은 전체적인 폼을 고치진 않았다. 대신 불필요한 버릇을 없애고, 세트 포지션에 변화를 주는 등 동작을 간결하게 만들었다. 덕분에 기존의 위력적인 공을 뿌리면서도 제구력을 더할 수 있었다. 지금도 사제지간의 친분은 돈독하다.

투수 김광현의 성장을 도운 또 한 사람은 포수 박경완이다. 현역 시절 박경완 SK 코치는 최고의 수비 능력을 뽐낸 포수였다. 블로킹이나 송구 등은 물론 상대 타자와 수 싸움에 능했다. 박경완 코치는 은퇴를 앞둔 2013년 ‘제일 기억에 남는 투수’를 묻자 “김광현”이라고 했다.

그는 “광현이의 데뷔 첫해 성적(3승7패, 평균자책점 3.62)을 보고 고민이 많았고 연구도 많이 했다”며 “2년차 때 엄청난 발전을 했는데 속으로 너무 기뻤다. 그다음부터는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늘 신경을 많이 썼다”고 했다. 김광현은 2010년 한국시리즈 4차전 경기에서 마무리로 나와 우승을 확정 지은 뒤 박경완에게 90도로 인사하는 등 고마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김광현은 세인트루이스에서도 든든한 조력자 두 명을 만난다. 명포수 야디어 몰리나(38), 그리고 마이크 매덕스 투수코치다. 몰리나의 별명 중 하나는 ‘야디로이드(야디어+스테로이드)’다. 포수로서 투수를 이끄는 능력이 뛰어나 금지 약물 스테로이드를 쓴 것처럼 투수의 성적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투수 리드 등에 대해서는 ‘실체가 있다, 혹은 없다’는 논쟁이 있지만 몰리나가 좋은 볼 배합을 하고 투수를 잘 이끈다는 사실만은 모두가 인정한다.

2016~17시즌 세인트루이스에서 뛴 오승환도 “몰리나는 팀에서 가장 빨리 출근하다”며 “항상 상대팀 타자들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나 역시) 마운드에서 몰리나를 믿고 던졌다”며 “MLB 타자들을 잘 모르는 내게 큰 도움이 됐다”고 회고했다. 통산 최다승 3위에 올랐고, 세인트루이스에서 2번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끈 토니 라 루사 감독은 “경기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선수는 몰리나였다”여 엄지를 치켜세웠다.

경기 중 투수와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누는 사람은 포수다. 하지만 경기 전후로 이야기를 많이 하는 상대는 투수코치다. 시즌 전체를 어떻게 꾸리느냐부터 투구폼, 타자 상대 전략, 교체 타이밍 등의 결정권을 갖고 있다.

매덕스 투수코치는 MLB에서 가장 뛰어난 투수코치로 꼽힌다. ‘제구력의 마술사’로 불리며 통산 355승을 거둔 그레그 매덕스의 친형이기도 하다. 동생과 달리 매덕스 코치는 현역 시절 평범한 투수였다. 1986년부터 15년간 구원투수로 통산 472경기에 등판해 39승 37패 20세이브, 평균자책점 4.05를 남겼다. 다저스 시절엔 박찬호에 이어 마운드에 오르기도 했다.

은퇴 이후 매덕스는 밀워키에서 투수코치가 됐고, 뛰어난 지도력을 발휘했다. 2009년 텍사스로 옮긴 뒤에는 5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던 투수진을 3점대 투수진으로 변신시켰다. 그는 불펜에서 선발로 전향한 CJ 윌슨과 알렉시 오간도, 일본 진출 이후 돌아온 콜비 루이스 등의 성공을 도우며 월드시리즈 진출에 기여했다.


류현진의 새 도우미는 2세 군단

 

1. LA 다저스 시절 류현진의 투구 모습. 이효봉 해설위원은 “류현진은 지구상에서 가장 예쁜 투구 폼을 가진 왼손투수”라고 극찬했다. / 2. SK 시절 김광현 투구 모습. 김광현은 매우 역동적인 투구 폼으로 유명하다.

 

매덕스는 2016년 워싱턴으로 옮긴 뒤에도 스티브 스트라스 버그의 재도약을 이끌었다. 2018년 세인트루이스로 넘어온 매덕스는 MLB 코치 중 가장 많은 연봉을 받는다. 그는 직구와 슬라이더는 뛰어나지만 스플리터와 커브에 물음표가 달린 김광현에게 큰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홈 구장 부시스타디움도 김광현에겐 나쁘지 않은 환경이다. 부시스타디움의 담장까지 거리(좌우 102m, 좌·우중간 114m, 중앙 122m)는 SK 시절 사용한 인천구장(95m-115m-120m)보다 크다. 파울 지역도 넓은 편이라 타자보다 투수에게 유리하다. 최근 세 시즌 파크팩터(1이상이면 타자에게 유리)는 0.889(25위), 0.926(23위), 0.917(23위)이었다. 미국 야구통계 전문 사이트 팬그래프닷컴은 예측 시스템 ZiPS를 통해 김광현이 11승 9패 평균자책점 3.89를 기록할 것으로 예측했다.

올해로 39년째를 맞은 KBO리그에선 2세 선수가 늘고 있다. 이종범 주니치 코치의 아들 이정후(키움), 박철우 두산 코치의 아들 박세혁(두산)은 지난해 한국시리즈를 빛냈다. 2020시즌 1차 지명 신인도 두 명이나 포함됐다. 신경현의 아들 신지후(한화), 정회열의 아들 정해영(KIA)이 아버지가 뛴 팀에 입단했다.

100년이 훨씬 넘는 메이저리그 역사에서도 많은 2세, 3세 선수들이 배출됐다. 류현진의 소속팀 토론토는 2세 선수들 영입에 가장 적극적인 팀이다. 특히 올 시즌엔 1루수 트래비스 쇼(30), 2루수 캐번 비지오(25), 3루수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21), 유격수 보 비셰트(22)까지 주전 내야수 전원이 2세 선수로 구성됐다.

쿠바의 야구 명문 구리엘 가문의 막내 루어데스구리엘(27)도 있고, 아직 마이너리거지만 로저 클레멘스의 막내아들 코디(23), 제프코나인의 아들 그리핀(23)도 성장 중이다. ‘혈연’을 활용한 ‘블러드 볼(blood ball)’이란 용어까지 나올 정도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는 블라디미르 게레로(55, 도미니카공화국)의 아들이다. ‘블게주’로 부른다. 아버지 게레로는 16시즌(1996~2011년) 통산 타율 0.318, 2590안타, 449홈런, 181도루를 기록한 수퍼스타다. 2004년엔 AL MVP에 올랐다. 은퇴 뒤 명예의 전당에도 입회했다.

공·수·주에 모두 능했던 아버지와 달리, 아들은 수비가 약한 편이다. 20점에서 80점까지 매기는 스카우팅 리포트에서 수비 점수 45점을 받았다. 리그 평균이 50점이니까 다소 부족하다는 의미다. 대신 방망이 실력만은 아버지에 뒤지지 않는다는 평이다.

2015년 토론토와 계약한 블게주는 3년 만에 트리플A에 올랐고, 2019년 4월 빅리그에 올라왔다. 21살에 데뷔한 아버지보다 1년 빨랐다. 올스타 홈런더비에선 우승은 놓쳤으나 라운드 전체 최다홈런 기록(91개)을 세우며 장타력을 뽐냈다.

캐번의 아버지 크레이그 비지오(54)도 명예의 전당 회원이다. 명예의 전당 회원 아들 2명이 한 팀에서 뛴 건 처음이다. 비지오는 1987년 드래프트에서 휴스턴 애스트로스에 지명된 뒤 2007년 은퇴까지 뛰었다. 포수로 입단했으나, 체구가 작아 2루수로 포지션을 바꿨고, 올스타 2루수가 됐다. 선수 말년엔 빠른 발을 살려 중견수로도 뛰었다. MLB에 30명뿐인 3000안타 클럽(3060개) 멤버다.

캐번은 2016년 토론토와 계약했다. 아버지와 달리 좌타자인 캐번은 힘 있는 타격을 한다. 대신 내·외야를 모두 볼 수 있다는 점은 아버지와 같다. 선구안이 좋아 출루율도 높다. 올 시즌 100경기에서 타율 0.234, 16홈런을 기록했다. 특히 9월 17일에는 MLB 역대 두 번째 부자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했다. 올 시즌엔 주전 2루수가 유력하다.

‘주니어’ 중 지난해 성적이 가장 좋은 선수는 보 비셰트였다. 보는 1990년대 활약한 외야수 단테 비셰트의 차남이다. 게레로나 비지오 정도의 스타는 아니었지만 1995년 NL 홈런·타점 2관왕에 오른 강타자다. 통산 타율 0.299, 274홈런, 1101타점. 두 아들이 모두 야구를 했는데 차남인 보는 3년도 안 돼 MLB에 올랐다. 지난해 가을 데뷔한 보는 46경기에서 타율 0.311, 11홈런을 기록했다.

최근 또 한 명의 2세 선수가 토론토에 합류했다. 투수 제프 쇼의 아들 트래비스다. 쇼는 1996년 드래프트 전체 1순위 출신으로 선발로는 실패했으나 구원투수로 전향해 통산 203세이브를 올렸다. 다저스 시절엔 이따금 박찬호의 승리를 날려 ‘불쇼’란 달갑지 않은 별명을 얻기도 했다.

아들 트래비스는 파워 히터로, 2015년부터 MLB에서 뛰었다. 밀워키 브루어스에서 2018년 32홈런을 쳤지만, 지난해에는 7홈런에 머물렀다. FA가 된 뒤 토론토와 연봉 400만 달러에 계약했다. 네 선수의 공통점은 수비보단 타격에 강점이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류현진의 도우미’가 되고, 누군가는 ‘불쇼’ 같은 오명을 쓰게 될런지도 모른다.


고교 시절 4할 타자 김광현, 류현진 상대로 안타 칠까


NL과 AL의 가장 큰 차이는 지명타자(DH, Designated Hitter) 유무다. AL은 1973년부터 투수 대신 타격을 하는 지명타자를 쓰고 있다. 한국프로야구 역시 1982년 도입 당시부터 지명타자제도를 쓰고 있다. 최근엔 NL도 DH를 쓰자는 의견이 대두하고 있지만, 현재까지는 투수도 타석에 서고 있다.

김광현의 세인트루이스는 NL 중부지구 소속이다. 김광현도 이제 배트를 휘둘러야 한다. 김광현은 미국 진출이 확정된 뒤 “고등학교 때 잘 쳤다”며 “방망이로 치고 싶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실제로 안산공고 시절 김광현은 뛰어난 좌타자였다. 1학년 때는 타율 0.200(30타수 6안타)에 머물렀지만, 2학년 때는 0.333(24타수 8안타)을 기록했다. 3학년 때는 타율 0.415에 홈런도 1개 쳤다.

특히 김광현은 장타를 많이 때려내 OPS(출루율+장타율)는 무려 1.178을 기록했다. 투수로 등판하면서 3번 타자로 나설 때도 있었다. 물론 프로에 온 뒤엔 기회가 거의 없어 세 타석에 들어선 게 전부다. 프로 데뷔 처음 타자로 나선 2007년 수원 현대전에서 1대 4로 뒤진 9회, 밀어내기 볼넷으로 타점을 올렸다. 이후 두 차례는 범타로 물러나 통산 2타수 무안타를 기록했다.

한국인 메이저리거 중 가장 타격이 뛰어났던 투수는 단연 류현진이다. 류현진 역시 동산고 시절 타격을 잘해 중심타선에 배치됐다. 원래 오른손잡이인 류현진은 투구는 왼손으로 하지만, 타격은 오른손으로 한다. 내셔널리그 소속 다저스에 입단한 류현진은 녹록지 않은 방망이 실력을 뽐냈다. 7년간 통산 타율 0.178(213타수 38안타), 1홈런, 12타점 OPS 0.465를 기록했다. MLB 투수 평균 타율이 1할을 겨우 넘고, OPS 0.300이 안 되는 걸 감안하면 훌륭한 수준이다.

NL 투수들에게 필수적인 번트 성공률도 높았다. AL로 가게 되면서 타격 기회가 줄어든 류현진은 “아쉽다. 그래도 인터리그(NL 팀 홈경기)에서 잘하겠다”고 웃었다.

부시스타디움에서 열리는 토론토와 세인트루이스의 경기에서 류현진과 김광현이 나란히 등판한다면 진귀한 장면을 볼 수도 있다. 김광현이 류현진의 공을, 류현진이 김광현의 공을 치는 그림이다.

류현진과 김광현이 나란히 선 모습은 정규시즌 개막 이전에도 볼 수 있을 듯하다. 둘은 1월 일본 오키나와로 건너가 개인훈련을 한다. 이미 건너간 송은범·정우람까지 넷이 모인다. 훈련 스케줄은 각자 소화하지만 숙소가 같아 자주 얼굴을 볼 수밖에 없다. 김광현은 “현진이 형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많다”고도 했다.

둘은 2월에는 나란히 미국 플로리다주로 넘어간다. 2월 중순 시작되는 스프링 트레이닝보다 1~2주 먼저 입국하는 일정이다. 세인트루이스와 토론토 모두 캑터스리그(미국 남서부 지역 봄철 훈련 리그)가 열리는 플로리다주에 캠프를 꾸린다. 아쉽지만 시범경기에선 두 팀이 만나지 않는다. 대신 토론토가 머무는 더니든과 세인트루이스가 머무는 주피터의 거리는 300㎞가 조금 넘는다.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만날 수 있는 거리다.


김효경 중앙일보 기자 kaypubb@joongang.co.kr

 

월간중앙 더 보기

 

손상 최소화하는 임플란트 기술로 세계를 사로잡다

여자 농구 전성기 이끈 유소녀 농구 육성본부장

상조문화 선구한 기업에서 토털 라이프 케어 기업으로




댓글을 달아 주세요